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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누리 교수의 잘못된 전제<기고> 정해랑 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
정해랑  |  jhr137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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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7.04  03: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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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누리 교수의 책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가 화제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우리보다 앞선 사회인 독일 사회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을 소개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글쓴이는 김 교수가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지적하는 내용에 대해서 다소 과장되고 단정적인 면이 있지만 대부분 공감한다. 독일 사회의 장점을 소개한 것에 대해서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물론 이 부분은 사실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독일에서 공부하고 온 진보적인 학자들이 그 내용의 대부분을 이미 우리 사회에 소개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김 교수처럼 대중적인 언어로 설득력 있게 이야기한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김 교수가 역설하는 내용의 전제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 글을 쓴다.

우선 김 교수가 우리 사회의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한 비교 대상으로 독일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요술 거울’이라는 비유를 통해 우리가 우리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도 이러한 비교 대상이 필요하다고 한다. 일면 타당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참고 대상이지 우리가 가진 문제의 본질을 알게 해준다거나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교훈을 얻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조건을 알게 된다. 앞사람으로부터 물려받은 자신의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다른 존재와 비교할 때 우리는 좌절감에 빠지거나 자신의 이상에만 매몰되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김 교수는 왜 우리나라와 독일을 비교 대상으로 삼는가? 현대사의 궤적이 가장 유사하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과 분단의 운명을 공유했다는 것이다. 국가의 규모도 엇비슷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독일은 현대사의 궤적이 전혀 비슷하지 않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바이마르 공화국을 통해 민주주의가 만개되었던 경험이 있는 나라이다. 그리고 전 세계의 선진 제국주의와 인류 최초 사회주의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 정도로 국력이 막강한 나라였다. 그리하여 전범국가의 책임을 지고 분단이 된 나라이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일부 선각자들을 제외하고는 민주주의에 대해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식민지가 되었고, 해방이 되자마자 또 다른 외세에 강점되고 분단되었으며, 세계대전을 방불케 하는 전쟁의 참화를 겪고 분단이 고착화된 나라이다. 현대사의 궤적이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가?

이러한 잘못된 대전제는 또 다른 잘못된 소전제를 낳는다. 우리 현대사의 민주주의 역사가 그 이면으로 보면 군사 쿠데타의 역사이기도 하다고 보는 것이다. 김 교수는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으로 이어져온 한국 민주주의가 위대한 민주주의의 역사라고 하면서도 동시에 군사독재의 야만 속으로 다시 굴러 떨어졌다고 한다. 김 교수는 우리 현대사의 민주주의 역사를 추락의 반복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우리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4.19혁명이 5.16군사쿠데타로 좌절되고, 5.18민주화운동이 폭력적 진압으로 끝나고, 6.10민주항쟁이 양김의 분열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군사독재를 연장시키는 것으로 귀결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제3세계의 나라들에서 보는 ‘반복’은 아니었다. 그것은 군사독재를 해체시키는 과정이었고, 비록 불철저하고 부족하다 할지라도 우리 사회를 민주주의를 위한 토대를 만들게 한 것이다. 4.19혁명이 없었으면, 5.18민주화운동이 없었고, 5.18민주화운동의 무장항쟁이 없었으면 6.10항쟁은 무력으로 진압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촛불혁명의 평화적인 시위는 가능하지 않았으리라. 그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실패와 반복’으로만 볼 수밖에 없다.

