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미경 / 농부

 

살구나무를 찾아서 살구나무 동산을 만들고 있다. 올해는 살구나무 마을을 만들려고 한다. 올해 우리 마을에는 많은 살구나무들이 새로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인데, 나는 그것이 북측 회령 백살구나무이기를 바래서, 그것을 구하려 안타깝게 뛰어다니고 있다.
사라진 살구나무를 찾으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살구나무를 잃어버렸듯이 아주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무엇을 위하여 그 많은 것들을 놓아버린 것일까? 여기 연재할 글들은 살구나무처럼 우리가 잃은 것들, 잊은 것들, 두고 온 것들에 대한 진지한 호명이다. / 필자

 

▲ 살구꽃망울. 

 

봄기운이 스며드는 곳

태양이 춘분점을 지났다. 적도를 건넌 태양이 다가오면서 땅에 기대어 사는 온갖 것들에 생명을 불어넣어 세상의 빛깔을 빠르게 바꾸어 가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한 걸음씩 바뀌어 가는 풍경을 구경하게 되는 즈음이다.

시골은 온통 기대와 설렘의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세상이 막 소란스러워지려고 하는, 들리지는 않지만 온 몸으로 느껴지는 숨죽인 소란스러움, 톡 건드리기만 하면 와장창 터져 나올 것만 같은 소란스러움이다.

봄에는 농사 이야기를 해야 한다. 농사를 빼놓고 봄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허전한 일이다. 살구나무의 꽃눈이 꽃잎을 펼치는 절정을 향해 온 힘을 모으고, 채 풀리지 않은 언 땅에서 뾰족이 싹을 올렸던 명이나물 잎들에는 벌써 청아한 초록이 도착했다. 태양의 힘에 감응하는 생명들이 남모르게 큰 잔치를 준비하는 듯한 조용한 설렘이 밭을 뒤덮고 있다.

봄의 기운은 흙에 스며든다. 헐거운 창문을 두드리는 세찬 바람이 불고 갑작스레 진눈깨비가 날리며 날씨가 죽 끓듯 변덕을 부려도 흙에 스미는 봄기운을 막지 못한다. 그래서 은밀하게 사방으로 뿌리를 뻗어가던 쑥이 일제히 지표 위로 푸릇한 싹을 내밀면 농부는 삽과 괭이를 들고 나서야 한다. 쑥밭에 씨앗을 묻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일

삽질 괭이질로 복잡스럽게 얽힌 쑥뿌리들을 캐내는 작업이, 작년과 다름없는 한 해 농사일이 고스란히 다시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작년에 그렇게 죽자고 캐내었지만 그 고된 노동의 흔적은 자취도 없다. 딱 한 해만에 원점이다. 그래도 낙심은 없다. 바로 이 생명의 원리에 의하여 인간의 목숨도 유지되는 것이니까. 인간이 채취와 수렵을 포기하고 땅에 씨앗을 묻으면서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일이고 감수해야 할 작업인 것이다.

또다시, 작년처럼 쑥에 대해 생각한다. ‘이것들, 그동안 일 많이 했구나’부터 시작해서, ‘땅 속 깊이 뻗은 쑥의 뿌리를 따라가면 반드시 돌이 나온다, 쑥은 돌을 좋아한다, 돌이 있는 곳에는 물이 있다, 따라서 쑥이 돌을 좋아하는 것은 곧 물을 찾는 것이다’라는 식의 어줍잖은 삼단논법을 늘어놔 보기도 한다.

그렇게 사정없이 뽑히면서도 조금도 숙지 않는 창창한 기세에 감탄하기도 하고, 이렇게 생명력이 질기니 사람 몸에도 좋은 거라는 생각도 했다가, 오래된 묵은 것이나 굵직하게 군집을 이룬 것을 무더기로 들어내면 애들처럼 기뻐하기도 한다. 쑥을 캐내는 일은 고된 노동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쑥을 캐내는 일에는 뭔가 다른 것이 있다. 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 명이나물밭. 

쑥이 가르쳐 준 것

아무것도 모르는 두 해 동안 관리기로 밭을 갈아버린 것이 오류였다. 그것은 두 개의 오류를 포함하는 일이었는데, 하나는 군데군데 있던 쑥을 오히려 밭 전체로 퍼뜨려버린 것이요, 또 하나는 내가 하려던 무경운의 농사방식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첫 번째 오류는 순전히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두 번째 오류는 조급함에서 온 것이다. 빨리 남들처럼 그럴듯한 밭을 일구고 싶었다.

