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예수)

 

음주(飮酒) -  제5수
- 도연명 

사람들 사는 데 농막 짓고 살아도 
수레 타고와 시끄럽게 찾는 이 없노라

왜 그런가 가만 생각해 보니 
마음이 멀어지다 보니 사는 곳마저 외지구나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꽃 따서 들고 
유연히 남산을 바라본다 

가을 산색 저녁나절 더욱 아름답고 
날새들 짝지어 집으로 돌아오는구나 

이러한 경지에 참된 뜻이 있으니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어라! 


 중학교 시절 이웃마을에 사법고시에 합격한 청년이 있었다. 경찰서장이 집으로 찾아왔다고 했다. 그 이야기는 한동안 전설처럼 나돌았다.

 그 전설이 귀환했다. 먼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요즘 검찰이 정국을 주도하는 것을 보며 그 이야기가 ‘리얼 스토리’임을 실감한다. 

 과연 ‘법대로’의 세상은 좋은 사회일까? 검찰이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법집행을 하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될까?   
 
 법은 세상을 ‘옳음과 그름’으로 본다. 그른 것에 대한 가혹한 처벌로 ‘옳음’을 바로 세우려 한다.   

 법의 칼날이 우리 머리 위에 먹구름처럼 드리워져 있을 때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될까?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니체는 ‘옳음과 그름’을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노예라고 한다. 주인은 ‘좋음과 싫음’을 기준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세상을 ‘옳음과 그름’으로 보는 사람은 자신의 ‘좋음과 싫음’을 억압해야 한다. 자신의 진짜 속마음을 무의식 깊숙이 숨겨야 한다. 항상 세상에 맞춰 살아가기에 마음이 성숙되지 않는다. 겉으로 인품이 있는 척 살아가게 된다. 결국엔 위선자가 되어 버린다.

 ‘좋음과 싫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의 비난을 받을 수도 있고 남과 많이 부딪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점점 성숙되어진다.

 공자는 항상 자신의 마음- 좋음과 싫음-을 살펴보았기에 70이 되어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았으되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從心所慾不踰矩’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법치주의’는 무섭다.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돌보기 이전에 세상이 말하는 ‘옳음과 그름’을 기준으로 살아가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주인이 되어 이 세상을 이끌어가기 보다는 누가 자신들을 이끌어가기를 바란다.

 이렇게 살다 노인이 된 사람들은 지나 온 인생이 너무나 허망해 도무지 노인인 자신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아침부터 편의점 파라솔 의자에 앉아 술을 마신다. 가장 행복했던 아기로 돌아가기 위해. 오로지 주인으로 살았던, ‘좋음과 싫음’으로만 살았던 그 시절이 너무나 그리워.   

 한평생을 ‘세상의 그름’에 분노하며 ‘자신의 좋음’으로, 주인으로 살아온 도연명 시인은 어떨까? 그도 ‘음주(飮酒)’를 한다.

 그는 노래한다.

 ‘사람들 사는 데 농막 짓고 살아도/수레 타고와 시끄럽게 찾는 이 없노라//왜 그런가 가만 생각해 보니/마음이 멀어지다 보니 사는 곳마저 외지구나’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꽃 따서 들고/유연히 남산을 바라본다//가을 산색 저녁나절 더욱 아름답고/날새들 짝지어 집으로 돌아오는구나’ ‘이러한 경지에 참된 뜻이 있으니/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어라 !’

 그는 오롯이 현재를 즐긴다. 현재가 비의(秘義)를 다 드러낸다. 주인으로 사는 사람이야말로 ‘카르페 디엠- 현재를 잡아라’이 된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우리는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인간은 자신의 ‘좋음과 싫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하고 싫은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 어릴 적부터 이렇게 자라게 교육을 시켜야 한다.   

 그렇게 자라면서 남들의 ‘좋음과 싫음’과 부딪치고 싸우면서 남의 입장이 되어보는 마음, 사랑을 배우면서 ‘공동체의 규범(법)’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삶 속에서 나오는 법을 만들어가야 한다. 민주주의는 자신이 만든 법으로 자신을 통제하는 체제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의 대의 민주주의를 넘어 직접 민주주의를 향한 꿈을 꿔야  (외국의 성공사례만 참조해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한다. 대의제에서 만든 법이 우리의 모든 삶을 지배하게 되면 (‘법은 최소한’이어야 하는데) 사회 전체가 경직되게 된다.

 죽어 있는 법은 우리의 ‘삶의 본능(에로스)’을 억압하고 ‘죽음의 본능(타나토스)’을 우리 머리 위에 먹구름처럼 드리워지게 한다. 사람들이 자살을 하고 살인을 하고 사람이 아닌 물질을 숭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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