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미경 / 농부

 

살구나무를 찾아서 살구나무 동산을 만들고 있다. 올해는 살구나무 마을을 만들려고 한다. 올해 우리 마을에는 많은 살구나무들이 새로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인데, 나는 그것이 북측 회령 백살구나무이기를 바래서, 그것을 구하려 안타깝게 뛰어다니고 있다.
사라진 살구나무를 찾으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살구나무를 잃어버렸듯이 아주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무엇을 위하여 그 많은 것들을 놓아버린 것일까? 여기 연재할 글들은 살구나무처럼 우리가 잃은 것들, 잊은 것들, 두고 온 것들에 대한 진지한 호명이다. / 필자

 

▲ 몽골초원 (pixabay free stock)

유목의 땅

시간이 흐르기를 멈춘 곳이 있다. 북으로는 타이가 지대의 영구동토층에 막히고 남으로는 모래바람만이 횡단하는 사막에 직면한 곳, 광활하게 펼쳐진 망망대지에 하늘과 땅이 맞닿아 있는 곳, 뜨거운 여름과 -40℃로 내려가는 혹한의 겨울, 연간 350mm에 불과한 강수량으로 나무 한 그루 자라나기 어려운 곳, 그래서 지표면을 얇게 덮은 풀과 키낮은 관목들만이 간신히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곳, 몽골고원이다.

현대의 시간은 초음속으로 질주하는 단계에 도달했지만 여기서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지구상에 시간이라는 것이 태어나기 이전, 우주의 운행에 따르는 원초의 시간이 존재하는 드문 영역이다. 기원전 4,000년경 인류문명의 발상지에서 농경이 시작되고 있을 때,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혹독한 자연 가운데에 속해 있던 사람들이 찾아낸 것은 유목이었다. 그곳은 흉노의 제국이 일어선 BC3세기로부터 칭기즈칸이 유라시아 대륙을 평정한 13세기까지, 1천여년을 두고 선비와 돌궐, 여진과 거란, 그리고 마침내 몽골의 제국들이 명멸한 유목의 땅이다.

몽골 북동쪽 러시아와 국경이 맞닿은 다달솜에는 지금도 테무친의 시간이 머물고 있다. 칭기즈칸으로 세계사를 장식한 테무친의 고향이다. 초원의 관습을 깨뜨린 적의 술수에 의해 부당하게 독살당한 아버지, 부족들마저 모두 떠나가고 홀로 남겨진 가족들, 살아남기 위해 헤쳐 나가야 했던 그의 성장기 풍상고초의 시간이 머물러 있는 곳이다.

어린 시절 쟈무카와 평생의 우정을 약속했던 얼어붙은 오논강 얼음 위에도, 그가 마시던 초원의 샘물터와 그가 태어난 게르가 서있던 델리운 볼닥, 7개의 언덕 위에도 그 시간은 머물러 있다. ‘칭기즈칸 1162년 여기서 태어나시다.’ 는 하나의 문장으로 그 장소임을 알리는 사람 키만한 높이의 표지석만이 그것이 과거의 일임을 말해주고 있다.

800년의 심연을 넘어 거기서 태어난 한 청년은 순박하고 진지한 얼굴로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는, 그가 자랑스러워하는 선조들이 그랬듯이, 또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시간이 멈춘 유목의 땅에 속한 사람이다.

“이곳은 칭기즈칸의 영혼과 그의 모든 좋은 흔적이 남아있는 깨끗하고 신비로운 곳입니다. 나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이 넘치는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고, 그 분의 공기로 숨을 쉬고, 그 분이 마시던 샘물터에서 물을 마시고, 그 분이 놀던 언덕에서 놀고 오논강에서 수영하며 아름다운 곳을 많이 보면서 살아왔습니다. 나에게 고향 다달솜은 아주 특별한 곳입니다.”