현대사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우리의 현재 문제의 근원을 ‘6.8혁명’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낳게 만든다. 김 교수는 ‘한국만 예외적으로 6.8혁명이 없었다’고 한다. 그가 6.8혁명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책에서 언급하고 있지만, 그것은 서구에서 미국, 일본으로 번져 갔고, 동구에 전파되었는지는 몰라도 여타 제3세계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이었다. 한국만 예외적으로 없었다고 하는 것은 김 교수의 서구 중심의 세계관을 보여 주는 것이다. 1968년의 한국이 어떠한 상황이었는지는 김 교수도 언급하고 있고, 그것은 대체로 맞다고 볼 수 있다. 당시 한국은 남북 대결이 고조되고 군사독재가 점점 더 강화되어 가면서 공공연하게 폭력을 행사하여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던 시기였다. 김 교수가 말하는 6.8혁명의 문화혁명 등은 꿈도 꿀 수 없는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을 잘 아는 김 교수가 그것이 없어서 오늘의 사회가 되었다는 말을 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다시 말하지만 김 교수가 우리 사회에 대해 갖는 문제의식이나 민주주의에서 앞선 나라들의 경우를 통해 우리의 각성을 촉구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달 생각은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갖는 조건 속에서 우리는 우리 문제의 본질을 진지하게 탐구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잘못된 전제를 그냥 수용한 채 문제의 원인이나 해결 방안을 찾는다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논리가 대중 속에서, 또 이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 속에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을 글쓴이는 가볍게 보지 않는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악조건 속에서도 전진해 왔다. 그 결과 군사독재와 냉전을 불완전하게나마 무장 해제시켰다. 하지만 아직 그것은 미약하고, 더욱이 길 닦아 놓으니 개가 먼저 지나가더라고 민주주의의 성과를 재벌을 비롯한 수구세력의 잔재들이 오히려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활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치열하면서도 치열하고 현명한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그 점에서 김 교수의 문제의식은 우리가 참고해야 할 사항이면서도 비판 극복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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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보기(11)
dbdudrnr (dbdudrnr) 2020-07-12 17:04:51
옳았다 하더라도, 그래서 그 잘 못된 역사인식 때문에 김누리 교수가 주장하는 한국 교육이나 사회(복지) 제도 등의 어떤 논점이 어떻게 잘 못된 방향으로 설정되고 있다는지 하는 구체적 논점의 진행이 전혀 없더군요. 잔뜩 기대하고 읽어나간 처지에 아무런 보람을 얻지 못 한 느낌이었습니다. 문제가 있다는 얘기 뿐 그 문제 때문에 어떤 오류가 일어나고 있거나 일어나게 될는 지에 대해 하등 주장이 없어서,마치 시작하다가 그만 두어버린 글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지나친 직설과 무례함이 있었다면, 용서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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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dudrnr (dbdudrnr) 2020-07-12 17:02:44
동기부여를 해도 모자랄 판에 그처럼 서울 일극주의에 매몰된 사고체계로 '전국의' 대중을 향해 무엇인가 설득을 한다면 그 실망스러운 결과가 너무나 명확하게 예측됩니다. 한국 역사에서 서울이 주역을 맡지 않았거나 엄청난 죽음의 피를 흘리지 않았으면 그 항쟁은 어떤 역사적 결과와 연관되더라도 하찮게 무시되어야 옳을까요?
끝으로 사족일 지는 모르겠으나, 김누리 교수의 논리에 대한 비판적 언급 자체도 결과적으로는 무척 실망스러웠습니다. 한국과 독일의 현대사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른 궤적을 보인다는 문제 제기는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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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dudrnr (dbdudrnr) 2020-07-12 16:52:48
결과라고 나는 해석합니다. 보수든 진보든 그러한 사고에 빠진 사람들이 국가의 정책이든 대중의 인식이든 올바르게 이끌 수는 결코 없다고 나는 단언합니다. 민주화의 방향은 '직접 민주주의'의 요소가 상당 수준 반드시 내포되어야만 올바를 것이라고 나도 생각하고 있으며(그 점에서, 의회주의만이 민주화의 정도이며 완성으로 가는 길인 것처럼 호도하는 최장집 선생 류의 지식인들이 가지는 단견에 나는 단호히 반대합니다.),그렇다면 전국 각지의 민주화를 향한 의지와 열망을 끊임 없이 고무하고 동기부여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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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dudrnr (dbdudrnr) 2020-07-12 16:51:22
논한다면 그 사고 구조를 심각히 되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엄중한 역사적 사건을 두고 한 순간의 의식이나 고민의 흔적도 없이 깡그리 누락시킨 채 한국 민주화의 궤적을 논하는 것이 어찌 가능한 일인지 어안이 벙벙할 뿐입니다. 물론 정해랑 선생 뿐만은 아닙니다. 한국 정치 또는 민주화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저작물들이 목차 상에서 이미 정해랑 선생과 완전히 똑같은 사고 구조를 보인 사례들을 이미 보아 왔습니다. 바로 그 점이 민주화운동 진영도 우리 보수 지배층과 전적으로 동일하게 서울 일극주의 사고에 빠진 결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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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dudrnr (dbdudrnr) 2020-07-12 16:49:45
