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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나키스트의 꿈<칼럼> 김동환 국학연구소 연구위원
김동환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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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18  23: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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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박은 늘 불편을 준다. 역설적이게도 인류가 진보하고 발전한 만큼 속박은 더더욱 억눌러 왔다. 용기(用器)와 규범(規範)만이 아니라 관념마저도 인간을 짓누르는 시대가 지금이다. 하여 때로는 벗어나고픈 마음이 간절할 때도 있다. 자유와 방임은 인간 불변의 속성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근대사의 여명기에도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 여러 방면으로 나타났다. 노예의 질곡으로부터, 구태와 인습으로부터, 종(從)의 질서로부터, 해방과 탈출을 위한 노력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 구호 중의 하나로 등장하는 것이 아나키즘(anachism)이다. 민족주의‧사회주의와 함께 등장한 아나키즘은, 1920년대 이념의 시대를 지탱한 사상적 축의 하나로, 암울한 시대에서의 탈출구로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아나키즘은 그 스펙트럼을 가늠하기가 가장 어려운 사상이다.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이 수용한 아나키즘에도 다양한 흐름이 존재했다. 아나코코뮤니즘‧아나코생디칼리즘‧개인적 아나키즘‧허무주의적 아나키즘‧인도주의적 아나키즘 등, 이해하기도 힘든 복잡한 사상 지평이 그것이다. 그 사상적 모호성으로 좌‧우, 보수‧진보 등으로의 판정도 더더욱 쉽지 않다. 일부 아나키스트들이 아나키즘 속에 과연 ‘무정부’ 같은 요소가 들어 있는지조차 의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당시의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무국가주의’ 등으로 단순 이해하는 것도 결코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일제강점기 우리의 많은 아나키스트들이 보여준 아나키즘에 대한 다양한 이해들을 보면 분명해진다. 그러한 인물 중의 하나가 우당 이회영이다.

이회영의 집안은 삼한갑족(三韓甲族,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에 제일가는 가문)으로 유교적 질서에 순응해 온 조선조 명문가였다. 그러나 이회영의 사상은 망국의 충격으로 인해 커다란 굴곡을 겪게 된다. 혼돈의 시대에 태어나 ‘경국(傾國, 쓰러져가는 조국)’→‘망국(亡國, 무너진 조국)’→‘망명(亡命, 벗어난 조국)’의 경험으로 소용돌이쳤다. 그 망명의 경험에서 얻어진 삶의 가치가 아나키즘이다. 그리고 그 방면에서 수많은 아나키스트들의 어른 역할을 자임했다.

주목할 부분은 이회영의 아나키즘적 삶이 그의 항일투쟁과 떼어놓고 이해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가 택한 아나키즘은 독립운동의 한 방편으로, 어디까지나 독립운동이 주가치(主價値)요 아나키즘이 종가치(從價値)였다. 그러므로 이회영에 있어 ‘민족의 독립과 행복을 위한 아나키즘’은 말이 되지만 ‘아니키즘을 위한 민족의 독립과 행복’이란 말은 성립할 수 없었다. 이회영의 아나키즘이 ‘무정부’보다는 ‘무지배’‧‘무수탈’의 이념 지향이었음을 알게 해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회영의 삶 속에는 자유‧평등을 토대로 하는 선천적 심성, 망국인이라는 시대적 환경, 그리고 조국독립이라는 투사적 소망이 늘 어우러져 있었다. 또한 유교주의·개혁주의·민족주의·아나키즘 등, 그의 복잡한 사상 여정의 바탕에는 ‘나라사랑’이라는 굵은 줄기가 관류(貫流)하고 있었다. 그의 아나키즘에도 ‘우국적’이라는 관형적 수식이 자리 잡을 수 있는 이유다.

‘나라사랑’과 함께 ‘대동사상’ 역시 이회영의 중요한 가치 지향이었다. 그는 ‘지배 없는 세상’, ‘억압과 수탈이 없는 세상’을 늘 갈망해 왔다. ‘만인이 자유·평등을 누리며, 더불어 행복을 누리며 사는 세상’, ‘자유로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균등하게 부여될 수 있는 사회’를 이루는 것이 그의 정치적 꿈이었다.

문제는 그가 꿈꾼 ‘대동세계’가 조국 독립을 넘어야만 맞을 수 있는 세상이었다는 점이다. 또한 조국 독립은 일제라는 폭력의 공간을 넘어야 쟁취할 수 있는 과업이었다. 폭력의 지배 앞에 문화주의‧비폭력주의는 자칫 타협이나 야합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때로는 무력 아니면 넘을 없는 무력이 용인되는가 하면, 폭력 아니면 구축할 수 없는 폭력이 정당화 되는 이유다. 이것이 우당의 폭력이 건설적 테러라는 근거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회영은 진정한 자유·평등을 위해 젊은 아나키스트들의 테러 활동도 부정하지 않았다. ‘파괴적 테러’가 아닌 ‘건설적 테러’에 대한 옹호였다. 무력과 강권에 의해 뒤틀린 기형의 공간 속에서 일제가 호도하는 평화가 진정한 평화가 될 수 없듯이, 무력으로 빼앗긴 조국을 무력으로 되찾자는 외침 또한 폭력으로만 매도될 수 없는 이유였다.

이회영의 자유‧평등이라는 보편적 가치 속에 담긴 민족적 요소도 눈여겨 볼 일이다. 그의 새 나라 지향의 꿈에는 보편(자유와 평등)과 특수(전통과 습속)라는 양 날개가 균형을 이뤘다. 그가 꿈꾸었던 이상세계(대동세계)가 민족적 배아 위에서 설계되었음을 알게 해 준다.

