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위기’는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다

인간은 자연의 지배를 받고 산다. 어느 날 아침 비행기를 타고 매우 중요한 제주도 회의에 가려는데 제주공항의 날씨가 최악이라면 제주행 비행기가 취소되어 가지 못하게 된다. 인류 역사에서 대홍수나 대빙하 등으로 인해 동물(공룡)이 멸종되거나 인간이 멸종 위기까지 간 경우도 있었다.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질병이 창궐했을 때도 인간은 엄청난 피해를 봤고 인간생활 전체에 큰 변화가 초래되었다.

인간은 인간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자연조화를 극복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했다. 자연 법칙을 미리 알게 되면 사전에 대처할 수 있고 그 만큼 인간의 피해는 최소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발달한 ‘주역’이나 서양의 점성술도 인간의 자연에 대한 공포심을 극복하기 위해서 나온 인간의 발명일 것이다. 중국소설 ‘삼국지’에는 적벽대전에서 자연의 운행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던 촉나라의 제갈공명이 강대국 위나라의 조조를 이기는 장면도 나온다.

그러나 인간이 아무리 과학을 발전시켰다 하더라도 자연의 모든 것을 다 미리 예측하여 대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연은 인간이 정복하기에는 너무 광대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연을 예측하여 대비하는 것은 우주 전체로 보면 ‘바이러스’ 크기 정도밖에 안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연 앞에 늘 겸손해야 되고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종교 및 샤머니즘의 등장은 인간의 자연에 대한 무한한 경외심이 그 배경일 것이다.

인간의 역사를 바꾼 자연현상 중에서도 집단괴질은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인간을 공포로 몰아넣을 뿐만 아니라 인간적, 사회적, 정치적 피해도 매우 컷다. B.C. 429년 괴질(장티푸스)은 저 유명한 아테네의 페리클레스를 죽게 만들어 아테네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14세기 중기 유럽에 유행한 페스트는 유럽인의 대량살상을 가져왔고 발병에 대한 누명을 쓴 수많은 유태인들이 희생되었고 중세의 붕괴, 르네상스, 자본주의의 발달 등을 가져왔다.

16세기 유럽인들에 의해 아메리카에 퍼진 천연두는 수천만 명의 인디언을 사망케 하고 아즈텍 제국 및 잉카문명을 멸망시켰다. 유럽인들은 부족한 노동력 보충을 위해 아프리카 흑인들을 살인적인 방법으로 아메리카로 강제 이주시켰고 흑인노예문제로 미국은 남북전쟁이라는 비극을 겪었다.

19세기부터 유럽에서는 콜레라, 천연두 등 급성전염병 방지를 위해서는 국가 간 협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대되었고 1918년부터 창궐한 스페인 독감으로 인해 5,000만 명 가까운 인명이 살상되자 그 필요성은 더욱 확대되었다. 교통수단의 발달은 질병의 세계화를 부채질하였고 1948년에 초국가기구인 세계보건기구(WHO)가 탄생하였다. 2002년 사스, 2004년 조류인플루엔자, 2015년 메르스 등은 국가 간 협력의 필요성을 더욱 높였다.

현재도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2019년 12월 경 중국 우한지역에서 발생한 코로나19가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가고 있다.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북한도 예외는 아니다. 북한 보건상 오춘복은 2월 19일 <조선중앙TV>에 나와 “아직은 우리나라에서 신형코로나비루스 감염자가 나타나지 않았다”라고 강조하고 북한 언론매체들은 연일 이 내용을 방송하고 있다. 북한은 2월 14일 WHO에 대한 보고를 통해 작년 12월 30일부터 2월 9일까지 7,281명의 여행객이 북한에 들어왔고 이들 중 141명에게서 발열이 있었는데 검사에서 보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도 어느 정도는 피해가 있을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코로나19 문제는 사실 흉이 아니다. 세계 의료 선진국 거의 모두가 겪고 있는 불가항력적인 자연현상이다. 북한은 중국과 우리 못지않게 깊은 유대관계를 가졌었고 UN안보리의 대북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 관광객들은 북한을 여행했다. 교통수단은 육로뿐만 아니라 공로도 있었는데 지금은 전면 중지되었지만 평양과 베이징, 상하이, 지난, 우한, 다렌, 마카오 등을 오가는 항공노선이 있었다. 이를 통해 코로나19가 북한으로 유입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일사불란한 체제적 특성을 가진 북한은 1월 22일 북중 국경을 전면 봉쇄했다. 1월 28일 북한은 국가비상방역체계를 선포하고 중앙과 각 지역에 비상방역지휘부를 설치했다. 북한군은 동계훈련을 대폭 축소하고 2월 8일 건군절에는 대규모 열병식도 생략했다. 2월 16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때 참배객을 대폭 축소했다. 4월로 예정된 국제마라톤경기도 취소됐고 2월 27일에는 탁아소, 유치원, 대학 등 모든 단위 학교의 개학이 연기되었다. 북한이 금번 코로나19를 얼마나 위중하게 인식하고 엄중히 대처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예이다. 어떻든 북한의 선제적인 대응조치는 환자의 확산을 크게 줄였을 것이다.

