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기회가 두 번 다시 그대의 문을 두드리라고는 생각지 말라 (샹포르)


 청춘 2
 - 진은영

 맞아 죽고 싶습니다
 푸른 사과 더미에
 깔려 죽고 싶습니다

 붉은 사과들이 한두 개씩
 떨어집니다
 가을날의 중심으로

 누군가 너무 일찍 나무를 흔들어 놓은 것입니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읍내에 있었다. 읍내에서 한참 먼 농촌 마을에서 자라난 나는 책보자기를 어깨에 메고, 마을 동무돌과 함께 걸어 다녔다.

 읍내 아이들은 가방을 메고 다녔다. 새카만 얼굴에 소매에는 항상 코를 훔친 흔적이 번들거리는 우리들의 물골과 대비되어 뽀오얀 얼굴의 그들은 모두 귀공자, 귀공녀 같이 보였다.

 기성회비(그 당시의 초등학교 학비)를 내지 못한 나는 교무실에 수시로 불려갔다. 담임선생님 의자 옆에 한참 동안 꿇어 앉아 있다가 수업도 받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혼자 뜨거운 햇살을 머리에 이고 터덜터덜 신작로를 걸으며 나는 나중에 어른이 되어 과학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모든 한을 풀 수 있는 과학자!

 가끔 점심시간에 생활보호대상자 아이들과 교무실 뒷마당에 모여 학교 급식을 먹었다. 옥수수 죽을 한 그릇 먹고 교실로 돌아오면 교실 풍경과 아이들이 얼마나 낯설었는지. 
  
 나는 학교에서는 마을 아이들끼리 노는 건 싫고 읍내 아이들에게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해 항상 물 위의 기름처럼 동동 떠다녔다.

 6학년이 되자 이런 ‘찌질이 시절’이 한 순간에 청산되었다. 읍내의 중학교 입학생 수가 읍내의 초등학교 졸업생 수보다 훨씬 적어 학교에서는 보충수업을 했다. 

 오전에는 각 반에서 공부하고 오후에는 전교 석차별로 반 편성을 다시 했다. 나는 전교에서 가장 우수한 아이들이 모인 분단에 배치되었다.

 내 옆에는 여학생들 중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는 읍내 여자 아이가 앉았다. 나는 내 앞 뒤의 희멀건 얼굴의 읍내 아이들을 휘둘러보았다.

 오! 나는 드디어 읍내 아이들과 동무가 되었다. ‘공부’ 하나로 한 순간에 신분 상승이 되는 기적!  

 그 뒤 집안이 가난해 실업계 고둥학교를 가고 직장을 다니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에 가고 ‘화이트 칼라’에 편입하게 된 이 모든 힘이 공부였다.

 아마 지금 같으면 이런 기적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때는 과외와 학원이 많지 않았기에 ‘개천에서 용이 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공정한 입시’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한다. 할아버지의 재력과 어머니의 정보력과 아버지의 무관심으로 명문대를 가는 일부의 금수저들. 대를 이어 흙수저로 살아야 하는 대다수 사람들.

 ‘공정한 입시’가 ‘일등만 알아주는 이 더러운 세상’을 해결해 줄 수 있을까? 어떤 입시 제도를 도입해도 불가능할 것이다. 금수저들은 ‘입시 전문가’를 통해 새로운 입시 제도의 빈틈을 금방 찾아낼 테니까. 

 그렇다면 특목고, 명문대의 바늘만한 입시 구멍을 뚫고 들어가 좋은 직장에 취직한 금수저 자녀들은 행복할까?     

 나는 공부를 잘한 게 아니었다. 시험 보는 요령을 알고 있었다. 그 요령을 익혀 공부 잘한 아이로 둔갑한 나는 많은 걸 얻은 것 같지만 소중한 것들을 너무나 많이 잃었다.

 내게 다른 재능이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하지 못했다. 그런 요령을 익히다 보니 나는 단순한 인간이 되어버렸다. 자신에 대해 성찰하는 정신, 세상을 보는 깊은 사유의 힘이 사라지고 세상과 따스하게 만나는 미적 감수성이 둔감해졌다. 

 언젠가 성격검사를 해보니 나는 ‘돈키호테형(型)’이었다. 평생 꿈을 꾸며 살아야 할 운명이었는데 ‘하이트 칼라’로 살아가려했다니! 

 나는 입시라는 괴물을 만나 불구의 인간이 된 것이다. 나는 중년이 되어서야 나의 운명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입시 제도에서 성공한 사람들도 언젠가는 나 같은 뼈저린 후회를 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들은 오로지 시험 기계로 길러졌기에 자신의 삶을 스스로 꾸려 갈 줄 모른다. 진정한 행복한 삶을 누릴 능력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공정한 입시’에서 ‘보편적 복지’로 나아가야 한다. 유럽처럼 고등학교를 나오면 대학 나온 사람 부럽지 않게 살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학교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는 인간 교육이 가능해진다.   

 나는 잃어버린 ‘청춘’을 생각하면 너무나 서럽다.

 ‘맞아 죽고 싶습니다/푸른 사과 더미에/깔려 죽고 싶습니다//붉은 사과들이 한두 개씩/떨어집니다/가을날의 중심으로//누군가 너무 일찍 나무를 흔들어 놓은 것입니다.’

 ‘맞아 죽고 싶습니다/푸른 사과 더미에/깔려 죽고 싶습니다’

 나는 이런 청춘을 경험하지 못했다. 아득히 내 깊은 가슴 속에서 하얀 물고기 한마리가 파닥거린다. 아, 그 물고기는 한 번 힘차게 헤엄치고 싶은 것이다.

 노래꾼 김광석이 어느 콘서트에서 ‘서른 즈음에’ 노래를 마치고 관객들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그 나이 즈음에는 모두들 비슷한 느낌들을 가지고 있더군요.’

 나는 30대 중반에 그 동안의 삶을 박차고 나왔다. 내 안의 하얀 물고기가 더 이상 내 가슴 속에서 견딜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잃어버린 청춘을 다시 되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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