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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카, 외동딸, 일리노이 시카고<새연재> 전영우의 미디어와 사회 (3)
전영우  |  youngwoo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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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14  11:2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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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 / 전 인천대 교수

 

필자의 말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는 소통의 도구이자 사회 현상을 반영하는 거울입니다. 미디어를 읽는다는 것은 거울에 비친 우리 자화상을 본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사회를 성찰하고 뒤돌아보는 글이 되고자 합니다. 이 글은 매주 목요일에 게재됩니다.

 

"제시카, 외동딸, 일리노이 시카고, 과 선배는 김진모, 그는 네 사촌"(제시카 징글 Jessica Jingle)

영화 기생충에서 기정이 박사장 집의 미술 과외 선생으로 취업하며 만들어낸 가짜 신분을 외우기 위해 오빠와 함께 흥얼거리는 노래이다. 영화가 북미에서 개봉하면서 이 노래가 미국인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영화 배급사에서는 발 빠르게 이 노래를 휴대폰 벨 음원으로 배포하고, 가사의 영어 자막인 Jessica, Only Child, Ilinois, Chicago라 쓴 티셔츠도 판매되는 등, 예상외의 반응이 뜨겁다.

한국 관객들은 그다지 주목한 장면이 아니었는데, 미국 관객에게는 남다르게 어필하는 매력이 있었던 것 같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이 노래에 그래미 상을 줘야 한다거나, 딸의 이름을 제시카 일리노이 시카고로 짓겠다는 글이 올라오는 등, 미국인들이 이 중독성 강한 노래의 매력에 흠뻑 빠진 모습이다. 독도는 우리 땅 선율에 맞춘 이 짧은 노래 가사는 사뭇 의미 심장하다.

영화에서 기정은 미술 과외교사로 신분을 위장하는데, 노래까지 만들며 몰입할 정도로 나름 주도면밀하게 만들어낸 가짜 신분이 바로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공부한 제시카라는 신분이다. 신분 위장의 핵심은 "미국"에 있다. 이들이 사기를 치기 위해 만들어낸 위장 신분이 미국인 것은 물론 한국에서 조회가 어렵기에 만들어낸 것이겠지만, 또한 한국 사회에 만연한 미국에 대한 환상과 맹신을 잘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제시카는 영국이 아니고, 프랑스나 독일도 아닌, 반드시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이어야 했다. 그 이유는 물론 미국이라는 나라가 한국인에게 의미하는 상징성 때문이다.

미국은 한국인들에게 늘 선망의 대상이었다. 특히 미디어에 묘사된 미국은 풍요로운 기회의 땅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 비자를 얻기 위해 미국 대사관 앞에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던 모습은 불과 10여 년 전 광화문의 모습이었다. 미국 관광을 가려고 비자를 신청해도 은행 잔고 증명과 같은 재산을 증명할 서류가 필요했던 시절이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였었다.

그랬기에 한국이 어려웠던 시절, 미국은 동경의 대상이었고 기회의 땅이었다. 많은 한국인들이 미국 영주권을 얻기 위해 불법 체류하는 일도 많았다. 80년대에 제작된 배창호 감독의 영화 "깊고 푸른 밤"은 한국 이민자들이 기회의 땅 미국에 정착하기 위해 어떤 희생을 감내했는지 눈물겹게 그려내고 있다.

세월이 흘러 한국이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고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지금, 미국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동경의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기생충의 외동딸 제시카가 일리노이 시카고 출신임을 애써 만들어내는 것은 아직까지도 한국인들 뇌리에는 미국에 대한 일종의 사대 의식이 깊게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울대보다 더 우위의 학벌이 미국 대학인 것이다.

대부분의 제국이 그렇듯, 미국도 제국의 힘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는데, 그중 하나의 방법이 다른 나라 지식인들과 오피니언 리더들이 친미주의자가 되도록 만드는 방법이다. 미국의 전략은 한국에서 매우 성공했는데, 대학 교수의 절대다수가 미국에서 학위를 받았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학위를 받고, 그 덕분에 한국에서 교수나 사회 지도층 인사가 된 사람들은 친미주의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대학은 정책적으로 외국 유학생들에게 장학금 등의 혜택을 베풀기에 이들은 자연스럽게 친미 성향을 갖게 된다.

오피니언 리더들이 친미 성향이다 보니, 자연스레 영어도 매우 중요한 언어가 되었다. 물론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언어가 영어이기에 중요한 언어인 것은 맞지만, 한국처럼 유별나게 영어를 중요시 여기고 개인의 능력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나라도 드물다. 대학입시이건 기업의 입사 면접이건 영어 능력은 필수이다. 오죽하면 보다 정확한 영어 발음을 위해 아이의 혀를 수술시키는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지겠는가.

이런 호들갑의 결과인지 몰라도, 한국인들의 영어 구사력이 세계 37위라는 통계도 있다. 2019년 EP English Proficiency Index에 나타난 순위를 보면 한국이 조사대상 100개 국가 중 37위이다. 그리 높지 않은 순위인 것 같지만, 한국 위로 랭크된 국가들은 모두 영어와 같은 어족인 유럽권 국가이거나 영어권 식민지였던 곳으로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나라들이다. 그러니까 한국인의 영어 구사력은 비영어 계통 국가로는 세계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미국과 이웃하고 스페인어를 쓰는 멕시코도 한국보다 한참 처지는 67위이다. 한국이 얼마나 영어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는지를 잘 나타내는 수치이다.

영어 능력은 다른 어떤 능력보다도 부모의 재력과 환경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부모의 재력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나기에, 기득권 층이 계급 세습의 수단으로 활용하기에 용이한 수단이다. 미국에서 교육받은 오피니언 리더들과 자녀에게 영어 습득의 기회를 어려서부터 제공해줄 수 있는 상류층들이 기득권을 유지하고 세습하는 데 있어서 매우 유용하기에 유독 한국에서 영어는 분에 넘치는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다. 기생충은 그런 한국 상류층의 모습을 잘 잡아내고 있다.

배경이야 어쨌건, 한국어로 제작되고 매우 한국적인 가치와 주제를 다루고 있는 영화인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상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한국 상류층이 어설픈 영어를 입에 달고 다니며 영어가 신분의 상징인 듯 과시하고, 자식에게 영어 가정교사를 붙여주고, 미국 출신(이라고 믿는) 제시카를 미술 교사로 채용하는 모습, 즉 미국에 종속된 모습을 영화에서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영화는 봉준호 감독이 끊임없이 천착해온 주제이자 만국 공통의 문제인 계급 문제를 말하고 있고, 그렇기에 국제적으로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지만, 한국의 비정상적인 미국 사대주의가 계급 유지에 투영된 모습을 꼬집은 영화가 미국 관객들에게 어필하고 있다는 사실은 기묘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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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보기(1)
굽은소나무 (qnseksrmrqhr) 2019-11-16 09:04:32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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