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박정기 선생의 2주기 추모제 및 추모 조형물 제막식이 26일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묘역에서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창훈 통신원]

"2000년 1월 4일 아버님은 막내아들 종철이의 멈춰버린 시계를 동대문 수리점에 맡기십니다. 고장난 시계라 반신반의하면서 맡겼는데... 단돈 3천원으로, 고장나서 다시는 움직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시계가 다시 움직이는 것을 보고 가슴이 뭉클하면서 너무 고통스러워 하셨습니다. '이럴 수도 있구나... 멈춰버렸던 시계가 이렇게 다시 돌아올 수도 있구나... 그런데 막내만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죽음으로 정말로 가버렸구나...'"

26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린 '박정기 아버님 2주기 추모제 및 추모 조형물 제막식'에서 이현주 민주열사 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이 소개한 고 박정기 선생의 일화 한 대목이다.

지난 2018년 7월 28일 오전 89세를 일기로 별세한 후 평생을 그리워하던 막내아들 박종철 열사 옆에 안치된 박정기 선생의 2주기 추모제 및 추모 조형물 제막식이 26일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묘역에서 진행됐다.

▲ 박정기 선생 추모조형물. [사진-통일뉴스 이창훈 통신원]

아버지는/아들 얼굴을/서른 한 해 만에/쓸어보았다./흙이 된 손으로/아들은 스물두살/그대로였고 아버지는/아흔 살이었다./대지가 된 아버지와/아들이 여기서/손을 맞잡는다./

하늘은 별을 기르고/땅이 사람을 내는 까닭을 이곳에 서면 깨달으리라./이 땅 민주주의와 양심은 여기 두 부자에게 오래도록 빚졌다./꼭 잡은 두 손에 산 자들의 뜻을 포갠다./

서해성 교수가 적고 홍성담·이원석 작가가 함께 세운 추모 조형물에는 굽이치는 조국의 산줄기를 배경으로 아버지와 막내아들이 마주잡은 손이 새겨져있다. 

김세균 전 기념사업회 이사장에 이어 새로 이사장직을 맡은 박동호 신부는 인사말을 통해 지난 6월 10일 박정기 선생이 6월항쟁기념식에서 국민모란장을 수상한 일을 언급하면서 "아버님과 종철이의 역사가 민족의 제단에 선명하게 기록되었다"고 말했다.

더불어 지난 6월 18일 박종철인권상을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모임에 드린 일을 상기시키고는 "아버님이 세상에 아픈 곳을 찾아 보듬어 주셨듯이 기념사업회도 사회의 아픈 곳을 보듬어 주고 있다. 앞으로도 아버님이 생전에 하셨던 역할을 이어가도록 하겠다"라고 다짐했다.

이어진 추도사에서 장남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회장도 박 선생의 국민모란장 수상에 대해 "아버지가, 아들이 가고 30년간 민주화를 위해 싸워오신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헌사를 바쳤다. 

또 “현재 우리나라가 코로나 19사태에  잘 대응해서 세계인의 부럼을 사고 있는데, 이것은 박정기 아버님처럼 민주화를 위해 애쓴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하면서 “현재 유가협은 민주화를 위해 애쓴 분들을 국가 유공자로 모시는 민주유공자법을 추진하고 있다. 내년에는 아버님 앞에 민주유공자법이 통과되었음을 보고드리겠다"고 말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지선스님은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고 했던 유마거사의 보살심에 빗대어 "아버지의 삶은 아들의 죽음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삶은 아픈 중생을, 민중을 위해 애쓰는 삶이었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이어 "민중 민주 인권의 기수처럼 한 생애를 달려오신 분이지만, 늘 애쓰는 자들이 그늘이고 쉼터이기를 자임하신 분"이라고 기억했다.

장남 박종부씨는 유족을 대표해 "조형물처럼 아버님과 종철이가 이제는 손 놓지 말고 손잡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것"이라며 추모 조형물을 만들어준 작가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고 "무더운 날 함께해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고 인사를 전했다.

▲ 코로나19 사태로 많은 분들이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마음을 모아 헌화하고 추모하는 시간을 갖고 추모식을 마무리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창훈 통신원]
▲ 박정기 선생 묘역. 이날 추모제에서는 춤꾼 한순희씨의 진혼 살풀이 춤과 노동자 가수 박준씨의 추모공연이 있었다. 또 그동안 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일해 온 김세균 교수에게 감사패를 증정하는 행사도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창훈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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