김치관 기자(ckkim@tongilnews.com)


어느날 가장이 직장에 나가며 잘 다녀오겠다고 인사하고 집을 나선 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것도 죽었는지 살았는지 시신이나 유품 한 점 없다면 그 심정이 어떠할까.

오는 29일로 14주년이 되는 `대한항공(KAL) 858기 사건`에 대한 재조명 노력이 힘겹게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6일 통일부 북한자료실에서 칼(KAL)기 사건과 관련한 비디오 시청 모임에서 만났던 희생자 가족들이 연락을 해왔다.

그들은 오랜 세월 진상규명을 요구해온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알려줄 것을 간절히 고대하고 있었다.


일시 : 2001. 11. 19  오후 2시
장소 : 광화문 근처 커피숍
대담 : 차옥정(66세, 희생자 박명규씨 부인)
          김호순(55세, 희생자 신태호씨 부인)
          김치관 기자
사진 : 조성현 기자


그들은 오랜 세월 진상규명을 요구해온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알려줄 것을
간절히 고대하고 있었다. [사진 - 통일뉴스 조성현기자]


`지나고 보니까 아닌 걸 자꾸 느끼게 돼요`

□ 통일뉴스(이하 통) : 사고가 난 지 꽤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요.

■ 김호순(이하 김) : 사고가 나자마자 바로 진상규명을 요구했는데, 어디서 확인할 수 있는데가 없었어요. 집에서 가방들고 나가가지고 안들어 오니까. 세상에 이런 일이...

■ 차옥정(이하 차) : 자료를 줄테니까요. 내용이 다 나와있어요.
젊어서 나라에 몸 바쳤는데 눈송이처럼 산산조각이 났다는 게 어디 있나요. 남편은 전시에는 전투기를 몰게돼 있는 사람인데 유공자 대우를 해줘야죠.

관련 자료를 주겠다고 기자와 만나자고 했던 두 사람은 처음부터 격앙된 감정을 가누기 힘들어 보였다.

차옥정씨의 남편 박명규(당시 53세)씨는 18년간 공군에 임관했으며, 중령으로 예편했고 김호순씨의 남편 신태호(당시 48세)씨 역시 소령으로 1980년에 예편했다고 한다. 이들은 예편과 함께 대한항공 조종사로 일해오다가 89년 11월 29일 KAL 858편에 탑승했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박명규씨는 미주노선을 운항하는 DC10기 기장으로 고국으로 귀환하기 위해 KAL858기에 손님으로 탑승했으며, 신태호씨는 DC10기 부기장으로 역시 귀환을 위해 탑승했다.

□ 통 : 당시부터 계속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노력해 오셨는데 성과가 없으셨는지요.

▶사고 희생자 박명규씨의 부인 김호순씨
[사진 - 통일뉴스 조성현기자]
■ 김 : 가족들이 아무 것도 모르니까요. 가족들이 서울 사는 사람도 얼마 없고 대부분 시골에 살고 87년도 만 해도 정보라는게 지금보다 많이 뒤져서 정보공유가 안되고 신문지상의 정부 발표만 믿었죠.

지나고 보니까 아닌 걸 자꾸 느끼게 돼요. 83년도에 KAL 007기가 소련의 강력한 미사일을 맞아도 (비행기) 잔해가 많이 나왔어요. 물론 노무자 가족들은 잘 못느끼겠지만 남편이 대한항공에 근무하는 우리들은 민감하게 반응해서 알고 있죠. 폭약이 미사일보다 강력하지는 않을 텐데 007기는 잔해가 몇 개월씩 (파도에) 밀려나오고 TV에서도 보여주고 그랬는데 858기는 수색도 제대로 안했어요. 대통령선거에 바빠서 위정자들이 노무자들이 탄 비행기 같은 것은 눈에도 없었어요. 결국 찾지 않아 증거가 없어요.

김현희 재판하고 구명정이 나왔다고, 지금도 이름도 안 잊어버리는데 `코코섬` 부근에서 (구명정이) 하나만 떴는데 말이 됩니까. 김현희 자백하고 구명정만 갖다놓고 재판을 했어요.

사고기 승객 115명은 주로 중동에서 일하고 귀국하는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이후 희생자 가족들의 모임인 `858기 가족회`에서도 승무원 가족들이 많은 역할을 했다고 한다. 차옥정씨나 김호순씨는 한목소리로 당시 우리 정부가 수색작업에 소홀하고 진상규명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강력하게 비난했으며, 희생자 가족들을 정부가 얕잡아 본데 대해 분개했다.

□ 통 : 전번 비디오 시청 모임에서 사고후 정부의 조치들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셨는데요.

