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천국을 건설한 사람은 누구나 먼저 자신의 지옥에서 필요한 힘을 얻었다(니체)


 일찌기 나는
 - 최승자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 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가면서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영화 ‘기생충’에서 보면 지하실에 사는 가족들이 저택에 사는 가족들을 쉽게 등쳐먹는 장면이 나온다.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 배워먹지 못한 사람들에게 너무나 쉽게 당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그렇다. 중국의 진나라 말기에 명문 귀족 출신의 항우와 지방의 천민 출신 유방이 천하를 놓고 한판 대결을 벌인다. 결과는 천민 출신의 완승이다. 유방이 세운 한나라 말기에 삼국시대가 열린다. 황족 출신의 유비, 명문거족 출신의 손권, 환관의 손자 조조가 천하를 삼분한다. 최후의 우승자는 역시 조조다.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은 거지 출신이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도 변방의 힘없는 시골 무사였다. 

 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많이 배운 사람, 출신 배경이 좋은 사람에게 지레 지고 마는가?

 일찍이 중국의 병법가 손자는 ‘지피지기 백전불태 (知彼知己 百戰不殆)’라고 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위태로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제대로 모른다. 일찍이 우리는 자신을 비하하는 법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위태롭다. 

 최승자 시인은 ‘일찌기 나는’ 울부짖는다.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마른 빵에 핀 곰팡이/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가면서/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너당신그대, 행복/너, 당신, 그대, 사랑//내가 살아 있다는 것,/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고등학교 다닐 때였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도 서울에서 입학 성적이 10위권 안에 드는 학교였다. 나는 학교에서 은근히 심어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다 우연히 내 앞에 서 있는 학생의 얼굴과 마주쳤다. 교복과 모자를 보니, 그 당시 전국 최고의 ㄱ 고등학생이었다. 나는 호랑이 앞의 하룻강아지처럼 주눅이 들었다. 

 나는 그에게  완패했다. 왜? 지레 ‘쫄아서’

 나는 그 때 ‘쫄아 있는 내 마음’을 세심하게 살폈어야 했다. 그 아이에게 완패한 것 같지만 내 마음 속에 ‘지지 않은 마음’을 찾았어야 했다.  

 그와 겨뤄 지지 않은 나의 잠재력, 그걸 집요하게 찾았어야 했다. 나는 그 뒤 세상이 심어주는 서열에 맞춰 살았다. 그러다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나의 길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오랜 방황 끝에 오십이 넘어서야 ‘나의 길’을 찾았다. 인문학 강의와 글쓰기, 두 길은 나에게 주어진 소명, 천명 같았다. 이제 남을 알고 나를 아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잘 가는 술집이 있다. 주인은 시골에서 공업고등학교를 나와 오랫동안 막노동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우연히 술집을 하게 되면서 ‘대박’이 났다고 한다. 항상 손님이 그득한 허름한 술집. 억대 연봉 월급쟁이가 부럽지 않을 것 같다.

 그 주인은 어떻게 살아왔을까? 집안이 가난하고 공부를 못한다고 항상 구박을 받지 않았을까? 그는 스스로 ‘루저’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에게 공부는 못하지만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능력(술집경영능력)’이 있다고 말한 사람이 단 한사람이라도 있었을까? 

 ‘듣보잡, 지잡대’ 이런 말들이 인터넷에 난무한다. 우리는 스스로 출신 집안과 출신 대학을 한 줄로 세우고 자신의 신분을 정하는 것이다.

 만일 지잡대 출신이 ‘자신을 정확히 알고’ ‘스카이 출신을 정확히 알면’ 스카이 출신과 맞장을 뜨더라도 절대 스카이 출신에게 지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에게 그들보다 더 나은 점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될 테니까

 ‘사람은 각자 하나의 세계(들뢰즈)’다.
 
 사람은 다 다르게 태어난다. 산에 가보면 무수히 많은 생명체들이 살아간다. 어느 것이 어느 것을 이기지 못하고 서로 지지도 않으면서 더불어 잘살아가고 있다.

 인간은 각자 하나의 세계이기에 사실은 서로 이기지도 못하고 지지도 않는다. 지레 쫄지만 않으면.

 우리는 각자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살아가야 한다. 각자의 왕국을 세우고 왕이 되어 살아가야 한다. 그럼 우리는 누구에게도 지지(위태로워) 않는다. 각자 당당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사람은 다른 누군가에게 당하면 반드시 다른 누군가에게 보복을 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에게도 당하지 말아야 한다. 남에게 지지 말아야 남을 이기려 하지 않는다. 서로 사랑하고 준중하며 살아갈 수 있다.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을 보았다. 세종대왕과 장영실은 ‘명나라로부터 독립한 아름다운 조선’을 꿈꾼다. 우리 모두 같은 꿈을 꿀 수 있다면 머지않아 현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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