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말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는 소통의 도구이자 사회 현상을 반영하는 거울입니다. 미디어를 읽는다는 것은 거울에 비친 우리 자화상을 본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사회를 성찰하고 뒤돌아보는 글이 되고자 합니다. 이 글은 매주 목요일에 게재됩니다.

 

한국 대중음악이 국제적인 인기를 얻기 위해서는 우선 영국 시장을 두드리라는 어느 영국인 기자의 충고가 담긴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 오래 전이 아닌 불과 몇 년 전의 글이다. 글의 요지는 미국 시장에서 인정을 받아야 국제적으로 진정한 인기를 입증하는 것인데, 미국 음악 시장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우선 상대적으로 쉬운 영국에서 인정을 받는 것이 전략적으로 좋다는 충고였다. 같은 영어권이고 영국 차트에서 인정받으면 미국 진출이 용이하다는, 나름 영국 사람으로서 한국 대중음악에 대한 애정 어린 충고였다고 기억한다.

사실 미국 음악 시장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예컨대 전 세계적인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싸이의 강남스타일도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한 적이 없다. 그만큼 미국 시장은 비영어권, 특히 동양권 뮤지션에게 배타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국의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미국 빌보드 차트 1위를 달성했다는 소식을 접하니 감개무량하다.

한류가 인기라고는 하지만, 주로 아시아권의 인기였고 서구를 포함한 전 세계적 인기는 아니었는데, 불과 몇 년 만에 한국의 젊은 뮤지션이 명실상부 전 세계를 석권한 것이다.

중 장년층의 시각으로 본다면 이것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사건이다. 과거 라디오의 음악 프로그램은 온통 미국과 영국의 팝 음악 일색이었고, 한국 가요는 가물에 콩 나듯 했던 것이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지금은 오히려 서구 팝 음악 방송이 가물에 콩 나듯이고, 우리나라 토종 뮤지션의 음악으로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이 짜여 있다.

그러던 차에 이제 글로벌 스타임을 입증하는 바로미터인 빌보드 차트 1위를 한국의 앳된 아이돌 보이 그룹이 차지했다는 것은 가슴 뛰는 일이다. 중 장년층 세대가 미국이나 영국 뮤지션들에게 열광하고 동경했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인데, 이제는 거꾸로 서구의 젊은이들이 한국의 뮤지션에게 열광하고 더불어 한국 문화를 동경하게 되었으니 이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즈로 상징되는 영미권의 음악은 오랜 기간 전 세계 대중음악 시장을 지배해왔다. 한국의 아저씨들에게 대중음악은 곧 이들 영미권의 음악이었고, 한국 가요는 한참 격이 떨어지는 수준 미달의 음악으로 치부되었었다. 이들 서구 음악인들에 대한 제한된 정보를 구해서 음악적 지식을 과시하던 것이 그리 오래 전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거꾸로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한 제한된 정보나마 구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한류 팬으로서 한국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정말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아무래도 구세대이다 보니 요즘 젊은 취향의 뮤지션들 음악을 잘 알지 못하고 즐기지도 않지만, BTS가 빌보드 1위를 달성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1위 곡 Dynamite를 찾아서 들어봤다. 왜 이 곡이 1위를 했고 BTS가 국제적인 대세가 되었는지 곡을 들어보고 이해했다. 세대와 문화 차이를 뛰어넘어 누구에게나 어필할 수밖에 없는 곡이라는 것이 자명했다. 한국의 대중음악이 이 정도로 발전했다는 사실에 감격하게 된다.

중 장년층 세대는 어쩔 수 없이 서구에 대한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세대이다. 이들이 태어나고 젊은 시절을 보냈던 시기는 한국이 최빈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열심히 발전하던 시기이다. 한국적 가치와 전통은 열등한 것으로 취급되고 서구 특히 미국적 가치가 선진적인 가치로 받아들여지고 선망받던 시기이다. 당연히 서구에 대한 콤플렉스가 깊이 각인될 수밖에 없는 세대이다. 성조기를 들고 집회를 하는 50대 이상의 무리들은 극단적 예시라고 볼 수 있겠다. 이들에게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존재가 미국이었던 것이다. 경제적, 정치적으로는 물론이고 문화적으로도.

요즘 해외에 나가면 현지의 젊은이들에게 한국 대중문화 스타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는다. 한국인이지만 젊은 대중문화 스타들을 잘 모르기에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난감하기는 하지만, 한국인도 모르는 연예인들을 줄줄이 꿰차고 있는 외국인들을 보며 우리가 선진국이 되었음을 실감한다. 경제적으로는 물론이지만, 문화적으로 선진국임을 피부로 느낀다. BTS는 그런 현상을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인증샷이라 하겠다. 그 동안 난공불락의 요새로 보였던 미국 빌보드 차트를 석권하였다는 것, 그리고 한때 한국 대중음악에 충고를 했던 영국인들이 BTS를 비틀즈와 동격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명실상부 한국이 선진국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비틀즈를 숭배하던 세대와, BTS를 숭배하는 세대가 같이 공존하는 한국 사회, 그래서 BTS의 노래 제목처럼 한국 사회는 다이너마이트 같은 사회인 듯하다. 폭발적 에너지가 아직 충만한 사회.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으로서 정말 다이내믹한 나라에 살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극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직접 체득한 세대는 아마도 한국의 중장년층이 세계 역사에서 유일하지 않을까. 매우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는 행운아라는 생각이 드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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