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랑 / 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 21세기 민족주의포럼 대표

 

연재를 다시 시작하며

58년 개띠 노동자 이야기를 다시 하려고 합니다. 잠시 쉰다는 것이 1년을 넘겨 버렸습니다. 그 동안 우리의 주인공 신돌석씨도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세상은 많이 변한 것 같은데 어찌 보면 완강하게 버티며 변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변한 것은 무엇이고,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그보다도 변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소소한 일상을 통해 그려 보고자 합니다. 통일뉴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응원과 질책을 부탁드립니다. / 필자

 

▲ [삽화-백소(白笑)]

 

  아침을 먹고 있는데 밖이 시끄럽다. 종종 있는 일이라 짐작은 가지만 그래도 혹시 해서 창문을 열어 보았다. 역시 왕언니가 구사장네랑 싸우는 것이었다. 주차 문제 때문이었다. 하는 이야기도 거의 똑같다. 왕언니는 목소리가 무척 크고 동네일에 참견하지 않는 게 거의 없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왕언니라고 불리고 있다. 나이도 70이 넘었으니 동네에서 어른 축에 들어간다고 보아야 한다.

  왕언니가 먼저 크게 소리를 지른다. 사람이 양심을 가지고 살아야지. 구사장이 되받았다. 당신 차도 아니면서 웬 참견이야. 왕언니가 삿대질을 해가며 소리친다. 자기 차야만 말하나. 우리 동네 사람이고, 우리 집 사람들 일인데. 그러니까 욕 먹는 거야. 이기적이고 재수 없는 노인네라고. 이제 구사장도 못 참는다. 뭐가 어째. 이 여펜네가 말이면 단 줄 알아. 왜 내가 당신 여편네야. 여편네라니, 여펜네라니.    

  제일 재미있는 구경이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라지 않는가. 신돌석씨는 아침을 빨리 먹고 출근해야 하는데도 싸움 구경이 재미있어서 한참을 쳐다보았다. 아내가 뭐 하냐고 핀잔을 주지 않았으면 그대로 계속 보다 지각을 할 판이었다. 싸움은 결국 왕언니와 상대가 안 되는 구사장이 들어가 버리고 왕언니 혼자 동네가 떠나가게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것으로 끝났다.

  신돌석씨 동네는 대로변에서 멀찍이 떨어진 산 밑 동네이다. 큰길에서 동네로 들어오는 길은 마을버스가 다니는 길이다. 그 길에서 골목들이 좌우로 죽 연결되어 있다. 뻐꾸기가 울고 가을이면 감나무에 감이 무르익고, 길에도 나뒹구는 곳이다. 까치가 시시때때로 날아다녀서 동네 이름을 까치울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시골 분위기가 나는 동네인데도 차는 많았다. 아직 덜 익은 감들이 주차해 놓은 차 위로 뚝뚝 떨어지면서 큰소리를 낼 때가 적지 않았다.

  이곳은 거의 3층짜리 다가구주택이라서 보통 한 집에 다섯 가구 이상이 살았다. 한 가구에 한 대 이상의 차가 있으니 주차가 포화상태일 수밖에 없었다. 이 차들을 세울 데가 마땅치 않으니 주차 분쟁은 항상 일어나는 일이었다. 마을버스가 다니는 길은 2차선인데 그런대로 길이 넓었다. 양쪽으로 차를 세워 놓아도 차들이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야간이나 주말에만 주차가 허용된다. 출근 시간이 지나고 9시가 좀 넘으면 어김없이 주차단속이 오기 때문에 차들을 옮겨야 했다.

  차를 잘 가지고 다니지 않는 집이나 늦게 출퇴근하는 집은 이면도로라 할 수 있는 동네 골목에 차를 세워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공간이 너무 부족했다. 신돌석씨네 골목만 해도 집이 양쪽으로 다섯 채씩 모두 열 채가 있었다. 한 집 앞에 두 대를 세울 수 있었는데 차가 드나들기 위해서는 한쪽으로만 세워야 했다. 그러면 모두 열 대를 세울 수 있으니 2-30 대 이상의 차가 세울 데가 없다는 이야기가 되었다.

