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태 / 출판기획자 겸 역사교양서 저술가

 

올해 2020년은 광복(또는 해방) 75주년이자 6.25전쟁(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에겐 해방이 곧 분단이었으니 분단 75주년이기도 하다. 왜 우리는 3/4세기 동안이나 분단된 상태로 살아야 했던가? 왜 우리는 해방과 함께 분단이라는 있을 수 없는 상황을 맞아야 했던가? 우리는 왜 해방 3년 만에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되고 마침내 5년 만에 전쟁이라는 참화를 겪어야 했던가?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은 해방 전후사에 들어 있다. 해방 75주년, 한국전쟁 70주년의 해에 해방 전후 역사를 다시 돌아보는 이유다. 이 연재는 매주 월요일에 게재된다. / 필자 주

 

의식 상태가 1945년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

1945년 8월 15일까지 한반도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나라는 일본이었다. 75년 전 오늘 그러니까 1945년 5월 11일에도 한반도는 ‘대일본제국’의 식민지였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국제 연합국에 항복을 선언하고 패전국이 되어 한반도에서 철수하면서 일본의 영향력을 현상적으로는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과 더불어 한반도에 대한 상당한 영향력을 유지해왔다. 일본이 차지했던 자리를 대신한 것은 미국과 소련이었다. 소련은 6.25전쟁과 1950년대를 지나 1960년대부터는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이 대거 축소되었고, 1990년대 이후 실질적인 영향력은 거의 행사하지 못한다. 그러나 미국의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여전하다. 아직도 3만명 가까운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고, 최강의 군사력과 경제력, 그리고 외교관계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한반도에 대한 통제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우선 오늘 할 이야기는 일본 이야기다. 필자는 어렸을 때 어른들이 “한국은 일본 발뒤꿈치도 따라가기 힘들다”며 자조적인 이야기를 하는 걸 일상처럼 듣고 자랐다. 우리 부모세대는 “한국 제품 중에는 쓸 만한 게 하나도 없다”라거나 “한국 사람은 나라를 생각할 줄 모르고 도무지 단결이 안 된다”, “한국 사람은 공중도덕이나 질서의식도 없다. 일본 사람들은 안 그렇다”라는 말도 일상처럼 했다. 심지어 “한국 사람들은 사기도 잘 치고 거짓말도 밥 먹듯 한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은 절대로 거짓말을 안 한다”는 식의 심각한 자기비하도 서슴지 않았다. 이런 말을 하는 우리의 부모세대는 일제 강점기 아래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일제의 식민지 교육, 황국신민화 교육을 받았다. 일제는 식민지 교육을 통해 조선인이 스스로를 비하하고 폄하하는 의식을 갖도록 만들었다. 그러한 잘못된 의식은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 만연했다. 일제의 식민지에서 정치적으로는 해방되었으나 의식은 여전히 식민지 의식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이런 식민지 시대의 사고방식은 해방 후 우리가 일제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았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해방된 지 75년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도 이와 유사한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한국 최고의 대학이라는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낸 사람에게서 나온 말이다. 전 서울대 교수 이영훈은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 서문에 이렇게 썼다.

“한국의 거짓말 문화는 국제적으로 널리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2014년에만 위증죄로 기소된 사람이 1,400명입니다. 일본에 비해 172배라고 합니다. 인구수를 감안한 1인당 위증죄는 일본의 430배나 됩니다. 허위 사실에 기초한 고소, 곧 무고 건수는 500배라고 합니다. 1인당으로 치면 일본의 1,250배입니다.”(주1)

이런 주장을 편 이영훈은 거짓말의 사례로 ‘세월호 진상 요구’를 들고 있다. 심지어 그는 ‘이러한 거짓된 주장에 항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죽은 영혼’, ‘좀비’로 비하까지 하고 있다.

그는 2018년 10월 대법원의 징용 노동자들의 일본제철 관련 배상소송 관련 판결에 대해서도 판결의 근거가 된 ‘기본적 사실 관계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필자는 마치 50년 전의 어린 시절 어른들이 하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게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지금 일본의 아베 수상을 비롯해 일본의 위정자들도 이와 같은 이야기를 앵무새처럼 되뇌고 있다. 그들의 의식 상태는 정확히 1945년 이전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들은 아직도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라고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 반일종족주의 일본어판.(사진=일본 <문예춘추>) 한국 극우와 일본 극우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일본 극우의 주장을 받아서 한국의 극우들이 재방송하면, 이걸 다시 일본 극우들이 받아서 ‘한국에서 이런 주장이 있었다’고 또 다시 선전한다. 그건 결국 자신들이 했던 이야기를 재방송하는 것에 불과하다.

