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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아들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은 일찍 죽는 것이다<연재>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258)
고석근  |  ksk21cc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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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04  09: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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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은 일찍 죽는 것이다 (사르트르)


 아버지 자랑
 - 임길택

 새로 오신 선생님께서
 아버지 자랑을 해보자 하셨다

 우리들은
 아버지 자랑이 무엇일까 하고
 오늘에야 생각해보면서
 그러나
 탄 캐는 일이 자랑 같아 보이지는 않고
 누가 먼저 나서나
 몰래 친구들 눈치만 살폈다

 그때
 영호가 손을 들고 일어났다

 술 잡수신 다음날
 일 안 가려 떼쓰시다
 어머니께 혼나는 일입니다

 교실 안은 갑자기
 웃음소리로 넘쳐흘렀다


 아마 임길택 시인이 새로 오신 선생님인가 보다. 탄광촌 아이들에게 ‘아버지 자랑’을 해보자 제안을 하셨다.
 
 아이들은 당황했을 것이다. 그래서 서로 눈치를 보며 키득거리며 속으로 ‘우리들은/아버지 자랑이 무엇일까 하고/오늘에야 생각해보면서’

 ‘그러나/탄 캐는 일이 자랑 같아 보이지는 않고/누가 먼저 나서나/몰래 친구들 눈치만 살폈다’

 아마 영호라는 아이는 평소에도 탄광촌의 아이답게 씩씩하게 어떤 어려운 상황에도 굴하지 않는 낙천적인 아이였나 보다.

 ‘그때/영호가 손을 들고 일어났다’

 ‘술 잡수신 다음날/일 안 가려 떼쓰시다/어머니께 혼나는 일입니다’

 ‘교실 안은 갑자기/웃음소리로 넘쳐흘렀다’ 

 아이들 눈에도 탄 캐는 일이 자랑스러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항상 탄가루가 가득 묻은 작업복에 거친 몸짓과 말투의 아버지가 안쓰러워 보였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가 ‘술 잡수신 다음날/일 안 가려 떼쓰시다/어머니께 혼나는 일’은 아이들 눈에 어떻게 보였을까?

 큰 덩치의 사내가 한 순간에 연약한 엄마에게 혼나는 개구쟁이 아이가 되는 기이한 광경. 자신들과 다를 바 없는 아버지의 모습. ‘평소의 모든 권위가 사라진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친구처럼 다가왔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는 진정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게 아닌가? 힘으로 남을 내리누르는 인간이야말로 얼마나 못난 인간인가!

 영호라는 아이의 농담조의 말에는 이 세상의 어떤 현자(賢者)의 말보다도 서늘한 진실이 담겨있지 않은가!        

 그래서 ‘교실 안은 갑자기/웃음소리로 넘쳐흘렀다’로 모든 아이들이 화답했다.

 이 아이들은 앞으로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날 것이다. 

 내게도 영호 아버지 같은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있다. 한글도 모르시는 아버지, 일제강점기 때 징용으로 일본에 끌려가신 아버지, 일생을 가난한 농투성이로 사신 아버지. 

 나는 초등학교 다닐 때 그런 아버지를 은근히 경멸했다. 명절 때 할아버지 댁에 가면 할아버지 방에는 고서가 가득했다. 의관을 정제하시고 꼿꼿이 앉아 책을 보시는 할아버지는 얼마나 멋있어 보였던가!

 가문을 일으키자!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원대한(?) 목표를 세웠다. 그래서 유약한 아버지 대신에 장남인 나는 남동생 세 명에게 독재자로 군림했다.

 돈이 없어 직장 생활을 하다 지방의 모 국립사범대학에 들어간 나는 동생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우리도 대학에 갈 수 있어! 학비가 없거나 싼 대학도 많아. 장학금도 많고, 직장 다니며 야간 대학에 가는 방법도 있고, 대학에 합격해 놓고 돈을 벌어서 가는 방법도 있어.’

 동생들에게 여러 방법으로 모두 대학에 가게 했다. 학비가 부족한 동생에겐 교사를 하며 대학원에 가기 위해 모아 놓은 돈도 서슴없이 주었다. 가문을 일으키는 게 나의 유일한 목표였으니까!     

 동생들이 잘 따라와 주어 다들 ‘계층 상승’을 했다. 나는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나의 이 모든 자부심은 전교조 활동을 하며 여지없이 깨졌다. 교육은 그게 아니었다. 오! 나는 망연자실했다. 내가 너무나 잘못했구나!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하 거야! 

 동생들 적성, 개성은 아예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잘 먹고 잘 사는 길로만 가게 한 내가 좋은 장남, 큰 형이라고 생각했다니!

 나의 교육관이 180도로 바뀌었다. 그 때 나의 큰 아이는 서너 살이었고 작은 아이는 막 태어났었다. 두 아이에겐 완전히 루소의 에밀의 교육철학에 입각해 길렀다.

 이제 성인이 되어 야성을 지니고 스스로 자신들의 길을 가는 두 아들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나는 자녀 교육에서는 진보와 보수, 수구가 다르지 않음을 무수히 보아왔다. 자유로운 교육을 얘기하는 진보 인사들이 자신의 자녀는 외고, 특목고에 보내고 남 몰래 고액 과외를 시키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유명한 진보인사들이 대체로 그랬다)

 왜 그럴까? 날카로운 지성과 따사로운 감성을 지닌 그들이? ‘부모’가 처음이어서 그럴 것이다. 나는 그들이 나중에 엄청나게 후회하리라는 생각을 한다. 부모는 자녀에게 평생 가슴에 남아 있다. 그들이 자랑스러운 부모로 남을 수 있을까?

 한국 전쟁 때 부모님이 피난 가셨을 때, 어느 빈집에 머물렀단다. 어머니가 빈집에서 쌀을 찾아내어 밥을 지었는데 아버지는 밥을 드시지 않으셨단다. 남의 쌀로 밥을 먹을 수 없다고. 그렇게 한평생 선하게 사셨다.

 내게는 큰 소리 한 번 치시지 않으셨다. ‘네가 잘해서 동생들이 잘한다.’ ‘너는 한 번 한다고 마음먹으면 꼭 하고 만다.’ 항상 나를 지지하고 격려해 주셨다.

 지금도 돌아가신 아버지의 목소리가 나를 당당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한다. 내 아들들에게 화가 날 때도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 화를 내지 않게 된다.
   
 임길택 시인은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나 보다. 하지만 대다수 아버지들은 자녀들에게 독재자가 아니었던가! 그런 아버지는 자녀들을 한평생 얼마나 힘들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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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보기(1)
굽은소나무 (qnseksrmrqhr) 2019-09-05 09:13:04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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