그가 일흔 가까운 나이에 시도한 만주의 신민부(新民府) 행보도 그 꿈을 찾기 여정이었다. 만주는 그가 ‘망명(벗어난 조국)’할 당시의 첫 터전이자 마지막 가고자 한 공간이었다. 아나키스트 이정규가 이회영의 만주행을 “선생은 스스로 나아가 죽을 자리를 찾았던 것”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우당에 있어 만주는 죽어서라도 가야 할 공간이었다.

이회영이 가고자 했던 북간도의 신민부는 북로군정서를 계승한 단체로서, 그 주요 구성원의 대부분이 대종교인이었다. 따라서 이들이 신봉하였던 대종교 이념이 자연스레 신민부의 주요한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아나키스트이자 신민부 요원이었던 이강훈의 “신민부의 기본철학은 대종교의 홍익인간과 중광(重光)정신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봉건적이었다거나 파쇼적인 것은 아니었다”라는 회고가 이를 대변한다.

특히 대종교 지도자들의 만주에 대한 애착은 영토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곳이었다. 대종교에 있어 만주는 그 전신이라 할 신교(神敎)의 발상지이면서 역사적 활동무대인 동시에, 대종교 중광의 계기를 만든 성지였다. 따라서 대종교 인물들(김교헌‧류근‧신채호‧박은식‧이시영‧이상룡‧김승학‧정인보 등)의 역사인식 역시, 과거 신라-고려-조선으로 이어지는 중화적이고 반도적인 관점을 벗어나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요‧금‧청 등으로 엮어지는 대륙중심의 인식이 공통적이었다.

이회영의 지도를 받으며 아나키스트로 활동했던 정화암은 “만일 일본의 그 만주사변만 아니었던들, 만주, 아니 최소한 우리의 활동 지역이었던 북만주는 우리 독립운동자와 동포들의 이상향이 되었을 것이다”라는 회고를 남겼다. 당시 만주가 아나키스트들의 이상향을 품은 공간이 대종교의 이상향과 동일했음을 암시해 주는 부분이다.

아마도 이회영은, 우민 민족이라면 돌아가야 할 그곳에서 처음부터 출발했을지도 모른다. 보편적 자유‧평등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정신을 아우른 가치 실천이 그것이다. 특수를 외면한 보편이 성립할 수 없듯이, 그의 나라사랑을 버린 대동세계는 허망한 꿈일 것이다. 반면 보편을 부정한 특수가 의미를 가질 수 없듯이, 그의 대동세계를 거부한 나라사랑 역시 고사(枯死)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이회영은 보편적 자유‧평등의 가치 속에 민족적 자아의식을 옹글게 내포시켰다.

혹자는 “한 거대한 거인, 열정적이면서도 냉철한 이지를 소유했던 고독한 혁명가, 전 생애를 오직 애국 이념으로 일관하였던 행동주의자”라고 이회영을 평했다. 또한 어떤 이는 “남을 억압하지 않으면서 공의가 실현되는 진정한 평화와 사회를 위해 싸우는 휴머니스트, 상호부조와 공존공영의 이상사회를 꿈꾸는 세계 평화주의자”라고 이회영을 흠모했다. 애국적 행동주의자와 세계적 평화주의자라는 모순적 인간상이 교차되는 평가다.

그러나 모순이 아니다. 이회영은 그가 그리던 대동세계를 가기 위해 독립에 대한 의지를 더욱 강렬하게 표현했다. 뒤집어 그의 독립에 대한 열망이 너무도 컸기에 대동세계의 질서를 끝내 버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그 상반된 가치의 길항작용 속에 그의 무력적 독립운동을 정당화 하고, 이상주의적 꿈이 합리화 될 수 있음을 보여 준 인물이 이회영이다.

곱씹어 볼 것은 이회영이 꿈꾼 대동사상이 해방된 조국에서 더 이상 의미 없는 가치가 아니라는 점이다. 심각해지는 사회적 불평등‧분단의 갈등‧세계화의 불협화음 등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을 더욱 옥죄고 있다. 보편과 특수가 어울어진 이회영의 대동세계 구현을 위한 선경험적 노력은, 이러한 문제 해결에 있어 아직도 현재진행형임을 공감시켜 준다. 대동세계 실현을 위해 보여준 그의 족적이 그 어느 정치가의 유훈(遺訓)보다 고귀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일제식민지의 후유증으로 잉태된 분단도 속박이다. 독립의 과정 속에 멈춰선 시간일 뿐이다. 우리의 대립과 갈등은 그 시간의 화석화만큼 증폭되어 왔다. 이회영의 꿈대로라면 부숴버려야 할 장애물이다. 통일을 위해 끊어버려야 할 속박이고, 대동세계를 위해 넘어야 할 담벼락이다.

윈칙과 기준이 무너진 오늘을 살면서 나의 정당함마저도 의심케 만드는 지금이다. 대중의 우민화와 맹목적 진영논리의 다른 점도 도대체 모르겠다. 자신들만이 가진 지식이 절대적인 진리인 듯 착각하고 있는 ‘동굴의 우상’들을 보면서, 이념과 경계를 넘어선 늙은 아나키스트의 꿈을 반추해 보았다.

 

김동환 국학연구소 연구위원

   
 

1957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대학에서 행정사를 전공하였고, 한신대학교 강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사)국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저술로는 『단조사고』(편역, 2006), 『종교계의 민족운동』(공저, 2008), 『한국혼』(편저, 2009), 『국학이란 무엇인가』(2011), 『실천적 민족주의 역사가 장도빈』(2013)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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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보기(1)
굽은소나무 (qnseksrmrqhr) 2019-12-21 09:03:35
정과 반의 길항 과정속에서 늘 침몰되고 날았던 조선의 역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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