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일연구원은 10일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반도 정세와 평화프로세스' 주제의 포럼을 진행했다. 고유환 원장은 북한의 대남 강경전환에 대해 '합의 이행'이 주요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합의를 만들었으면 무조건 지켜야 한다. 있는 그대로 말하면 합의이행이 안되었던 것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적대관계 청산과 공존 공영의 미래를 꿈꾸며 남과 북이 함께 걸었던 6.15시대가 20주년에 접어들었다. 

그 사이 10.4선언을 지나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약속한 4.27선언과 군사합의서도 채택했지만 서명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20년 후의 남북은 다시 6.15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위험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대남사업을 철저히 대적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최근 언급도 사실은 '대북전단'살포 중단 너머의 남북합의 이행을 가리키고 있다.

고유환 통일연구원 원장은 10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1가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반도 정세와 평화프로세스'를 주제로 한 통일연구원 포럼 인사말을 통해 '6.15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한반도 평화의 위기'를 언급했다.

그리고 위기를 돌파의 기회로 만드는데는 "근본적으로 정전질서를 평화질서로 바꾸려는 문제를 포함해 거기에 구조화된 문제를 해결하려는 용기와 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남북사이의 언술체계가 다르고 의지가 달라서 같은 용어를 쓰고 문장을 만들어 놓고도 달리 해석하는 경향이 있고 이해의 차이가 불거지기도 한다. 심지어 북의 의도가 많이 반영된 합의가 나올 수 밖에 없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만들었으면 무조건 철저히 지켜야 한다." 

근본문제에 대해 용기있게 돌파하는 힘의 원천은 남북합의에서 찾아야 한다는 취지이다.

고 원장에 따르면, 지금까지의 평화·비핵화프로세스는 지난 2017년 12월 29일 북한이 핵무력완성을 선언하고 이듬해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하면서 본격화된 것이다. 

그리고 사실상 지금까지도 유효하게 유지되어 온 하나의 기준은 북한의 조건부 비핵화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북한의 비핵화를 추동할 조건을 충족하는데 실패했고 지난해 2월 하노이 회담을 노딜로 끝내면서 비핵화 교환 프로세스를 만드는데도 실패했다.

남·북·미 정상이 서로 다른 주관적 의지를 갖고 톱다운 방식으로 프로세스를 시작했지만 진행 과정에서 각각의 국내구조와 세계 체재의 저항 등과 충돌하면서 더 이상 의미있는 결과를 만들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김정은 위원장은 백두산 준마등반을 하면서 새 방향을 모색하고 남북관계에는 뒷문을 열어두는 태세를 보여주었지만, 북의 금강산시설 철거 협의 제안에 남측은 '개별관광' 수준으로 대응해 문을 열지 못했다.

고 원장은 "북의 입장에서는 백두혈통 리더십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번에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을 대남총책으로 내세워 담화를 발표하고, 뒤이어 대대적인 캠페인을 전개하는 것으로 미루어 그렇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북은 내부 위기는 있어도 '물리적인 핵'은 굳히고 '정신적인 핵'(수령)은 옹위해서 버티겠다는 태세"라고 분석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자잘한 대증적 요법으로는 (남북관계 교착)문제가 풀리지 않을 것이다. 북의 의도를 잘 파악해서 근본문제를 파고들어가야 문제가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의 비핵화 교환에 해당하는 평화안보 개념, 평화협상 차원에서 근본문제가 거론되어야 (교착이) 풀릴 가능성이 있다"며, '4자 평화협상'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북측의 향후 움직임에 대해서는 김여정 담화에는 몇가지 조건이 있어서 당장 남북 통신연락선 차단 이외의 구체적 행동으로 나가 위기조성으로 이어지기에는 시간이 걸리거나 신중할 가능성이 있으며, 북 스스로 자처하는 핵보유국 지위에 걸맞는 대응을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홍민 북한연구실장은 '위기에서 기회로: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 방안' 주제 발표에서 최근 김여정 당 제1부부장 담화 이후 일사분란하게 진행되고 있는 북한의 대남 강경 전환 조치는 지난 2019년 10월 김정은 위원장의 백두산 등정 당시 세워둔 대미, 대남 관련 큰 그림이 코로나19 변수와 맞물려 미뤄지다가 대북전단을 문제삼는 방식으로 구체화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그 배경에는 남측이 4.27판문점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에서 합의한 '전쟁없는 한반도를 위한 상호 군사적 위협 축소와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의 전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강한 불신과 하노이회담 결렬로 인한 신뢰하락, 그 이후에도 비핵화협상과 한미공조를 앞세우며 본질문제를 회피한 채 반복적으로 지엽적인 교류협력을 제안하는 대북접근에 대한 불만 등이 깔려있다고 지적했다.

홍 실장은 "실제로 한국이 4.27, 9.19합의를 이행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준비하고 취해야 할 것, 남북간에 협의해야 할 것, 미국과 국제사회를 설득하는 부분에서 체계적인 준비와 실행을 하였는지에 대해 냉철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K방역을 통해 보여준 한국정부의 국가능력을 과감한 남북주도의 평화프로세스로 전환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동맹이나 외교관계에 의존하는 남북관계 접근에서 한국 및 남북합의 주도의 접근으로 전환하는 전략', '남북관계를 북미관계나 비핵화에 종속된 위상으로 보지 않고 남북한 사이의 상호안전보장이란 차원에서 접근하는 과감한 프레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현실적으로 성과를 내지 못했던 '비핵화 되어야만 평화체제로 갈 수 있다거나, 북미관계에 남북관계가 따라가야 한다'는 기존 구도와 발상을 넘어서는 '한반도 협력안보' 구상을 제안했다.

한반도 협력안보 구상에 대해서는 "한반도 문제는 '상호안전보장' 차원에서 포괄적 접근이 필요하며, 협력적으로 위협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핵무기 및 재래식 무기를 단계적 군비통제(군축)와 비군사 분야에서 상호촉진적으로 연계되도록 하여 단계적으로 신뢰를 쌓아가면서 사실상 비핵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구상"이라고 설명했다.

비핵화 아니면 그 어떤 것도 접근하지 못하거나, 당장 군비통제를 해서 훈련을 중단해야 한다는 등의 결론이 아니라 한반도 현실에 맞는 안보협력에 관한 틀이 필요한데 이 문제를 회피하려는 태도는 옳지 않다는 것이다. 더구나 핵무기외에 재래식무기도 북미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자적 현안이기 때문에 충분히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사이의 신냉전과 동북아 정세를 주제로 발표한 정성윤 연구위원은 미국이 대선 국면에 들어가는 올해부터 내년 초까지 북이 취할 수 있는 두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그에 따르면, 북은 핵무기를 거래해 온 시장인 북미협상에서 자신들의 실패를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철수를 선언할 가능성이 있다. 또 핵무기 시장 철수와 함께 핵무기에 대한 전략적 가치를 더욱 높여서 미국과 한국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새로운 환경을 조성하고 새 가격표를 붙여 시장에 재진입하려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

구체적으로 올해 하반기 북은 핵무기 증강을 선언하거나 2년전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공동선언을 파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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