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태 / 통일교육원 교수,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일했던 존 볼턴의 회고록이 뜨거운 화제다. 출판금지 소송 중에 유출된 불법복제 pdf파일이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고, 일부 언론은 이를 바탕으로 정부를 비판하거나 등장인물을 조롱하는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 

점차 드러나고 있지만 회고록에는 사실을 왜곡한 부분도 많고 편향된 시각으로 가득 차 있다. 미국 백악관도 외교적 악영향을 우려한 듯 한반도 사안을 다룬 부분에서만 110개가 넘는 수정과 삭제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볼턴의 회고록이 기여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 바로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민낯을 보여준 것이다. 

특히 우리가 주의 깊게 보아야 할 점은 어떤 과정을 거쳐 북미합의가 성사되지 못했는가 하는 것이다. 회고록에서 여러 차례 언급하듯 볼턴은 일본 아베 총리와 한반도 문제에 대해 대부분 의견을 같이 했으며, 이 두 인사는 북미합의가 불발되도록 고비마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뛰었다. 

따라서 앞으로 한반도 평화를 향한 여정을 누가 이끌어 가게 되더라도 최소한 그들보다는 몇 배로 더 노력해야만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절대로 대충 노력해서는 안 되고, 한반도 문제의 창의적 해법을 구상하는 지혜와 함께 때로는 반대의견에 맞서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돌파할 수 있는 강한 의지와 실행력이 필요하다.

또한 북한에게도 큰 교훈을 줄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 정부는 끊임없이 북미 간을 중재하려 최선을 다했고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편향된 시각을 가진 볼턴은 이런 노력을 두고 북미가 사진 찍는 자리에 문재인 대통령이 끼고 싶어 한다고 폄하했다. 

북한은 미국과 일대일로 만나겠다고 자꾸 남한을 제외시키려다 결국 실패를 맛보았다. 문제가 꼬일 때만 우리 정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평소엔 혼자 가겠다는 이기적인 자세로는 이 어려운 난국을 풀어갈 수 없다. 

불만이 있을지라도 가장 힘이 되는 파트너는 바로 남한인 것을 깨닫고 이제부터라도 남북이 함께 노력해야만 한다. 남한과 북한에게 이렇게 쓴 교훈을 주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볼턴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
 

북한 경제문제 해결이 핵심이다

최근 북한이 매우 과격한 반응을 보여주는 이유가 일차적으로는 전단 살포에 대한 불만이지만, 그 이면에 있는 경제문제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북한 주민의 불만이 고조되어 김정은 정권의 지도력에 손상이 가는 것도 결국 경제난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북미협상을 통해 북한이 얻고자 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정상국가로 인정받아 경제제재를 풀기위한 것이다. 

북한이 얻고자 하는 정치적 안정은 체제보장이나 종전선언과 같은 형식적 합의만으로는 보장될 수 없다. 정치나 군사 문제 해결이 출발점이 될 수는 있으나 결국엔 모든 것이 경제난 해결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존심 강한 북한이 노골적으로 경제문제를 조건으로 내세우지 않는다고 해서 이를 소홀히 할 경우 북한의 진의를 놓치고 협상 실패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보여주는 분노 표출은 어쩌면 매우 과격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SOS 신호를 보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동안 남한에 여러 차례 불만을 표시하고 적극적인 노력을 요구했는데 왜 못 들은 척 하느냐는 서운함이 이제는 배신감으로까지 발전된 듯하다. 실제로 지금 북한의 경제난은 심각하다. 

무역의 95%를 중국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제재강화로 주요수출 품목이 금지되고, 최근에는 코로나 19로 인해 접경지역의 밀무역도 거의 중단되었다. 2020년 상반기까지 집계된 추세가 지속된다면, 경제제재가 본격화되기 전이었던 2015년과 비교해서 대중수출이 1% 수준으로 추락하게 된다. 계속되는 무역수지 적자로 인해 외화잔고가 바닥나고 생필품 수입이 중단되면 주민 생활에 크게 어려워질 것이다. 

혹자는 북한이 특수한 정치 체제이므로 식량만 있으면 큰 문제없다고 하지만,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 주민들에게 약속했던 경제성장이 단지 ‘이밥에 고깃국’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평양 주민들에게 ‘한반도 비핵화’를 언급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제안한 남북 공동번영의 비전에 북한이 호응했기 때문이다.
 

고정관념을 탈피한 플랜 B가 필요하다

결정적으로 북한에게 큰 충격을 주고 지금까지 트라우마로 남게 된 사건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회담의 실패였다. 당시 남한과 북한은 모두 회담결과를 긍정적으로 예상했었는데, 이는 스티븐 비건 당시 대북특별대표가 만든 북미 합의문 초안에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승인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긴 여정에 국무위원 여럿과 현송월까지 대동하며 베트남에서의 축하연을 기대한 듯하다. 남한은 최소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에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볼턴과 같은 강력한 ‘X맨’이 뒤에서 얼마나 훼방을 놓고 있었는지 간과했던 것이 착오였다.

당시 북미회담의 성공을 낙관한 우리는 플랜 B가 없었고 북한도 우리의 설명을 믿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북한이 우리에게 느끼는 섭섭함이 더욱 컸으리라 생각된다. 

이제 볼턴의 회고록에서 명백하게 드러났듯이, 앞으로 벌어질 어떤 상황에서도 플랜 B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북미합의가 실패할 경우에 대비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을 미리 준비하지 못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미국이 합의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한 발짝도 먼저 나갈 수 없다는 생각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제안을 그대로 따르지 않으면 동맹이 깨질 것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탈피해야 한다. 그대로 따르는 것과 반대하는 것 사이에는 무수한 여러 가지 다른 지점이 존재한다. 가장 효과적인 접점을 찾아내고 협상을 하는 것으로는 한미동맹이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앞으로 한반도 미래 전략을 구상하는데 있어서 한미동맹에 대한 이러한 고정관념을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볼턴의 회고록에서도 드러나듯이 일본이 염려했던 것 중 하나는 북한이 파격적 타협안을 제시할 경우 미국이 합의하는 시나리오였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 정부가 고심해야 할 부분은 고정관념을 탈피한 여러 가지 대안을 준비하는 것이다. 지금 시점에는 성급하게 새로운 협상들을 시도하기보다 잠시 숨을 가다듬고 지켜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그리 녹녹치 않다. 하루빨리 새로운 외교·안보 진용을 갖추고 다양한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를 방해하는 세력은 오늘도 열심히 뛰고 있다. 우리는 그보다 몇 배는 더 노력해야만 한다. 

 

저서로는  『서울 평양 스마트시티』, 『서울 평양 메가시티』 가 있다.

북한대학원대학교 북한학박사(경제·IT), 영국 Oxford대학교 MBA,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학사/석사(도시설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경기도 평화정책자문위원회 위원, 대한건축사협회 남북교류협력위원회 자문위원, 전 북방경제협력위원회 국제관계 전문위원, 전 삼성전자 부장(대표이사부회장실/해외공공기관협력/벤처투자/R&D기획)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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