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미경 / 농부

 

살구나무를 찾아서 살구나무 동산을 만들고 있다. 올해는 살구나무 마을을 만들려고 한다. 올해 우리 마을에는 많은 살구나무들이 새로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인데, 나는 그것이 북측 회령 백살구나무이기를 바래서, 그것을 구하려 안타깝게 뛰어다니고 있다.
사라진 살구나무를 찾으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살구나무를 잃어버렸듯이 아주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무엇을 위하여 그 많은 것들을 놓아버린 것일까? 여기 연재할 글들은 살구나무처럼 우리가 잃은 것들, 잊은 것들, 두고 온 것들에 대한 진지한 호명이다. / 필자

 

▲ 마을 입구의 버드나무.

 

버드나무와 표지판

검덕마을 입구에는 잘 생긴 버드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이른 봄에 가장 먼저 물이 올라 푸르러지기 시작하는 나무다. 꽤 넓은 마을 앞들 논판에 뿌리를 대고 있을 그 나무는 일찌감치 꽃을 피우고 사방에 씨를 날리고는, 무성하게 풀어헤친 머리를 천연스레 흔들며 커다란 그늘을 만들어내고 있다. 틀림없이 사방 터진 논판에서 일하는 농꾼들의 금쪽같은 쉼터였을 그 나무그늘도 지금은 비었다.

얼마 전까지 그 나무 옆에는 ‘범죄없는 마을’이라 쓰여진 낡은 표지판이 서있었다. 면에서 유독 이 마을에만 서있는 표지판을 볼 때마다 마음이 영 불편했던 것은, 그 표지판이 엉뚱하게도 나머지 모든 마을들은 ‘범죄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던 때문이다. 2003년에 세웠다는 표지판은 낡아 철거했을 것이지만 ‘범죄없는 마을’이라는 훈장만큼은 마을연혁에 꼬박꼬박 새겨지는 자랑거리로 남아있을 것이다.

주인 떠난 집에 남는 것

검덕마을은 서류상으론 스물여섯 가구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하지만 그 중에도 빈집이 넷, 가끔씩 다니러만 오는 집이 여섯이니 실상은 열여섯 가구만이 사는 아주아주 작은 마을이다. 예순 고개를 넘긴 이장이 낳은 딸내미가 마을의 마지막 아기였다니, 아기 울음소리 끊긴 것이 못돼도 30년이다. 하긴 이런 얘기야 이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시골 치고 어느 마을에 예외가 있겠나.

지난 달 까지만 해도 사람 살던 집이 이번 달에 가보니 빈집이다. 어쩌다 한 번씩 있는 일이긴 하지만이 마을에서도 일어났던 일이다. 장독대에 독들이 유난히 깨끗하게 반짝거리던 집이 있었다. 사람이 없는 걸 가장 빨리 알아차리는 것은 풀이다. 담벼락 아래로, 시멘트 포장 마당의 갈라진 틈으로 풀들이 우북우북 자라나고, 제멋대로 자란 장미넝쿨에는 거미줄이 진을 쳤다.

알뜰하게 거두던 집이 입구에 죽은 고양이가 널부러져 있어도 돌아보는 이가 없는 빈집이 되었다. 반짝거리던 독들에도 먼지가 쌓이고 흙이 튀어 볼품없이 되어가고, 주인 떠난 집 꼴이 매달 속수무책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노라면 주인이라는 존재가 갖는 무게에 대해, 주인의 죽음이 뒤에 남기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할아버지의 미소

마을 끝하고도 180도를 꺾어 들어간 막바지에 마치 숨겨놓기라도 한 듯 들어앉은 집이 있다. 그 집 주인인 할아버지는 언제 봐도 노상 술에 취해 있다. ‘술에 취해 있다’하면 비틀거리거나 눈에 초점이 없거나 주정을 부리는 것을 연상하게 되지만 이 할아버지의 모습은 좀 다르다.

적게 봐도 일흔 중반은 되었을 할아버지다. 중키에 왜소해 보이는 체구와 허옇게 센 머리, 어느 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노인들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이 할아버지를 눈에 띄게 다르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 있으니, 얼굴 표정이다. 주름진 얼굴 전체에 번져있는 낙천적인 미소인 것이다.