해방 75년, 한국의 일본 앞지르기

해방 후 오랫동안 한국은 모든 면에서 일본과 격차가 너무 컸다. 다른 것은 제쳐두고 경제만 살펴보아도 확연히 드러난다. 6.25 전쟁의 참화를 겪은 한국 사회는 폐허나 다름없었다. 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초반의 한국 경제는 세계 최하위 수준이었다. 일본과 국교 정상화를 이룬 1965년 전후 시기 한국의 경제 규모는 일본의 1/30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2019년 현재 한국의 1인당 GDP는 일본의 80% 수준이 되었다. 조만간 구매력에서는 한국이 일본을 앞설 전망이다. 전체 경제규모는 일본이 한국의 3배 수준으로 격차가 줄었다. 3배가 적은 차이는 아니지만 남북이 협력해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면 한반도는 빠른 시간 안에 경제적으로도 일본과 대등한 수준에 이를 수 있다. 해방 후 75년 만에 한국(한반도)이 이룬 성과는 놀랍다.

2020년 코로나가 세계를 덮치면서 한국은 세계 최고의 방역 모범국으로 세계인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반면 세계 최강국 미국은 가장 많은 확진자·사망자 수로 체면을 구기고 있다. 일본은 또 어떤가. ‘아베 마스크’로 대표되는 일본의 후진적인 코로나 방역 대응이 연일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영훈이 말한 불신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에서 만연하고 있다. 거짓말은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인이 하고 있다. 아베는 코로나와 관련한 투명하고 진실한 정보 대신 현재의 위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정보, 검사지연, ‘꼼수’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거짓과 불신이 일본 사회를 뒤덮고 있다. 반면, 한국은 투명한 정보 공개와 방역당국의 헌신적인 노력, 높은 시민의식이 ‘K-방역’의 명성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민주주의 수준은 또 어떤가. 언론의 자유는? 적어도 방역과 관련해서는 한국이 모든 면에서 일본을 압도하고 있다. 해방 75년 만에 한국(한반도)이 이룬 놀라운 성과다.

필자세대도 일본에 대해 자신감을 가질만한 요인이 별로 없었지만 부모세대처럼 콤플렉스로 가득 차 있지는 않았다. 일본에서 배우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반감이 더 컸다. 그렇지만 우리가 일본을 따라 잡는 것은 쉽지 않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경제적인 측면, 특히 산업과 기술의 면에서 세계 최고의 수준에 도달한 일본을 한국이 넘볼 수 있다는 생각을 감히 하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는 필자세대 또한 일본에 대한 얼마간의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의 젊은세대는 전혀 사정이 다르다. 일본에 대해 특별한 편견이나 반감도 없지만, 열등의식도 없다. 있는 그대로 일본을 보고 대할 뿐이다. 얼마든지 경쟁할 수 있는 상대이고 충분히 능가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해방 75년, 한국(한반도)이 이룬 성과다.

과거의 한국이 아니다

2019년 8월 2일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 국가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화이트리스트’란 “일본 정부가 물자나 기술, 소프트웨어 등의 전략물자를 외국에 수출할 때 절차를 간소하게 처리하도록 지정한 물품 목록”을 말한다. 일본은 신뢰할 수 있는 우방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 국가’로 지정해 수출 절차를 간소화해주고 있다.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제외한 것은 한국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경제적인 판단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일본정부가 경제외적인 이유, 즉 정치적인 이유로 한국정부에 경제보복 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래 한일 관계는 계속 악화되었다. 극우성향의 아베 정권은 촛불혁명으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를 처음부터 강하게 경계했다.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남북관계 개선을 강력히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성공할 경우, 아베 정권의 정치적 목표인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바꾸기 위한 평화헌법 개정’이 무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남북·북미 관계가 급진전하고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 체제 논의가 진전되면서 일본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한국과 일본은 과거사 문제를 두고도 정면으로 부딪쳤다. 한국정부는 박근혜 정부 때 맺은 2015년 ‘12.28 위안부 관련 합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정부는 일본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해결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사실 이는 오래 전부터 한국 측이 일관되게 취해온 입장이었고, 박근혜 정부도 처음에는 이런 입장을 지켰다. 그런데 아베 정권이 등장 한 뒤 과거사 문제를 두고 한일 양국이 대립을 지속하자 미국이 한국 측에 압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의 압력에 굴복한 박근혜 정부가 2015년 12월 28일 굴욕적인 ‘12.28 합의’를 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위안부’합의는 당사자의 동의를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인권규범과 인도주의 원칙에도 어긋났다. 문재인 정부는 잘못된 합의를 제자리로 돌려놓으려고 했을 뿐이지만 일본정부는 강력히 반발했다.

