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노 / 재미동포, 워싱턴 시민학교 이사

 

이번 추석에 문재인 대통령이 한 TV 방송에 출연, “이산가족 상봉만큼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인도주의적 과제”라고 했다. 해마다 추석엔 흩어진 가족들이 고향에 계신 부모님 곁으로 모인다. 온 가족이 성묘도 하고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나눠즐기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게 우리 민족 고유의 아름다운 전통이다. 이런 특별한 날에 고향이 있어도, 부모 형제가 기다려도 오도 가도 못 하는 이산가족들이 많다. 이산가족의 쌓이고 쌓인 고통과 슬픈 사연을 대통령이 보듬고 그들의 맺힌 한을 풀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은 늦었지만, 반갑게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언급한 이산가족이란 전쟁으로 인한 이산가족들에 국한된 것 같다. 실제론 그들보다 더 시급하고 절박한 이산가족들이 있다. 이들은 국가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있는 ∆비전향 장기수, ∆탈북브로커에 속아 입국한 평양 시민 김련희 씨, 그리고 ∆공권력에 의해 납치된 12북처녀들이다. 이들을 배제한 이산가족 상봉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면 이들의 가슴에 또 다시 크나큰 상처를 안기는 꼴이 된다. 문 대통령 자신이 이산가족일 뿐 아니라 연로한 노모의 소원을 풀어드린 경험도 있다. 더구나 촛불 대통령이 아닌가. 세상에 가장 잔인하게 인권이 유린되고 있는 이들 북녘 시민을 관심 밖으로 밀어낸 것은 어떤 이유에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① 비전향 장기수들; 수십 년 모진 법적 형기를 채우고 석방된 이들은 모두 백발의 할아버지다. 법적 의무를 완수했기에 석방과 동시에 북녘 고향으로 송환돼야 마땅하다. 그러나 북녘 혈육의 품이 아니라 어디론가 창살 없는 감옥으로 내던져지고 말았다. 굳이 제네바 협정 조항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인도적 동포애 정신에 입각해서도 당연히 가고픈 북녘 고향으로 송환돼야 한다. 이미 전임 대통령들은 출소한 장기수들을 두 번이나 북으로 송환한 바도 있다. 이제 겨우 생존자가 20명도 안 된다. 가장 최근 장기수 한 분이 또 저세상으로 갔다. 29년 형을 끝낸 서옥렬 씨(91)다. 무연고자다. 광주 시민들 자체로 꾸린 ‘민족통일장’으로 치러졌다. “유골 돼서도 가족이 보고 싶어!”라 울부짖던 그는 끝내 북녘 두 아들을 만나지 못하고 가버렸다.

② 세상에서 가장 슬픈 비극의 여인, 김련희 씨(49); 북녘 땅 고향에 연로한 어머니, 의사인 남편, 그리고 젊은 딸을 둔 김 씨는 7년 전, 중국 친척집에 갔다가 탈북브로커의 꼬임에 넘어 입국하게 됐다. 도착하면서부터 속아서 왔으니 제발 북녘 고향으로 가겠다고 국정원에 통사정을 했다. 이게 화근이 돼서 그만 온갖 멍에가 그녀에게 들씌워졌다. 그녀의 기구한 운명의 사연이 점차 세계에 알려지게 된 것은 재미동포 신은미, 정기열 두 교수와 노길남 기자가 북녘 신 씨의 가족들과의 대담을 영상으로 내보면서다. 이윽고 미국을 비롯 세계 언론들이 비중 있게 김 씨의 기막힌 사연을 보도했다. 서울에선 권오헌 선생과 조순덕 여사가 발 벗고 나서서 “평양 시민 김련희, 조건 없는 송환”을 외치며 오늘도 청와대 앞과 광화문 광장을 누비고 있다.

③ 강제 집단 납치된 북처녀 12명; 2016년 총선을 딱 한 주일 앞두고 중국서 일하던 북 여종업원 12명이 국정원 주도로 납치됐다. 납치를 “자의에 의한 의거 탈북”이라고 유권자를 기만 오도하는 파렴치한 짓을 벌렸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총선에서 한국당은 패배하고 말았다. JTBC방송을 타고 납치공작의 전모가 까밝혀졌다. 세계 언론이 주목하기 시작했다. 전 지구촌의 큰 관심사로 떠올랐다. 드디어 국제 법률가 단체와 지역 법률가 연맹이 나서 ‘집단탈북조사단’을 꾸리고 남북을 오가며 본격 진상조사를 벌렸다. 서울에선 문전박대를 당했으나 평양에선 당국의 협조로 순조롭게 진상을 조사할 수 있었다. 이들의 최종 보고서는 “의사에 반한 납치 및 인권침해”로 규정했다. 또 이 보고서는 ‘유엔인권이사회’(UNHRC)에 제출된다.

북측도 나름대로  납치된 12처녀들의 송환을 위해 국제기구와 남북 대화를 통해 지속적 노력을 기울였으나 성과를 내지 못했다.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남북실무협상에서 남측이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제기하자, 북은 즉각 “12처녀의 송환 없인 이산가족 소리를 하지도 말라”고 일언지하에 거부한 바 있다. 미국 입맛에 맞추는 짓만 하는 ‘유엔인권위원회’도 방한해 진상조사 흉내를 내기는 했다. 그저 국정원과 입만 맞추고 달아났다.

정부 관계자들도 납치된 처녀들 또래의 자식들을 가진 부모가 아닌가. 어찌 부모 자식이 강제로 갈라진 엄연한 현실을 눈으로 직접 보고도 잔인하게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부모 자식 간 강제 생이별은 가장 잔인하고 악랄한 죄라질 않나. 우리 속담에 ‘천벌을 받는다’는 말도 있다. 문 정권은 ∆전임 정권의 두 번 비전향 장기수들의 송환과 ∆북측 당국이 북미 간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복역 중이던 미국간첩 3명을 전격 석방한 데에서 최소한의 교훈을 얻었어야 한다. 평양 시민 김 씨와 12처녀 납치 사건은 전임 정권이 벌린 짓이다. 문 정권과 무관하다. 멋있게 이들을 북녘 고향으로 송환하는 획기적 조치를 취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납치사건의 주범인 국정원은 지금도 납치를 부인, “의거 탈북”이라고 오리발을 내민다. 국제적 조소꺼리가 됐다. 지금도 국정원이 간첩을 조장하고 민간인을 사찰한다는 보도로 여론이 곱질 않다. 오리발을 내미는 국정원이기에 그게 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피눈물을 흘리며 고향을 그리고 있는 이들은 모두 북녘 시민이다. 이들을 붙잡아 두기보다 북녘 고향으로 보내주는 게 백 번 유리하다. 이들에게도 인권과 인도주의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누구의 눈치를 볼 성질의 것은 더 더구나 아니다. 지체 없이 이들을 북녘 고향땅으로!  촛불 정권의 진면모를 과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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