늑대의 땅

우리는 이 초원이라는 독특한 식생대에서 최상위 포식자로 인간과 함께 유일하게 결승에 오른 늑대를 발견한다. 나무 한 그루 자라지 못하고 호랑이와 곰과 같이 강력한 포식동물도 서식을 포기하는 혹독한 대지 초원은 유목인들의 땅이요 늑대들의 땅인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유럽인들이 보았던 늑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늑대를 본다. 그것은 서로 다른 기원을 갖는 유목민족들의 공통된 시조로서의 늑대이고, 인간이 맞서 싸워 이겨야 할 대상으로서의 늑대임과 동시에, 보고 알고 배워야 할 스승으로서의 늑대이다. 그것은 아슬아슬하게 임계점에 면해 있는 초원이라는 생명을 지키기 위해 신이 보낸 정령으로서의 늑대이며 마침내는 신성한 토템의 지위에 오른 늑대이다.

유럽인들과 마찬가지로 몽골고원의 유목인들도 양과 말을 지키기 위해 늑대와 전쟁을 치르고 늑대를 사냥했지만, 그들은 늑대를 악마로 보는 대신 없어서는 안될 존재를 넘어 존중해야 할 존재이며 신성한 존재로까지 보았다.

북방 유목민족은 말을 길들이면서 세계무대에 등장했다. 처음 역사 속에 위력적으로 존재를 드러낸 흉노는 늑대와 함께 이후 북방 초원을 풍미한 많은 유목민족들의 선조가 되었다. 견융, 오손, 고차, 선비, 유연, 돌궐, 몽골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역사 속에서 한번쯤 들어보았던 수많은 유목민족들은 자신들이 흉노의 갈래이며 늑대의 후손임을 알리는 시조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이제 그들은 남아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한바탕 초원을 쓸고 간 세찬 바람처럼, 우뚝했던 시절의 파편들을 대륙 여기저기에 조금씩 던져놓고 사라져갔다. ‘돌궐은 흉노의 별종이며 회색 늑대의 후손이고, 몽골은 또한 푸른 늑대의 후손’이라는 말이 상징하는 늑대의 진정한 실체에 대한 이야기들도 그들의 실종과 함께 묻혔다.

그러나 칭기즈칸의 후손들이 남았다. 몽골초원의 시간은 늑대와 함께 흐른다. 칭기즈칸의 후손들이 초원을 향해 뽑아내는 길게 끄는 전통음악도 늑대의 울음을 차용한 것이라 회자된다. 몽골초원은 둘로 나뉘었다. 칭기즈칸의 고향이 있는 몽골공화국은 여전히 시간이 흐르기를 멈춘 유목민족의 영역이다. 중국 영토로 귀속된 내몽골 자치구에는 더 이상 늑대의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장룽의 이야기, 두 개의 힘

장룽은 중국의 작가이다. 그는 30여년에 걸쳐 완성한 단 한 편의 작품으로 1,800만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청년이었던 1967년, 내몽골 초원의 양치기로 하방지원한 11년간의 삶은 그의 마음과 그의 정신을 무섭게 흔들어 놓았다. 그는 거기서 발견한 초원의 늑대와 몽골유목민족의 이야기를 끄집어내 세상에 알렸다.

주인공 천전은 한족 출신 베이징의 지식청년이다. 그가 늑대의 존재를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지만, 거기서 만난 초원의 현자 빌게 노인은 그에게 늑대의 영혼을 불어넣었다. 늑대의 영혼은 그로 하여금 늑대에 관한 장엄한 서사를 쓰게 하였으니, 그것은 늑대의 이야기이면서 늑대의 멸종에 관한 이야기이다. 또한 유목민족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유목민족의 실종에 관한 이야기이다. 또한 그것은 늑대와 인간, 그리고 개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야기를 구성하는 힘은 두 개의 축으로 이루어진다. 늑대와 인간, 늑대무리의 힘은 초원의 생명과 질서, 자연의 힘을 대표한다. 인간의 힘은 둘로 갈라진다. 하나는 늑대무리를 생산력 향상의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모조리 몰살시키려는 정부관료와 그에 동조하는 이주민들이다. 그에 대립하는 다른 하나는 늑대를 숭상하는 유목민족의 전통을 간직한 몽골 유목인들과 그에 공감하는 지식청년들이다.

