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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깃발 논쟁의 전망<기고> 유엔사와 유엔깃발 논쟁 (4)
이시우  |  siwoo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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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18  19:2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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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우 / 사진가

 

목차

1. 유엔사와 유엔기

2. 유엔기에 대한 법적논쟁

3. 유엔기에 대한 정치투쟁

4. 유엔깃발투쟁 시 북·미 전술분석
  1) 미국의 실패와 성공
     (1) 미국 발등 찍은 유엔총회
     (2) 안보리이관의 실패
     (3) 유엔에서 미국권위의 균열
     (4) 살라미전술의 성공
  2) 북의 성공과 실패
     (1) 유엔에서의 성공
     (2) 유엔사해체의 실패

5. 유엔깃발 논쟁의 전망
  1) 의제설정 무대
  2) 전제
  3) 전가
  4) 순서
  5) 배치

6. 결론

 

   
▲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 30일 비무장지대 올렛초소를 방문했다. 당시 올렛초소에는 유엔기를 비롯한 세 걔의 깃발이 게양되어 있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5. 유엔깃발 논쟁의 전망

1) 의제설정 무대

의제를 다룰 무대가 어디일 것인가가 우선 중요하다. 미국이 유엔사유신전략을 수립하기 시작할 무렵인 2013년 1월 14일 북은 다음과 같이 성명을 발표했다.

‘판문점에 아직도 유엔기발이 버젓이 걸려있는 것은 시대착오의 산물로서 유엔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유엔의 권위와 공정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도 《유엔군사령부》는 지체없이 해체되어야 한다... 룩셈부르그와 에티오피아는 《유엔군사령부》에 상징적으로 남겨두었던 자기기발까지 철수해갔으며 아직 기발을 철수하지 않은 나라들 가운데도 《유엔군사령부》에 자국의 참모성원을 한명이라도 상주시키거나 그 활동에 직접 간참하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주44)

‘판문점에 걸린 유엔기’는 1993년 부트로스 갈리의 유엔기사용취소논쟁의 기억을 다시 소환하기 위한 소재로 보인다. 이어 룩셈부르크와 에티오피아가 자국깃발을 유엔사에서 철수시킨 사실을 언급하며 깃발논쟁을 점화시켰다. 또한 유엔사해체를 ‘한국문제’로서가 아니라 ‘유엔문제’로 확장시킨 점이 주목된다.(주45)

유엔을 권력체가 아닌 권위체로 본다면 ‘유엔의 권위’란 유엔의 본질인 셈이다. 유엔사해체가 유엔문제로 정립되려면 유엔의 본질에 대한 대립·모순관계가 정립되어야 한다. 이에 ‘유엔의 권위 : 미국의 권력’이라는 대립구도를 명확히 했다. 이는 북이 유엔사해체문제를 오직 ‘한국문제’에서 ‘한국문제’ 와 ‘유엔문제’ 두 가지 경로로 추진할 수 있는 유연성을 확보했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는 달리 말하면 유엔사해체를 추동할 주체가 오직 북한만은 아니라는 의미도 된다. 유엔의 권위를 훼손한 미국패권에 문제를 제기하는 모든 나라·단체·개인으로 주체가 넓어진다. 유엔외교에서 북한이 유일하게 능동적·공세적으로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던 주제가 유엔사문제였다. 북핵이 유엔무대에서 최고의 제재와 공격을 받는 수동적·방어적의제인 점과 대비된다. 그러나 북핵은 평화협정체결과 주한미군철수를 위한 북·미 직접외교 틀에서는 능동적·공세적 의제이다.

이처럼 의제를 상정할 무대를 어디로 선택하는가에 따라 의제의 전개가 달라진다. 물론 유엔사가 미국사령부이므로 유엔사해체, 평화협정, 주한미군철수가 북·미 직접외교에서 일괄타결될 가능성도 있고 북은 물론 미국으로서도 외교비용의 절감이란 면에서 가장 이상적인 해결일 것이다. 75년 당시 북은 유엔무대에서 이러한 일괄타결을 시도했던 셈이다.

