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 고정희 

 고요하여라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무심히 지나는 출근 버스 속에서도
 추운이들 곁에
 따뜻한 차 한 잔 끓이는 것이 보이고
 
 울렁거려라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여수 앞바다 오동도쯤에서
 춘설 속에 적동백 화드득
 화드득 툭 터지는 소리 들리고

 눈물겨워라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중국 산동성에서 날아온 제비들
 쓸쓸한 처마, 폐허의 처마 밑에
 자유의 둥지
 사랑의 둥지
 부드러운 혁명의 둥지
 하나둘 트는 것이 보이고


 교직을 그만둔 후 백수가 되어 대자유(?)를 누리고 있을 때 모 출판사가 개설한 문학 강좌(시창작과)에 등록한  적이 있다. 

 1학년 때 담임은 김남주 시인이었고, 2학년 때 담임은 고정희 시인이었다. 기라성 같은 두 시인을 만나며 내 삶은 환골탈태(?)했다. 더 이상 내 인생을 티끌처럼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고정희 시인은 우리에게 수업시간 마다 말씀하셨다. “연애시를 하루에 한편씩 쓰세요.” 우리는 아우성을 쳤다. “어떻게 연애시를 하루에 한편씩을 써요?” 선생님은 빙긋이 웃으시기만 했다.  

 나는 선생님의 깊은 뜻을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아차렸다. 남녀의 사랑은 두 사람의 사랑으로 끝나지 않는다.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사랑은 물결처럼 널리 널리 퍼져간다.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무심히 지나는 출근 버스 속에서도/추운이들 곁에/따뜻한 차 한 잔 끓이는 것이 보이고//-/여수 앞바다 오동도쯤에서/춘설 속에 적동백 화드득/화드득 툭 터지는 소리 들리고//-/중국 산동성에서 날아온 제비들/쓸쓸한 처마, 폐허의 처마 밑에/자유의 둥지/사랑의 둥지/부드러운 혁명의 둥지/하나둘 트는 것이 보이고’ 

 9 년간의 교직 생활은 참으로 재미없고 지루한 나날이었다. 파편적 지식을 전달하는 단순 반복의 일상이 어찌 재미가 있겠는가?

 우리는 수업이 끝나면 테니스를 쳤다. 땀을 흠뻑 흘리다 퇴근 시간이 되면 옷을 갈아입고 우르르 술집으로 몰려갔다. 왁자한 웃음. 시간은 흐르고, 위문 공연해야지? 학교로 돌아가 숙질실로 갔다.  

 화투장을 들고 시계를 보니 새벽 두시였다. 고! 소리치며 화투장을 내리치고 시계를 보니 새벽 세시였다. 한 시간이 촌음과 같았다. 신선놀음이었다.  

 이런 신선놀음도 단순 반복이 되니 지겨워졌다. 좀 더 짜릿한 무언가가 필요해! 우리는 회비를 모아 가끔 천호동으로 갔다. 거기엔 환락의 나라가 있었다.   

 그러다 부천으로 전근을 오고 학교와 집을 무기력하게 오가던 어느 날, 고등학교 교사를 하는 중학교 후배가 찾아왔다. “형, 교사들 모임이 있는데 한 번 가볼 거야?”  

 그를 따라 인천의 모 성당에 갔다. 수백 명의 교사들이 모여 있었다. 노래하며 박수치는 해맑은 교사들. “도깨비 빤쓰는 새카매요- 1백 년 동안 안 빨았대요-” 그러다 한 교사의 이름을 도깨비 대신 넣고는 경쾌하게 노래를 했다. 까르르- 맑디맑은 웃음들이 하늘로 비눗방울처럼 날아올랐다.    

 전교조의 전신 전교협의 인천 지역모임이었다. 나는 부천지역의 교사모임에 가입했다. 함께 공부를 하고 집회를 하며 내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수업 시간엔 학생들 한 명 한 명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휴화산이었던 내 사랑이 활화산이 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제 티끌 같은 한 사람이 아니라 역사속의 한 사람이었다. 나는 저 하늘 높은 곳에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가는 길이 훤하게 보였다. 나와 함께 길을 가는 수많은 사람들. 나는 거대한 역사의 물결이었다.  
 
 나는 n번방 사람들을 이해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역사와 사회에 대한 의식이 없는 각자도생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쾌락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점점 심연 속으로 빠져든다. 

 지난 4월 15일 총선일, 나는 가슴이 뛰어 진정이 되지 않았다. 예상대로 민주화의 큰 흐름이 확인되었다. 

 코로나 19의 창궐 속에서 연대하는 사람들. 그들은 극한의 행복이 무엇인지 알 것이다. 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인류인 마음은 그대로 충만하다.  
   
 연대의 즐거움을 모르고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사람들은 너무나 허망한 인생을 견딜 수 없다. 그들은 악마가 되더라도 쾌락의 길을 좇는다. 그래야 잠시라도 살아있는 것 같으니까.  

 n번방에 연루되어 목숨을 끊는 사람들. 그들은 악몽에서 깨어난 느낌일 것이다. ‘나는 인간이 아니었어!’ 절망은 그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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