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 한국이 버마 사고조사위원회에 보낸 탑승자 명단.

부끄러운 마음으로 글을 쓴다. 나는 18년 동안 연구자로 KAL858기 사건에 대해 고민해 왔지만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다. 특히 이번 글을 준비하며 절실히 느꼈다. 나는 실종자분들의 이름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 부분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모든 분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읽어 보며 고민했던 적은 없다. 그러면서도 글을 계속 써왔다는 것이 나는 부끄럽다.

탑승자 명단과 실종자 명단의 차이

1987년 11월 29일에 사라진 KAL858기에는 모두 115명이 타고 있었다고 알려진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부 자료에는 승객/승무원 명단도 포함됐고, 두 가지 형태로 있다. 버마 사고조사위원회에 제출된 명단과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현 국가정보원, 국정원) 수사결과 자료로 첨부된 명단이다.

먼저, 버마에 건네진 자료의 출처는 사실상 대한항공(KOREAN AIR, KOREAN AIRLINES)으로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서울까지 가는 승객(84명), 바그다드에서 아랍에미리트연합 아부다비까지 가는 이들, 그리고 아부다비에서 새로 시작된 비행의 승객/승무원(31명) 명단으로 이루어졌다(예정된 항로는 바그다드-아부다비-방콕-서울). 곧, 사건 당시 탑승자 명단이다. 두 번째 자료는 안기부가 “수사결과 보조자료”로 만든 “희생자 명단”으로, 공식적인 실종자 명단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탑승자 명단과 실종자 명단이 꼭 같다고 말하기 어렵다. 여러 가지 사례가 있지만 대표적인 예를 들면, 탑승자 명단의 ‘KANG YEUN SHIK’(강연식)이라는 이름이(2016070060, 56쪽) 실종자 명단에는 ‘홍연식’으로 나온다(2017040099, 143쪽). 이 분은, 역시 실종되신 강석재(KANG SUK JAE) 당시 바그다드 주재 총영사의 동반자로, 실제 이름은 ‘홍연식’이 맞다고 알려진다.

또한 탑승자 명단에는 ‘PARK SUN MAN’(박선만)이라는 분이 있지만(2016070060, 56쪽) 실종자 명단에는 ‘박신만’으로 되어 있다(2017040099, 143쪽). 탑승자 명단의 ‘KIM HYUNG’(김형)이라는 분은(2016070060, 58쪽) 실종자 명단에서 ‘김영’으로 나온다(2017040099, 77쪽).

이처럼 명단의 이름들은 영어 표기, 또는 ‘알 수 없는 사정’으로 차이가 날 수 있어 조심스럽게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종자 명단에 없는 실종자

이 명단에서 새롭게 논란이 되고 있는 이름이 있는데 ‘LEE KYOUN’(이교운)이다(2016070060, 56쪽). 바그다드에서 서울까지 가려던 승객들 가운데 한 분으로,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소속기관이 아닌 “INDIVIDUAL”(개인) 항목 아래에 있다. 논란의 핵심은, 이 사람이 비행기를 탔지만 실종자 명단에는 없다는 것이다(<대구MBC뉴스데스크>, 2019년 11월 27일). 중대한 문제제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인물의 이름, 나이, 직업이 안기부 실종자 명단에 51번째로 기록되어 있다. “이교운, 43, 육성물산대표”(2017040099, 144쪽). 그리고 똑같은 내용으로 이 인물은 사건 관련 판결문에 91번째로 나온다.

하지만 사건을 둘러싼 전반적인 논란을 고려할 때, 안기부 문서와 같은 정부 자료는 주의해서 볼 필요가 있다. 공식 자료가 맞냐 틀리냐를 떠나, 또 다른 자료들이 있다면 교차검증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는 KAL기 사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다만 ‘어떤 자료가 가장 믿을 만한가’에 대해서는 고민이 따로 필요하다).

그래서 몇 가지 명단들을 비교해 봤는데, 출처에 따라 실종자들 이름이 조금씩 다르게 표기되어 있었다. 결국 나는 버마에 건네진 115명의 이름을 직접 옮겨 적으며 명단을 만들었고, 살펴볼 수 있는 자료들을 최대한 비교하려 노력했다. 그러면서 했던 고민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교운’과 관련된 보도를 보면, 근거로 나오는 실종자 명단이 있다. 그런데 이 명단 열째 줄에 있는 ‘이종변’과 ‘이종섭’은 같은 사람일 가능성이 많다. 왜냐하면 ‘이종변’은 처음부터 탑승자 명단에 없었기 때문이다(2016070060, 56-59쪽). 이와 가장 비슷한 이름은 ‘LEE JONG SUB’(이종섭)이다. 또한 공교롭게도 이분들이 맡았던 일이 “타이어”로 똑같이 되어 있다.

아울러 보도의 근거가 된 명단은 큰 틀에서 과거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KAL858기 대책위원회)’가 정리한 것으로 추측되는데, 거기에는 나이도 같이 나와 있다. “이종변(타이어 35)... 이종섭(타이어 35).” 그래서 조심스럽게 생각하건대, ‘이종변’ 자리에 다른 이름이올 수 있고, 이는 ‘이교운’일 가능성이 있다.

