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 버마에 건네진 KAL858기 바그다드-아부다비 승객 명단. 오른쪽에 작은 동그라미 표시들이 있다. 또한 중간 부분을 자세히 보면 가로, 그리고 세로로 접혔던 흔적이 보인다.

예정대로라면 KAL858기는 이라크 바그다드를 출발, 아랍에미리트연합 아부다비, 태국 방콕을 거쳐 서울에 도착해야 했다. 하지만 비행기는 1987년 11월 29일 아부다비에서 방콕으로 가다 사라진다.

이 글에서는 실종이 있기 전 아부다비에서 내린 분들, 또는 그 명단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당시 교통부가 버마 사고조사위원회에 건넨 명단은 대한항공이 출처인 듯하고, 표면상 15명이 아부다비에서 내린 것으로 보인다(2016070060, 57쪽).

여기에는 폭파범으로 알려진 김현희(MAYUMI)와 김승일(SHINICHI)도 포함됐다. 공식발표에 따르면 이들은 하치야 마유미, 하치야 신이치라는 일본인으로 ‘위장’했다.

앞선 글에서도 밝혔듯, 실종자 명단 문제와 더불어 아부다비 관련된 논란은 예전부터 있었다. 명단 자체도 외교부가 문서를 공개하기 훨씬 전에 ‘KAL858기 사건 시민대책위원회’가 얻어낸 적이 있다. 지금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대책위원회는 당시 이 명단을 바탕으로 2004년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이번에 공개된 아부다비까지 갔던 승객은, ‘이름’ 표기로만 판단하건대 대부분 아랍 계열의 사람들로 보인다(이 승객들은 작년에 공개된 외교부 문서에도 나와 있다). 이 이름들은 명단 왼쪽에 있고, 동그라미로 표시되어 있다.

아부다비에서 내린 이들은 누구인가?

KAL858기 사건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문제 가운데 하나가 이 부분이다. 일본의 한 주간지에 따르면, 안기부 요원 2명과 서울까지 가려던 외무부 관계 “고관” 11명도 아부다비에서 내렸다고 한다(<週刊新潮[주간신조]>, 1987년 12월 17일). 이는 비행기가 폭파될 것을 미리 알고 이들이 내렸을 것이라는 의혹을 불러왔다.

북쪽 역시 사건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김현희 일행, 교체 승무원 외에 11명의 외무부 관리들이(11 officials of the Foreign Ministry) 아부다비에서 내렸다고 했다(UN, “S/PV. 2791”, 42쪽).

KAL858기 대책위원회도 초기에 비슷한 차원의 문제를 제기했다. 이러한 의혹은 승객들 국적을 모르는 상황, 그리고 ‘예약자’와 ‘탑승자’ 차이가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상황 등과 맞물려 나온 듯하다.

먼저 버마에 건네진 자료만을 보면, 국적은 나오지 않았지만 실제 탑승자와 예약자의 차이는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위에서 말했듯, 동그라미 표시가 되어 있는 이들은 탑승자로 보인다. 그런데 이 표시를 빼고 보면, 승객 수가 26명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FIRST CLASS[일등석] (3)... ECONOMY CLASS[일반석] (22 + [특수 기호])”라는 필기구로 쓴 숫자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특수 기호는 “INF[Infant의 줄임말로 추정]” 표시와 관련이 있고, 이는 아기 또는 유아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 발전위원회 조사 보고서도 이 해석을 뒷받침한다(국가정보원,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 III>, 227쪽).

그런데 숫자 자체에 문제가 있다. 예약자 가운데 표기상 일등석의 남성(MR.) ABDUL GHAFFAR는 일반석의 남성 ABDUL GHAFFAR와 같은 사람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한 사람이 두 번 계산됐다.

그리고 당시 대한항공 아부다비 지점에서 보내진 전문도 관심을 끈다. 승객들 이름이 기록되었는데 모두 27명으로(TTL 27) 나와 있다(서현우, <KAL 858기 폭파사건 종합 분석 보고서>).

이와는 별도로 “하기자: 27名[명]” 그리고 “예약명단으로 실제 탑승은 15명이하기”라고 필기구로 쓰여진 부분들 역시 보인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숫자 27도 잘못 계산된 것이다. 왜냐하면 “NAWWAR/AHMED ABIDALIMSTR”은 “NAWWAR/INF”와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INF”는 앞서 말했듯 유아/아기를 뜻하는데, 이 사람은 1985년생으로 당시 만 2세로 알려진다(<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 III>, 577쪽).

