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읽는 것은 즐거운 일이나 그보다 더 마음이 끌리고 흥미로운 것은 역사를 만드는 데 참여하는 일이다 (네루)


 자화상
 -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저녁 강의가 끝나고 밖에 나오니 비가 쏟아진다. 허걱! 버스 정류장까지는 한참 먼데. 길가에 나서서 주위를 둘러보니 마침 택시 한 대가 ‘빈차’ 빨간 불을 켜고 서서히 오고 있다. 오! 손을 흔드니 앞에 와서 선다.

 너무나 기쁘게 택시를 타다보니 기사님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자연스레 몇 주 동안이나 나라 전체를 뒤흔든 조국 법무부 장관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그는 분노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더러운 사람이 법무부 장관을 해요?’ 자신은 전라도 출신이라면서 계속 민주당을 지지했단다.

 그는 ‘자신이 깨끗해야지 검찰 개혁을 제대로 하지 않겠어요?’라는 말을 계속 반복했다. 그러다 한숨을 쉬며 ‘조국은 앞으로 가족의 잇속만 챙기지 검찰 개혁은 전혀 하지 없을 겁니다.’로 말을 끝냈다.

 아, 이런 사람들이 참 많겠구나! 나는 그가 너무나 격앙되어 말을 계속하는 바람에 대꾸도 별로 하지 못했다.

 대학 2학년 봄이었다. 자신은 행정학과 학생이라며 내게 한 남학생이 다가왔다. 독서 모임에 가입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 모임에서 처음으로 ‘역사란 무엇인가- E.H 카’를 읽었다. 오! 역사가 현재와 과거의 만남이라니? 내게 그 때의 독서 체험은 엄청난 충격으로 와 닿았다.
 
 그 뒤 나는 처음으로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역사적 존재였다. 과거의 사실로만 알았던 역사는 내 삶에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존재’라고 말했다. 인간은 사회에 참여하여 자신의 삶을 구성해 갈 때 인간다운 삶은 완성된다는 것이다. 그는 한평생 자신이 몸담은 프랑스의 역사 속에서 살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 역사 속에 있는가? 왜 우리 사회는 이리도 살기 힘이 들까? 그 택시 기사도 좀 더 나은 사회를 바라다보니 ‘조국’에 대해 그리도 분노하는 것일 것이다.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점을 따져가다 보면 결국 우리의 뒤틀린 역사를 만나게 된다. 일본 제국주의의 우리나라 강제 점령. ‘해방’된 후에 미군정기가 시작되고 친일파들이 다시 득세하게 된다. 그 후손들과 그들에게 빌붙는 세력들이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을 형성하고 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지도층의 사회적 의무)’가 없는 세력이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다보니 모든 부문에서 불의가 자행된다. 사회 전체를 ‘각자 도생(나부터 살고 보자)의 사회’로 만들어 버린다.

 이런 역사를 바로잡자는 세력과 기득권 세력의 대격돌이 ‘조국’을 통해 표출되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각자 자신에게 물음을 던져야 하는 시대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물음을 자신에게 할 줄 모를 것이다. 우리 학교 교육의 오랜 파편적인 지식 위주 교육의 결과다. ‘역사’를 빼고 세상을 ‘선악(善惡)’으로만 볼 때 우리는 결국 기득권 세력의 꼭두각시가 되고 만다.  

 일제강점기에서 자라난 연희 전문 출신의 윤동주 시인은 어느 날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어릴 적부터 자신을 파평 윤씨라는 명문가의 후손으로 알고 있다가 그는 혈연을 넘어선 자신의 역사적 존재를 생각하게 되었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가 그대로 있습니다.//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그는 독립운동가의 길을 간다. 역사의 소리를 그는 외면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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