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정보원 프락치 공작사건 대책위원회가 24일 출범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지난 5년간 프락치 활동을 해 온 제보자의 양심선언으로 최근 실체가 드러난 '국가정보원 프락치 공작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원 프락치 공작사건 대책위원회'(대책위)가 24일 출범했다.

사찰 피해자들과 국정원민간인사찰피해대책위원회, 다산인권센터, 민들레_국가폭력피해자와 함께하는 사람들, 천주교인권위원회를 비롯한 인권단체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대책위는 이날 오전 서울시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책위 출범을 알렸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김대표'라는 이름으로 지난 5년간 국가정보원의 프락치 노릇을 해 온 제보자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프락치로 활동하던 지난 5년간 벌어진 일들을 털어 놓고 앞으로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힘을 보태겠다는 다짐을 밝히기도 했다.

국정원감시네트워크(국감넷)은 지난 8월 26일 첫 보도 이후 제보자와 합의하에 진술을 청취하고 이를 바탕으로 진상조사결과 보고서를 작성하여 이날 기자회견장에서 발표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민간인 사찰과 증거조작으로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 간부들이 줄줄이 구속되어 실형을 선고받았음에도 국정원이 '프락치'를 동원한 불법사찰과 증거조작을 버젓이 자행해왔다"며, "문재인 정부의 국정원 개혁은 사실상 실패하였다"고 규정했다. 

그래서 "국정원이 대통령 직속 정보기관인만큼 문재인 대통령은 이 사건의 진상조사와 재발방치 대책 마련을 직접 챙겨야 한다"고 요구했다.

국정원은 이번 사건을 국정원 상시업무인 '대공수사'라고 주장하지만, 이들은 "'대공수사권이라는 국정원 문제의 근원을 도려내지 않고서는 불법사찰과 증거조작이라는 두가지 범죄는 끊어낼 수 없다"며 대공수사권의 폐지를 골자로 국정원법을 전면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광범위한 민간인 사찰을 통해 조작을 위한 작은 근거를 찾고 조작 대상이 포착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증거를 조작하여 대규모 조직사건을 만들어내는 관행을 끊어내야 한다는 것.

이번에 국정원이 대공수사를 이유로 민간인을 사찰하고, 증거날조를 통해 공작사건을 만들려고 한 정황이 다시 드러난만큼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이관)를 반대할 명분이 없는 만큼 20대 국회는 발의되어 있는 국정원 개혁법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김대표'로 알려진 제보자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박석운 대책위 대표는 "프락치 공작은 다시는 없을 줄 알았는데, 문재인정부 출범 2년 4개월이 지난 현재 충격적인 진상의 일단이 드러났다"고 하면서 "대공수사권 폐지를 축으로 한 해체 수준의 국정원 전면 개혁'이 우리의 주장"이라고 밝혔다.

과거 정보기관이 재야인사들과 교수, 문인, 기자 등을 강제연행해 고문할 때에도 국가보안법 위반사건 수사를 명분으로 내걸었다며, 국정원이 대공수사권을 유지하는 한 대한민국 모든 국민은 민간인 사찰과 증거조작, 강압적 수사를 피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박래군 인권중심 사람 소장은 "오늘 대책위가 출범했고 법률지원단을 구성했다. 법률지원단장은 국정원감시네트워크 김인숙 변호사가 맡아주시기로 했다"며, "다음 주에는 피해자들과 대책위가 국정원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고소·고발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대책위는 앞으로 정부와 국회를 대상으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활동을 벌이고 대공수사권 폐지를 골자로 하는 국정원 해체 수준의 국정원법 전면 개정을 위한 대국민, 언론 활동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김대표로 알려진 제보자 외에도 제2, 제3의 제보자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국정원 프락치 양심선언 신고센터'(가칭)을 설립해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하는 분들이 제보와 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 김인숙 변호사는 국정원이 2014년 10월부터 2019년 8월까지 약 5년 동안 학생운동 전력이 있는 '김대표'를 프락치로 이용하여 광범위한 민간인 사찰을 해왔다는 진상보고서를 발표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국감넷 김인숙 변호사는 '국가정보원 '프락치' 공작사건 진상조사 보고서'를 통해 "국정원이 2014년 10월부터 2019년 8월까지 약 5년 동안 학생운동 전력이 있는 '김대표'를 '프락치'로 이용하여 광범위한 민간인 사찰을 해 왔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보도 이후 이 사건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조직에 대한 내사사건'이며, '국보법 위반 수사는 국정원의 법상 직무이고 내사 주체는 2007년부터 현재까지 국정원 대공수사부서'라는 입장이지만, 김 변호사는 사찰 대상자들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단서를 확보하고 수사를 개시한 것이 아니라 '조작을 염두에 둔 기획일 뿐'이므로 국가정보원법상의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또 프락치를 활용한 내사·수사 방법은 위헌·위법한 것이며, 없는 국가보안법 사건을 만들어 무고하려는 의도가 분명히 확인된 만큼 국가보안법상 무고·날조의 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국정원 직원들이 법인카드로 유흥비를 지출하고 불법적인 성매매를 하며, 허위 진술서 작성을 대가로 현금을 지급한 것은 국고 등에 손실을 입힌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로 죄를 물을 수 있다고 했다. 