실제로 버마에 건네진 명단에서 31번 줄을 보면, 필기구로 쓰인 뒤 줄이 그어진 이름이 나오는데 좀 흐릿하지만 NAWWAR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승객을 확인하던 이가 중복된 이름을 알아차렸다는 뜻이다. 아울러 이 자료에도 앞서 지적한 ABDUL로 이름이 시작되는 남성이두 번 나오고, 여기에서는 성이 “GHAFFAR”와 “CHAFFAR”로 달리 나온다.

아부다비 관련 의혹을 제대로 풀기 위해 필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이 문제를 처음 제기했던 이의 진술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람은 KAL858기 대책위원회의 2018년 5월 8일 기자회견에 따르면, 야하라 준이치(矢原純一) 당시 아랍에미리트연합 주재 일본대사관 서기관인 듯하다. 앞서 언급된 <주간신조> 기사의 정보원이다.

참고로 검증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책위원회는 2004년 3월 16일, 승객들이 바그다드 출발 당시 “160여 석 자리에... 가득 찼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박은미 승무원의 말을 공개한 적도 있다.

수수께끼 같은 명단 오른쪽 부분

그런데 내가 개인적으로 주목하는 부분은 명단의 ‘오른쪽’과 관련이 있다. 앞서 말했듯 이름들이 나와 있는 부분은 명단의 왼쪽이다. 그런데 오른쪽 부분에 이름은 없지만 동그라미 표시가 있다. 이 동그라미는 모두 15개로(나머지 1개는 무효를 뜻하는 X 표시가 옆에 있음),크기와 위치 등을 고려할 때 ‘서울’ 도착 승객을 확인한 이가 표시했을 가능성이 많다.

▲ 버마에 건네진 KAL858기 바그다드-서울 승객 명단. 실제 탑승자의 경우 아부다비 쪽 명단처럼 동그라미로 표시되어 있다.

또한 서울 도착 명단을 보면 아부다비 명단의 ‘오른쪽’, 곧 동그라미 옆에 이름이 있었을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추측할 수 있다. 더욱이 명단 번호 21을 기준으로 종이가 반으로 접어졌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접힌 부분은 공교롭게도 마지막 동그라미 바로 아랫면이다. 게다가 오른쪽과 왼쪽의 중간에는 명단이 세로로도 접혔던 흔적이 있다. 실제로 그렇게 접어 보면, 아부다비 쪽 동그라미들이 서울 명단 오른쪽 근처의 또 다른 동그라미들과 부분적으로 겹친다.

이러한 관찰을 바탕으로 ‘추측’하건대, 실제 탑승자를 확인했던 이는 적어도 명단 오른쪽 부분을 확인할 당시에는 종이를 (세로 또는 가로로) 접었고, 확인이 끝나자 이를 다시 펴서 필기구로 “FR: NIL, EY: 13/01/01, BAG: 21 pc/240K”라고 적었을 가능성이 있다(이 필기 밑에도 동그라미가 2개 있지만, ‘크기’와 ‘위치’를 보면 나머지 표시들과 좀 다르다). 핵심은, 이름인지 무엇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오른쪽 동그마리 표시들 옆에 뭔가 있었지 않나 하는 것이다.

위와 같은 해석이 틀릴 수도 있는데, 반으로 접힌 부분은 아부다비 도착 명단이 아닌, 그 앞쪽 서울 명단을 중심으로 생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쪽의 경우 번호 19를 기준으로 접혔는데, 나눠진 부분은 정우개발 소속 승객의 마지막 이름 아래다.

세로로 접힌 부분 역시 서울 쪽 명단의 동그라미가 아부다비 쪽에 흔적을 남겼을 수 있다.곧, 종이는 처음부터 아부다비 명단 오른쪽이 아닌 서울 명단 확인 과정에서 접혔을 가능성이 있다(아니면 확인을 하던 이가 편의상 종이를 그냥 접었을 수도 있겠다).

또 다른 이유는, 아부다비 명단 오른쪽을 자세히 보면, 이름 또는 그 무엇이 (동그라미만 빼고) 아무 흔적 없이 지워졌다고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틀릴 수 있지만, 그렇더라도 왜 여기에 동그라미 표시가 있는지는 기존 아부다비 관련 논란을 고려할 때 또 하나의 수수께끼라고 하겠다.

명단 ‘원본’을 확인해야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명단의 ‘원본’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지난 글에서 “탑승자 원 자료”라는 표현을 썼지만, 엄격히 말하면 외교부가 공개한 자료는 모두가 ‘사본’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논의한 문제를 좀 더 확실히 풀기 위해서는,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당시 명단 ‘원본’을 확인해야 한다고 믿는다. 더불어 승객들 이름을 직접 확인하고 동그라미를 쳤던 사람의 진술이 필요할 듯싶다.