힘의 성격으로 보아 세 개의 축이 되거나 두 개의 축이라면 후자와 늑대가 하나로 묶이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이겠지만, 벌어지는 사건의 전개는 두고두고 읽는 이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후자의 힘은 끊임없이 동요한다. 그것은 마음은 늑대에 있으나 상황에는 여지없이 굴복하고 마는 유목인들의 처연함이고, 늑대를 알아가면서 유목민족의 늑대토템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음을 강변하면서도 실제로는 지적 호기심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하는 지식청년들의 누추함이다.

비극은, 늑대를 잡을 수 있는 능력이 늑대를 없애려는 관료들이 아니라 늑대를 지키려는 유목인들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늑대의 습성을 알고 늑대무리가 움직이는 방식을 아는 유목인들만이 늑대를 잡을 수 있다. 그들은 관료들의 늑대몰살 방침에 내몰려 늑대가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늑대를 찾고, 늑대가 피하기를 바라면서 늑대를 사냥한다.

그들을 대표하는 이가 빌게노인이다. 철저하게 늑대의 편에 서있음에도 가장 치밀하고 능숙하게 늑대를 사냥하는 인물, 끊임없이 주인공에게 늑대의 영혼을 불어넣으면서도 그가 한족 출신의 이방인임을 잊지 않는 인물, 그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나는 늑대의 모습에 우리는 숨길 수 없이 탄복하고 감동하게 된다.

탱그르의 사신

늑대무리가 풀을 뜯는 수백 마리의 가젤떼를 사냥할 때면, 눈 속에 엎드려 하루 온종일을 끈기있게 기다린다. 가젤떼가 배불리 먹고 졸기 시작할 때를. 때가 되면 왕늑대의 신호에 따라 반원형의 포위선을 치고, 세 길 네 길이 넘는 눈골짜기로 몰아가 수 백 마리의 가젤을 단번에 사냥하는 솜씨를 가진 것이 늑대무리이다.

늑대무리가 그렇게 장만한 겨우내 먹을 양식을 한꺼번에 약탈하는 사람들, 새끼들이 태어나는 봄철, 관청의 명령에 따라 온 등판에 늑대굴을 모조리 뒤져 새끼늑대들을 포획하여 공중에 던져 죽여버리는 사람들, 겨우내 굶주리고 새끼들마저 잃은 늑대무리들의 비통한 울부짖음이 탱그르의 하늘로 울려나간다.

늑대는 바람과 함께 움직인다. 봄날의 좋은 날씨가 돌변하며 무시무시한 백모풍이 몰아쳐온 날, 늑대들은 대규모로 집결해 군마로 선발된 7,80마리의 말들을 공격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복수를 집행한다. 끔찍한 백모풍과 추위 속에서 결사적으로 몸을 던져 말들을 공격하고 호수로 몰아 수장시키는 늑대무리들, 말들이 무리로 죽은 처참한 현장에서 응징을 다짐하는 관료들, 웅대하게 펼쳐지는 초원의 드라마 속에서 늑대들의 면모가 성큼성큼 드러난다.

초원은 풀이다. 풀은 광활한 초원에 깃든 숱한 생명들의 삶을 유지시켜주는 먹이사슬의 전제이자 바탕이다. 풀이 없으면 다른 생명도 없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초원의 가장 큰 생명은 풀이다. 초원의 복잡한 먹이사슬의 깨지기 쉬운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늑대다. 늑대들이 초식동물의 수를 조절함으로써 풀을 지키는 것이다. 오랜 몽골 유목인들은 그 이치를 잘 알고 있으며 그리하여 초원의 늑대는 몽골의 하늘, 탱그르의 사신이 되는 것이다.

늑대병법

늑대가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은 타고난 사냥꾼이기 때문이다. 늑대들은 끈끈한 단결력으로 자신들의 한계를 극복하고, 고통을 견디는 인내와, 기회를 포착하는 절제와, 물러설 때와 나아갈 때는 아는 지혜와, 죽음을 두려워 않는 강인함으로 북방 유목민족들의 정신을 사로잡았다.

