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우 / 전 인천대 교수

 

필자의 말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는 소통의 도구이자 사회 현상을 반영하는 거울입니다. 미디어를 읽는다는 것은 거울에 비친 우리 자화상을 본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사회를 성찰하고 뒤돌아보는 글이 되고자 합니다. 이 글은 매주 목요일에 게재됩니다.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지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에 살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아직도 부족한 복지체계나 사회 구석구석 약자에 대한 소소한 배려를 위한 장치가 부족한 것도 하나의 원인이겠으나, 특히 중장년층의 기억 속에는 후진국 시절의 한국이 깊이 각인되어 있어서 쉽사리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측면도 있다. 더구나 언론은 그런 인식을 더욱 심화시키는데 일조를 했다.

국내에서 화제를 끄는 대형 사건이 발생하면 언론은 항상 선진국 사례를 가져와 예를 들며 비교하기 바빴다. 정치나 사회 시스템의 논쟁에서도 언론은 늘 미국이나 유럽 혹은 일본의 사례를 들어 한국 시스템의 단점을 지적했다. 항상 한국은 선진국과 비교되고 선진국을 본받아야 하는 처지로 언론이 묘사했기에 한국민들은 스스로 선진 국민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에 진입한 것이 틀림없지만 정신적으로는 선진 국민으로서의 마음가짐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네 마음속에는 늘 항상 서구 선진국을 배우고 따라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자리잡고 있었고, 그런 인식을 지속적으로 강화시켜온 언론의 책임이 크다. 더구나 세월호와 같은 사건을 겪으며 후진국이라는 인식을 더욱 심화시켰다.

이런 인식은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극적인 반전을 맞게 되었다. 코로나 사태 초기에 여전히 한국 언론은 한국 정부의 무능을 질타하며 해외 사례를 들어 본받으라고 꾸짖었다. 국경을 봉쇄한 선진국의 사례를 따라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며 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크루즈선에 대한 일본의 대처를 찬양하며, 한국 정부 방침을 준엄하게 비판한 <중앙일보> 기사는 나중에 네티즌들의 성지순례지가 될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한국 언론의 지적은 틀렸고, 해외 외신들은 한국 정부의 대책을 찬양하는 기사 일색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자국의 대처를 평가하는 기준은 한국이 되었다. 한국이 모범이며 기준이고, 마치 그동안 한국 언론이 선진국 사례를 가져와 비교하듯 외국 언론이 선진국 사례로 한국을 꼽고 있다.

이제 한국인들 마음속에도 ‘우리가 선진국이다’라는 확신이 자리잡고 있는 중이다. 아비규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외국 상황, 특히 동경하던 선진국들의 상황을 보며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는 데 있어서 한 수 위인 선진국에 살고 있다는 안도감과 자부심이 한국민들 마음속에 자리잡게 되었다.

한국을 찬양하는 해외 매체의 글을 인용하며, ‘국뽕’에 취한다는 식의 표현을 종종 보게 되는데, 그런 국뽕을 절정으로 느끼게 해주는 글이 최근 미국 유력 매체 <뉴요커(The New Yorker)>에 실렸다. 한국에 거주하는 콜린 마셜(Colin Marshall)이 4월 14일 자로 기고한 칼럼은 우리가 그동안 간과하던 사실을 콕 짚어 말하고 있다.

칼럼에서 마셜은 한국인들은 여러 이유로 스스로 후진국이라 생각하고 있으며 선진국, 특히 미국에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강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이미 여러 측면에서 미국을 뛰어넘었다는 것을 명쾌한 논리로 보여주고 있다.

마셜의 글에 따르면, 미국인과 비교해서 한국인은 평균수명이 더 길고, 더 건강하며, 더 좋은 교육을 받고, 직업도 더 안정적이고, 가난하게 살 가능성이 더 낮다. 통계적 팩트만 늘어놓은 것인데, 사실 이 팩트만 봐도 한국이 미국보다 더 선진국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더 좋은 교육과 더 나은 의료혜택을 받고 건강하게 살고 있다면 그 국가가 바로 선진국이고 그런 면에서 한국이 미국보다 더 선진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셜의 글은 코로나를 대처하는 한국과 미국의 대응을 비교하며 한국이 미국보다 더 선진국이라고 결론 맺는다. 유령 도시가 된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서울은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며, 카페는 붐비고, 거리와 공원에 사람들이 평상시처럼 다니고, 슈퍼에는 휴지가 넘쳐나고 있으니, 자신은 코리안 드림을 살고 있다고 하며 글을 마친다.

한국에 살고 있는 미국인의 솔직한 평을 읽다 보면, 우리가 지금 현재 세계에서 가장 선진국에 살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코로나 위기는 역설적으로 한국인들이 후진국 콤플렉스를 온전히 떨쳐버리고 나아갈 계기가 되었다. 이미 구매력 기준으로 한국 GDP는 일본을 추월했고, 방탄소년단은 빌보드 차트를 점령했으며, 기생충은 아카데미를 평정했다.

<BBC>와의 인터뷰가 방영된 후, 강경화 장관을 영국 총리로 모셔오자는 영국인들까지 있으니, 코로나 사태는 자국민을 보호하는 것에 있어서도 한국이 선진국임을 만방에 알렸다. 이제는 우리가 선진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가져도 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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