이런 것도 쑥을 캐내면서 명료해진 생각들이다. 쑥 때문에 골치를 앓으면서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당시에는 알 수가 없었다. 오래된 농부들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처치방법을 물어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약 뿌려부려유! 쎈 걸루다유!” 다른 방법은 없냐는 물음에 대한 대답도 역시 한결같았다. “캐내야쥬!”

낙심천만이었다. 농사는 제대로 지어야겠고, 쑥은 불가항력처럼 보였다. 쑥은 다른 풀들과는 다르다. 뿌리째 캐내지 않으면 급속하게 번져가는 것을 막을 수 없고, ‘쑥밭’, 쑥대밭’이라는 말이 폐허의 대명사로 쓰일 정도로 다른 작물들을 못살게 하는 타감작용이 강한 것이 쑥이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야 나올 것은 없었다. 몸을 움직이는 수밖에.

호미를 들고 나섰다가 던져버리고 괭이를 잡았다. 결국 삽까지 동원하여 땅을 파헤치면서 지나간 두 해 농사가 장난에 불과했음을 알았다. 온 종일 삽질 괭이질을 하여 캐내는 쑥이 서너 광주리가 되어도 40m 못되는 이랑 하나를 겨우 해결할 뿐이다. 다른 이들 반나절이면 끝내는 일을 한 주일을 씨름을 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사람의 일이란 이상한 데가 있다. 어떤 일도 부딪쳐봐야 진면목이 드러난다. 난망하고 끔찍하고 어리석어 보이던 일이 다른 것으로 변했다. 힘들어도 힘든 것만은 않은 일이 있고, 미련해도 미련하지만은 않은 일이 있다. 온 몸을 바쳐 이랑 하나를 정돈하고 씨앗을 묻었을 때의 대견함을 무엇과 바꾸겠는가.

실마리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생각은 아마 그 말에서 시작되었을 거다. “약 뿌려부려유!” ‘약을 뿌린다는 것’, 그것은 1970년대 통일벼로 대표되는 석유 기반의 녹색혁명이 이 땅에 들이닥친 이래, 모든 농사와 모든 농사꾼들을 붙들어 맨 부동의 법칙이다.

성가신 풀들이 꼿꼿이 선채로 말라죽는 제초제, 흙 속의 온갖 벌레와 균들을 말끔하게 청소하는 토양소독제, 작물들에 오는 모든 병과 벌레들을 잡는 농약, 작물들을 보기 좋게 만드는 여러 가지 영양제, 그리고 갖가지 화학비료들, 모두모두 신기한 마법이다. 아니 지금은 마법이 아니라 과학의 자리를 당당히 차지했다. 불과 한 세대도 지나기 전에 그거 없을 땐 농사를 어떻게 지었는지도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일상이 되었다.

작년 이 무렵 농협매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계산대 앞에는 계산원과 마을이장과 어떤 아주머니가 있었다. 이장과 아주머니가 알은 채를 하며 말을 주고받는다. 아주머니는 고추를 많이 심을 작정이다. 약을 한 통 들고 와서 계산을 기다리며 이장에게 하는 말투가 자랑 비스름하다. 밭에 좋다고 하는 미생물을 농업기술센터에서 받아다 뿌렸단다. 이장이 잘했다고 맞장구를 쳐준다.

두 사람 말을 들으며 계산원이 아주머니에게 묻는다. “엄니 이거 토양소독젠데 엇다 뿌릴라 그류?” 아주머니 하는 말, “응 꼬치밭에 뿌릴랑게.” 계산원이 되묻는다. “미생물 뿌렸담유?” 아주머니 얼굴이 멀뚱해진다.

이장이 해설을 맡았다. “이거 뿌릴라몬 미생물은 머하러 주요? 다 죽을낀디…” 그 말에 멀뚱하던 아주머니 표정이 난감함으로 바뀐다. 곤혹스러움과 망설임이 일순 양미간을 스쳐 지나가더니 약간 미안한 기색으로 말한다. “그려도 뿌려야제, 이눔읎이 꼬치농살 워찍혀.”