“보시오. 늑대는 기상의 변화나 지형, 시기선택, 자신과 적의 전투력, 전략과 전술, 육박전, 야간전투, 유격전, 기동전, 기습전은 물론 우세 병력을 집중해서 공격하는 전투방식까지 전부 꿰뚫고 있소. 이것을 바탕으로 뚜렷한 목표를 세운 다음 계획적이고 단계적으로 말무리를 전멸시킬 작전을 펼쳐나간 거요. 이 정도라면 군사교본에 실어도 좋을거요.”

“ ….. 그때 보니 손자병법과 늑대병법 사이에 별 차이가 없어 보이더군. 예를 들면, ‘전쟁은 속임수다’ 라는 것이나, 나를 알고 적을 안다는 지피지기(知彼知己), 군사행동은 신속해야 한다는 병귀신속(兵貴神速), 적이 예상하지 못할 때에 공격해야 한다는 출기불의(出其不意), 상대의 허를 찌르는 공기불비(攻其不備) 등등, 이것들은 다들 늑대의 주특기이자, 늑대라면 다들 할 수 있는 것들이지.”

몽골 유목인들의 말이다. 몽골 유목인들은 칭기즈칸을 늑대와 떨어뜨려 생각하지 않는다. 몽골인들은 늑대를 ‘치노’라고 한다. ‘칭기즈’는 ‘늑대의’라는 의미이며 ‘칸’은 왕이다. 따라서 ‘칭기즈칸’은 ‘늑대의 왕’이라는 의미가 된다. 빌게노인은 칭기즈칸이 어떻게 수만의 군사로 수십만의 적과 싸워 거듭 승전할 수 있었는가를 이야기한다. “

“몽골인들이 늑대에게 배운 걸 모두 실천에 옮겼던 것은 단지 칭기즈칸 시절뿐이야. 몽골의 각 부락은 무쇠로 만든 바퀴나 화살묶음처럼 잘 뭉쳤기 때문에 비록 인구는 적었어도 위력이 대단했고, 누구라도 초원 어머니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릴 수 있었지.  ……. 인간은 늑대만큼 단결을 못해. 몽골인들은 늑대의 전술은 그럭저럭 배웠지만 늑대의 단결력은 제대로 배우지 못했어. 수 백년을 배우고도 다 배우지 못한 거지. …….. 말하자니 마음만 아프구나.”

늑대의 멸종을 목전에 두고서, 살아서는 늑대를 배우고 죽어서는 자신의 몸을 늑대에게 내놓는 마지막 유목인 노인의 비애가 뚝뚝 묻어난다. 노인은 늑대들의 단결의 원리를 이렇게 설명한다. 늑대가 다른 늑대를 생각하고, 다른 늑대는 그 늑대를 생각하기에 늑대무리는 단결이 잘 되는 거라고. 늑대들이 한데 뭉쳐서 싸울 때면 더욱 강해진다고.

▲ 포획된 새끼늑대(동영상에서 캡처: 늑대와 유목민)

새끼늑대의 죽음

노인의 이런 이야기들 앞에서 항상 숙연하던 천전이었다. 그러나 늑대몰살을 위해 벌어지는 새끼포획 독려에 편승해 늑대굴에서 꺼내 온 새끼 한 마리를 기르면서 한족으로서의 자기정체를 드러낸다. 그토록 열정적인 관심이 늑대와 유목인들에 대한 깊은 이해라기보다는 솟구치는 지적 호기심에 불과했음을 말이다.

천전은 끊임없이 흔들리고 동요하고 전전긍긍한다. 줄에 묶여 시달리는 늑대의 괴로움보다는 ‘늑대기르기’를 금지당하고 사상을 의심받을지 모른다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우려가 그를 지배한다. 결국 새끼늑대에게 손목을 물리고 펜치로 늑대의 날카로운 이빨 끝을 잘라버리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이야기를 읽는 내 안에서도 그의 목을 조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고야 만다.

새끼늑대는 비록 어려도 ‘늑대다움’을 잃지 않았다. 묶인 줄에 목이 졸려 피를 토하는 지경에 이르면서도 탈출의 시도를 포기하지 않는다. 늑대몰살작전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한동안 들리지 않던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던 날, 새끼늑대는 마지막 탈출에의 투지를 온 몸으로 사르고 끝끝내 죽음에 다다름으로써 늑대란 어떤 존재인가를 천천에게 혹독하게 보여준다.