남북한 모두가 코로나19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미국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2월 14일 트위터에 “북한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억제하고 대응하기 위한 미국 및 국제 원조, 보건기구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독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엔안보리 대북 제재위원회도 2월 8일 대북 지원단체의 신종 코로나 관련 제재면제 요청에 신속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2월 25일 “미국은 북한이 더 밝은 미래를 실현할 수 있도록 북한과 의미있는 협상을 하는데 전념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2월 27일에는 미국의 대북특별부대표인 웡이 북미 비핵화 실무대표회의를 갖자고 제의했다. 더욱 의미있는 것은 한미 군 당국이 3월로 예정된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취소한 것이다. 코로나19 덕분(?)에 북한이 가장 혐오하는, 그리고 북미 대화의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가 제거된 것이다.

남한은 아직 북한의 코로나19와 관련해서 공식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다. 지난 2월 3일 통일부는 공식 브리핑을 통해 여러 차례 “현 단계에서 정부는 감염병 전파 차단 및 대응을 위한 남북 간 협력이 기본적으로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원론적인 주장만을 밝혔다. 북한이 응하지 않으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한은 2019년 5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생 이후 상황 공유와 확산 방지를 위해 북쪽에 방역 협력 공조를 타진했지만 북-미 협상 진전이 없자 북쪽이 반응을 보이지 않아 무산된 바 있다.

남한은 ‘우리 측 상황, 그리고 북측의 진전 상황을 봐가면서 논의 시점을 검토해 나갈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이것은 또한 2019년 초 북한에 제공하려했던 타미플루가 미국의 타미플루 제공은 되지만 운반수단인 열차나 자동차의 북한 진입은 안된다는 이상한 논리 때문에 무산된 바가 있어서 미국과의 사전조율을 염두에 둔 행보로도 해석할 수 있다. 당연하지만 남한 당국이 남한의 코로나 바이러스 문제가 심각한 단계로 접어들어 민심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남북 대화를 운위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무한정 발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언젠가는 이 문제는 잠잠해 질 수밖에 없을 것인데 이 시기에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언제든 또 다른 신종 바이러스가 발생하여 우리 한민족 전체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역경을 순경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 민족의 강점이다. 남북은 이미 2018년 9.19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전염병 유입 및 확산방지를 위한 협력”을 합의한 바 있다. 이제 이것을 실천할 때가 왔다. “위기는 기회다”라는 말이 있듯이 코로나19의 창궐이라는 ‘위기’를 계기로 남북한이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북한은 개별관광 문제와 관련하여 2월 16일 대외 매체인 <조선의 오늘>의 “외세에 구걸하여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대북개별관광’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이 매체는 “남조선당국이 해결하려고 분주탕을 피우는 문제들은 다 동족과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문제로서 구태여 대양건너 미국에 간다고 하여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북남관계문제, 민족문제의 주인은 철저히 우리 민족이며 가장 큰 리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도, 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우리 민족“이라고 강조했다. 북한도 지금은 대남 비난을 심하게 하고 있지만 상황과 사안에 따라서는 언제든 남북대화를 할 의지가 있음을 표명한 것이다.

현재는 남북한 모두 코로나19 퇴치를 위해 전 국력을 총동원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남북대화를 논하기는 적절하지 않은 시기인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 정도 진정되는 분위기가 되면 신속하게 전염병 공동 대처를 위한 회담을 개최하고 자연스럽게 개별관광 문제도 논의해야 한다. 이즈음에는 북미 대화도 재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선제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 우리는 ‘역병’인 코로나19를 남북 간 대결이라는 ‘고질병’을 고치는 약으로 활용해야 한다. 독사에 물렸을 때 뱀독으로 만든 약인 안티베닌(Antivenin)을 쓰듯이 ‘이독제독(以毒制毒)’ 방안인 것이다.

전염병은 인류를 파멸시켰지만 인류는 그것을 계기로 새로운 문명과 제도, 신세계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재앙은 자연의 영역이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다.

 

 

1953년생으로서 전남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북한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통일연구원에서 22년간 재직한 북한전문가이다.

2006년 북한연구학회장 재직 시 북한연구의 총결산서인 ‘북한학총서’ 10권을 발간하여 호평을 받았다.

그 동안 통일부 자문위원, NSC자문위원, 민주평통 상임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고려대학교, 동국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으며 민화협, 경실련 등 시민단체에서도 활동하였다.
현재는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는 「김정일 리더쉽 연구」, 「김정일 정권의 통치엘리트」, 「북한 체제의 내구력 평가」, 『북한이해의 길잡이』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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