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 출신 장기수 정관호(96) 선생이 열 번째 시집 『가고파』 출판을 준비 중에 있다. 시집 출간에 앞서 20여 편을 골라 격일(월 수 금)로 연재한다. 정 선생은 <통일뉴스>에 2008년 8월부터 2012년 5월까지 200회에 걸쳐 시와 사진으로 된 ‘정관호의 풀 친구 나무 친구’를 연재한 바 있다. / 편집자 주

 

 

              옥 과 댁

 

 

           철이 들까 말까 열여덟 나이에

           남편 될 사람 얼굴도 모른 채

           후미진 산골로 시집을 와서

           아이는 드는 대로 터울 밭게

           덜컥 오남매를 낳고 과부가 되었다

 

 

           물려받은 전장이 따로 없어

           품팔이에 막노동 닥치는 대로 하고

           들로 산으로 나물 캐고 산채 다듬어서

           이십 리 오일장에 이고 지고 내다 팔아

           매달리는 새끼들을 먹여 키웠다

 

 

           그러노라니 손은 옹이로 갈퀴지고

           허리는 꼬부라져 기역자로 꺾였지만

           자녀들 어엿이 시집 장가 다 보내고

           그들 아래 손주들 줄을 이었으니

           이제 그만 다리 뻗고 쉬어도 되련만

 

 

           배운 것이 일이요 깨고 나면 밖이라

             긴 해도 짧고 마디게 저미면서

           백 날이 하루 같은 지성으로

           김치 담그고 장 달여서는 자식들 앞앞이

           택배로 부치는 보람으로 산다

 

 

            언제 밤하늘 별을 쳐다봤던가

            언제 치장하고 맵시 뽐내봤던가

            그래도 색바랜 결혼사진 만지면서

            죽으면 영감 곁으로 간다는

            얼굴 주름이 고랑 같은 여인 옥과댁.

 

 

저자 소개

1925년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남. 원산교원대학 교원으로 재직하던 중 6.25전쟁으로 전라남도 강진에 내려왔다가 후퇴하지 못하고 빨치산 대열에 가담. 재산기관지 ‘전남 로동신문’ 주필 역임. 1954년 4월 전남 백운산에서 생포되어 형을 삶.

저서로는 음악 오디오 에세이집 『영원의 소리 하늘의 소리』,『소리의 고향』이 있고, 시집들 『꽃 되고 바람 되어』,『남대천 연어』,『풀친구 나무친구』,『한재』,『아구사리 연가』, 역사서『전남유격투쟁사』, 장편소설 『남도빨치산』 등이 있다. 이외에도 역편저가 다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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