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우 / 전 인천대 교수

 

필자의 말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는 소통의 도구이자 사회 현상을 반영하는 거울입니다. 미디어를 읽는다는 것은 거울에 비친 우리 자화상을 본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사회를 성찰하고 뒤돌아보는 글이 되고자 합니다. 이 글은 매주 목요일에 게재됩니다.

 

러시아의 민속학자 블라디미르 프로프(Vladimir Propp)는 설화의 서사 구조를 분석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가 분석한 서사 구조는 현대의 영화나 드라마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접하는 거의 대부분의 서사 구조는 프로프가 분석한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가 밝힌 서사 구조에 등장하는 핵심 인물로는 주인공(hero)과 그 대척점에 있는 악당(villain)이 있다. 대부분의 드라마에는 악당이 주요 인물로 등장해서 극이 전개된다.

요즘 영화나 드라마의 인물을 칭할 때 악당보다는 빌런이라는 영어가 더 자연스럽게 쓰이는 듯하다. 악당이라는 단어는 그저 나쁜 사람이라는 단선적인 의미를 갖는데 비해, 빌런이라는 단어는 보다 더 복잡한 의미를 내포한 것으로 차별화되어 사용하는 것 같다.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악당이 과거보다 훨씬 더 복잡한 동기와 내면을 갖고 있어서 그냥 나쁜 사람을 의미하는 악당이 그 인물이 갖는 내면을 제대로 표현 못한다고 생각해서 빌런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 아닐까 싶다.

과거에 빌런은 주로 남성이었는데, 최근에는 영화나 드라마의 빌런으로 여성이 자주 등장한다. 파격적인 모습의 빌런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빌런 역 배우의 성이 여성으로 진화하면서 이를 페미니즘 시각으로 해석하는 견해를 종종 접한다. 아예 여성 빌런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영화나 드라마도 많이 만들어지고 있으니 페미니즘 운동의 결실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은 인상적인 여성 빌런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극 중 빌런으로 나오는 중전 계비는 여태껏 봤던 악역의 전형에서 벗어난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그녀는 세도가인 아버지가 권력을 유지하는 도구로 자신의 여성성을 이용하는 것을 거부할 뿐 아니라 스스로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상상을 뛰어넘는 수단을 동원하는 냉정한 면모를 보여준다.

서자인 세자에게 권력이 넘어가는 것을 막으려면 계비는 반드시 왕자를 낳아야 한다. 그러나 왕자를 생산하는 것이 여의치 않자 그녀는 임산부들을 비밀리에 모집하고, 이들이 낳은 사내아이 한 명을 자신이 낳은 왕자로 위장시키고는 산모와 갓난아이들을 모조리 죽여버린다. 종국에는 세도가인 아버지를 죽이기까지 한다. 그렇게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지만, 권력을 장악하는데 실패하자,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누구도 가질 수 없다"라며 스스로 좀비가 되어 버리는 모습은 이전의 여성 빌런과는 확연히 차별화된다. 

남자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정도가 아니라 가부장적 권위로 딸을 이용해서 권력을 탐하는 아버지를 아예 죽여버리고 스스로 권력 쟁취에 나서는 모습을 보면,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여성 빌런 캐릭터에 페미니즘적인 해석과 의미부여가 따라붙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일지도 모르겠다. 남성보다 더 강렬한 욕구와 행동을 보여주는 여성상은 사실 이제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만큼 사회가 변했고, 성역할도 변했다.

파격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선을 지키는 드라마와는 달리 유튜브에서는 더욱 파격적인 시각과 주장이 넘쳐난다. 성매매를 불법으로 규정한 것이 지극히 남성 중심적이고 남성의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것이고, 따라서 여성의 성매매를 합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유튜브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남성이 자신의 근육을 이용한 노동력을 팔고 돈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이 자신의 성을 판매하는 것도 엄연히 몸을 이용한 노동력을 파는 동일한 행동이라는 주장이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몸을 파는 여성을 빌런으로 규정하고 불법화하여 여성이 자신의 몸을 이용하여 쉽게 남성보다 더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수단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는 주장은 일견 타당해 보이기도 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이 매춘이기도 하고, 아무리 규제해도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직업이기도 하다. 매춘을 합법화한 유럽 국가도 있다. 그러나 합법 여부를 떠나서 몸을 파는 여자를 빌런으로 규정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건 비슷하니 이것은 법률의 문제라기보다는 인식의 문제이다. 물론 사회적으로 몸을 파는 여성을 빌런 취급하는 것은 단순한 노동과 그 댓가의 문제는 아니고 보다 복잡한 사회 문화적 배경이 있으니, 일부 페미니스트 유튜버의 주장이 모두 타당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미디어에 비친 모습이건 현실의 문제이건, 분명한 것은 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여성의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은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진화해왔다. 심지어 여성 빌런의 모습과 개념 또한 진화했다. 그렇게 세상은 변하고 진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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