  골목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고, 그 옆으로는 지금은 이전했지만 군부대가 있었다. 거기에 축대가 쌓아져 있고, 그 밑에도 차를 세울 수가 있었다. 그런데 골목마다 겨우 두 세대씩 가능하였다. 결국 세울 수 있는 차는 항상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되었다. 댈 곳을 못 찾은 차들이 마을버스 다니는 길로 나가거나 아니면 산 밑 어디를 찾아가서 세워 놓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차 세울 데가 부족하다는 것만이 아니었다. 한쪽으로만 세우다 보니 다른 쪽이 상대적으로 더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동네 사람들끼리 암묵적으로 대문 앞에는 그 집 주인이 대고, 또 한 군데는 일찍 들어오는 사람 아무나 댄다고 양해가 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분란이 커지니까 동네 사람들끼리 모여서 양쪽 집이 한 대씩 댄다고 합의하였다. 하지만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양쪽에서 한 집씩 대도 나머지 집들은 여전히 부족한 것이었다. 부족한 것이야 어쩔 수 없었다. 서로 먼저 대려고 경쟁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희한한 것은 차를 세울 수 있는 쪽의 집들은 대개 주인들이 그 집에 살았고, 반대편은 주인이 살지 않는 집들이었다. 그래서 그쪽으로 세우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동네 사람 모두 인정하는 현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쪽 사람들이 독차지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간혹 자기네 집 앞에 하나 빈 곳에 바로 앞집 사람이 아닌 사람이 와서 대면 뭐라고 하다가 시비가 붙는 경우는 있었다. 그럴 때도 대개 모른 척하거나 아니면 차를 댄 사람이 옮겨서 해결되었다.

  그런데 얌체처럼 자기네가 두 대를 다 대려고 하는 집이 있었다. 그게 바로 오늘 싸움의 한편인 구사장이라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자기 딸과 함께 살았는데 자기네가 한 자리 차지하고 딸네 차를 세우려고 그 자리에 주차금지를 표시하는 원뿔을 갖다 대놓곤 했다. 그러니 반대편 집에서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원뿔을 치우기는 했으나 그 다음에는 음식물 쓰레기통을 갖다 놓았다.

▲ [삽화-백소(白笑)]

  왕언니가 바로 그 반대편에 살았다. 왕언니는 차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모른 척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왕언니가 사는 집에 개인 택시 기사를 포함하여 모두 네 대의 차가 있었다. 다들 어쩌다 한 번씩만 불만을 말하는 정도였는데 어느 날 왕언니가 음식물 쓰레기를 길바닥에 내팽개치면서 싸움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구사장도 맞서 싸우곤 했으나 왕언니가 워낙 드세서인지 싸움은 한쪽으로 기울었다.

  하지만 구사장이란 사람도 지독한 사람이었다. 왕언니가 뭐라고 그러면 치웠다가 어느새 또 갖다 놓곤 하였다. 오늘 아침도 개인 택시가 나가자마자 자기 딸의 차를 옮겨 놓더니 애들 학교 보낸다고 나간 사이에 또 음식물 쓰레기통을 갖다 놓은 것이었다. 왕언니가 금세 알아차리고 아침을 먹다가 댓바람에 나와서 소리 지르고 싸움이 벌어졌다. 왕언니가 이처럼 구사장네의 행태에 싸움을 거는 데는 주차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다.

  3년쯤 전이었다. 그때까지 왕언니와 구사장네는 사이가 괜찮았다. 왕언니는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재활용하는 물건들을 내놓은 것들을 갖다가 팔기도 했고, 분류가 제대로 안 된 것을 내놓는 집에 뭐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주차 문제도 그 나름대로 조정해 주기도 하였다. 구사장네는 재활용 분류를 제법 착실히 하였다. 그리고 혼자 사는 왕언니에게 명절 때 같으면 먹을 것을 주기도 하고 그러는 것 같았다.

  주차가 문제였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차가 지금보다 적었는지 그다지 큰 충돌은 없었고, 왕언니가 말로 구사장네에게 뭐라고 몇 번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날 작은 화물차에 스피커를 단 사람이 골목으로 와서 아침마다 시위를 하고 가는 일이 생겼다. 차 양쪽에 피켓도 붙였는데 ‘내 돈 떼먹은 구아무개 돈 내놔라’ ‘내 뼈 갈아서 번 돈 왜 안 주냐 나쁜 놈아’ 이런 글이 써 있었다.

  처음에는 조용한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조그만 공장을 하는 구사장이 아마도 임금을 체불한 모양이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사람들은 일단 왜 여기 와서 시끄럽게 구냐는 식으로 나왔다. 그렇다고 기세가 드센 그 사람 앞에 나서서 막는 사람은 없었다. 그냥 동네 사람끼리 쑤군대면서 차가운 태도를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왕언니는 달랐다. 그때부터 왕언니는 그 사람이 시위하러 올 때마다 물도 떠다 주고 심지어 함께 가서 노래도 같이 불렀다.

  신돌석씨도 그 사람이 노동가요를 틀어 놓고 부를 때마다 함께 가서 부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선뜻 나서지는 못하고 그냥 지켜보곤 했다. 물론 출근 시간이라 어쩔 수도 없기는 했다. 그때까지는 군부대가 그 자리에 있었다. 군부대는 예비군들이 와서 훈련받는 부대였는데 아침이면 군가를 틀었다. 노동가요와 군가가 혼합이 되어서 나오는 광경은 기이하고 어찌 보면 웃기는 장면이었다.