이런 갈등 상황에서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이 강제징용 노동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피해배상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는 일이 벌어졌다. 대법원이 하급심 판결을 최종 확인해 준 것이었다. 한국 법원의 판결에 대해 일본정부는 식민지 시기 배상 문제는 1965년 한일 협정으로 모두 해결되었다고 주장하며 강력히 반발했다. 하지만 한국 법원은 한일 협정으로 국가 간 배상 문제는 해결되었다고 해도 개인의 배·보상권이 없어진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서 법리에 충실한 판단이었다.

▲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을 “외교적 대형 악재”라고 평가한 채널A <뉴스A> 보도(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2016〜2017년 ‘촛불 혁명’을 거치며 한국의 민주주의는 상당히 높은 수준, 성숙된 단계에 도달했다.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정부가 법원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것은 지금의 한국 정치 상황으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일 한국 정부가 법원에 대해 압력으로 느껴질 수 있는 행동을 취한다면 심각한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 한국 사회 현실이다. 하지만 일본은 아베 정권 등장 이후 언론자유 지수가 계속 하락하고 있고 민주주의 또한 급속히 후퇴하고 있다. 아베 정부는 한국정부에 대해 징용노동자 판결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할 것을 요구하며 압박을 가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때와는 전혀 다른 대응이었다.

과거사 문제로 시작된 한일 간의 갈등은 군사 갈등으로까지 비화되었다. 일본의 해상 자위대 초계기가 동해안에서 표류중인 어선의 인명구조 활동을 벌이고 있던 한국 함정을 향해 공격적인 레이더 조준을 하는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일본이 다분히 의도적인 일본의 도발행위를 벌인 것은 문재인 정부를 흔들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는 한반도의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악마화’ 정책 대신에 한국을 ‘새로운 적’으로 등장시킴으로써 일본극우의 이해관계를 해결하려는 의도와도 연결되어 있다. 한일 갈등 이후 ‘한국 때리기’는 아베 정권이 애용하는 ‘정치적 선동’ 수단이 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은 일본이 마음대로 주물럭거릴 수 있는 과거의 한국이 아니다.

한 세기에 걸친 일본의 우월적 지위가 흔들리다

2019년 4월 11일에는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관련한 일본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를 내린 한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였으나 완패했다. 이 밖에도 일본은 다양한 방식으로 한국을 자극하고 도발했으나 그들의 의도를 실현할 수 없었다. 이런 것들이 통하지 않자 일본 정부는 마침내 ‘화이트리스트’ 제재라는 경제보복 카드를 꺼내들었다. 경제보복은 그동안 일본이 전개한 한국 때리기의 연장선 위에서 이뤄진 가장 강력한 압박 카드였다. 일본정부가 볼 때 ‘화이트리스트 제제’는 한국정부의 항복을 받아낼 수 있는 아킬레스건이었고, 가장 효율적인 협박 수단이자 제재 방법이었다. 한국 내부의 보수세력의 준동을 겨냥한 것이기도 했다.

일본정부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 후, 1965년 한일 협정 규정을 근거로 중재위원회 설치를 요구하고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를 거론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은 양자 협의에 응하지 않았다. 3국간 중재위원회나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또한 한국이 응하지 않으면 아무 쓸모도 없는 카드였다. 더욱이 중재위원회나 국제사법재판소에 간다고 해도 일본이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런 논의 과정에서 과거 일본 제국주의가 저지른 전쟁 범죄 행위와 전후 일본의 미흡한 식민지 배·보상 처리가 전 세계에 낱낱이 까발려지는 것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 일본으로서는 득보다 실이 더 클 수도 있었다.

이런 사정들을 감안한 일본은 한국에 대한 직접적인 경제 제재라는 보복 카드로 꺼내 들었다. 급성장했다고 해도 한국은 여전히 일본에 비해 경제적으로 약자였다. 경제규모를 보면, 2018년 기준으로 GDP(국내총생산)가 일본은 5조706억 달러(세계 3위)인 데 비해 한국은 1조6,295억 달러(세계 11위)로 3.1대 1 수준이다. 또한 일본은 한국의 최대 수출품인 반도체를 비롯한 고화질 TV, 정밀기계, 석유화학 등 한국 핵심 산업의 부품·소재 대부분을 독점 공급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으로서는 일본의 경제제재가 치명적일 수 있다.

