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너희 아버지가 훌륭한 분이라고는 하지 않겠다.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번 적도 없어. 신문에 이름 한 번 나온 적이 없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인품을 가진 것도 아니야. 그렇지만 네 아버지도 한 인간이다. 그런 네 아버지에게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그러니 관심을 기울여주어야 해. 개처럼 무덤 속으로 굴러 떨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돼. 이런 사람에게도 관심이, 관심이 필요하다고. 너는 아버지를 미쳤다고 하지만...... . 

                                          - 아서 밀러,『세일즈맨의 죽음』에서 


 한평생을 샐러리맨으로 보낸 월리는 이제 늙고 병들어 재활용이 되지 않는 소모품으로 버려진다. 세상이 그를 버리고 자식들이 그를 무시해도 아내 린다는 적극적으로 그를 사랑으로 감싼다. 

 아메리칸 드림의 1920년대. 윌리는 20대 초반에 정글에 들어가 몇 년 후 벼락부자가 되어 나온 형을 항상 꿈꾼다. 하지만 그의 현실은 초라하다. 미식축구로 전도유망한 첫째 아들 비프에게 모든 기대를 건다. 하지만 비프가 윌리의 불륜장면을 목격하고부터는 한 번 벌어진 부자의 틈은 도무지 메워지지 않는다.

 윌리는 자동차 사고로 위장한 자살로 자신의 일생을 마감한다. 가족들에게 사망보험금을 남기며. 하지만 린다는 그의 무덤 앞에서 울부짖는다. “여보, 왜 그랬어요?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봐도 알 수가 없어요. 여보, 오늘 주택 할부금을 다 갚았어요. 오늘 말이에요. 그런데 집에는 아무도 없어요. 이제 우리는 빚진 것도 없이 자유로운데..... .”       

 우리 사회에도 윌리 같은 가장이 얼마나 많을까? 옹고집의 노인, 남 얘기는 듣지 않고 항상 남을 가르치려 드는 꼰대...... .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하려 한 적이 있을까?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간 적이 있을까? 늙고 병들어 사그라져가는 그들을 마치 쓰레기 더미를 바라보듯이 바라보지 않았는가? 

 이번 여름에 우리 가족이 다 모였다. 나는 자식들 한 명 한 명과 술을 마시기로 했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술자리 한 번 못 가진 게 큰 회한이 되어서다.

 그들과 각기 술을 마시며 우리는 아주 가까워졌다. 자식들의 속마음을 들으며 나의 고민을 털어놓으며 우리는 인간 대 인간이 되어갔다. 특히 큰 아들과는 큰 성과였다. 

 큰 아이는 나와 성격이 똑 같아 생각과 달리 부딪칠 때가 많았다. 그때는 얼마나 가슴이 쓰라렸던가! 술자리를 하고 부터는 큰 아이와 한결 부드러워졌다. 작은 아이는 막내둥이라 평소에는 마냥 귀엽기만 했는데, 술잔을 드는 그의 의젓한 모습은 얼마나 대견했던가!      

 다들 잘 자랐구나! 한 사람의 어른으로 꿋꿋이 커 가고 있었구나! 아빠는 그냥 지켜보기만 하면 되리. 그들의 든든한 큰 산이 되어.   

 윌리도 큰 아들 비프와 작은 아들 해피와 각기 술자리를 가졌으면 어땠을까? 서로 속마음을 터놓고 얘기했더라면. 

 사실 부모와 자식사이는 얼마나 거룩하고 소중한 관계인가! 천륜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 관계가 무너지면 세상 전체가 무너지지 않는가?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은 ‘소주병’이 아니던가!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 공광규,《소주병》부분  


 한 평생을 자식들을 위해 속을 다 비워 내 텅 빈 병이 된 아버지들. 쓰레기장에서 이리 저리 굴러다니는 빈병들. 우리는 그들의 울음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 꼰대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참회의 눈물을 흘려야 한다. 그들이 있어 지금의 우리가 있으니까. 그것만으로 그들은 위대하지 않는가!    
    
 미래의 희망은 린다의 여성성이 아닐까? 한 시대를 넘어가는 힘. 역사의 강물을 굽이굽이 흘러가게 하는 힘. 천지운행의 근원적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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