몽골늑대는 덫에 걸린 다리를 자기 이빨로 물어뜯어 잘라내고 탈출하는 동물이다. 죽을지 언정 굴복하지 않는 도도한 존재이고, 먹이와 목줄로 가둘 수 없는 존재이다. 인간이 결코 길들일 수 없는 동물인 것이다. 늑대가 인간의 손에 길드는 존재였다면 ‘늑대토템’이란 결코 생겨날 수 없었을 것이다.

빌게노인은 천전이 늑대를 기르겠다고 했을 때 펄쩍 뛰며 말한다.

“늑대를 사람이 키운다는 게 가능하냐? 개들과 함께 키우는데도 문제가 없고? 늑대와 비교했을 때 개는 어떤 동물이냐? 개는 사람의 똥을 먹고 늑대는 사람의 시체를 먹는다. 사람의 똥을 먹는 개는 사람의 노비이지만, 사람의 시체를 먹는 늑대는 몽골인의 영혼을 탱그르로 올려보내주는 신령이다. 늑대와 개는, 하나는 하늘이고 하나는 땅이다. 그런데 그 둘을 한데서 키울 수 있단 말이냐? ….. 너희 한족들은 절대로 몽골늑대를 이해할 수 없을 게다.”

늑대와 인간, 그리고 개

늑대와 개는 이렇게 우리 앞에 나타난다. 초원의 개는 사람들의 전우이자 친한 친구이며 의리있는 동료이다. 개는 사냥터의 척후병이자 전사였고, 양을 지키는 근위병이었으며, 긴급한 상황을 알리는 연락병이면서 인명을 살리는 구조병이었다. 초원의 개는 사람과 함께 늑대와 싸우는 존재다.

늑대와 개, 한 핏줄에서 갈라져 나와 서로 적이 되어버린 동물들, 늑대가 개와 싸우는 것도, 개가 늑대와 싸우는 것도 모두 자기의 영역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여전히 동일한 존재이다. 우리는 이제 추론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초원의 유목인들과 늑대에 대해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그들은 대관절 어떤 관계였던 것일까? 북방 유목민족들이 갖고 있는, 인간과 늑대가 서로 핏줄로 연결되어 있다는 깊이 내면화된 믿음은 어떻게 형성되었던 것일까? 우리는 이미 그 이유를 알고 있다. 늑대에 관해 알게 되면 자연히 수긍하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그들은 서로가 닮았음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초원의 인간과 늑대는 동일한 조건에서 동일한 전략으로 살아남아 최상위 포식자라는 동일한 생태적 지위를 획득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순서가 있다. 인간과 늑대가 영리한 사회적 존재임은 동일하지만, 끈질김과 강인함에서, 움직이는 속도와 힘에서, 또한 가장 중요하게는 사냥의 기술과 능력에서, 돌을 손에 쥔 인간이 늑대를 능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초원의 뛰어나게 영리한 존재인 인간은 동일하게 지닌 한계를 뛰어넘은 늑대들을 관찰하며 수많은 배움을 얻지 않았을까?

말을 길들인 것은 늑대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함이었고, 갖가지 도구와 무기를 제작해낸 것은 늑대의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갖추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인간은 늑대들로부터 배우며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었고, 그렇게 늑대와 동일한 생태적 지위에 도달했던 머나먼 과거의 경험들이 세대를 이어 전승되어오면서 후손들로 하여금 늑대에 대한 숭상을 내면화하도록 한 것이 아닐까?

인간이 늑대를 알아보았을 뿐 아니라 늑대도 인간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늑대들의 눈에 비친 인간은, 자기들과 마찬가지로 무리를 이루어 살아가는 영리한 존재들이었을 것이다. 늑대가 인간을 알아보았음을 증명하는 것이 바로 개의 존재다. 개는 인간을 우두머리로 하는 무리에 스스로 다가온 늑대들이었으며, 개의 존재는 인간이 늑대를 배우며 마침내는 늑대를 능가했음을 알리는 뚜렷한 표지이기도 하다.

