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얼굴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무상명령이다 (레비나스)

 

 사랑의 거처
 - 김선우

  말하지 마라.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이 나무도 생각이 있어 여기 이렇게 자라고 있을 것이다. -<장자>인간세편

 살다보면 그렇다지
 병마저 사랑해야 하는 때가 온다지

 치료하기 어려운 슬픔을 가진
 한 얼굴과 우연히 마주칠 때

 긴 목의 걸인 여자--
 나는 자유예요 당신이 얻고자 하는
 많은 것들과 아랑곳없는 완전한 페허예요

 가만히 나를 응시하는 눈
 나는 텅 빈 집이 된 듯했네

 살다보면 그렇다네 내 혼이
 다른 육체에 머물고 있는 느낌
 그마저 사랑해야 하는 때가 온다네


 어디선가 들은 얘기다. 독일의 한 육체노동자가 딸이 학교 교사가 되자 울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같으면 가문의 영광일 텐데. 그 노동자는 딸이 자신의 계급을 배신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큰 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 부모참여수업에 간 적이 있다. 아이와 함께 신나는 놀이를 했다. 마지막 시간에 아이들이 각자의 꿈을 얘기했다. 큰 아이는 자신의 꿈이 ‘농부’라고 말했다. 

 어떻게 아이가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지? 내가 평소에 어릴 적 농사지은 이야기들을 자주 한 게 아이에게 영향을 주었나 보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즈음에 시골로 이사를 갔다. 작은 아이는 네 살이 될 때였다. 아이들이 시골 마을에서 자라게 하고 싶어서였다.

 어느 날 큰 아이는 이제 자신의 꿈은 농부가 아니라고 했다. ‘왜?’하고 물으니 아이는 대답했다. ‘농부는 더러운 것 같아.’

 ‘조국’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진보인사의 삶이 자녀교육에 있어 보수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나도 진보인사들의 삶이 진보적이지 않다는 것을 많이 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독일의 육체노동자가 자신의 계급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육체노동자의 삶이 우리 사회처럼 하찮게 대접받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큰 아이는 시골에서 농부들을 보며 직감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농부를 아주 하찮게 보는구나! 단지 옷이 더러워 농부를 하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는 복지는 제대로 되어있지 않고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대우는 얼마나 형편이 없는가.  

 그래서 부모들이 자식을 ‘화이트칼라’로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진보인사라고 해서 ‘자식에 대한 사랑’이 더 부족할까? 한순간에 자녀가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는 ‘헬조선’에서.   

 자신의 계급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독일 노동자는 ‘사랑의 거처’를 알 것이다. 다른 사람의 얼굴을 환대할 수 있을 것이다.

 ‘치료하기 어려운 슬픔을 가진/한 얼굴과 우연히 마주칠 때//긴 목의 걸인 여자--/
 나는 자유예요 당신이 얻고자 하는/많은 것들과 아랑곳없는 완전한 페허예요‘

 ‘가만히 나를 응시하는 눈/나는 텅 빈 집이 된 듯했네’

 ‘살다보면 그렇다네 내 혼이/다른 육체에 머물고 있는 느낌/그마저 사랑해야 하는 때가 온다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위해 사는 삶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고 책임지는 진정한 인간성, 진보의 가치를 생활화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 시급한 것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복지이고,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대우다. 맹자는 말했다. ‘항산이 없으면 항심이 없다. 無恒産無恒心’

 우리 사회의 진보는 모든 특권을 누려온 수구세력을 청산하는 것일 것이다. 그들이 특권을 누리는 한 우리 사회의 미래는 암담하지 않겠는가? 우리 사회가 진보인사들의 진보적 삶에 대한 견해 차이로 진보개혁세력이 분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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