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 논산 소재 한 요양원에 기거해 있는 선생을 위문차 방문한 양심수후원회 권오헌 명예회장을 비롯한 인사들. [사진제공-양심수후원회]

장기수 강담 선생이 21일 오후 9시 43분경 별세했다. 향년 87세.

2차 송환 희망자인 고인은 올해 초 폐암 4기 판정을 받고 논산 소재 한 요양원에서 기거해 왔다.

1933년 함경남도 흥원에서 태어났으며, 수산사업소 근무 중 대남연락책으로 남파됐다가 1965년 검거됐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4년을 복역했으며 1988년 12월에 출소했다.

출소 후 각종 집회와 통일운동에 참여했다. 특히 모임이나 집회 때마다 늘 멋진 양복에 색깔 있는 셔츠 그리고 넥타이를 단정히 매고 등장해 ‘멋쟁이 장기수’로 불렸다.

▲ 2017년 8월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후문에서 열린 ‘비전향 장기수 2차 송환, 조건없이 실행하라’ 기자회견에 참석한 강담 선생(우측에서 두 번째). [통일뉴스 자료사진]

2차 송환 희망자 33명중 강담 선생의 별세로 20명이 숨을 거두고, 현재 13명이 힘겨운 투병생활을 이어가며 송환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에는 김동섭, 류기진, 서옥렬 선생이, 지난 4월에는 허찬형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폐암말기의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 북측에 있는 외동 딸과의 재회를 꿈꾸며 송환을 기다려 왔다.

빈소는 서울시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 207호이다. 장례는 23일 오후 4시 빈소에서 ‘통일애국열사 강담 선생 민족통일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24일 오전 11시이며, 장지는 서울 종로구 금선사이다. 

장례위원회 측은 “코로나19의 급속한 창궐로 방역 수칙을 잘 지켜주시기 바라며, 기저질환이 있으신 분은 조문 자제를 부탁드인다”라고 밝혔다. 부의계좌는 국민은행 008-01-0579-881, (사)정의평화인권을위한양심수후원회.

 

▲ 빈소에 차려진 고인의 영정.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1933.10.12. 함경남도 홍원군 산양리에서 부친 강용준 님과 모친 최귀인 님의 7남매 중 다섯째로 출생.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문전에 학교가 있어도 못 가고 소를 기르며 지냄.
1945. 해방 후 학천인민학교 3학년 편입
1950. 운학중학교 입학, 전쟁 발발
1954. 졸업과 함께 군 입대하여 당원이 됨. 금강산과 해금강 일대에서 8년 간 복무.
1961. 청진수산사업소 배치 
1961.10. 4살 연하의 박원옥 님과 혼인
1962. 큰딸 선자, 이듬해 길모 얻음. 진남포 해양고등학교 입학, 2년 후 항해사 자격증 획득, 마도로스 활동 
1964.08. 졸업과 동시에 중앙당 소환
1965.03.05. 남에 내려올 당시 부인이 셋째 임신 중. 울릉도 앞바다에서 체포. 미 합동수사부로 끌려 간 뒤 서빙고 대공분실에서 6~7개월 간 고문. 선장과 부선장 사형 집행. 항해사이자 당책이었던 선생은 1심 사형, 상고심 무기로 감형, 서대문형무소/대전교도소로 이감

1968. 광주교도소 이감
1971. 고문과 구타로 한쪽 귀의 청력을 잃음
1988.11.20. 특사(24년)로 풀려남(58세), 전남대 임경순 교수 신원보증 출소 후 경기도 광주 가구제작사 근무.
1989. 건설회사 잡부, 아파트와 성당 경비로 일하다 14살 연하의 부인 최화자 님과 재혼
2001. 2. 6 비전향장기수 2차 송환 요구
2005. 뇌졸중으로 쓰러짐(왼쪽 팔과 다리 마비)
2012. 전립선암 진단
2017. 다시 뇌졸중
2020.01. 폐암 4기 진단 받고 투병  
2020.08.21. 저녁 9시 43분 운명

*범민련 서울연합 고문, 통일광장, 민가협, 양심수후원회에서 통일운동


(자료제공-류경완 코리아국제평화포럼 공동대표위원장)

 

(추가, 15:22)

(사진 추가.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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