삼각관계

어떤 개는 처음에 무리에서 낮은 서열에 속한 열등한 늑대였다. 무리 속에서의 열등한 지위는 먹이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을 허용치 않았을 것이니, 그것들은 항상 배고픈 늑대들이었다.

어떤 개는 처음에 무리에서 추방된 늑대였다.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지도 모르고, 우두머리에게 도전했다가 실패한 늑대였을 수도 있으며, 어쩌면 도전자에게 밀려난 우두머리 늑대였을 수도 있다.

어떤 개는 처음에 방황하는 소수의 늑대무리였다. 우두머리를 잃은 늑대무리는 단결력과 조직력을 잃고 지리멸렬해진다. 그것들은 위험한 사냥에서 우두머리 늑대를 잃고 조직적인 사냥능력을 박탈당한 무력한 늑대들이었다.

그것들은 자기들과 닮은 존재인 인간을 알아보았고, 인간무리의 사냥에 협력하면 먹이가 또박또박 차례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것들은 스스로 자기 종족을 떠나 인간을 우두머리로 하는 무리의 일원이 되었고, 인간이 갖지 못한 자기들의 능력을 인간의 능력을 확장하는 도구로 바쳤다.

인간사회에 적응하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인간사회의 법칙은 늑대사회의 법칙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인간무리에 충성하고 우두머리에 복종하는 법은 늑대무리에서 이미 다 배운 것들이었으니까.

단지, 자기들의 신호를 알아채지 못하는 인간을 위해 짖는 법을 터득했고, 복종의 신호를 보다 확실하게 보내기 위해 창끝처럼 솟아있던 귀를 접었다. 마지막으로 늑대가 갖추어야했던 것은 자기가 속한 인간무리를 위해 진정한 자신의 종족을 적으로 상대하는 습관이었다.

인류가 그 기원을 아프리카에 두었듯이 개의 기원이 어디였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개가 엄연한 늑대의 후손임을 미루어 볼 때, 세상의 개는 원초적으로 사냥개였을 수밖에 없다. 장구한 시간에 걸쳐 사냥개의 능력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곳은 유목과 사냥을 생업으로 삼아온 초원지대이다. 또한 늑대가 스스로 인간에게 접근할 수 있을 만큼 늑대에게 적대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존재했던 곳도 아시아 초원지대이다. 그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개는 아시아 초원지대에서 기원했을 것이라 우정 생각해보기도 한다.    

이로써 늑대와 인간과 개의 삼각관계가 완성되었다. 늑대는 애초에 인간의 스승이었다. 개는 스스로 다가와 인간의 무리에 합류한 열등한 늑대였고, 늑대와 싸우기 위한 인간의 무기가 되었다. 개들의 협력으로 인간은 늑대에 대한 멸종을 완결하였으며, 개는 종족의 멸종에 이바지함으로써 인간사회에서 번성하였다.

풀려버린 고리

20년이 지났다. 천전이 새끼늑대의 죽음과 함께 영혼을 두고 떠났던 초원은 사라졌다. ‘초원의 늑대가 사라짐으로써 모든 연결고리들이 다 풀려버렸다. 사납던 사냥개들은 애완동물이 되어버렸고, 군마는 기념촬영용 소품으로 전락해 버렸다. 광활한 초원은 사막으로 변하고, 늑대들의 긴 울음이 울리던 하늘에는 오토바이와 지프차의 소음이 모래먼지를 날리며 퍼져나간다.

모래먼지는 푸르던 탱그르를 잿빛으로 채우며 기류를 타고 반도에 도착한다. 늑대들의 영혼은 바람을 따라 움직인다. 이제 우리는 먼 길을 돌아 다시 풍산개에게로 가야 한다. 그곳은 울창한 숲이 있고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이다.