  너희는 조금씩 갉아먹지만 우리는 한꺼번에 되찾으리라...

  멸공의 횃불 아래 목숨을 건다...

  이때 느낀 것인데 노동가요나 군가나 대부분 수십 년 전 것이 그대로 불렸다. 아무튼 신돌석씨는 왕언니가 노동가요를 함께 부르는 것을 보고 꽤 놀랐다. 이 사람이 좀 특이한 점은 있기는 하지만 오래 한 동네에 살아도 노동가요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왕언니와 구사장은 원수처럼 으르렁댔다. 구사장이야 당연히 그러겠지만 왕언니가 왜 그러는지는 신돌석씨만이 아니라 동네 사람 모두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일이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뒤였다. 동네 통장이 그만두고 새로 통장을 뽑는다고 하였다. 동네 사람들은 모두 왕언니를 추천했다. 활동력이나 인품으로 봐서 통장에 딱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결국 되지 않았다. 다른 골목 사람이 뽑혔다. 동네 사람들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뽑힌 사람은 왕언니에 못 미치는 사람이었고, 실제로 된 뒤에도 거의 움직이지를 않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구사장이 동장이나 주민센터 공무원들에게 왕언니를 떨어뜨리는 로비를 한 것이었다. 이런 일까지 겹치니 자연히 왕언니와 구사장은 원수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동네 사람들마저도 그럴 수가 있냐고 하면서 구사장을 왕따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위하는 사람이 올 때마다 왕언니가 함께 하였고, 두 사람 사이의 골은 더욱 깊어만 갔다. 구사장은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 사람이 30분 정도 와서 노래를 부르고 떠들고 가도 꼼짝을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6개월쯤 되었던 것 같다. 체불 임금 문제가 해결이 되었는지 그 사람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그 뒤로 잠잠하는가 했는데 주차 문제로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신돌석씨도 구사장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갖고 있는 감정일 것이었다. 일단 조그마한 사업체라도 운영하는 사장이다 보니 이 동네 사람과 생활 수준이 맞지 않았다. 조그마한 마당이 있었는데 친척이나 지인들을 불러서 삼겹살 파티라도 하는 일이 잦았는데 그것을 아주 티 나게 하는 사람들이었다.

  신돌석씨도 주차 문제 때문에 구사장네와 충돌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물론 신돌석씨와 구사장네는 대각선으로 있는 집이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그 집 앞에 댈 까닭이 없었다. 하지만 앞집에 두 자리 다 차 있고 거기가 비어 있으면 대곤 하였다. 그때만 해도 주차 원뿔을 놓지 않을 때였다. 어느 날인가는 차를 세우는데 손으로 차를 막 두들기더니 여기 왜 세우냐는 것이었다. 왜 대면 안 되냐고 하면서 말싸움을 했다.  

  그러기를 몇 차례 하다가 신돌석씨는 집주인에게 주차 대책을 세워 달라고 이야기했다. 집주인은 대로변에 있는 부동산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건너편집 주인과 이야기가 되어서 한 자리를 비워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 집에 사는 다른 사람들이 손해를 봐야 한다. 신돌석씨 집에는 3층에 모두 다섯 가구가 살았다. 반지하와 비슷한 1층에 두 가구, 2층에 두 가구, 3층에 한 가구다. 1층에 사는 80대 할머니를 빼면 모두 차가 있었다. 그런데 혼자만 거기를 보장해 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 [삽화-백소(白笑)]

  결국 주인은 부동산 옆 공터에 있는 공용 주차장에 한 자리를 내주었다. 유료이고 한 달에 3만원을 내야 했다. 주인은 그냥 쓰라고 했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부동산에서 세 개 정도 신청을 해서 손님이 쓸 수 있게 하는데 그 중 하나를 지정해 준 것이었다. 원래 버스 차고지였던 곳이라 터는 꽤 넓었다. 하지만 차를 쓸 때는 대로변까지 내려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거야 차를 잘 쓰지 않으니까 그런대로 괜찮았다. 문제는 거기 역시 사람들이 무료로 이용하는 곳으로 착각을 해서 그런지 수시로 차들을 댔다. 차를 쓰는 날에 나갔다 오면 거의 예외 없이 차가 서 있곤 했다.

