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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과 불편한 진실<연재> 전영우의 미디어와 사회 (13)
전영우  |  youngwoo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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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1.23  00:4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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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 / 전 인천대 교수

 

필자의 말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는 소통의 도구이자 사회 현상을 반영하는 거울입니다. 미디어를 읽는다는 것은 거울에 비친 우리 자화상을 본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사회를 성찰하고 뒤돌아보는 글이 되고자 합니다. 이 글은 매주 목요일에 게재됩니다.

 

영화 "천문"은 세종과 장영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명품 멜로 영화를 만든 허진호 감독은 세종과 장영실의 관계도 마치 한 편의 멜로드라마를 보는 착각이 들 정도로 감성적으로 천문을 만들었다. 

굳이 평하자면 웰메이드 영화로 충분히 인정할 만듦새를 갖춘 영화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한 감정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영화이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역사적 사실인데 개연성이 떨어지는 인물 설정을 한 것에 대한 불편함이었다. 다큐멘터리도 아닌 허구의 영화에 너무 까칠한 반응을 보이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개연성에 의구심이 들게 되면 영화에 대한 몰입도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고 전체적인 영화의 완성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영화 천문에서 세종과 장영실은 거의 동성애라 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은 관계를 보여준다. 관대하게 보면 브로맨스라 하겠고, 약간 의심의 눈초리로 본다면 둘 사이를 동성애로 해석할 수도 있을 정도로 애틋한 감정선을 서로 이어가는 모습이다.

세종이 장영실을 중용하여 여러 과학적 업적을 남긴 것은 역사적 사실이고, 그런 사실에 입각하여 볼 때 허진호 감독이 둘 사이의 관계를 브로맨스적으로 해석해서 영화를 제작했다고 볼 수 있겠다. 감독 입장에서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영화적 상상력이다. 그럼에도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사회상을 봤을 때 둘의 애틋한 관계가 그다지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세종이 왕으로 통치하던 조선은 건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국이었고, 건국 이후 왕권을 강화하려는 왕과 이를 견제하려는 사대부 간 대립이 끊임없이 지속되었던 국가였다. 더구나 왕자들 간 피비린내 나는 권력다툼까지 벌였던 살벌한 시기였다. 이런 시기에 왕위에 오른 세종이 과연 천민 출신과 그런 애틋한 관계를 이어갔을 여유가 있었을 리 만무하다. 자신이 원하는 업적을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인재를 천민임에도 불구하고 중용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고 납득할 수 있지만, 브로맨스의 관계까지 상정하는 것은 아무래도 억지라 느껴지기 때문에 영화의 몰입도를 저해하고 말았다.

영화를 보며 떠나지 않았던 생각은, 세종이 많은 업적을 남긴 왕이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과도하게 영웅시되고 미화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여러 미디어 채널을 통해 세종은 백성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한 위대한 왕이라는 인식이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그런 과도한 영웅화는 객관적인 역사적 평가를 방해할 수 있다. 

세종의 업적 중 우리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한글"이다. 한글을 설명할 때 늘 따라붙는,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자랑스레 내세우는 세종의 업적이다. 문자가 과학적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호하기는 하지만, 우수한 체계를 가진 문자라는 점을 내세우며, 세종이 백성들을 위해 쉬운 문자를 만들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숭상한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타난 한글 창제 과정은 세종이 사대부들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백성들에게 쉬운 문자를 보급하기 위해 건강을 돌보지 않고 노력한 지난한 과정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우리는 세종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글을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 추호의 의심도 품지 않는다.

매우 우수한 문자인 한글을 만들어낸 세종의 업적을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세종에 대한 과도한 우상화가 역사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을 흐리게 하고, 다양한 견해의 싹을 말려버린다면 문제가 있다. 일례로 한글 창제의 목적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쉬운 문자를 일반 백성들에게 보급하기 위한 것이 아닌, 한자의 발음을 정확하게 표기하기 위한 발음기호를 만들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학설이 국문학계에서 제기된 지 꽤 되었지만 일반인들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 주장이 인터넷에 잠깐 소개된 적이 있었는데, 여기에 달린 댓글은 온통 비난 일색이었다. 세종이 백성을 위해 창제한 것이 아니라, 중국어 발음기호라는 주장은 완전히 매국적인 주장으로 매도되었다. 전공분야가 아니니 어느 것이 진실인지 판단할 입장은 아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과도한 세종에 대한 우상화가 건전한 논쟁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종의 업적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가 마치 매국을 한 것처럼 마녀사냥을 당하는 것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어떤 견해이건 자유롭게 개진하고 냉정한 논쟁이 이어지는 것이 정상적인 사회이다.

과도한 국가주의를 빗대서 국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과한 국뽕은 비단 세종에 대한 평가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건전한 비판과 담론을 저해하는 유해한 요인이다. 다양한 견해가 자연스럽게 표출되고 논의가 이어지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다. 작금의 사회 분위기는 종종 극단적 견해와 마녀사냥이 합리적 판단을 짓눌러버리는 경향이 있기에, 걱정이 된다. 

마침 문재인 대통령이 영화 천문을 관람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대통령의 모든 행위는 정치적 의미를 갖고 있고 언론에 보도되는 대통령의 영화 관람이나 독서 목록은 사회적 영향력을 갖는다. 대통령의 특정 영화 관람이 좀 더 관대한 사회, 관용이 보편화된 사회를 향한 시그널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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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보기(1)
굽은소나무 (qnseksrmrqhr) 2020-01-25 08:27:52
대통령의 특정 영화 관람이 좀 더 관대한 사회, 관용이 보편화된 사회를 향한 시그널이 되었으면 좋겠다...................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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