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이란 학교에서 배운 것을 다 잊어버린 후에도 남는 어떤 것이다 (아인슈타인)


 사생 대회 날
 - 양정자

 나무 몇 그루 물감으로 범벅해 놓고
 시라고 몇 줄 끄적끄적해놓고
 야성의 눈을 번뜩이며
 온통 푸른 숲속을 들쑤시고 다니며
 개구리도 잡고 풀나비도 쫓고
 칡뿌리도 캐어보는 아이들 모습이
 시보다 그림보다 더욱 아름답네
 연둣빛 나무 사이로 아이들 재깔거리는 말소리 웃음소리
 망초꽃 무리처럼 다닥다닥 피어나
 잔칫집처럼 풍성하고 환해진
 서오능의 숲 속


 며칠 동안 고1 여학생을 상담했다. 아이는 강박증, 불안장애 등 온갖 신경증을 앓고 있다고 했다. 거기다 학교에서는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 아이를 상담하며 우리 교육에 의해 크게 상처 받은 한 가녀린 영혼을 보았다. 아이는 노래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고등학교 교사인 아버지와 입시 학원 원장인 어머니는 아이를 어릴 적부터 공부에만 올인하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한다. 현재 학교 성적은 하위권이라고 한다.  

 양정자 시인은 ‘사생 대회 날’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확하게 본다.

 ‘나무 몇 그루 물감으로 범벅해 놓고/시라고 몇 줄 끄적끄적해놓고’ 
 
 ‘야성의 눈을 번뜩이며/온통 푸른 숲속을 들쑤시고 다니며/개구리도 잡고 풀나비도 쫓고/칡뿌리도 캐어보는 아이들 모습이/시보다 그림보다 더욱 아름답네’

 ‘연둣빛 나무 사이로 아이들 재깔거리는 말소리 웃음소리/망초꽃 무리처럼 다닥다닥 피어나/잔칫집처럼 풍성하고 환해진/서오능의 숲 속’

 일본의 작가 나카무라 유지로는 그의 저서 ‘공통감각론’에서 시각 중심이 되어버린 현대인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현대인은 오감 중에 시각이 중심이 되어 이성(理性)과 자아(自我)가 마음의 중심에 들어선다고 했다. 따라서 현대인은 다른 사람과 공감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린 채 한평생 자신 밖에 모르는 외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를 보며 그의 말에 전적으로 수긍하게 된다. 시멘트 범벅인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한 도시에 사는 우리들은 시각외의 다른 감각들을 잃어버린다. 온갖 악취와 소음에 우리 몸은 안으로 움츠려든다. 오로지 두 눈만 똑바로 뜨고 각자의 길을 간다.

 여기에 더해 학교 교육은 오로지 시각뿐이다. 조용히 앉아 책의 활자에 눈길을 꽂은 채 파편적인 지식 흡수에만 몰두한다. 이렇게 오랫동안 학교 공부에만 매진하면 어떤 인간이 될까?    

 나카무라 유지로가 말하는 ‘공통감각’을 잃어버린다. 공통감각은 오감이 통합되어있는 감각이다. 우리가 명상을 하거나 조용히 산책을 할 때의 오감이 다 깨어난 감각이다. 그는 공통감각이 마음이라고 말한다. 이 마음에 의해 우리는 ‘공통’을 느낀다는 것이다. 서로 함께 느끼는 마음이 된다는 것이다. 약자를 보며 함께 슬퍼하는 마음, 불의를 보며 함께 분노하는 마음,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마음...... .

 공부만 잘해 명문대가고 좋은 직장을 얻은 젊은이들을 보면 솔직히 ‘괴물’을 보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그들은 공감하는 힘이 거의 없어 보인다. 시험 치르듯이 매순간을 살아간다. 도무지 그들과는 마음이 나눠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공부 못하면 어떻게 되나? 한순간에 이탈리아의 정치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이 말하는 ‘호모 사케르’가 되어버린다. 몸뚱이만 있고 당장 먹고 살 수가 없는 버려진 인간이 되어버린다.

 우리 교육은 모든 젊은이들을 불행하게 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으면 이미 ‘인간- 인간은 본성적으로 사회적 동물’이 아니다. 인간이 아니기에 행복할 수 없다. 인간의 가장 큰 행복은 인간다움(공감 능력)의 실현에서 온다. 그렇지 않으면 말초적 쾌락과 소비의 향락을 행복으로 착각하고 살아간다. 우울과 권태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며 살아간다.   

 유럽에서는 아이가 어린이 집에 다녀오면 흙투성이가 된다고 한다. 주로 야외에서 수업을 하니까. 그러면 부모님들은 ‘아, 참 잘했네.’ 한다고 한다.

그렇게 자란 유럽 사람들은 우리보다 얼마나 평온해 보이는가? 유럽 여행을 다녀 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그들은 참 인간적이에요.’

 우리는 왜 인간적으로 살 수 없나? 우리는 왜 명문대가고 좋은 직장을 얻는 ‘공정(公正)’에만 매몰되어 있나?
 
 삶의 공정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나? 사는 건 공정해야지 한쪽으로 치우친 편협한 사고로 어떻게 잘 살아갈 수 있나? 온전한 마음으로 살아야 제대로 된 삶을 살아 갈 수 있지 않겠는가?

 해결책은 너무나 간단할 것이다. 대학 안 가도 잘 살 수 있는 세상. 그러면 초중고 교육은 금방 정상화 될 것이다. 우리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권이라고 한다. 우리의 의지만 모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앞으로 선거철이 다가온다. 대학 안 가도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향해 촛불이 환히 길을 밝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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