그러나 일괄타결은 의제자체를 분리되지 않게 집중상태를 유지하는데 만 많은 부담과 대가를 치러야 한다. 즉 실패가능성도 높아진다. 의제의 전제조건 즉 의제의 기원과 구조에 따라 현실적 해결가능성이 높은 무대를 선택하는 것은 성공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한편 미국은 75년 이래 이 문제를 총회에서 안보리로 이관하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하며 지연시키려는 의도이다. 그러나 안보리에서 유엔사해체문제가 다시 지연되면 2차 책임이 있는 총회로 넘어올 것이 명확하다. 만약 미국의 안보리이관의 목표가 지연이 아닌 조기해결에 있다면 안보리로 이관할 것이 아니라 미국이 해체를 결정하고 안보리든 총회든 보고만 하면 된다.

따라서 안보리 이관전략은 지연전략 임이 뻔하다. 따라서 유엔총회결의인 유엔사해체결의는 유엔총회에서 실행촉구결의를 추진하는 것이 이 문제의 전제에 가장 충실한 선택이 될 것이다.

2) 전제

하나의 의제가 정립되었다는 것은 반드시 전제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유엔기사용취소와 유엔사해체로 정립된 의제에는 전제가 있다.

우선 유엔기사용은 유엔깃발법을 법적 전제로, 유엔안보리의 유엔기사용승인을 정치적 전제로 하고 있다. 전자가 법이라면 후자는 권력으로, 법과 권력의 불일치로부터 대립이 발생했다. 따라서 유엔기사용승인 취소는 깃발법과 안보리결의의 대립관계가 전제로 작용한다. 유엔법에 의해 설립된 권력이 그 법을 위반한 셈이다.

안보리권력은 헌장에 의존해 있으면서도 헌장을 배제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대립관계에 놓인다. 유엔안보리가 1차 책임을 지지 않았으므로 총회가 2차 권한을 행사하여 그 위반을 바로잡았다. 이처럼 법위반에 대한 처벌이란 점에서 이 사건은 복잡할 게 없는 사건이었다. 즉 법에 의해 권력이 완벽히 통제되거나, 권력에 의해 법이 완벽히 통제된다면 대립될 이유가 없다.

유엔기사용금지는 유엔깃발법을 전제로 법적 권한을 가진 유엔사무총장이 결정하여 통보하면 된다. 즉 유엔에서 가장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여야 한다. 그러나 법대로 해결되지 않기에 문제이다.

유엔명칭사용 역시 유엔기만큼이나 유엔의 권위를 상징화·대상화한다. 유엔기에 대해서는 깃발법이 있지만 유엔명칭사용에 대해서는 명칭법이 따로 없다. 따라서 미국통합사령부의 유엔명칭도용에 대해서는 법이 없으므로 위반도 없다. 미국은 법의 틈새를 교묘하게 이용한 것이다. 법의 틈을 보완하기보다 법의 틀 밖에서 법을 이용했다는 점에서는 이 역시 법-권력의 대립관계 위에 놓여있다.

미국통합사령부창설결의 과정에서 ‘유엔’명칭사용을 반대한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이었으며 미국의 강력한 주장에 의해 미국사령부로 결정된 점에 주목하면 안보리결의에서 미국사령부와 유엔사령부를 혼동할 어떤 이유도 없었다는 것이 확인된다. 유엔명칭사용이 문제가 되는 것은 미국이 유엔의 권위를 도용했다는 점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안보리결의가 미국의 조치가 아니라 유엔의 조치인 것처럼 보이게 했고 지금까지 참전국들은 유엔의 조치로서 자신들이 참전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미국통합사령부가 유엔의 정식군대이든 보조기관이든 유엔조직임을 입증해야 한다. 미국은 수없이 이 입증을 시도했다. 그러나 유엔의 공식기관인 유엔사무총장 명의로 수차례 유엔사란 이름을 쓰는 이 조직이 유엔조직이 아님이 확인되었고 미국은 이에 대한 반증에 실패했다.

유엔사가 유엔조직이 아니라는 사실은 유엔공식기관에 의해 법적근거를 갖지만 미국의 주장은 주장일 뿐이다. 미국이 유엔사문제에 들어오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따라서 유엔명칭도용을 중지시키는 유엔의 법적조치가 시도되어야 한다.(주46)

다음으로 1950년 10월 7일 총회결의가 만든 전제에 대해 살펴보자.
이 결의의 가장 중요한 대목은 38선 이북지역을 한국의 영토가 아니라고 확인한 대목이다.(주47) 그리고 이 결의에 의해 소집된 10월 12일 한국관계소위원회 회의에서는 다음 사항이 권고된다.

