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신과 같은 아킬레우스여, 그대의 아버지를 생각하시오! 나와 동년배이며 슬픈 노령의 문턱에 서 있는 그대의 아버지를.〔......〕그래도 그분은 그대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날이면 날마다 사랑하는 아들이 트로이아에서 돌아오는 것을 보게 되기를 고대하고 있을 것이오. 하나 나는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오. 드넓은 트로이아에서 나는 가장 훌륭한 아들들을 낳았건만 그중 한 명도 안 남았으니 말이오. 〔......〕혼자 남아서 도성과 백성들을 지키던 헥토르도 조국을 위해 싸우다가 얼마 전에 그대의 손에 죽었소. 그래서 나는 그 애 때문에, 그대에게서 그 애를 돌려받고자 헤아릴 수 없는 몸값을 가지고 지금 아카이오이족의 함선들을 찾아온 것이오. 아킬레우스여! 신을 두려워하고 그대의 아버지를 생각하여 나를 동정하시오. 나는 그분보다 더 동정 받아 마땅하오. 나는 세상의 어떤 사람도 차마 못한 짓을 하고 있지 않소!  내 자식들을 죽인 사람의 얼굴에 손을 내밀고 있으니 말이오.”   - 호메로스,『일리아드』에서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가 자기 자식을 죽인 아킬레우스의 발 앞에 쓰러져 통곡을 한다.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아킬레우스가 꺼이꺼이 울기 시작한다. 

 강의가 끝나고 핸드폰을 보니 부재중 전화가 있다. ‘누구지?’ ‘작은 아이네. 오늘 저녁에 큰 아이 송별회하기로 해서 퇴근 시간 알리려 전화했나 보네.’ 전화를 거니 작은 아이가 받는다. “아빠, 그저께 함께 점심 먹은 직원이 확진자래.” “응?” 온 몸에서 힘이 다 빠져나갔다. ‘정신을 차려야 해!’ 

 “지웅아, 지금 어디야?” “일찍 퇴근하고 코로나 검사받으러 oo종합운동장에 왔어. 보건소에서 자가 격리자로 분류되었다고 문자가 왔어.” “그래, 검사받고 집에는 오지 말고 일단 차 안에 있어.” “응.” 길가에 주저앉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집에 가자!’  

 집에 오는 길에 소독제를 사서 큰 아이와 함께 작은 아이 방을 소독했다. 화장실과 작은 아이 손이 닿았을 곳을 꼼꼼히 소독했다. 

 ‘작은 아이가 그저께 확진자와 식사했는데, 그날 저녁에 처남이 와서 함께 차를 마셨지.’ ‘나와 아내, 큰 아이. 처남이 다 위험하네.’ ‘큰 아이는 독일에 돌아가야 하는데. 비자 문제가 있어 일찍 간다고 했는데.’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수천 킬로 떨어진 곳에서는 태풍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하지? 

 작은 아이가 전화를 했다. “아빠, 시청에서 집에 빨리 가래. 자가 격리자는 집에 있어야 한대.” “그럼 일단 집 주차장으로 와서 기다려.” 

 ‘큰 아이가 독일에서 와 자가 격리한지 얼마 되지 않는데, 다시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큰 아이를 두 방과 거실, 부엌을 쓰게 하고 아내와 나는 내 방과 지하실에서 창문을 넘나 들고 밥을 사먹으며 2주일을 지낸다는 게 너무 힘들었다. ‘작은 아이에게는 원룸에 있으라고 해야겠다.’ 

 작은 아이와 통화를 했다. “지웅아, 너는 원룸에서 있어야겠어. 네 형이 자가 격리 할 때 엄마가 너무 힘들어했어. 그렇게 할 수 있지?” “응, 그럴게.” 

 작은 아이가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는 조용히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아빠, 우리 회사 다른 직원들은 다 집에서 자가 격리한데.”  

 ‘아, 작은 아이가 집에 있고 싶어 하는구나!’ 차 안의 작은 아이가 다시 전화를 했다. “아빠, 조심할게!”   

 아, 내 가슴이 미어졌다. ‘그래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 전화를 했다.  “지웅아, 그래 집에 들어와!” “응, 7시쯤에 검사 결과 연락 온다니까 그때까지 기다려 봐.” “응, 그래.” 

 째깍째깍 시계의 초침 소리가 들렸다. 7시가 훨씬 지났는데도, 아이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는다.  

 문둥이 시인 한하운은 어느 여름 시골길을 걷다 환청을 듣는다. 어릴 적 동무들과 함께 모여 한글을 배우던 시절, 개구리 울음소리가 아이들의 목소리로 들린다.   


〔......〕
〔......〕
 그기가.

 라랴 러려
 로료 루류
 르리라.  
                
           - 한하운,《개구리》중에서 

 

 부모 형제와 함께 살던 한하운 시인은 나병에 걸려,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떠나야 했을 것이다. 어린 자식을 버려야 했던 부모의 고통은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아들은 아무도 나와 보지 않는 집을 뒤로 하고 혼자 터덜터덜 목표도 없이 길을 걸어갔을 것이다.     

 아이가 전화를 했다. “아빠, 아직 연락이 안 왔어.” 7시 20분이었다. “그래, 30분까지 기다려 보고 집으로 와.”

 30분이 되자, 아이가 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문을 열고 나가 빌라 현관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들어 와!” 

 그날 밤을 하얗게 새웠다. 머릿속에서는 온갖 상상의 세계가 펼쳐졌다. ‘작은 아이가 확진 받으면 나, 아내, 큰 아이, 처남이 자가 격리 들어갈 텐데, 우리 중에 확진자라도 나오면?’ ‘누가 죽기라도 하면? 나야 나이가 들었으니 죽어도 크게 여한은 없으나 우리 막내둥이 평생의 죄책감은 어떻게 하나?’ 

 죽음마저도 넘어서는 고통이었다. ‘내 일생에 이런 고통은 없었는데...... .’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경건하게 두 손을 모아 무릎을 꿇고 나의 신에게 간절하게 기도를 했다. 가장 힘들 때만 기도하는 나의 신, ‘이번에도 들어주실 거야!’ ...... 이제 어떤 운명도 받아들여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 마음이 흐트러져서는 안 된다. 

 바깥이 훤한데, 핸드폰을 보니 아직 작은 아이한테서 문자가 없다. 찌징! 문자가 왔다. ‘아빠, 음성이래.’ 아, 울음이 터져 나왔다. 작은 아이와 함께 자가 격리 14일을 무사히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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