▲ 개마고원(카카오맵 캡처)

개마고원

개마고원은 솟아오른 땅이다. 어떤 힘이 그 육중한 땅덩어리를 밀어올렸는지 알 수 없지만, 지질학은 그것을 신생대 제3기의 경동지괴운동이라고 말한다. 신제3기 마이오세, 2,600만년 전에 시작하여 1,900만년 동안 지속되었다는 그 시기 후반에 개마고원은 높이 융기하여 평균해발 1,340m를 찍는 고원이 되었다.

육중한 땅덩어리를 밀어올린 상상불가의 힘이 결국 한 점으로 응집되어 폭발한 것이 백두산이라 해야 할까? 높이 솟아오른 땅에 분출된 용암과 화산재들이 두텁게 덮이고, 개마고원은 그렇게 백두산을 정점으로 한 반도의 지붕이 되었다.

땅이 솟아오르면서 강줄기들을 바꾸고, 물과 바람이 그 땅을 깎고 옮기고 쌓고 다져간다. 수 만년, 수백 만년에 걸쳐 독특한 지형이 이루어져가는 속에서 풀과 나무들이 자라고 벌레와 새와 짐승들이 깃들인다. 현대의 컴퓨터그래픽은 그러한 변화과정을 불과 몇 초동안의 영상으로 보여주기도 하지만, 땅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에 속해 있지 않다.

백두산 천지를 정점으로 남쪽으로 또 서쪽으로 달리며, 동쪽을 향해 당겨진 활처럼 휘어간 백두대산 줄기에 받들려 높이 솟아있는 개마고원의 형상은 마치 백두에 바쳐진 밥상같다는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개마고원’이라는 이름도 고구려적 개마산, 개마대산으로 불렸던 백두산에서 비롯되었다니, 이 상상도 그저 부질없는 것만은 아니라 하겠다.

개마고원은 압록강과 운총강, 부전령 산줄기와 낭림산줄기로 둘러싸인 깊은 산간오지이다. 그곳은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의 겨울이 지배하는 땅, 울창한 원시림으로 뒤덮였던 땅, 그곳이 바로 풍산개를 낳은 땅이다. 풍산개는 그렇게 북부 고산지대의 불리한 자연환경 속에서 나와서, 그 풍토를 반영한 모양과 기질과 성격을 지녔다. 그래서 북녘 사람들은 풍산개의 진정한 모습은 풍산땅에 가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 광덕리 사람들과 풍산개들(동영상에서 캡처)

풍산개 이야기

풍산개는 전형적인 사냥개다. 구석기 시대에 늑대에서 갈라진 원시형 개가 나타나고, 고조선 시기부터 그 시원이 형성된 풍산개가 사냥개로서 자기 체모를 갖춘 것은 고구려 때라고 북에서는 말한다. 유명한 무용총 벽화에 그려진 개와 덕흥리 벽화무덤의 견우와 직녀 그림에 그려져 있는 개가 풍산개의 조상이다. 그러므로 풍산개는 벽화가 그려지기 훨씬 전에 이미 자기 모습을 드러냈다고 보는 것이다.

북에서 풍산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이 생겨나고, 대다수 사람들이 풍산개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데에는 이러한 역사적 내력만 있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는 많은 이야기들이 깃들어 있다. 그 이야기들 속에서 사람들은, 자기 주인과 함께 고난을 헤쳐 나가며 용맹함과 충직함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풍산개들을 발견하는 것이다.

야생의 자연이 웅장하게 살아있던 개마고원, 드문한 사냥꾼과 화전민들의 영역이었던 그곳은 일제 식민지 시기에 맞닥뜨리면서 처참하게 수탈되었다. 아름드리 이깔나무, 전나무들로 울울창창하던 원시림은 무차별적인 대규모 벌목으로 해체되었고, 사람들은 댐을 만드는 언제공사에 강제이다시피 동원되었다. 운총강과 압록강으로는 어마어마하게 벌채된 통나무 떼가 뜨고, 맨 손으로 쌓아 올려진 언제에는 조선사람들의 피눈물이 배어들었다.

풍산땅 광덕리에 사는 92세 민달식 노인은 열여섯살 때부터 사초평 저수지에서 소년노동을 했다. 이야기는 노인이 공사장에서 일하며 겪은 사실을 전하고 있다.

