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만 상대하는 것 적절치 않아

한국 정부는 신년 들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대북 사업 추진 방침을 지속적으로 밝히고 있는데 반해 미국 정부는 안 된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어 주목된다. 한국 정부는 유엔의 대북 제재에 포함되지 않은 사항이나 면제 조치를 취하는 형식으로 대북 사업을 하겠다는 것이지만 미국은 종래 미국이 강조해 온 대북 제재 강행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상원의 탄핵심리가 진행 중이고 올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어 급격한 대북 정책 변화 등을 외면하는 모습이다. 북한은 지난해 미국의 일방적인 한반도 비핵화 정책을 비난하면서 미국의 태도가 변치 않으면 북미대화는 하지 않으며 중대 조치를 취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동시에 남한의 조정자, 중재자 역할을 맹비난하면서 남북관계도 전면 동결 시킨 상태다.

한국 정부는 대북 사업 추진을 위해서는 미국이나 유엔의 대북 제재 구조를 돌파하는 문제와 북한의 동의를 받아내야 하는 2중고를 겪고 있는 양상이다. 북한은 최근 남측이 금강산 개별 관광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남북 협력이 북미 대화를 촉진할 뿐 아니라 대북 제재 일부 면제와 예외 조치를 인정하는 것에 대한 국제적 지지를 넓힐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연철 통일부장관도 같은 날 “북미관계 해결만 기다리기보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 나갈 계획”이라며 금강산 개별 관광 등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었다.

이 같은 한국 정부의 방침에 대해 백악관은 지난 15일 “모든 유엔 회원국들의 안보리 대북제재 이행을 기대한다”며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 비핵화에 합의한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완전히 이행하는데 전념하고 있다. 이는 동맹국인 한국도 전적으로 지지한 목표”라고 강조, 한국 정부의 방침을 외면하는 반응을 보였다(미국의소리방송 2020.1.16).

미국 국무부도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 대해 한국 정부의 남북 협력 계획과 관련해, 북한에 대한 미국과 한국의 일치된 대응을 강조했다. <미국의소리방송>과 <자유아시아방송>은 지난 16일 미국의 국제전략연구소(IISS) 소속 전문가 등을 인용해 “남북 협력이 북미 대화를 촉진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발언에 동의하지 않으며 문 대통령이 남북 협력의 영향을 과대평가하고 있다”라거나 “북한과의 합작사업 및 유지와 운영을 전면 금지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 2375호를 위반하지 않고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수 없을 것이다. 남북 협력과 북미 대화는 별개의 궤도로 움직이며 연계돼 있지 않다”라고 보도했다.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지난 22일 “문재인 한국 대통령이 언급한 남북협력사업 가운데 남북철도 연결이 특히 시급하다”는 이수혁 주미한국대사의 전날 발언과 관련해 “미국은 남북협력을 지지하며, 남북협력이 반드시 비핵화의 진전과 보조를 맞춰 진행되도록 한국과 조율하고 있다. 남북협력이 미-한 워킹그룹을 통해 다뤄져야 한다는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의 발언이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모든 유엔 회원국들은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들을 이행해야 하며, 우리는 모든 나라들이 그렇게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미국의소리방송 2020.1.22.). 미 국무부의 태도는 비핵화 진전이 없으면 남북협력이 불가하다는 종래의 입장을 반복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무부는 2018년 7월 이래 남북철도 연결 구상이 거론될 때마다 ‘북한 핵이 더 이상 요인이 되지 않을 때까지 제재는 그대로 유지될 것이며 비핵화와 속도를 맞춰야 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혀왔다.

앞서 이수혁 대사는 지난 21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의 큰 원칙은 국제 제재의 틀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로서 최대한 해보자는 것”이라며 “가장 시간이 걸리는 문제이기 때문에 시급히 추진해야 하고 할 만하다고 하는 것이 남북 철도 연결 사업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연합뉴스 2020.1.21).

한미 간에 대북협력 사업을 놓고 이견을 보이는 것으로 비춰지는 상황에서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지난 27일 소식통을 인용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7일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만나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북한 철도와 도로에 대한 현대화 작업을 미국이 인정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오브라이언 보좌관은 “유엔 제재를 무시하고 남북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정 실장이 다음날인 8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에서도 남북 협력사업에 대한 양해를 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요미우리신문>의 이런 보도에 대해 미 국무부는 직접적인 논평은 거부했고 청와대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최근의 한미 관계를 볼 때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오게 된다. 한미 두 나라의 대북 정책에 대한 협의나 합의는 항상 남북관계보다 우선되어야 하는가? 최근 한국 정부의 남북관계 증진 방침에 대한 미국 정부와 의회 등이 반대하는 태도는 어디까지 용인되어야 하는가? 한국 정부는 항상 미국의 대북 정책과 물샐 틈 없는 공조관계를 유지해야 하는가? 한국 정부가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대북정책을 취할 경우 미국은 한국에 어떤 보복 정책을 취할 것인가? 그런 보복 정책을 취하는 미국은 항상 정당한 것인가? 만약 한국이 미국의 보복 정책을 감수하면서 남북관계를 추진한다 할 경우 상황은 어떨 것인가?

