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우 / 전 인천대 교수

 

필자의 말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는 소통의 도구이자 사회 현상을 반영하는 거울입니다. 미디어를 읽는다는 것은 거울에 비친 우리 자화상을 본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사회를 성찰하고 뒤돌아보는 글이 되고자 합니다. 이 글은 매주 목요일에 게재됩니다.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인 "기레기"라는 속칭은, 언론에 대한 비아냥을 한껏 담은 신조어인데 인터넷에서 상당히 폭넓게 사용되는 단어가 되었다. 언론과 기자에 대한 불신을 상징하는 이 단어는 처음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에 등장하여 제한적으로 사용되다가, 세월호 참사를 기점으로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언론은 사실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은 무책임한 보도를 이어갔고, 심지어 진실을 얘기한 시민을 거짓말쟁이로 몰아서 억울한 감옥살이까지 하게 만들었다. 언론이 지켜야 할 사회적 책임의식은 사라지고 선정적 보도만을 쏟아낸 언론을 보며 쓰레기 같은 언론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었고 이후 자연스레 기레기는 언론을 지칭하는 보편적 용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언론에 대한 비아냥과 불신이 왜 생겨나게 되었는지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적절한 사례로, 조국 전 장관 관련 보도를 꼽을 수 있다. 조국 전 장관이 후보로 내정되고 장관으로 임명될 때까지 한 달여 동안 관련 언론 보도량이 무려 120만 건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기준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정확한 보도량은 차이가 있겠지만 아무리 양보해도 엄청나게 많은 기사가 비정상적으로 쏟아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모든 언론이 조국으로 도배를 했고 그 한 달 동안 한국 사회의 화두는 오로지 조국이었다. 비정상적인 보도량도 문제였지만, 보도의 행태가 더욱 큰 문제였고, 바로 그 지점에서 기레기라는 비아냥은 더욱 설득력을 얻었다.

세월호 때와 마찬가지로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확인하지 않는 추측성 선정적 기사가 대다수였다는 것은 한국 언론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장관 후보자 본인의 자질이 아니라 가족의 온갖 사생활, 심지어 딸의 고등학교 성적표까지 기사로 삼는 언론을 보면, 기레기라는 표현보다 더 적합한 단어가 없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가히 광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언론은 그야말로 막 나가버렸다.

이 과정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가 드러났는데, 윤리의식의 실종이다. 검찰이 의도를 가지고 흘려주는 정보를 언론은 아무런 검증 없이 받아쓰기에 급급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적당한 각색까지 덧붙인, 선정적 보도까지 일삼았다. 언론이 갖추어야 할 윤리의식은 사라지고, 마녀사냥을 방불케 하는 원색적인 기사들을 숨 가쁘게 쏟아낸 언론을 보며 시민들은 착잡함을 넘어 참담함을 느껴야 했다. 이것은 정상적인 언론이 아니다. 기득권의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언론이 오히려 기득권을 옹호하는 도구가 된다면,  이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이다.

도대체 왜 한국 언론은 기레기가 되었을까? 전통적으로 언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돈과 권력을 꼽는다. 권력의 영향은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자본은 여전히 언론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이다. 여기에 최근에 급변하고 있는 미디어 환경은 한국 언론이 기레기로 전락한 직접적인 원인이다. 전통적 미디어 환경이 다양한 뉴미디어로 급변한 것은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일이지만 한국의 미디어 환경은 유독 특이한데, 바로 포털의 절대적 영향력이다.

한국의 양대 포털사이트인 다음과 네이버는 자체적으로 기사를 생산하지는 않지만, 포털 대문에 노출되는 여러 언론사의 기사를 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미디어 환경을 만들어냈다*. 대다수의 인터넷 이용자가 포털을 먼저 접속하고 포털을 통해 뉴스를 접하는 환경으로 인해, 포털 대문에 걸린 기사는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게 되고 이는 언론사에 배당되는 수익과 연계되어 있다. 따라서 실시간으로 사람들의 관심사가 변화하는 포털 대문에 기사가 걸리기 위해 각 미디어는 필사적인 노력을 경주하게 된다.

*그래서 포털을 언론으로 봐야 하는지는 논란거리이다. 직접 기사를 생산하지는 않지만 기사를 어떻게 배치하느냐 하는 편집권을 행사하여 여론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언론사는 미디어 자체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이다. 종이매체는 이미 죽었고 방송매체도 영향력을 현저히 상실해가고 있다. 거의 모든 독자들이 포털 혹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뉴스를 접하는 환경이다 보니 언론사 기자는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에 민감해지고 심층적인 분석을 통한 취재보다는 포털의 검색어에 영합하는 기사를 찍어내느라 바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자극적이고 선정적 내용과, 확인되지 않은 소문까지도 서슴없이 기사로 찍어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불과 한 달여 기간 동안 조국과 관련된 기사가 백만 건이 넘게 생산되었다는 것은 바로 이런 미디어 환경의 결과물이다. 차분하게 검증하고 기사를 쓸 수 있는 환경이 아니고 그때그때 실시간으로 검색어 순위에 맞춰 기사를 찍어내어 조회수를 올리는 것에 목을 매는 환경이기에 기레기가 양산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궁극적으로 미디어의 수익과 직결되어 있으니 결국은 돈이 문제이지만.

심각한 사실은, 이런 극악스러운 미디어 환경이 개선될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수익 구조와 직결되는 이런 환경에서 탈피할 길이 난망한 언론이 냉정하고 분석적인 기사를 심층 있게 보도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포털이나 소셜 미디어의 영향에서 벗어나 언론이 독립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방법도 딱히 보이지 않는다. 수익을 창출할 방법이 없으니 포털과 검색어에 목을 매고, 선정적 기사를 남발한다. 언론의 자정작용을 기대하는 것도 이미 오래 전 물 건너간 일이다. 언론개혁을 위한 시도는 언론사의 극렬한 반발로 유야무야 되었고, 이제는 누구도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다. 한국 언론의 총체적 난국은 건전한 사회 감시 및 비판 기능이 실종되었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큰 문제이다.

정말 답답한 것은, 문제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해결책을 제시하기가 난망하다는 점이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른 수익의 문제가 걸려있고, 이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려는 시도는 언론 통제의 문제를 필연적으로 수반할 것이고, 언론 탄압이라는 반발을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여론 형성을 할 수 있는 매체라는 특성을 가진, 그래서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갖춘 미디어를 의미하는, "언론"이라는 단어는, 이제 사망선고를 받아야 할 모양이다. 전 지구적인 문제이기는 하지만, 유독 한국 사회에서는 더 일찍 언론은 사망하였다. 과연 누가 이 문제 많은 언론을 개혁할 수 있을까? 이미 늦었지만 언론 개혁이 사법 개혁만큼 시급하다는 것을 모두 인식하고 문제의식을 갖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발점이 되겠다. 언제나 그렇듯 개혁은 어렵다. 더구나 그것이 언론이라면 더욱 더 어렵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시급히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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