그렇게 외면하는 인식의 빈곤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박정희 통치의 종말은 결국 부마항쟁의 연장에서 나타난 부산물로 보는 것이 어쩌면 역사의 정당한 인식일지 모릅니다. 김재규의 10.26이 아무리 심각한 역사적 사건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후행시킨 선행 사건은 명백히 부마항쟁이었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낳을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국 민주화의 역사에 김재규의 10.26을, 그것을 어떤 의미로 해석하든, 누락시킨 채 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10.26 또한 부마항쟁을 누락시킨 채 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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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dudrnr (dbdudrnr) 2020-07-12 16:48:17
그것이 이후 운동에 결정적 동력원이 된 점을 부인할 수 없으나, 그 직전 부마항쟁의 용기 있는 봉기가 광주의 결기를 응축시키는데 무관한 것일 수 없을 겁니다. 또 최근 발견된 자료들에 따르면 5.18광주의 잔혹한 폭력진압과 살상들이 전두환 집단이 부마항쟁의 진압경험으로부터 배운 학습효과 때문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결국 부마와 광주, 서울이 아닌 남도 양 지역의 피맺힌 항쟁을 같은 선상에서 차례로 일어난 쌍둥이 같은 사건으로 인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마당에 쌍둥이 중 한 쪽을 역사에서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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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dudrnr (dbdudrnr) 2020-07-12 16:45:37
둔감성과 피상성이 우리 민주화의 발본적 진행을 가로막는 중대 요인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따지고 보면 4.19혁명도 대구의 2.28과 마산의 3.15와 4.11, 서울 고대생의 4.18과 같은 날 부산 동래고의 4.18이라는 전사가 누적된 결과로서 그처럼 전국적 사건으로 확산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어찌 4.19만이 4.19였고 이승만 독재 붕괴의 요인이었겠습니까? 5.18의 희생이 살아남은 우리에게 주홍 글씨 같은 멍에를 씌워주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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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dudrnr (dbdudrnr) 2020-07-12 16:43:51
반영하는 표현이 되어야만 우리 민주화의 역사를 올바르게 서술하는 입각점일 것입니다. 알다시피 현재 우리의 민주화 수준은 여러 가지로 미완의 상태입니다. 그 가운데 특히 서울공화국으로 표현되는 일극주의의 폐해가 여전히, 아니 갈수록 더 심각합니다. 최고의 보수적 법조 지성이라할 헌법재판관들까지 거기에 일조한 역사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진보적 지성들도 많은 경우 같은 의식에 빠져 정해랑 선생과 같이 부마항쟁을 한국 민주화운동사의 주된 흐름에서 아예 빼놓고 생각하는 경우를 자주 접합니다. 바로 이런 인식의 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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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dudrnr (dbdudrnr) 2020-07-12 16:41:56
제가 지적하고자 하는 바는 한국 민주화의 과정과 역사에 대한 정해랑 선생의 지극히 피상적이고 둔감한 인식의 문제입니다. 더구나 그러한 인식 및 그 인식의 결과가 끼칠 대중의 역사의식에 대한 오도의 가능성과 연결될 때 특히 주의가 필요할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 한국의 민주화 운동사에서 정해랑 선생이 지적하신 대로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 '6.10항쟁' 등이 분명 중대한 의의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더불어 '10.16부마항쟁'도 포함해서 많은 이들이 '4대 항쟁'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러한 인식을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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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dudrnr (dbdudrnr) 2020-07-12 16:40:34
정해랑 선생의 김누리 교수에 대한 비판적 언급은 기본적으로 타당한 점이 있고 동의할만하다고 봅니다. 특히 현대사의 궤적에 대한 양국의 이질성 지적은 저 또한 공감하는 부분이며, 그것이 정해랑 선생이 쓰신 글의 중심적 의의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글의 중심 부분이 그것이라고 해서 그를 둘러싼 부차적 부분들에 존재하는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분명히 지적돼야 할 것입니다. 특히 그 문제가 다른 인접 영역이나 역사의 해석에 대한 오류와 관련되는 문제점이라면 더더욱 엄중히 검토와 비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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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은소나무 (qnseksrmrqhr) 2020-07-04 08:26:23
소식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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