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月이 오네(5)

식지않는 「젊은피」

고대(高大) 데모는 혁명(革命)의 봉화(烽火)
정치깡패 흉기에 피흘리며 쓰러졌다.

「마산 학생 석방하라」 외치며

 

○... 파랗게 새싹이 돋아나는 잔디밭에 뒹굴며 하늘에 우뚝 솟은 석탑(石塔)과 구름을 보며 청운의 꿈을 아로새겨본다. 남아의 배움터라 자부하는 고대생들은 해마다 모여드는 수재들의 입학을 마음껏 환영해 준다.

그날도 거창한 환영식이 있었으나 3천명의 가슴에는 가슴마다 참을 수 없는 울분과 「요구」가 있었다. ①마산학생석방을 ②학원의 자유보장을 ③기성세대를 불신임하며 각성을 촉구한다는 요구였다-이것이 바로 4월 18일 낮 12시 50분

○... 눌린 자를 쳐들기에 굽은 것 펴기에 이런 교가의 전통을 자랑하던 「호랑이」들은 철통같이 굳게 단결되어 안암동 교문을 박차고 나섰다. 그들의 「데모」대는 약동하는 거센 산맥(山脈)보다 거센 것-거리마다 자유당의 경찰들의 제지가 물샐틈없었건만 「데모」 주류대(主流隊)는 국회의사당 앞거리를 메웠다.

○... 대학과정의 교육을 받아 이마가 허약한 「인텔리」로서 책상위에서 일할 수 있는 안일한 앞날과 출세영달을 위하겠다는 것이 대학생이 아니었음을 그들은 알았음에라 – 낡은 이론(理論)보다는 어떻게 「최대 다수의 행복」을 위해 나의 자세를 지녀야하는가의 「옳고 그릇된」것을 분간할 줄 아는 방향을 찾을 수 있는 「사람」되기를 얼마나 원했던가를 「4월 18일」 온 겨레의 역사와 함께 영원히 빛날 것이다.

○... 그날 국회의사당 앞 태평로 거리는 저녁놀이 짙어갈 무렵까지 소란의 도가니였다. 유(유진오, 兪鎭午)총장의 연설, 이(이철승, 李哲承=고대 선배)의원의 만류 등 외치고 부르짖고 저녁 7시 반쯤 이 「데모」대는 을지로4가와 종로 4가 사이에 이르러 1백여명의 정치깡패들의 흉기로 쓰러졌다. 책가방과 모자가 뒹굴었다-이 처참한 피의 장면이 그 이튿날(19일) 조간신문에 크게 보도되었다. 얼마나 가슴이 설렌 소문이었던가.

○... 일찌기 어떤 「학문」이 시대를 바로잡았던 때는 없었다. 그러나 옳게 깨우친 학생들의 「행동」이 혁명의 봉화가 된 사실이 바로 고대생들의 행동이었다. 올해도 조용한 안암동 고대내에는 새파란 잔디의 새싹이 돋아나오고 있다. 여기 자라는 젊은 「호랑이」들의 불타는 「피」는 영원히 식지 않을 것이다. 언제이고 불의(不義)를 보면 그들의 피는 다시 용솟음칠 것이다.


사진(상) 고대 전경 (하)4.18 데모 광경

▲ 4月이 오네 (5) [민족일보 이미지]

<민족일보> 1961년 3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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