이상과 같은 질문에 대해서는 여러 각도로 그 해답을 모색해야 하지만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을 살필 경우 그 실마리의 하나가 보인다. 미국 조야가 한 목소리로 미국 방식만이 유일하게 집행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는 것은,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서 한국은 당사국의 입장이며 북미관계가 존재하듯이 남북관계도 존재한다는 점에서 부적절할 뿐 아니라 유엔 안보리가 2017년 9월 합의한 대북 제재 결의 2375호 일부 조항에 위배된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대북 제재 결의 2375호는 한반도 비핵화를 평화적이고 외교정치적인 방식으로 달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그 조항 가운데 1-23항은 대북 제재에 대한 내용이고, 24-25항은 식량부족과 의료 제도 미흡으로 인한 임산부, 어린이 영양실조 등 북한 주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26-31항 가운데 일부 조항은 대북 제재가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 협력 사업 등을 저해해서는 안 되고 비핵화는 평화적인 방식으로 달성되어야 한다는 점을 적시하고 있다. 24- 31항 가운데 일부 조항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http://unscr.com/en/resolutions/2375).

26항 ; 유엔의 대북 제재가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주의적 조처에 역행하거나 제재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경제활동, 상호협력, 식량 원조, 인도주의적 지원, 원조 또는 구호활동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거나 중단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필요할 경우 제재 조치 일부를 면제할 수 있다. 28항 ;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6자 회담의 재개와 2005년 9.19합의를 지지한다.
29항 ; 한반도, 동북아의 평화와 안전은 매우 중요하며 상황의 평화적이고 외교적, 정치적 해결을 지지한다.
30항 ; 포괄적 합의를 달성하기 위한 긴장 완환 노력을 지지한다.
31항 ; 한반도 비핵화를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으로 달성할 목표는 평화적 방법으로 추진해야 한다.

위에 소개한 대북 제재 결의 2375호의 일부 조항을 보면, 미국이 자국의 국내법으로 대북 제재를 계속 강화하면서 비핵화를 압박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그리고 6자회담의 재개나 그 합의를 외면한 채 미국의 주장만을 밀어붙이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미국은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서는 자국법을 적용해 대북 인도적 지원을 오랜 기간 중단했고, 남북한의 비정치, 비군사적 경제협력을 저지하고 있다.

미국은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한국의 방침에 대해 미국의 제재가 뒤따를 것이라고 협박하는 태도까지 취한 바 있는데, 이는 불평등한 한미동맹의 상징인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한국 군사주권이 미국에 장악되었던 지난 수십 년 간 미국이 반복해온 ‘슈퍼 갑질’의 하나라 하겠다. 미국 쪽의 비상식적인 행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 행정부는 최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도 5배가 넘게 인상하도록 압박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고, 한반도 전면 전쟁 가능성이 함축된 북한 선제공이라는 군사적 옵션을 휘두르고 있다. 미국이 합리성을 외면한 조치들을 남발하는 것은 기울어진 운동장인 한미동맹이라는 기득권에 안주하는데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국제적으로 손가락질 받는 한미군사관계가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최소한 필리핀과 미국의 군사협정과 같은 수준으로 정상화하는 조치가 취해져야 할 것이다.

한국 정부가, 북미관계가 경색되고 한반도 비핵화 추진 작업이 난관에 부딪히자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상황을 개선하려 북한 지역 개인 관광 등을 시도하고 있는 것에 미국이 반대하면서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 주목된다. 미국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한국은 지금까지 100% 동조해온 것으로 평가받아왔는데 미국의 대북 정책이 벽에 부딪힌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한국이 그런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미국이 남북관계의 확대를 반대하면서 강조해온 대북 정책은 이제 전면 재검토를 할 필요가 있다.

대북 제재 결의 2375호가 대북 제재의 취지와 방식, 그리고 예외 조항 등에 대해 언급한 것과 관련해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1718위원회)가 지난해 말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하 우리민족)과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이하 지원본부)가 신청한 ‘개풍양묘장 현대화사업’과 ‘만경대어린이종합병원 등에 대한 의료기자재원료의약품 지원’에 대한 제재면제를 승인한 것이 주목된다. 1718위원회가 2018년 8월 제재면제 절차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후 지난해 12월까지 1년 6개월 동안 국내외 38개 단체가 1718위원회의 제재면제 승인을 받았으나 국내단체는 이 두 곳뿐이었다(통일뉴스 2020.1.25.).

우리 정부가 남북철도 연결이나 금강산 개별 관광 추진을 할 의향이 있다면 미국 정부와 직간접적으로 대화만 할 것이 아니라 유엔에 직접 사업 추진을 통보하거나 1718위원회에 제제면제 조치를 요구하는 방법을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만약 청와대가 4월 총선용으로 금강산 개별 관광 추진 방침을 밝혔다면 그로 인한 부작용은 매우 클 것으로 우려된다. 그것은 되돌릴 수 없는 소탐대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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