김인숙 변호사에 따르면, '김대표'는 회원이 1,500명에 달하는 시민사회단체인 '통일경제포럼'에 가입하여 운영진으로 활동하면서 5년간 모든 모임과 뒷풀이, 개인적인 대화를 전부 녹음하여 국정원에 제공하였고 녹음한 파일을 건넬 때마다 국정원 경기지부에 가서 진술서를 작성하였는데, 초기에는 일주일에 한번, 뒤에는 적어도 한달에 두번 정도, 5년간 총 100회 이상이었다.

'프락치' 대가는 한달에 200만원이었고 국정원에서 지하혁명조직을 만들 목적으로 허위 조직이 있는 것처럼 기재한 진술서를 작성할 때에는 50~80만원이 추가로 지급되었다. 

진술서를 작성하거나 사찰대상자를 만나러 지방에 갈 경우에는 미리 룸살롱으로 불러서 비싼 양주를 마시고 성매매를 하기도 했다. 술값은 모두 법인카드로 지불했으며 그 밖의 비용은 모든 현금으로 지급했다.

국정원은 통일경제포럼 활동 뿐만 아니라 대학 민주동문회 송년회, 지인 결혼식 등 모든 모임을 녹음하게 했고, '국가폭력 피해자' 관련 다큐멘터리 촬영 명분으로 통일경제포럼 이재봉 교수를 비롯해, 정당, 시민단체, 작가, 종교인 등을 촬영하여 제출받기도 했다.

심지어 통일경제포럼이 계획한 단둥·블라디보스토크 기행에는 일정 정체를 국정원 직원이 직접 따라 다니면서 직접 녹음과 촬영을 했으며, 서울에 자취방을 마련해 주고는 사람들을 유인해 CCTV로 감시하기도 했다.

이렇게 5년동안 국정원이 지정한 사찰 대상자만 약 50여명이었다.

진술서는 국정원 직원이 미리 확인한 녹음 파일과 영상 등을 활용해 손글씨로 요약해 온 내용을 그대로 작성하도록 했으며, 허위 진술서를 작성하면서 이의를 제기하면 "불법이지만 그렇게 진술을 하면 합법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국정원의 사찰 목적은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지하조직이 있으니 거기에 김대표가 먼저 가입한 후 관계자들을 다 엮으려는 그림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처음으로 모습을 공개한 제보자는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해서는 안될 일을 했다. 너무 부족한 인간이었다. 매일 무섭고 힘들었다"며, 국정원으로부터 받았던 협박과 회유, 경제적 예속관계를 끊지 못한 회한을 드러냈다.

제보를 하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유방암 투병중인 선배의 남편(민주노총 활동가)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며 사찰을 지시받았을 때 처음으로 그만두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국정원은 스타트업 패키지 지원을 하겠다고 회유했으나 약속을 지키지 않아 경제적으로 어려웠는데, 사찰 대상자가 신용대출을 받아서 저를 도와주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적으로 대해주었던 주위 분들에게 더 이상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심경을 밝혔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