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건강 이상설’이 우리 사회는 물론 전 세계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는 하나의 해프닝에 불과하였지만, 그 동안 외신과 소식통에 기대어왔던 북에 대한 ‘정보’의 탄생과 유통과 소멸의 악순환을 압축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교훈적인 해프닝이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되었다. 

첫째, 북에 대한 소위 ‘정보 장사꾼’들이 얼마나 취약한 정보를 가지고 – 이 경우, 정보는 정확히 첩보라 해야 할 것이다. 그것도 아주 불확실한 첩보 – 사회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였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문제시되는 ‘가짜뉴스’의 폐해를 고스란히 보여준 것이고, 그러한 ‘가짜뉴스’의 발생과 행위 주체들을 한 껍질 벗겨내었다는 점에서 대단히 교훈적이었다. 

둘째, 북에 대한 무지가 ‘가짜뉴스’에 얼마나 쉽게 휘둘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대단히 교훈적이었다. ‘북맹’의 사회는 조그마한 정보에 의해서도 이리저리 흔들릴 수 있다. 세계에서 개방의 정도를 따진다면, 다섯 손가락에 들 정도의 우리 사회는 북에 대해서만큼은 무지할뿐더러 취약함을 노출하고 있다. 

셋째, 이번 사건이 준 가장 큰 교훈은 우리에게 과연 북에 대한 ‘전략적 사고’가 있는지 하는 점을 되돌아보게 한 점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두문불출이 ‘건강’의 문제와 연관된 순간, 여타의 사고는 완전히 봉쇄당하고 만다. 왜, 김정은 위원장이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았을까? 에 대한 대답이 오로지 ‘건강’때문인 것으로만 사고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북을 바라보는, 그리고 현재의 남북관계 및 북미관계 등을 바라보는 ‘전략적 사고’가 들어설 틈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이번의 ‘사태’에서 건강, 사망 등의 마치 예언자의 예언만이 판을 치고, 실제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북의 움직임의 연장선에서 이를 해석하는 말과 글은 거의 보지를 못했다. 바로 이 지점이 이번의 사건을 보면서 ‘해프닝’을 넘어 심각하게 우리의 문제를 돌아보게 하는 지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2019년 ‘하노이 교착’ 이후, 북은 지난해 연말까지를 시한부로 두고 ‘새로운 셈법’을 미국에 요구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요지부동이었고, 오로지 ‘선비핵화’의 요구만을 답습하였다. 이에 북은 지난해 말 유례없는 3박 4일의 ‘전원회의’를 거치면서 ‘정면돌파’전을 선언하였다. 

일각에서 주장했던 군사적 도발이 아닌 자력갱생에 기초한 정면돌파를 선택한 것에 대해 한편으로는 안도했지만, 전원회의 결정문 곳곳에는 ‘충격적인 실제행동’을 경고하는 한편, ‘새로운 전략무기’의 보유, ‘전략무기개발의 중단없는 계속’ 등의 문구가 등장하였고, ‘지켜주는 대방도 없는 공약’에 더 이상 매달리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후, 북은 대외적으로는 군사적 도발이 아닌 자력갱생을 통한 경제건설에 중점을 두었지만, 그렇다고 정치-군사적 행동의 가능성을 완전히 닫은 것은 아니었다. ‘제재와 자력갱생의 대결’로 압축했던 것이 단지 자력갱생을 통한 경제건설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더 이상 미국에게 제재 해제에 매달리지 않을 것이며, 이것을 기정사실화하고 내부적 힘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은 자력갱생을 통한 내부의 경제적 자원의 동원을 한편으로 하면서 동시에 전략무기 개발과 시연을 다른 한편으로는 하는 장기적인 계획을 결정했다고 할 수 있다. 즉, 북이 말하는 정면돌파전의 한 축이 자력갱생에 기초한 경제건설에 있다면, 다른 한 축은 전략무기에 기초한 군사력 강화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북의 정면돌파전 앞에 세계적인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면서 북으로서는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남 셈이었다. 그런 와중에 2-3월 우리를 긴장케 했던 코로나 확진자의 대량 발생 등의 사태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 온 서한이 주목을 끌었다. 앞서 김여정 부부장의 강경한 대남성명과는 다르게 따듯한 내용이 담긴 서한은 북이 한편으로는 원칙의 문제에서는 강경한 입장을, 인도적 문제에서는 동포애적 입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후, 북은 과도할 정도의 코로나19 방역의 와중에서도 최고인민회의를 개최하여 일부 인사와 노선을 결정하였다. 

