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우 / 전 인천대 교수

 

필자의 말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는 소통의 도구이자 사회 현상을 반영하는 거울입니다. 미디어를 읽는다는 것은 거울에 비친 우리 자화상을 본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사회를 성찰하고 뒤돌아보는 글이 되고자 합니다. 이 글은 매주 목요일에 게재됩니다.

 

KBS의 간판 코미디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가 막을 내렸다. 20여 년 동안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한국 방송의 대표적 코미디 프로그램이 폐지된 것은 물론 시청률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원인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있다. 공영방송의 구조적 문제에서부터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코미디언들의 문제, 또는 유튜브로 상징되는 다양한 플랫폼과의 경쟁 등 많은 복합적인 원인이 제시되었다.

여러 분석 기사 중에는 남성 위주의 경직된 문화가 개그콘서트의 몰락을 가져왔다는 분석도 있다. 다른 방송국의 코미디 프로그램이 여전히 인기 있다는 사실을 놓고 본다면 반드시 남성 위주의 문화가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경직된 문화라는 측면에서는 일견 수긍이 간다. 서열 엄격하기로 유명한 코미디언들 내부에서의 경직된 문화도 문제겠지만 경직된 한국 사회 전체의 문화가 더 큰 문제이다.

코미디의 생명은 풍자와 해학이다. 매스미디어 등장 이전 전통적인 형식의 코미디라고 할 수 있을 마당극이나 탈춤의 주요 소재는 풍자와 해학이었다. 지배계층에 대한 서민들의 쌓인 불만을 한바탕 풀어놓으며 마음껏 그들을 조롱하는 무대였다. 그런데 코미디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풍자와 해학 그중에서도 지배계급 특히 정치에 대한 풍자와 해학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한국 코미디의 풍토가 되다 보니 어찌 보면 코미디의 몰락은 당연한 사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풍자와 해학은 암울하고 엄혹한 시절에도 항상 살아남았고 서민들의 애환을 대변하고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다. 조선시대 사대부 양반에 대한 조롱은 물론이고, 서슬 퍼런 군사정권 시절에도 "회장님 우리 회장님"과 같은 코미디 코너는 대놓고 권위주의 정권을 조롱하는 내용으로 답답한 현실에 카타르시스를 주었다. 사회 문제의 본질을 날카롭게 꿰뚫어 코미디의 본질을 정확하게 살린 프로그램은 당연히 대중들로부터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언론 통제가 극심하던 시절에도 공영방송에서 이런 코미디로 정권에 대한 비판과 조롱을 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코미디에서 그런 정치 풍자와 해학은 보기 어려워졌다. 단순한 슬랩스틱과 외모 비하 등 자극적 소재만이 난무하다 보니 당연히 시청자들은 식상하고 결국 코미디를 외면하게 되었다. 코미디의 본질을 잃어버린 결과이다. 한국판 SNL(Saturday Night Live)에서 시도하며 한때 잠시 반짝했던 정치풍자는 보수정권 10년을 거치며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미국의 코미디를 보면 한국과 비교된다. 코미디의 주요 소재가 정치, 정치인이다. 가장 단골 소재는 물론 대통령이다. 대표적 정치 풍자 코미디 프로인 SNL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을 대놓고 조롱한다.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인 알렉 볼드윈이 트럼프 역할로 고정 출연하며 한껏 대통령을 비웃으며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트럼프 본인이 워낙 출중한 코미디 소재이기는 하지만, 오바마 등 비교적 얌전하고 인기 많았던 역대 대통령들 모두가 풍자의 대상을 피해 가지 못했다. 그것이 코미디의 본질이기 때문이고, 코미디의 생명력이기 때문이다. 

비단 대통령과 정치인에 대한 풍자뿐 아니라, 흑인 문제와 같은 인종 문제, 성소수자 문제, 심지어 종교와 같은 사회성 있는 주제들은 언제나 코미디의 단골 소재이다. 이들이 코미디에서 풍자와 해학의 대상이 되었다고 해서 결코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비난을 받거나 위축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코미디는 항상 생명력을 유지하고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

그러나 한국적 현실에서는 정치 풍자는 차치하고라도,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코미디에서 다루면 온갖 비난이 쏟아지고 난리가 난다. 정치 풍자는 정치권의 탄압으로 사라졌다고 해도, 다른 코미디 소재는 전반적으로 경직된 한국 사회의 문화 때문에 제대로 다루어질 수 없다. 예컨대 해병대 모자를 쓰고 가스통을 들고 돌아다니는 인물을 풍자하는 코미디는 없다. 종종 불거지는 의사와 간호사와의 문제도 좋은 코미디 소재가 되겠지만, 다룰 엄두를 못 낸다. 정치 집회를 방불케 하는 시위를 주도하는 목사는 또 어떤가. 지극히 희화적인 이런 소재는 코미디에서 당연히 다뤄져야 할 풍자와 해학의 소재인데, 아무도 다루지 못한다. 경직된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똘레랑스도 맞추어 증가해야 할 텐데, 오히려 점점 더 예민해지고 사소한 것도 문제 삼고 걸고 넘어가는 분위기가 만연해져서, 유연해져야 할 사회가 거꾸로 경직되가고 있다. 언론에서는 온갖 가짜 뉴스가 판을 치는데, 유독 코미디에만 너무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지 말고, 코미디는 코미디로 웃고 넘어가는 관대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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