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이 위태로워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외면한 금강산이 새롭게 탈바꿈할 시도를 하고 있다. 북의 <노동신문>은 23일 김정은 위원장의 현지지도를 보도하면서, 남측의 시설을 싹 들어내고 금강산을 새롭게 일신할 것을 지시하였다. 지난 2008년 박왕자씨 피살 사건 이래 중단되었던, 금강산 관광은 몇 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재개되지 못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금강산 관광은 1998년 고 정주영 회장의 각고의 노력 끝에 남북이 합의한 의미있는 경제협력 사업의 첫 출발지였다. 남북관계가 어려울 때마다 함께 요동쳤던 금강산 관광은 중단되기 직전까지 발전을 거듭하여 한 해 50여 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하였고, 해상 관광에서 육로를 통한 비무장지대 통과를 거쳐, 마침내 개인 승용차를 이용한 관광까지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금강산 관광이 호황을 누리자 강원도를 비롯한 주변 지역의 경제까지 활성화시키는 관광의 선순환을 만들어 내었다.

유엔은 관광을 ‘평화로 가는 여권’이라고 부르며, 관광을 통한 교류와 협력이 평화와 평화정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한반도의 오랜 갈등과 대결의 상태에서 보자면 금강산 관광은 갈등과 대결을 끝내고 평화를 향해 내딛었던 작지만 거대한 발걸음이었다.

우리 국민들의 금강산 관광에 대한 기대도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려운 남북관계 속에서도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해서는 거의 과반수 이상의 국민들이 재개에 찬성을 표하고 있었고,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가장 먼저 남북의 협력 사업을 추진해야 할 것으로 금강산 관광을 꼽는 국민들이 많았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해마다 조사하는 국민통일의식조사에 따르면 금강산 관광에 대한 재개는 한반도의 위기가 최고조였던 2017년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50% 이상의 찬성을 보였다. 이에 반대는 그 어느 때에도 30% 이상을 넘지 않았다.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한 찬반 여부>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찬성

60.2

61.3

62.5

57.4

49.7

55.0

50.4

44.6

62.0

보통

26.8

25.2

25.2

29.2

34.8

31.3

26.1

26.3

28.6

반대

13.1

13.5

12.3

13.4

15.5

13.8

23.6

29.2

9.4

*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2018 통일의식조사』, 108쪽.

2018년 남북관계가 위기에서 대화로 급변하고, 북미대화까지 진행되자 많은 국민들이 금강산을 오를 날을 기다렸고, 조만간 관광이 재개될 희망에 부풀었다. 그러나 현실은 유엔의 제재라는 장벽에 부딪혔고, 더 심각한 것은 우리 정부가 금강산 관광에 대한 말뿐인 공약만을 내세울 뿐 실질적인 행동은 전혀 하지 못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내고 말았다.

엄밀히 말하면 개인 자격의 관광은 제재의 대상도 아니고, 개인 관광을 위해서 사용하는 비용도 제재의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유엔과 미국의 대북 제재라는 울타리 뒤에 숨어, 오로지 북미관계가 해결될 때까지만 기다리면서 허송세월로 일을 망쳐버리고 말았다.

결국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여러 가지 현란한 구호 – 신한반도체제, 신한반도경제 등 – 만이 요란할 뿐, 이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부재했다. 지난 박근혜 정부 당시에도 말로는 남북관계를 요란하게 떠들었지만, 실제적인 것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일을 그르쳤던 것과 거의 동일한 거울구조를 보이고 있다고 하겠다. 실천이 뒤따르지 못하는 의지는 아집에 불과할 뿐이다.

더욱이 올해 초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에 대해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없이 재개할 용의가 있음을 밝히면서 남북이 협력한다면 외부의 제재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앞길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력을 인정하면서도 남북의 협력에 대해서는 중재자가 아니라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했는가? 그 결과가 지금의 사태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번의 금강산 관광을 둘러싼 사태가 말해주는 것은 간명하다. 남북관계를 북미관계에 종속시킨 ‘종속의 대가’이다. 모든 것을 유엔과 미국의 제재 탓으로 돌리는 것은 결국 우리가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자기 푸념과 무능력의 변명일 뿐이다.

나아가 유엔과 미국의 제재를 앞세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 시도해볼 만한 것도 시도해보지 않는 것은 또 다른 사대주의이자 관료주의에 찌든 병폐의 하나이다. 어쩌면 지난 ‘그 이전의 10년’이 남겨놓은 가장 큰 적폐의 하나라 할 것이다.

이번의 금강산 사태는 앞으로 큰 사태로 이어질 것이 우려된다. 바로 개성공단이다. 수 많은 개성공단 기업인의 바람과 요구를 뒤로 하고, 운명의 시계추처럼 결단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몰수와 몰수의 악순환이 다시금 반복되고, 그래서 남북관계가 불과 1년 여 만에 남아있던 연결의 끈마저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악몽의 시간을 맞이할 것인지, 아니면 지금부터라도 작은 희망의 불씨라도 살릴 것인지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현 정부는 초기 남북관계에 대해, 한반도에 대해 ‘담대한 여정’을 말해왔다. 지금이야말로 ‘담대한 여정’에 맞는 담대한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종속의 그늘 속에서 변명과 무능력을 감추고자 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중재자라는 신화에 갇혀있어서는 안 된다. 중재자가 아니라 남북관계에서만은 당사자의 굳건함을 지켜야 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남북관계에서 우리가 처음으로 우리의 주체적인 입장을 피력하고 미력하게나마 실천에 옮겼던 것은 김대중 정부의 정상회담을 전후한 시기였다. 이 이후로, 노무현 정부까지 어려운 가운데서도 – 때로는 미국과 얼굴을 붉히면서도 – 남북관계에 우리의 의지를 실천하고자 했다.

어렵게 성취했던 남북관계의 주체적인 입장을 종속의 그늘도 더 이상 밀어넣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도 더 이상 중재자의 신화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미 ‘종속의 대가’가 무엇인지 충분히 경험하고 있지 않는가?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문학박사, 2001)
캐나다 브리티쉬 콜롬비아 대학 방문연구원(2002-2003)
서울대 국제대학원 연구위원(2004-2006)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객원연구원(2007)
현재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로 재직중 

주요저서로 북한의 개혁·개방: 이중전략과 실리사회주의(2004), 김정일 리더십 연구(2005), 서울과 도쿄에서 평양을 말하다(2008), 북한과 미국: 대결의 역사(번역서, 201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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