▲ 한국언론의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보도(연합뉴스, 2019.8.2.)

일본을 능가할 잠재력을 가진 한국

마구잡이 진흙탕 싸움을 벌이면 한국이 훨씬 불리하겠지만 일본 또한 치명타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무차별적인 공격을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단기간의 전쟁이나 국가 간의 분쟁은 반드시 힘의 압도적인 우위에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강한 상대라도 그의 결정적인 약점을 쥐고 있으면 상대방으로부터 쉽게 공격당하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일본은 여러 가지 위협적인 언사를 구사했지만 구체적인 제재를 실행하지는 못했다. 일본이 한국을 여전히 우습게 여길지 모르지만 실제 한국은 과거와는 달리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게 확인되었다.

1965년 한일회담 때 일본은 경제규모에서 한국의 30배 이상이었다. 1992년까지만 해도 10배 이상이었다. 그러나 2018년 현재 1인당 GDP는 한국(3만 1,940달러)이 일본(4만 1,020 달러)의 78% 수준이고, 전체 경제규모는 일본이 한국의 3.1배이다. 일본 인구가 한국의 2.5배 정도이기 때문에 실제 개인 소득수준은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다는 이야기다. 전 세계의 수출 비중은, 한국이 약 6,055억 달러(3.1%), 일본이 7,326억 달러(3.75%)로 차이가 미미하다. 1990년 전 세계 수출 비중이, 일본 8.27%, 한국 1.87%였던 것과 비교하면 그 추격 속도가 놀랍다.

경제적인 면에서 한일 간의 격차는 점차 좁혀지고 있다. 1인당 구매력 평가(PPP: Purchasing Power Parity) 기준으로는 2023년에 한국이 일본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019년 8월 11일 기준 국제통화기금(IMF) 세계경제전망 데이터베이스 자료를 보면 한국의 PPP 기준 1인당 GDP는 3만7,542달러로 조사대상 194개국 중 32위다. 일본의 PPP기준 GDP는 3만9,795달러로 31위다. 4년 뒤 PPP기준 1인당 GDP는 한국이 4만1,362달러, 일본 4만1,253달러로 역전할 것으로 전망되었다.(주2) 여기에 코로나 변수까지 감안하면 이러한 역전은 더 빨라질 수도 있다. 코로나 방역에서 한국은 가장 선방하고 있고, 경제성장률도 마이너스이긴 해도 가장 양호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본은 코로나 방역에 실패했고, 경제부흥을 위해 총력을 기울인 올림픽이 1년 연기된 데다가 그것마저도 내년에도 열릴 수 있을지가 불투명한 상태다. 민주주의 성숙도, 정치적 안정도, 국민의 의식수준 면에서도 한국이 일본보다 훨씬 조건이 좋다. 한국의 경우 아직 불투명하지만 북한과의 관계개선이라는 엄청난 플러스 변수가 존재한다.

산업 경쟁력 면에서도 부품·소재 산업과 정밀기계 등 한국에 비해 일본이 월등한 기술력을 자랑하는 분야가 다수이지만, 전자·통신·IT 및 가전분야 등 한국이 비교우위에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 또한 완성품의 측면에서는 한국이 결코 일본에 뒤지지 않는다.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했던 1세기 전은 말할 것도 없고, 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 경제발전을 시작하던 60년 전, 심지어 고도성장기를 막 끝내고 선진국 문턱에 들어서고 있던 20년 전과 비교해도 한국은 놀랄 정도로 발전했다. 한국은 결코 일본이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그런 ‘2류, 3류 국가’가 아니다. 한국인은 자만심이 아니라 자부심과 긍지,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져도 된다.

