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은 마지막에 저 유명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말로 끝맺는다. <공산당 선언>을 숙독했든 안했든, 누구나 알고 있고 또 한두 번쯤 읊었을 명구이다. 그런데 그 마지막 문장 바로 앞에는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에서 잃을 것이라고는 쇠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세계 전체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역시 경구(警句)를 잘 쓰는 마르크스의 언어 구사력이 돋보이는 구절이다. 이 구절은 카프(KAPF)의 이론가 회월 박영희가 전향하면서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요, 상실한 것은 예술 자신이었다”라고 패러디할 정도로 회자됐었다.

◆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일 트윗에서 “김정은은 너무 영리해서 적대적 방식으로 행동한다면 잃을 게 너무 많다. 사실상 모든 것”이라고 엄포를 놓자, 김영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은 9일 담화를 발표 “트럼프는 조선에 대하여 너무나 모르는 것이 많다”면서 “우리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비장감을 보였다. 나아가, 김 위원장은 “미국이 더 이상 우리에게서 무엇을 빼앗는다고 해도 굽힘 없는 우리의 자존과 우리의 힘, 미국에 대한 우리의 분노만은 뺐지 못할 것”이라고 결기를 밝혔다. 한판 붙을 수 있다는 것이다.

◆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나는 잃을 게 없다”고 말하는 사람일 거다. 몸뚱아리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목숨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고 천명한 북한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가진 게 너무 많다. 가진 게 많은 사람은 국지전이나 단계전은 하되 가급적 전면전은 피하려고 한다. 지킬 게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하나라도 다치게 되면 너무 아프고 괴롭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풍요로운 자가 목숨을 건 상대와의 싸움을 거북해하고 또 가급적이면 피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다.

◆ 얼마 남지 않은 ‘연말 시한’을 앞두고 북한과 미국의 설전(舌戰)이 점입가경이다. 일어나서는 절대로 안 되지만, 만약 북미가 실전(實戰)을 벌인다면? 당연히 미국이 이길 것이다. 무기와 물자 등 전쟁수행력의 모든 면에서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그게 전부일까? 이기긴 이기겠지만 미국도 재기불능의 치명상을 입을 공산이 크다. 북한도 미국 대륙을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전략무기를 개발한 것으로 봐야 한다. 문명사회에서 ‘상처뿐인 영광’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 양국의 70년 투쟁사가 명확히 말해주고 있듯이, 미국이 북한을 겁박한다고 해서 꼬리를 내릴 북한이 아니다. 게다가 북한은 “우리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선언했다. 이 선언은 앞의 마르크스의 경구를 빌리자면, 북한이 미국과의 생사를 건 대결에서 잃을 것이라고는 ‘70여 년 간 지속된 적대관계’요 얻을 것은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이라고 우회적으로 시사한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이러한 레토릭을 읽어야 한다. 그렇다면 답은 나와 있다. 전쟁을 할 수 없고 또 해서도 안 된다면 대화를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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