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풀베기 
 - 하청호
 
 풀을 벤다
 머리채 잡듯 거머쥐고
 낫질을 한다
 
 얘야, 아무리 잡풀이지만
 그렇게 잡으면 못쓴다.
 풀을 잡은 아버지 손을
 가만히 보니
 풀을 쓰다듬듯 감싸고 있다.

 아버지 눈빛이
 하늘색 풀꽃처럼 맑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한창 유행할 때, TV에서 그의 열강하는 모습을 수시로 보게 되었을 때, 내 귀에도 그의 강의 내용이 들려왔다. 그는 ‘정의의 예’를 들었다. 

 ‘당신은 전차 기관사이고, 시속 100킬로미터로 철로를 질주한다고 가정해보자. 저 앞에 인부 다섯 명이 작업 도구를 들고 철로에 서 있다. 전차를 멈추려 했지만 불가능하다.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이 속도로 다섯 명의 인부를 들이받으면 모두 죽고 만다는 사실을 알기에(이 생각이 옳다고 가정하자), 필사적인 심정이 된다. 이때 오른쪽에 있는 비상 철로가 눈에 들어온다. 그곳에도 인부가 있지만, 한 명이다. 전차를 비상 철로로 돌리면 인부 한 사람이 죽는 대신 다섯 사람이 살 수 있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이 말을 들으며 황당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오래전에 부기관사를 한 적이 있어 실감나는 예일 수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공허하게 들리지 않았을까? 누구에게나 일상에서 쉽게 닥칠 수 있는 사례를 들어야 하지 않나? 

 코로나19가 대유행하며 미국이라는 대제국이 너무나 허망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며 생각한다. 하버드대의 인기 명강사라는 마이클 샌델 교수가 학생들에게 정의의 사례를 각자의 삶에서 찾아보게 하고 함께 논의했다면 지금의 상황이 달랐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랬다면 분명히 전염병의 사례가 나왔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류는 핵전쟁이 아니라 전염병으로 종말을 맞이할 수 있다고 수없이 경고했으니까.  

 우리는 역사에서 수많은 사례를 본다. 삶속에서 진리를 찾지 않고 공리공담을 일삼을 때 그 사회는 이미 무너지고 있었음을. 

 하청호 시인은 ‘풀베기’에서 진리를 본다. 
 
 ‘풀을 벤다/머리채 잡듯 거머쥐고/낫질을 한다.//얘야, 아무리 잡풀이지만/그렇게 잡으면 못쓴다./풀을 잡은 아버지 손을/가만히 보니/풀을 쓰다듬듯 감싸고 있다.//-’  

 농사짓는 아버지는 안다. 풀베기에도 도(道)가 있음을. 하지만 처음 풀을 베는 시인은 자기 식대로 벤다. 그러다 ‘한 소리’를 듣는다. 

 우리는 미국에 사는 지인이 우리나라에 와서 진료를 받고 치료를 하고 갔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왔다. 임플란트를 해도 미국에서는 1억이 넘게 드는데 한국에서는 천만여원이면 된다고. 

 그때마다 우리는 콧방귀를 뀌었다.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미국이? 저렇게 해도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나?  

 여기서 조금만 사유의 지평을 넓혀보면 미국이 닥칠 수 있는 위험을 누구나 쉽게 감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서양은 플라톤 이래 ‘수학적 이성’으로 진리를 탐구해 왔다. 그 결과 산업 혁명, 과학 혁명을 일으키고 다른 지역을 쉽게 지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결과 인간은 사랑을 잃어가고 지구온난화로 인해 인류가 종말의 위험에 처해있지 않은가?

 코로나19의 전지국적 대유행은 서구문명의 몰락으로 이어져야 한다. 수학적 이성은 인간의 탐욕을 채우는 데는 더없는 사유의 방식이지만,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인간에게는 너무나 공허하고 위험한 사유의 방식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이것은 누구나 안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불의를 만나는가? 단지 우리는 힘이 없기에(없다고 생각하기에) 불의 앞에서 그냥 눈감아 버린다.

 우리가 힘을 가지면 된다. 민주주의다. 민(民)이 주(主)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삶 속에서 진리를 찾아내고 항상 새로운 사회를 창조해 낼 수 있다. 

 소위 전문가라는 지식인들은 보통 사람들의 삶과 멀어져 있기에 그들은 진리를 볼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공허한 예를 들어 진리를 말한다. 그들은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진리를 가려버린다. 

 프랑스의 현란한 철학들은 왜 코로나19 앞에서 이리도 무력한가? 왜 과거를 철저하게 반성한다는 독일도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가? 

 우리나라가 ‘방역 모범국’이라고 한다. 그건 의학과 행정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촛불을 통해 우리 사회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 이후를 생각한다. 미래는 우리가 정한다. 민주(民主)가 된 나라와 사회는 번창할 테고, 민주(民主)가 되지 못한 나라와 사회는 몰락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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