일제는 저수지 언제공사에 조선사람들을 내몰아 18시간 이상의 고된 노동을 시키며 마소처럼 부렸다. 언제 공사장 노동자들 속에는 김억쇠라는 노인과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풍산개 두 마리를 소중하게 기르고 있었다.

사건은 1937년 가을, 노동조건 개선과 밀린 임금지급을 위해 벌인 파업현장에서 일어난다. 노동자들의 요구를 무시하는데 분격한 노동자들이 사무실로 몰려가자 급해맞은 일제놈들은 자기들이 기르던 세퍼트 두 마리를 풀어놓았다. 사나운 세퍼트들이 사람들을 무섭게 물어뜯는 와중에 난데없이 풍산개 두 마리가 비호처럼 나타나더니 세퍼트와 싸움이 붙었다.

풍산개들은 자기보다 몸집이 큰 세퍼트들에게 달려들어 목떼를 물고 늘어져 죽여버렸다. 화가 난 일제놈들은 싸움 중에 부상당한 두 마리 풍산개를 찾아 온 산판을 뒤지고 다녔다. 그러나 김억쇠 노인과 아들들은 이미 풍산개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져 끝내 찾지 못했다. 그 때부터 일제놈들은 많은 풍산개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 일본으로 실어가 일본개를 육종하는 유전자원으로 이용하였다.

또 이런 이야기도 전해진다.

반일의병대장 홍범도는 평남 양덕 사람이다. 그가 1907년 후치령 일대에서 포수들을 모아 의병대를 조직하고 풍산, 삼수, 갑산, 장진, 단천, 함흥 등지를 무대로 반일투쟁을 벌일 때, 풍산개들이 보초도 서고 통신 연락도 하는 등 군사임무를 도왔다. 홍범도의 풍산개들은 짐승들뿐 아니라 후치령을 넘어오는 일제놈들까지 사냥했다고 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고, 풍산개가 유명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쯤 되면 일제가 풍산개를 모조리 잡아 없애려고 한 이유를 알 만하다. 그것은 풍산 땅만이 아니라 남쪽 끝 진도에서도 똑같이 일어났던 일이다. 비단 개들에게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호랑이, 늑대, 곰과 같은 우리 땅에 서식하던 야생동물들은 일제 시기에 모두 사라졌다. 아메리카의 늑대가 유럽인들의 손에 깡그리 사라졌듯이, 내몽골 초원의 늑대가 한족 이주민들의 손에 모조리 사라졌듯이 말이다.

호랑이와 싸우는 풍산개라는 이야기도 유명하긴 하지만, 풍산개에 대한 사람들의 애착이 야생동물들과 싸우는 이야기가 아니라 민족적 원수와 싸우는 이야기 속에서 생겨났다는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그래서 북녘 사람들은 ‘영리하고 용맹하며 한번 시도한 일은 포기할 줄 모르는 끈질기고 이악한 풍산개’의 기질을 사랑하고, 그것이 우리 민족의 기개를 상징하는 것이라 여긴다.

풍산개의 기질은 우리가 알게 된 늑대의 기질이다. 결국 우리는 딱히 의식하지 못하면서도 늑대의 기질을 값있게 매기는 것이다. 우리 땅에서 늑대를 과연 볼 수 있을까? 늑대는 우리 땅에서도 또 하나의 잃어버린 고리가 되었나 보다.

늑대에 푹 빠져 있는 동안에 풍이와 동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이 잦았다. 나는 그것들을 잘 훈련시키지도 못했고, 눈망울에 가득 찬 함께 놀아주기를 바라는 기대를 채워주지도 못했다. 때때로 쥐를 잡고 너구리를 잡고 고라니를 잡는 것으로 본성이 살아있음을 보여주었지만 나는 풍이와 동무가 영리하고 용맹하며 이악한 지도 알지 못한다. 여기 이 위장된 평화 속에서는 그런 것을 도무지 알아낼 길이 없다.

그것들은 늑대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다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풍이와 동무는 나에게 가보지 못한 고향 개마고원 풍산땅으로 향하는 입구를 열어주며, 잃어버린 늑대들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창이 되어주는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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