마치 잘 구성된 단편소설의 절묘한 반전을 보여주는 듯한 광경이다. 옆에서 보는 나는 그냥 마음이 아프다. 그게 비록 모순일지라도 좋다는 것은 다 해야 하는 아주머니의 마음이 헤아려져 그 어리석음을 비웃을 수가 없다. 좋다고는 해도 효과를 확인한 적 없는 미생물에 기대어 1년 농사를 저당 잡힐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주머니의 선택에 지지를 보낼 수밖에 없다.

잊었던 금기를 되살리다

쑥을 해결해주는 약은 제초제다. 여기서는 ‘풀약’이라고들 한다. 제초제라는 말보다 부르기 좋고 저항감도 덜한 이름이다. ‘농약 먹은 사람은 들쳐 업고 병원 가지만 제초제 먹은 사람은 병원에도 안간다’는 맹독성 약을 ‘풀약’이라는 순한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영 켕기지만, 풀 죽이는 약이니 풀약이 맞긴 하다.

사람들마다 ‘풀약 안 쓰고 어떻게 농사를 짓느냐’, ‘풀약 쓰지 왜 사서 고생이냐’고 딱해들 하지만, 약은 나에겐 유혹이 아니라 금기이다. 약이 금기인 것은 내가 하고 있는 농사방식과 관련된다. 내가 배운 농사는 ‘자연재배’라고 말하는 농사다. 자연재배라는 농사를 몰랐다면 농사를 짓겠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주머니의 선택에 지지를 보낸다는 것이 내 방식을 바꾼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렇지. 땅을 가는 것도 금기 중 하나였다. 땅을 가는 것이 흙의 생태를 끊임없는 파괴의 악순환에 몰아넣는 것이라는 사실로부터 정립된 자연재배 농사 방식에서, 경운은 금기였다. 나는 조급함으로 인해 그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했다.

처음의 생각으로

7년인지 8년인지, 그쯤 전이었을 게다. 우연히 자연재배 농장을 만난 것이 무슨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일찌감치 환경문제, 식품문제, 농업문제, 의료문제 같은 것들에 천착하여 수십 권의 책들을 섭렵하면서 자못 전문가 못지않은 양식을 갖추고 있었을 거다. 유기농에 무농약에 자연적인 것들로만 밥상을 차린 지 오래이고, 사람의 몸을 망가뜨리는 온갖 독소적인 것들에 대한 강한 반감으로 치열하고도 고독한 싸움을 홀로 벌여왔던 세월이 겹겹이 쌓여 있었을 거다.

그런 중무장된 바탕에서 만난 자연재배라는 농사는 모든 문제를 풀어내는 신의 열쇠처럼 보였다. 무경운, 무농약, 무비료, 무제초의 4무농법이라고도 불리는 자연재배는, 농사의 ㄴ자도 모르는 인간을 농사의 길로 끌어당기는 자석 같은 힘을 갖고 있었다. 마사노부와 요시카즈, 웬델 베리와 반다나 시바, 그리고 천규석과 옛 농서들, 그 외에도 수많은 책들이 나를 안내했다.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을지라도, 책 속에는 철학과 사상과 이론이 있었고, 자연재배 농사를 짓는 소수의 농부들은 그것을 현실로 보여주었다. 자기 수족을 움직여 생산한 것을 먹고 산다는 것은 아주아주 멋진 일처럼 보였다. 자연재배 농부가 된다는 것은 고되고 힘들지언정 도시에서는 결코 실현할 수 없는 자주적 삶으로 향하는 노정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나는 ‘자연재배’라는 말을 버리고 ‘자주재배’라는 새 말을 붙였다.

자연재배는 하나의 농사방식이지만, 자주재배는 농사에 더하여 내 나름의 총체적인 삶의 양식으로 자리매김되었다. 3년간에 걸친 현장에서의 배움과 경험이 쌓이자 그것은 나에게도 해볼 만한 일이 되었다. 그래, 나머지 삶을 걸어볼 만하지 않은가!

사람들을 이해하면서

우리가 먹는 것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우리의 밥상은 과연 누가 차려주는 것인지, 밥상의 본질이 왜 정치일 수밖에 없는지, 밥상에 함축된 정치, 경제, 역사, 문화적 의미란 대체 어떤 것인지 등등, 그러루한 것들에 대한 기나긴 글들을 쓰고 또 쓰면서 마침내 나는 그 노정에 발을 들여 놓았다.

하지만 시골에 와서 땅을 일구고, 농협매장에서 만났던 아주머니와 같은 사람들 속에 속하면서 나는 그러한 글들을 더 이상 쓰지 않는다. 글뿐 아니라 말도 꺼내지 않는다. 자신에 관한 어떤 말은 그냥 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을 구분 짓고 인정하지 않는 의미를 띄게 된다.