할아버지를 처음 만난 것은 두 해 전 가을이다. 산에도 들에도 갈빛이 스며들고 하얀 햇빛이 눈부시게 쏟아지던 늦은 오후였다.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은 죄다 일 나가고, 일 할 수 없는 사람들은 집 속에 들앉아 있어 마을 전체를 다 돌아도 사람 하나를 볼 수 없었다. 그런 날, 마을 끝집까지 검침을 끝내고 내려가는 길에서 유일하게 마주친 사람이 할아버지였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지게를 지고 올라오고 있었다. 등을 잔뜩 수그리고 천천히 내짚는 걸음이 또박또박 익숙한 듯해도 힘겨움이 완연하다. 맙소사, 지게 위에 통나무들이 위태롭게 얹혔다. 겨울 땔감이다. 통나무라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지는 그걸 들어본 사람만이 안다. 대충 눈대중에도 쌀 한 가마는 안 되어도 반 가마는 실히 넘을 듯한 양이다.

어떤 종류의 것이든 부당함과 마주쳤을 때에 밀려오는 감정은 누구에게나 한 가지일 것이다.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늘 돌인들 무거우랴. 늙기도 설워라커늘 짐을 조차 지실까” 하는 시조를 배우며 자란 사람에게 있어, 그것은 말 그대로 적나라한 부당함이었다.

산 속이면 모를까, 포장된 도로에서 지게짐을 지는 사람을 시골 와서 본 적이 없다. 소형에서 대형, 초대형까지 온갖 종류의 짐차들을 죄다 구경할 수 있는 곳이 시골이다. 그렇게 탈 것과 실을 것이 지천인 세상에서 노인이 어깨가 내려앉을 짐을 지게로 져 나르는 장면은 참으로 기괴한 것이었다.

서슴없이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말을 붙인 것은 순전히 부당함이 몰아온 감정이 시킨 일일 게다. “할아버지 어디까지 가세요?” “응? 다 왔어.” 사람 기척에 고개를 돌려 답하는 얼굴에 마주친 순간, 마치 전율과도 같은 놀라움이 가시처럼 날아와 박혔다. 땀이 비오듯 흐르고 있는 얼굴에 번져있는 것이 고통이 아니라 미소였으니까. 미소가 번진 얼굴에서 술냄새가 났다.

범죄없는 마을의 범죄

여전히 천천히 걸음을 내짚는 할아버지를 도와줄 방도도 없이 따라가며 물었다. “할아버지 어디서부터 져 오시는 거예요?” “쩌으기, 입구서…” 맙소사 그렇다면 이 나무를 지고 7~800미터는 족히 걸어온 셈이다. “할아버지 경운기 없어요?” “없어.” “어디 빌릴 데도 없어요?” “괜찮아.” “이거 좀 실어다 줄 사람이 없어요?” “괜찮아.” 

그저 괜찮다는 말을 연발하며 당도한 곳이 180도를 꺾어 들어간 끝집이다. 하필이면 가장 먼 끝집일 게 뭔가. 지게 내려 작대기 받치는 것을 거들어주고 되돌아 나올 때까지 할아버지 얼굴에 번져있는 미소도 술냄새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 미소와 술냄새가 할아버지의 표식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안 건 그 후 오다가다 만나면서다. 그 낙천적인 미소와 술냄새 사이에는 어떤 방정식이라도 있는 것일까?

그 일이 있은 이후 ‘범죄없는 마을’ 표지판이 더욱 불편해졌다. 형사사건 류의 범죄만 범죄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윤리적 측면에서 보자면, 일흔 줄의 노인이 어깨가 무너지도록 나무짐을 져야 하는 것도 무심히 넘길 수 없는 범죄다.

할아버지에게 있어 운반수단은 지게뿐이다. 농사일에 지게로 져 날라야 하는 것이 나무짐 뿐이겠나. 지게질에 이골이 났다 해도 무게는 해마다 무거워질 것이다. 할아버지는 올해도 나무짐을 지게로 져 나를 수 있을까? 할아버지는 평생을 뼛심 들여 일하고도 아직 짐을 내려놓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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