■ 차 :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반공궐기대회라는 것을 연다고 집으로 전화 연락이 와서 진상규명도 안했는데 무슨 궐기대회냐고 안나갔고, 장례식장도 안갔어요.

□ 김 : 나는 TV를 보고서야 알았는데 쫒아가서 왜 여기와서 반공궐기대회 하냐고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가봐야 끝날 것 같아 가지 않았어요.

■ 차 : 일본, 독일 기자들이 통역을 데리고 집으로 찾아 왔길래 독일에서는 어떻게 이야기 하느냐고 물어보았더니, 그 기자 명함도 있는데, 실종 2시간 만에 테러로 발표하는 것이 의심스럽다고 그래요. (김현희가) 장기영씨 꽃다발 준 사진을 조선일보가 보도했는데 거짓이고, 발견된 구명정이 겉은 말짱한데 안에 든 게 그을리고 부셔졌다니...

이야기는 다시 사건의 의문점으로 되돌아 왔고 차옥정, 김호순씨는 칼기 사고에 대한 정부의 발표를 전혀 믿지 않았다.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고 거짓이라며 <KAL 858기 가족 의혹제기 33가지>(관련자료 참조)라는 서류를 한 부 건네주었다. 이 서류에는 칼기 사건과 관련한 33가지의 의혹사항이 담겨있는데, 전문가들에 따르면 폭약에 의한 폭발이더라도 공중분해까지 약 5분의 시간이 있어 긴급발신을 할 수 있었지 않았겠냐는 내용이나, 김현희의 주장과는 달리 김현희 음독후 진찰한 바레인 의사는 위 세척을 해도 독극물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고 했던 점 등을 지적하고 있다.

▶차씨와 김씨가 건네준 <KAL 858기 가족 의혹제기 33가지>(우측)와 서울가정법원이
발급한 <(실종)확정증명원> 사본. [사진 - 통일뉴스 조성현기자]


정권 바뀔 때마다 `혹시나`

□ 통 : 진상규명 요구에 대한 반응은 어땠는지요.

■ 김 : 건교부에 질의서를 보내고 했는데 조사결과 발표 그대로라고 해요. 한두번 해보니까 답이 똑 같아 안하게 됐죠. 80년대는 철권통치기라 기자들을 만나 의혹을 제기했고 가족들의 말을 써달라고 했지만 써주는 데가 없어요. 위에 편집에서 짤린다고 그래요.

▶사고 희생자 신태호씨의 부인 차옥정씨
[사진 - 통일뉴스 조성현기자]
■ 차 :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문을 보냈는데 접수증 써주고 끝나는 거죠. 사실은 87년 (대통령) 선거기간에 김영삼씨를 독대했어요. 보상을 이야기 하길래 보상이 아니라 비행기를 찾아달라 했죠. 그랬더니 대통령되면 해결해 주겠다 그랬는데 94년에 (가족들이 갖고있는) 자료를 다 주고 회견문을 만들어 발표하려고 했는데 북한 핵 기자회견과 겹쳐 취소되고 말았죠. 김대중 대통령도 선거운동 기간에 해준다고 약속했고 민주당, 한나라당 다 말로는 약속해 놓고는 말 뿐이죠. 의식있는 사람들이 조금만 움직여 줘도...... 미국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안돼요.

■ 김 : 미국은 12년이 지나면 문서를 공개한다고 한다던데. 레이건 대통령 때 일이지만 부시가 레이건 때 사람들을 그대로 쓴 아버지가 곤란해질까봐 제동을 건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어요.

가족들의 노력은 주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행해졌고 대선 후보들은 일단 가족들의 요구를 수용한 듯한 제스쳐를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매번 일이 성사되지 못했고 결국 가족들은 미국이 풀어야 할 문제라는 귀결점(?)에 도달한 듯 했다.

특히 가족들은 언론에 대해 극심한 반감을 갖고 있었는데 사고 몇 년뒤 기체 일부가 발견되어 가족들이 확인차 방콕으로 갔을 때 몇 가지 기체 조각과 옷, 가방들이 널려있었는데 한국일보가 가족들이 희생자를 확인하고 울었다는 보도를 했으나 완전한 오보였다고 한다. 가족들이 한국일보에 몰려가 정정보도를 요청하고 가족들의 주장을 다시 실어줄 것을 요구했지만 끝내 묵살되었고 `울고 불고, 기물을 부수고...` 했지만 결국 `기자가 써도 위에서 짤라 버린다`는 답을 들었다고 한다.

□ 통 : 다른 단체나 기관과 연대하거나 협조를 구해보시지는 않았는지요.