어찌됐든 외교부 문서에 따르면 아부다비에서 내린 이들은 15명이고, 김현희 일행만 특별했다. 유시야 당시 아랍에미리트연합 주재 대사대리는 작년 공개된 문서에서 “15명에 대해 검토하였으나 일본인 2명외에 용의점 희박한 것으로 판단”했다(2016070040, 38쪽).

사건을 재조사했던 국정원 발전위원회도 이 문제를 살펴봤고, 조금 지워진 형태의 외무부 문서를 첨부했다(<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 III>, 577쪽). 여기에는 국적, 생일, 여권번호, 직업 등이 자세히 나와 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이 문서를 본 기억이 없어 자료를 다시 살펴보았지만, 이러한 내용의 문서는 찾지 못했다.

외교부가 이 문서를 공개 목록에서 (개인정보 포함을 이유로) 뺐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위원회는 아부다비에서 내린 승객 관련 논란은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228쪽, 235쪽). 이에 대해 위원회가 의혹을 해명하지 못했으며 보고서에서 스스로 “혼란을” 보였다는 견해가 있다(서현우, <KAL 858기 폭파사건 종합 분석 보고서>).

▲ “대한항공 작성 탑승객 기록”에 나온 바그다드-아부다비 승객 명단의 일부. 2004년 5월 22일 <KBS 스페셜>의 2020년 편집본 화면 갈무리.

한편 탑승자 명단을 기준으로 실제 내린 것으로 확인된 15명은, 3명 이름에 ‘조금’ 차이가 있지만, 작년에 공개된 외교부의 또 다른 문서(2016070039, 81쪽), 2004년 5월 22일 <KBS 스페셜>에 나온 “대한항공 작성 탑승객 기록”및 “국정원 답변”과 거의 일치한다. 방송이 보여준 명단들에는 국적도 부분적으로 나와 있고, 적어도 문서상으로 한국인은 없다.

참고로 국정원 발전위원회는 김현희 일행을 제외한 이들의 국적이 이라크인 7명, 팔레스타인인 3명, 미국인 2명, 서독인 1명이라고 밝혔다(<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 III>, 225쪽).

앞서 언급한 위원회 첨부 문서의 경우, 탑승자 명단과 비교했을 때 4명의 이름 표기가 다르다. 그 차이가 비교적 큰 경우도 있는데, 예를 들어 명단의 PAN ALBAYATI는 첨부 문서에 BAN ALLAEDIN SABRI로, FAYYZA ABDUL HUSSAIN은FAIZA (ALI) ABDEL HUSSEIN으로 나와 있다.

또 다시 나타난 이름 표기의 차이

이름 차이와 관련해서는, 실종자 명단에 대한 글에서도 지적했지만 ‘알 수 없는 사정’, 이름을 옮겨 적는 과정에서 나온 실수 등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지금으로서는 정확한 이유를 알기 어렵다. 하지만 승객 이름과 같은 기본 정보부터 확실치 않다는 점에서 KAL858기 사건은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실종자 얘기를 좀 더 덧붙이면, 당시 교체승무원 가운데 한 분이셨던 김형 DC10기 기장의 이름은 1988년 안기부 명단, 1989년 사건 판결문, 그리고 1990년 위령탑에도 ‘김영’으로 나와 있다. 안기부 명단의 경우 사건이 있고 바로 뒤에 정리됐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난 뒤에도 잘못된 이름이 사용됐다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이름이 조금 잘못 적힌 것이 뭐가 문제냐”고 물을 수 있겠다. 하지만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논란들과 여러 가지 혼란스러운 정보를 생각한다면, 잘못 적힌 이름은 그렇게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실종자의 몸은 물론, 이름마저도 사라져 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가족의 입장에서는 어떻겠는가.

이름이 중요한 이유

국정원 발전위원회는 실종자 관련 조사 부분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한항공의 보상 처리 문건을 보면 희생자 115명의 신원이 확인되며, 同[동]명단은 판결문의 명단과 일치함”(<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 III>, 228쪽). 위에서 지적했듯, 김형 기장의 경우 “판결문”에도 이름이 잘못 나와 있다.

또한 탑승자 명단의 ‘KIM BYUNG NO’(김병노, 안기부 명단 "김병로")는 판결문에 ‘김병호’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신원이 확인”됐다는 말은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물론 아부다비와 관련된 문제는 좀 다른 맥락이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기본 정보가 명확하지 않고 국정원 재조사 뒤에도 논란이 된다는 점에서 고민이 더 필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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