만약 그렇다면, 왜 이런 문제가 생겼을까? 내가 보기에 이는 구조적인 문제로, 앞서 지적했던 영어 표기, ‘알 수 없는 사정’ 또는 수많은 실종자 이름을 옮겨 적는 과정에서 나온 실수, 실제로 확인해줄 수 있는 가족/친척들의 부재 등이 이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서로 다른 명단들

▲ 안기부가 수사결과 자료로 첨부한 실종자 명단.

물론 위 사항은 어디까지나 추론이고, 그래서 틀릴 수 있다. 나아가 당시 신문 자료를 보면, <경향신문>의 경우(1987년 11월 30일, 6면) ‘송병민’ 자리에 다른 사람이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이름은 ‘宋京敏[송경민]’과 같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탑승자 원 자료에 ‘SONG KYUNG MIN’(송경민)은 있지만 ‘송병민’은 없다. 따라서 이 이름 대신 ‘이교운’이 올 수 있지 않나 싶다.

<동아일보> 명단의 경우(1987년 11월 30일, 10면) ‘金[김]창환’ 자리에 다른 사람이 와야 되지 않을까 한다. 왜냐하면 탑승자 원 자료에 ‘KIM CHANG HAN’(김창한)이라는 이름이 있지만, 실제로는 타지 않았다는 뜻으로 줄이 그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창환’ 대신 다른 이름이 올 수 있고, 이 역시 ‘이교운’이 아닐까 생각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조선일보> 명단에서는(1987년 12월 1일, 10면) ‘金[김]창완’ 자리에 다른 사람이 필요하고, 그렇다면 혹시 ‘이교운’이 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김창완’은 공교롭게도 KAL858기 대책위원회의 명단에도 나온 적이 있다).

덧붙여서, 위에서 지적한 이름들의 공통점은 대부분의 나머지 이름과 달리 회사, 업무, 나이, 주소 없이 이름만 나와 있다는 것이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이름은(탑승자 원 자료를 바탕으로 했을) 신문 명단마다 달리 표기되어 있다. ‘이균’(<경향신문> 호외, 1987년 11월 30일, 2면), ‘이균’(<조선일보>호외, 1987년 11월 30일, 1면), ‘李[이]규운’(<동아일보> 호외 2, 1987년 11월 30일, 1면), ‘이교은’(<매일경제>, 1987년 11월 30일, 11면). 아울러 1987년 11월 30일 <MBC 뉴스데스크>가 알린 명단에도 ‘이균’으로 표시된 이름이 있다.

이처럼 표기가 다른 것은, 앞서 밝혔듯 원 자료가 영어/로마자, 곧 ‘LEE KYOUN’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한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빚어진 일이 아닐까. 이 말은 자료만을 보면 실제 이름이 ‘이교운’으로 표기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한편 대구MBC에서 취재를 담당한 분에 따르면, 이 인물은 “외교 전문이나 이런 데를 보면... 홍콩 교포고, 그리고 무역업에 종사하고 식당을 한 걸로” 되어 있다(MBC <김종배의 시선집중>, 2020년 5월 25일). 이 전문은 외교부가 작년에 공개한 자료의 일부로 추측되는데, 바그다드에서 보내진 문서에는 “여행자(홍콩 거주교민)”으로만 나와 있다(2016070039, 13쪽).

다음과 같이 기록된 문서도 있다. “홍콩 거주교민은... 바빌론 호텔에 투숙 하였으며... 이외 아국인과 접촉 사실은 상금 확인된바 없음”( 27쪽). 그런데 그 다음 부분이 모두 지워져 있어, 작년에 보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보도에 사용된 전문은 다른 형태의 것일 수도 있겠다).

사건이 끝나지 않은 또 다른 이유

예전부터 실종자 명단을 둘러싼 논란이 있어 왔다. 내가 보기에 ‘정확한’ 명단은 아직까지 없는 것 같다. 그동안 가족회와 교류가 없었던 가족 분들의 도움(물론 실종자 분들 가운데 가족/친척이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음), 명단과 관련된 자료들에 대한 재검토 등이 이어지면 좋겠다.

참고로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사건을 재조사했던 국정원 발전위원회도 이 문제를 살펴 봤다. 이에 따르면, 가족들이 “보상금을 합의한” 자료가 대한항공과 국정원에 있다(국가정보원,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 III>, 231-232쪽). 이 자료들 역시 다른 문서들과 비교를 하면 이름을 정확히 아는 데 도움이 될 듯싶다.

실종자 명단에 대해 논의가 더 필요한 부분이 있지만, 분량상 여기에서 마칠까 한다. 나는 글을 쓰면서 어느 가족 분께 연락을 드리기도 했다. 사건의 위령탑은 공식발표를 바탕으로 세워졌는데, 현재 서울 양재동 ‘시민의 숲’에 있다. 그런데 여기에도 실종자 이름이 잘못 적혀 있다고 한다. 통탄스러운 일이다.

동시에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 실종자 분들 이름을 하나하나 직접 확인한 적이 없었다. 누군가는 이 사건이 끝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실종자분들의 이름마저 ‘정확히’ 모른다. 어디선가 지켜보고 계실 그 분들은 뭐라고 하실까...


(수정, 19일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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