  매번 전화해서 차 빼 달라고 하기도 그렇고, 혹시 부동산 사장이 한 군데를 여러 사람에게 지정해 준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어서 직접 신청해 보려고 하였다. 집주인에게 물으니 굳이 뭘 그러냐고 하면서도 하고 싶으면 하란다. 시청에 가도 그런 일 하는 데는 없었다. 따로 종합운동장에 있는 도시공사로 가란다. 거기 가서 말했더니 신청은 받아주는데 1-2년은 기다려야 할 거란다. 좀처럼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청은 해 놓았지만 별로 기대는 하지 않았다. 집주인에게 고맙다고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청하러 간 김에 동네 골목 주차 이야기를 하면서 그거 민원 해결 안 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자기네는 안 하고 주차시설팀에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골목에 대한 것은 민원을 넣어봤자 어떻게 해줄 수 있겠냐고 한다. 원칙적으로는 거기 차들 모두 주정차 위반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누구는 되고 안 되고 할 수 있냐고 한다. 모두 주차 단속해 달라고 하면 할 수 없이 시청에서 나갈 것이란다. 그렇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주차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없는 공간에서 서로서로 양보하면서 살아가면 되는데 거기에 꼭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는 것이 화근이 되었다. 구사장네 가족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구사장네는 1층만 세 주고 2층에는 결혼해서 학교 다니는 애가 있는 딸 가족이 있고, 3층에는 구사장 부부가 있었다. 왕래가 없으니 정확히는 모르고 전해 들은 내용이다.

신돌석씨가 멀리 걸어 내려가더라도 주차장으로 가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은 맞은 편 집보다는 구사장 때문이었다. 신돌석씨는 10년이 넘은 경유 차량을 갖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차를 주차시켜 놓았을 때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났다. 간헐적으로 나는 소리인데 자동키로 문을 여닫을 때 나는 소리 같은 것이었다. 정비소에 가봤는데 희한하게 그때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시끄러울 것 같아 산 밑으로 가져가서 세워 놓았다가 괜찮은 것 같아 다시 가지고 내려왔다.

그러던 어느 날 지구대 경찰 둘이 찾아왔다. 차 번호를 대면서 차주 맞으시냐고 했다. 그렇다고 했더니 차에서 나는 소리 때문에 시끄럽다고 민원이 들어왔단다. 신고한 사람이 도대체 누구냐고 했더니 곤란한 표정을 지으면서 어떻게 좀 해달란다. 정비소에서도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고 했더니 저기 멀리 좀 세워 달란다. 누가 그러더냐고 다시 물으니 턱짓으로 가리키는데 구사장네였다. 이런 괘씸한 인간이 있나. 그렇지 않아도 밉게 봤는데 이럴 때도 하는 짓이 꼭 이렇다.

  피는 못 속이는 건지, 보고 배운 게 그래서 그런지 이 딸이 꼭 자기 아버지 닮았다. 골목에 한쪽에 차를 세우고, 한쪽으로만 차가 갈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 한 방향으로 차를 세우고 그 방향으로 주행을 하였다. 그런데 이 집 딸은 꼭 차를 반대편을 향하게 세워 놓았다. 그러다 보니 골목에서 나가는 차들과 맞닥뜨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신돌석씨 역시 그런 점 때문에 부딪힌 경우가 있었다.

신돌석씨는 별로 차를 쓰지 않았다. 주차장에 세워 놓고 꼭 필요할 때만 몰고 올라왔다. 하루는 아내가 재난기본소득이 나온 김에 이불 좀 사자고 해서 차를 몰고 올라왔다. 차를 집 앞에 세워 놓고 있는데 구사장 딸이 나오더니 차를 옆으로 뺐다. 뒤로 좌회전해서 나가면 되는데 신돌석씨 차 앞에다 차를 들이밀었다. 그리고는 계속 서 있는다. 신돌석씨도 깜빡이만 켜고 그냥 있었다.

자기는 조금만 후진하면 되지만 신돌석씨는 무려 50미터 정도를 뒤로 가야 한다. 신돌석씨더러 가라는 것인지 뭔지 모르겠다. 그러더니 문을 열고 나왔다. 자기가 후진을 제대로 못하니까 어떻게 좀 해달란다. 물론 못할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이 운전하는 걸 본 지 벌써 몇 년이 되었다. 이런 싸가지가 있나? 그냥 모른 척했다. 그때 마침 아내가 나오면서 무슨 일이냐고 했다. 아내를 보니까 같은 여자로서 무안했는지 씩씩거리더니 후진을 해서 빠져나갔다. 아내가 한마디 했다. 후진 잘 만하네.

 

필자 정해랑(鄭海郞)

서울에서 태어나 여의도 고등학교와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노동정책연구소 정책실장, 경희총민주동문회 회장, 이수병선생기념사업회장을 역임하였고, 현재는 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 21세기 민족주의포럼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재생의 담론 21세기 민족주의>(2010년, 공저), <공주와 도둑들>(201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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