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우 / 전 인천대 교수

 

필자의 말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는 소통의 도구이자 사회 현상을 반영하는 거울입니다. 미디어를 읽는다는 것은 거울에 비친 우리 자화상을 본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사회를 성찰하고 뒤돌아보는 글이 되고자 합니다. 이 글은 매주 목요일에 게재됩니다.


"드라마 같은 현실" 혹은 "영화 같은"이라는 표현은 미디어가 만든 허구의 세상에서나 존재할 법한,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종종 드라마보다 훨씬 더 드라마틱한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 현실이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니, 이러다 드라마와 영화의 설자리가 없어질까 걱정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검찰이 어떻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흔들고 있는지를 묘사한 드라마와 영화가 여러 편 있다. 최근 들어 다시 조명 받고 있는, 검찰을 다룬 과거의 드라마와 영화를 보면 권력과 유착하고 출세를 위해 일반인이 상상하기 어려운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는 내용이 많다. 그저 드라마적 재미를 위한 과장된 설정이라고 생각했던 검찰의 모습이, 요즘 들어 실제로 현실에 생생하게 투영되는 모습을 보면, 마치 예언 같았던 과거 드라마와 영화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검찰 개혁의 당위성은 이미 영화와 드라마에 다 나와 있다.

대통령 탄핵과 더불어 전임 대법원장의 구속으로 이어지는 사법 농단 사태를 겪고, 조국 전 장관을 둘러싼 논란을 다루는 검찰의 행보를 보면 검찰은 미디어에 나타난 모습보다 훨씬 더 타락했을 수 있다는 개연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수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길거리로 나섰다.

영화 '부당거래'에는 검사가 출세를 위해 권한을 남용하고, 스폰서를 두고 질펀한 접대를 받는 것을 당연시 여기며, 전혀 죄의식 없이 멀쩡한 사람을 죄인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소수의 검사들에게 부여된 견제 받지 않는 권한이 어떤 부작용을 일으키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영화적 상상력으로 창조된 과장된 설정이 아니라, 실상은 영화보다 더할 것 같다는 가능성을 접하는 요즘 현실은 소름 끼친다.  
 

▲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검찰 풍자. [사진제공-전영우]

검찰을 대상으로 제작된 영화가 거의 예외 없이 어둡고 추악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비해, TV 드라마는 폭넓은 시청자 층을 대상으로 하기에 영화와는 결이 조금 틀린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왜 개혁되어야 하는지를 예리한 문제의식으로 파헤친 드라마로 "비밀의 숲"이 있다.

한국 드라마는 "비밀의 숲"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는 글을 어디에선가 읽었는데, 상당히 공감이 간다. 대부분 한국 드라마는 특정 장르를 표방해도 내용은 연애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의학드라마는 의사의 연애, 법정 드라마는 검사나 변호사의 연애, 시대물에서는 계급 간의 연애 등, 결국에는 연애물이었다. 그런 경향에서 벗어나 진정한 장르를 개척하는 시도는 꾸준히 있어왔고, 비밀의 숲은 그런 시도의 완성판이라 봐도 무방하다. 달달한 연애가 완전히 배제된, 사회성 강한 묵직한 드라마의 성공은 의미가 크다.

▲ 드라마 "비밀의 숲" 포스터. [사진제공-전영우]

방영 당시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에 열광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사회적 분위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부패한 권력의 정경유착을 시민들이 직접 눈으로 보며 분노하고, 탄핵과 정부 교체를 이룬 시점에 방영되어 드라마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2019년 10월 시점에서 다시 이 드라마를 뒤돌아보면, 검찰 개혁의 어려움과 공고한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이미 예리하게 예언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검찰, 재벌, 언론, 정치가 어떻게 서로 얽히고설켜서 강고한 기득권 세력을 구축해 왔는지, 그리고 그것을 깨부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드라마는 세세하고 설득력 있게 그리고 있다. 재벌이 권력과 어떻게 유착되었고, 검찰과 언론이 어떻게 서로 부역하고 있는지, 그래서 검찰 개혁이 얼마나 어렵고 저항이 심할 것인지를 잘 묘사했고, 지금 촛불을 든 시민들 모두가 그 사실을 엄정하게 느끼고 있다.

드라마에서 주인공 황시목 검사는 뇌 수술을 받아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돈과 권력이 얽힌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다른 검사들은 모두 압력에 굴복하는데, 오로지 그만이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냉정하게 진실을 추구한다. 이 설정은 시사하는 바 큰데, 황시목처럼 감정이 없는 검사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기에, 역설적으로 검사들은 모두 타락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재벌의 사위로서 청와대 수석이 된 이창준 검사는 권력을 추구하는 악의 축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창준은 정상적 방법으로는 이 사회를 바로잡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고, 비상식적이고 극단적 방법으로 개혁을 시도한다. 이창준은 자신이 재벌의 주구로서 살인도 불사하는 악의 축이라는 짐을 떠안고 죽어야만 이 강고한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믿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복잡한 인물이다.

그리고 이창준에게서 그 무거운 짐을 받아서 개혁을 떠안게 된 사람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또 다른 비정상적인 검사, 황시목이다. 결국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검찰도, 정치도, 언론도, 재벌도 개혁할 수 없다는 것을 드라마는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곧 검찰 개혁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드라마는 냉정하고 담담하게 그려낸다. 그래서 종국에는 정의가 이긴다는 결말에도 불구하고 드라마가 제시하는 한국 사회의 실상은 암울하고 쓰디쓰다.

낙관적이거나 달콤한 환상 대신 엄혹한 현실을 들이민 비밀의 숲은, 마치 시청자들에게 더욱더 냉철하게 깨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얽히고설켜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강고한 기득권 세력, 그 정점에 있는 검찰과 사법부를 개혁하는 것은 결국 깨어있는 시민의 몫이 된다. 언제나 그렇듯 개혁은 늘 평범한 시민의 희생에 의해 이루어진다. 개혁에 격렬하게 저항하는 검찰의 모습을 보며 깨어난 사람들, 즉 지금 촛불을 들고 서초동으로, 여의도로 모인 시민들의 손에 개혁의 해답이 들려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
미국 위스컨신대학교 언론학석사
미국 서던미시시피대학교 언론학박사
인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전)
인천광역시 국제교류재단 대표 (전)
한국광고학회 이사 (전)
스페인 말라가대학교 한국사무소장 (현)
저서: "광고, 상품, 쇼핑의 노예들" "글로벌 시장과 국제광고" "현대광고학" "수제맥주 바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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