한국인의 자부심과 성숙한 대응은 일본 상품 불매 운동에서도 여실히 증명되었다. 맥주, 관광, 자동차를 비롯해 대표적인 상품과 기업에 대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노 재팬(No Japan)’ 운동의 위력이 큰 성과를 보였다. 일본의 경제제재 이후 일본이 입은 경제적 손실이 한국이 입은 것보다 훨씬 크다는 언론보도가 쏟아진 것은 이런 노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특히 2020년 코로나 사태를 통해 한국의 강점이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 일본 국민의 분노를 산 아베노 마스크 풍자. 일본의 코로나 방역 실패를 넘어 총체적 난국을 보이는 현재의 일본 상황을 상징하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지소미아를 둘러싼 한미일 간의 공방전

2019년 한국도 일본의 경제제재에 맞서 바로 대응 조치에 나섰다. 8월 2일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 3가지 품목(포토리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에 대한 수출규제를 공식화하자 8월 12일 한국 정부도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고, 국제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8월 22일 한국정부는 일본정부가 그렇게도 지속되기를 바랐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일명 ‘지소미아’. GISOMIA: Agreement between the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Government of Japan on the Protection of Classified Military Information)을 파기한다고 선언했다. 아베 정권은 한국을 안보상의 이유 등으로 신뢰할 수 없어서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제외한다고 했으면서도 군사정보보호 교류는 지속하자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일본은 북한 관련 정보, 그 중에서도 특히 인적 정보(HUMINT)를 한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본은 위안부 판결 등 역사 문제에 대한 이견을 이유로 경제적 보복조치를 취했으면서도 한국이 국제무역기구(WTO) 제소 등으로 강력대응하자 궁색한 이유를 늘어놓았다. 북한으로의 전략 물자 반출 가능성, 안보상의 이유 등을 거론하며 한국을 믿을 수 없다고 했던 것이다. 한국 내 이른바 보수우익들의 준동을 겨냥한 선전공작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보수우익들이라고 해도 일본 편을 노골적으로 들 수는 없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이런 일본의 주장이 허구라는 게 금방 들통 나고 말았다. 이른바 ‘전략 물자 관리’에서 한국보다 일본이 훨씬 허점이 많다는 사실이 그대로 밝혀졌던 것. 그것도 일본정부가 발간 자료에서 드러났으니 일본정부로서도 할 말이 없었다.

논리가 궁색해지자 아베 수상부터 각료에 이르기까지 ‘한국이 정부 간 약속을 위반했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한국인을 거짓말쟁이로 몰아세우는 ‘제국주의 시대의 침략자 근성’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일본은 지소미아는 지속하자는 비상식적인 태도를 보였으니,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그러나 지소미아 파기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미국이 파기를 강력히 반대했기 때문이다. 지소미아는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한일 간의 군사적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미국이 마련한 것이었다. 한일 사이에는 과거사 문제 등이 얽혀 있어서 직접적인 군사동맹을 추진하게 되면 한국민의 반발이 너무 심할 것이므로, ‘한미일 간 군사적 동맹과 유사한 관계’를 실질적으로 만들어가기 위한 고리가 바로 지소미아였다. 박근혜 정부는 미국의 압력 때문에 ‘위안부 밀약’도 맺고, 일본과 지소미아도 체결했던 것. 일본에 꿩주고 알까지 주었던 셈이다.

미국이 이런 지소미아를 파기하려는 한국을 절대로 방관할 리 없었다. 미국은 지소미아 종료를 앞두고 노골적으로 한국 정부에 압력을 넣었다. 8월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지소미아 종료는 안 된다는 식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다. 9월〜11월에는 에스퍼 국방장관, 스틸웰 미국무부 동아태차관보, 드하트 방위비협상 대표 등 미국의 고위관리들이 줄줄이 한국을 찾아와서 압력을 가했다. 해리 해리트 주한 미대사는 “깊은 실망” “강한 우려” 등 노골적인 표현을 써가며 한국 정부를 비난했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11월 22일 지소미아 종료 6시간을 남겨두고 ‘조건부 효력 정지’ 결정을 내렸다. 물론 한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굴복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 정부의 제안에 따라 ‘일본이 경제 제재 해제를 전제로 한 국장 회담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한국 정부의 퇴로를 열어주었던 것이다.

▲ 한국정부의 ‘지소미아 파기’ 시도에 압박을 가하는 미국정부 고위 인사들. 미국 국방부장관 마크 에스퍼, 합참의장 마크 밀리의 기자회견 장면.(MBC뉴스 화면 캡쳐)

해방 75주년에 돌아보는 한일 관계

지소미아 ‘종료 유보’ 선언 이후 한일 사이에 경제 제재 해제를 놓고 고위관료 회담이 진행되었고, 양국 외무부장관 회담도 열렸다. 조율 과정을 거쳐 2019년 12월 23〜24일 중국에서 개최된 한중일 정상회의 때 한일 정상회담이 성사되어 한일 간 갈등은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한일 간의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 관계가 해소된 것은 결코 아니다. 이 문제는 한일 간의 문제일 뿐 아니라 북일 간의 문제이기도 하다. 북미 간 대결 상태가 해소되고 한반도 평화체제가 정착하게 되면 북한과 일본의 수교 또한 필연적이다. 북일 수교 협상 과정에서 식민지 지배를 둘러싼 과거사 문제가 주요 이슈가 되지 않을 수 없다. 1965년의 굴욕적인 한일 협정을 북일 수교 과정에서 되풀이 하게 방치해서는 안 된다.