무슨 농사를 짓느냐는 물음에 자주재배라는 사상과 이론이 정연한 심오한 농사를 짓노라고 답할 수 있을까? 단순히 내가 친환경 농사를 짓는다는 말만으로도 상대방은 반환경 농사를 짓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것은 사과농사를 짓는다거나 오미자 농사를 짓는다는 말과는 다른 차원의 말인 까닭이다.

촌사람이 된다는 것은 촌사람의 사고방식을 배우고 촌사람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속한 여기에서 사람들을 둘러보면 그들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먹고 살 수 없는 업종으로 낙인된 농업, 만평 단위에서 백평 단위까지, 농사를 짓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지만 농사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없다. 농사는 모두의 관심사이지만 유일한 관심사는 아니다. 그런 형편에서 중요한 것은 ‘약을 쓰고 안쓰고’가 아니라 ‘돈이 되고 안되고’일 뿐이다.

사람들은 새벽같이 밭으로 나간다. 농협에서 지원하는 퇴비를 이랑마다 넣고 트랙터로 밭갈이를 한다. 시장에서 원하는 상품을 만들기 위해, 농약사가 제공하는 매뉴얼에 따라, 농협에서 교육하는 방침에 따라, 때가 되면 약을 뿌리고 때가 되면 비료를 뿌리며 기계처럼 제품을 생산한다.

한 해의 양식과 한 가족의 삶이 오롯이 걸려있는 농사에 다른 모색과 실험이란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면소재지 농업인 상담소 옆 공터에는 빈 플라스틱 농약병들이 무더기로 쌓인다. 어마어마하게 쌓인다. 저 안에 약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를 생각하면 끔찍해지지만 그것은 촌사람들의 생계를 담보해주는 물건이기도 한 것이다.

쑥을 캐내는 시간

이렇게 여기 사람들의 방식을 이해하면서 경계가 희미해지고 마음이 풀어졌었나 보다. 하지만 이해한다는 것과 긍정한다는 것은 다르다. 이해와 긍정의 차이를 나도 모르게 뭉개고, 익숙지 않은 일에 쫓겨, 농사를 도구로 가치를 일구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 사람들의 방식을 이해하지만, 나는 오히려 지금 사람들이 다 잊어버린 옛 사람들의 방식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그들이 나의 진정한 동료임을 느낀다. 농사를 천명으로 알았던 사람들, 굶어 죽을지언정 씨앗을 허물지 않았던 사람들, 구름의 모양과 바람의 냄새로 날씨를 예측하고 자연의 움직임에 시간을 맞추어 일했던 사람들이다.

쑥을 캐면서, 흙을 만지면서 그들을 만난다. 그래도 작년보다는 좀 숙은 것도 같다. 부지런히 하면 올해는 쑥의 피해를 모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풀더미와 부엽토와 나무칩을 겨우내 쌓아 좋은 퇴비도 이럭저럭 마련해 놓고, 흙이 기름져지면 쑥은 자연히 사라진다는 그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는 중이다.

쑥을 캐내는 시간은 농사가 무언지 조근조근 알아가는 시간이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빠지는 데 하나 없는 도시 무지랭이가 땅을 알고 흙을 알고,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가는 시간이다. 그리고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여기서 무엇을 하려했는지를 되돌아보는 시간이고,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깨우치는 시간이다.

자연재배 농사방식이 절대선인 것은 아니다. 내가 도시에서 꽤 오래 천착했던 문제들에 대해 명료한 답을 주는 것도 아니다. 도시에서 한 생각은 도시에서 끝내야 할 생각일지도 모른다. 촌에서 알게 되는 것들은 도시에서의 생각을 항상 뛰어넘는다. 하지만 새로 이름 붙였던 자주재배의 개념은 여전히 마음 깊이에 살아있다.

금기를 갖는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여기저기서 금기를 깨는 것이 신선하다고 갈채를 받는 세상이 되었지만, 금기를 정하고 지키는 것을 우리는 여전히 신념이라고 부른다. 약을 뿌리지 않고 쑥을 캐내는 것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이고 불편한 일이지만, 그 일에는 효율적이고 생산적이고 편리한 것과는 다른 가치가 있다. 땅을 만든다는 것, 흙을 만든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정직함과 우직함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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