위의 과정은 지난해 연말부터 시작하여 자신들의 ‘새로운 길’을 정면돌파전으로 확정한 이후 일정하게 내부를 정비하였고, 이제는 점점 행동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행동이 어떠한 것이 될지는 현재로서는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 전원회의에서 밝힌대로 전략무기를 시연하게 될지, 아니면 오랜 침묵을 깨고 ‘순천린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것처럼 내부의 경제건설에 더욱 집중하게 될지는 현재로서는 속단하기 어렵다. 

여기에 남의 총선 결과와 그 이후의 정부의 행보를 지켜보아야 할 것이고, 미국의 코로나 이후의 정치일정 등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친서를 받았다고 한 것에 대해 북이 공식적으로 이를 부정하면서 ‘그 의도에 대해 분석해 볼 것’이라고 굳이 못을 박아 표현을 했고, 이는 미국의 대북정책 전반에 대한 재검토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앞으로 전개될 미국 대선의 향방 등은 북에게 고려해야 할 최대의 변수가 될 것이다. 이 외에도 코로나 방역에 협력했던 중국, 그리고 러시아 등도 고려해야 할 변수로 될 것이다. 더욱이 남의 경우, 총선 이후 동해북부선 연결을 위한 사업 개시, 남북 코로나 방역 협력 등을 제안하고 있는 상태에서 내민 손을 무정하게 내뿌리치기도 어려울 것이다. 

결국 김정은의 이번 잠행(?)은 최고인민회의까지 내부의 정치일정은 정리한 북이 다음에 어떤 전략적 행동을 할지를 숙고해야 했던 기간이었다고 추론해볼 수 있다. 5월을 넘어오는 시점에서 북으로서도 더 이상 내부만 정리할 것이 아니라 외부로도 자신의 행동을 보여주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 행동이 어떤 것이 될지는 지금으로서는 섣불리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단지 희망이 있다면, 지난 전원회의에서 전략적 건설대상으로 지정했던 ‘순천린비료공장’이 준공되자 모습을 드러내었다는 점이다. ‘충격적 실제행동’이나 ‘새로운 전략무기’가 아닌 것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북의 전략적 행동 – 군사적 행동 – 의 여지는 남아있다. 새로운 무기 공장이나 ICBM의 대규모 시설의 공개 혹은 건설, 새로운 전략무기의 시연 등의 행동이 선택지로 남아있는 것이다. 

어떤 것이 될지는 미국, 특히 총선 이후 내부를 정비한 우리가 어떤 정책과 행동을 할 것인지에 달려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코로나 휴전’이 김정은의 친서에 담긴 뜻이었다면, 김여정의 대남성명은 언제든지 행동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김정은의 이번 잠행(?)은 그 휴전 이후의 행동이 무엇이어야 할지를 구상하고 다듬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나 덧붙인다면, 최근에 재개된 한미합동공중훈련, 김정은의 잠행기에 보여주었던 미국의 전략 정찰기 등의 한반도 상공 출몰 등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북에게 움직이지 말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 아니었을까? 이에 대한 북의 반응은 무엇일까? 어찌되었든 우리가 쉽게 알 수 없는 움직임들이 남, 북, 미에서 복잡하게 얽히고설키면서 일어났던 지난 한 달이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북이 이제 점점 행동할 시간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고, 우리의 희망은 그것이 김정은의 오랜 침묵 이후에 나타난 ‘순천린비료공장’의 사례처럼, 경제적인 것이고 우리가 내민 손을 북이 과감히 맞잡아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지금처럼 미국이 정해놓은 가이드라인에 멈춰서 그저 안타깝게 미국과 북을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역시 ‘새로운 길’의 행동을 과감하게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우리 역시 행동해야 할 시간에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문학박사, 2001)
캐나다 브리티쉬 콜롬비아 대학 방문연구원(2002-2003)
서울대 국제대학원 연구위원(2004-2006)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객원연구원(2007)
현재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로 재직중

주요저서로 북한의 개혁·개방: 이중전략과 실리사회주의(2004), 김정일 리더십 연구(2005), 서울과 도쿄에서 평양을 말하다(2008), 북한과 미국: 대결의 역사(번역서, 201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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