해방 75주년이 되는 현재 한일 관계는 좋지 않다. 국교 관계가 수립되기 전인 1950년대와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1965년 한일 협정 이후 가장 좋지 않다. 한일 간의 갈등 관계는 당분간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과거의 잘못된 한일 관계가 정상적인 상태로 전환하기를 바라지만 일본은 그걸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특히 아베정권이 한일 갈등과 한국이라는 새로운 ‘적’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려 획책하고 있어서 한일 관계 개선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한국과 일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웃이다. 이웃끼리는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좋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려는 역지사지의 자세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동안 한일 관계는 일방적이었다. 압도적인 힘의 격차가 존재하는 조건에서 대등한 관계는 불가능하다. 상호 존중도 이뤄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일본은 힘의 압도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이웃나라 한국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았다. 아직도 그런 자세를 바꿀 의사가 없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은 과거의 한국이 아니다. 일본이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더 이상 좋은 관계는 이뤄지기 힘들다.

이웃과 잘 지내려는 노력이 비굴한 자세나 아부하는 태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면서도 당당해야 한다. 그런데 상대방이 도저히 상호 존중의 자세를 보이지 않을 때에는 불가피하지만 갈등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한일 관계가 그런 상황이다. 지금의 불편한 한일관계의 ‘모든’ 책임이 일방적으로 일본에 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근본 원인을 일본이 제공했고 일본에 큰 책임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일본이 지금처럼 잘못된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한일 사이의 갈등관계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해방 75주년을 맞아 다시 한 번 일본과의 관계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75년 전 일본은 한반도의 인민들을 노예처럼 생각했다. 그들은 주인으로 행세했다. 해방과 함께 한국과 일본은 새로운 관계의 전환점을 맞았다. 새로운 시작은 일본의 진정어린 과거사 반성과 그에 걸맞는 배·보상에서 출발해야 했다. 그러나 일본은 사과도 하지 않았고, 제대로 된 배·보상도 하지 않았다. 일본이 힘의 우위를 믿고 한국을 깔본 것이다. 한국이 일본에 당당하기 위해서는 일제 잔재를 제대로 청산해야 했으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랫동안 친일파와 그 후예들이 한국 사회를 장악했고, 한국 사회 전반에 식민지 시대의 의식구조가 판을 쳤다. 이것들을 극복할 수 있는 저력을 갖게 되기까지 75년이 걸렸다.

해방 후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행사한 것은 일본이 아니라 미국이었다. 일본은 미국에 붙어서 ‘작은 형님’ 노릇을 하려 했을 뿐이다. 미국은 여전히 한반도, 특히 남한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은 아직도 우리가 극복하지 못한 존재로 남아 있다. 그런 점에서 미국 문제가 일본 문제보다 더 중요하다. 이 문제는 해방 전후사 연재를 끝내며 에필로그에서 언급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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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이영훈 외, 『반일종족주의』, 미래사, 2019, 10쪽

2) “한국 구매력평가 1인당 GDP 2023년에 일본 추월 전망”, 연합뉴스, 2019.8.11

 

 

출판기획자, 저술가. 청년시절 민주화․사회운동에 관계했으며, 한국 근현대사와 세계사, 인문․사회 관련 대중서의 기획․집필에 힘쓰고 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 공식 보고서 발간을 총괄했으며, 지금은 평화박물관의 ‘반헌법행위자 열전편찬위원회’ 조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한국에서의 학살-한국현대사, 기억과의 투쟁』, 『새로 쓴 한국현대사-해방부터 촛불항쟁까지 35장면』(공저), 『솔직하고 발칙한 한국 현대사』(공저), 『스토리 세계사 1~10』, 『두 개의 한국 현대사』, 『산골대통령, 한국을 지배하다』, 『국민을 위한 권력은 없다』, 『대한민국사 1945~2008』, 『대한민국50년사』, 『북한50년사』, 『거꾸로 읽는 한국사』(공저), 『거꾸로 읽는 통일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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