■ 김 : 연대는 안했고 자유민족민주회의 이철승씨는 국제인권위원회에 유능한 변호사를 연결해준다고 했는데 소식이 없어요. 잘못 들어갔어요.
통일연대와는 최근에 연결됐는데 우리가 말하는 것을 거론해 주고 공조해 주니까.

■ 차 : (KAL기 사건관련) 책을 써가지고 감옥에 잡혀 갔다온 학생 만나러 부산대까지 갔다오기도 했는데 (정부발표에 대해) 학생들이 웃어요. 명동성당에서도 같이 하기도 했고요.
임수경 엄마도 재판할 때 만났는데 `김현희는 가짜야`라고 하더라구요.


`조갑제는 안기부 앞잡이`

□ 통 : 언론인 조갑제씨가 김현희를 면회한 것으로 아는데요.

▶언론은 가족들의 입장을 제대로 다뤄주지 않았다고 한다.
사진은 차옥정씨와 김호순씨가 시사저널을 `약속없이` 찾아가 기자와 면담하는 모습.
[사진 - 통일뉴스 조성현기자] 

■ 김 : 김현희를 면담한 유일한 사람이 조갑제예요. 피해자 가족이 면담하자면 신변이 위험하다고 안시켜줘요.

■ 차 : 조갑제는 안기부 앞잡이예요. 기집애(김현희)가 교회로 간증 간다면 나중에 소문 듣고 뒤늦게 쫒아가곤 했는데 한번은 가족들 하고 부딪혔는데 개선장군이더라고. 좋은 옷에 안기부 경호원에 검은 세단에. 지(김현희)는 약을 먹었는데 여기와서 일하려고 (하느님이) 살려놨대요. 안기부 호위가 어마어마하고 가족들 팔을 꺽고 접근을 못하게 했죠.

조갑제와 김현희 대목에 이르자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하듯 말투가 빨라지고 단정적이 되었다. 그들은 아직도 `국가정보원(국정원)`을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로 불렀다.

월간조선의 조갑제 기자는 `김현희의 하느님`이라는 책 머리글에서 "내가 김현희와 나흘간 이야기를 하고 나오면서"라고 밝히고 있는데 가족들은 자신들도 못한 김현희와의 면담을 한 유일한 민간인으로 조갑제 기자를 들면서 망설임 없이 조 기자를 `안기부 앞잡이`로 규정했다. 기자가 조갑제 기자를 만나볼 의향은 없냐고 물어보자 "그 사람이 우리를 안 만날걸요"라고 말하며 얼마전 `그 밑에 있는` 김성동 기자가 인터뷰를 와서 진상규명부터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 통 : 사건 후 처리과정이나 법적 조치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요.

■ 김 : 사건 3개월 만에 사망신고를 일괄로 처리해 버렸어요. 내 대신 누가 도장찍으면 가만 안둔다고 했지만 마지막에 찍고 말았어요. 실종시에는 대한항공에서 월급을 줘야돼는데 아마 대한항공이 83년 경험에서 배운 것 같아요.

■ 차 : (문서를 보이며) 97년에 실종기간을 1년으로 인정받은 행정소송을 내서 이겼어요. 테러사건은 시효가 없다고 해요.

■ 김 : 그때 7천 9백만원에 일률적으로 (도장) 찍었어요. 애들 키우고 직장 경험이나 사회경험이 없어 아무것도 모르고 도장을...

■ 차 : 몸져 드러누워 있는데 사람이 사라졌는데 돈가지고 뭐하랴 싶었는데 KAL에서는 내용증명을 보낸다고 하고...

가족들은 대체로 사회경험이 없었고 정부가 요구하는대로 모두 수십번의 도장을 찍었다고 한다. 따라서 법적으로 KAL 858기 사건은 가족들의 합의하에 마무리 된 셈이다.

가족들은 `858기 가족회`를 구성해 활동해 왔으나 현재는 그것도 내부가 두 갈래로 갈렸다고 한다. 현 대표를 중심으로 보상을 위주로 활동하는 사람들과 차씨와 김씨 등 진상규명을 위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그것이다. 차씨 말에 따르면 대표 선거에서 동수가 나왔는데 재선거에서 한표차로 대표가 됐으니 다른 측 목소리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 차 : 진상이 규명되고 남편에 대한 국가의 예우가 바로 되길 바랍니다.

■ 김 : 진상규명이 되면 모든 것이 풀릴 것이라고 봅니다.

이들은 기자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주간지 `시사저널` 사무실을 `약속없이` 찾았다. 그들의 손에는 조만간 대통령에게 전달할 탄원서가 들려있었다.

▶29일이면 사건 14주년이 되지만 그들의 바램은 아직도 `진상규명`이다.
[사진 - 통일뉴스 조성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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