‘...유엔군에 의하여 점령되어 있는 한국지역의 민간행정에 대한 모든 책임을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이 이 지역에 행정을 고려하게 될 때까지는 통합군사령부가 임시로 담당할 것을 권고하고, 통합군사령부가 본 결의에 의거하여 민간행정을 위하여 설치된 모든 기관과 주한통합군사령부 휘하의 수개 유엔회원국 군대로부터의 장교와 협력하기 위한 조속한 조치를 취하도록 건의하고...’(주47)

북한지역에서 언커크(UNCURK)에 의한 민정이 실시되기 이전까지 유엔사령관에게 점령통치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유엔사령관이 이 결의에 의해 북한점령통치권을 수여받았다는 주장은 북한점령을 전제한 작전계획들의 법적근거로 이용되고 있다. 또한 1954년 11월 17일 38선이북-군사분계선이남에 대해 주권이 아닌 행정권만을 한국에 이양하는 법적근거로 이용되었다.(주48)

이는 유엔사가 한국헌법과 정면충돌하는 묵과할 수 없는 반국가단체임을 드러낸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점령통치문제는 유엔문제와 주권문제의 직접대립을 정립했다. 유엔자체내의 법과 권력의 대립관계에서 권력이란 미국의 권력 즉 패권이다. 미국 말고 유엔헌장의 밖에 있을 수 있는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 유엔문제와 주권문제는 약소국인 남한과 북한의 주권을 의미한다. 즉 유엔헌장의 적용범위를 넘어서는 국내문제, 국내권력에 대해 유엔이 개입하여 침해했음을 의미한다. 유엔은 국제기구로서 국가 간의 문제만을 다룰 뿐 국내문제는 유엔의 범위 밖에 있다. 유엔이 국내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헌장2조 7항에 명시된 유엔안보리의 헌장7장에 의한 군사적강제조치가 결정된 경우뿐이다.(주49)

그러나 미국은 안보리도 아닌 총회를 통해 국내문제에 개입한 것이다. 이는 북한주권만이 아니라 한국주권에 대한 침해이다. 결국 이 문제도 유엔내의 법-권력 대립관계로 귀착된다. 따라서 유엔총회에서 언커크가 해체된 것은 법-권력의 대립에서 권력측의 근거를 해소하고 유엔법의 권위를 정립한 결정이었다.

문제는 언커크의 북한점령통치권을 위임받은 유엔사는 해체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미국패권의 입장에서 보면 유엔을 통해 남북한 주권에 바로 개입할 수 있는 통행증을 얻은 셈이다. 즉 유엔의 외부문제를 유엔의 내부로 끌어들여 유엔내 법-권력대립관계를 더 복잡하고 예리하게 대립시킨 것이다. 따라서 유엔기-유엔명칭-유엔사점령권-유엔사해체의 전제가 더욱 종합적이고 본질적인 수준으로 심화발전된 것이다.

3) 전가

전제는 주체의 실천에 의해 새롭게 규정되고 규정은 차이와 대립과 모순을 낳는다. 미국은 전제를 부정하거나 전제를 변경함으로써 문제를 회피하거나 다른 문제에 전가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불일치가 발생하고 갈등이 발생한다. 불일치가 해소되지 않고 전가되면 이는 대립과 모순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모순은 양극 중 한극이 소멸되어야 비로소 해결되는 관계이다.

미국이 유엔기를 내리고 유엔명칭사용을 포기하고 미국통합사령부란 이름만을 사용하겠다고 하며 문제의 본질을 다른 문제로 전가시킬 수 있다. 즉 통합사라고 해서 유엔안보리 결의에 의한 권한위임이 부정되진 않는다는 논리를 내세울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미국이 취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전술이다. 미국이 그렇게 프레임을 변경하여 하나의 문제를 다른 문제로 전가하면, 문제는 해결되는 게 아니라 더 본질적인 대립으로 심화된다.

즉 이번엔 미국통합사령부의 조치가 유엔의 조치인가가 문제시된다. 일련의 안보리결의에 따른 미국과 참전국의 조치는 각국의 조치일 뿐 유엔의 조치가 아니다.(주50) 유엔헌장 39조의 ‘권고’는 평화적 해결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그것은 군사조치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즉 ‘군사조치를 권고’한다는 말은 유엔헌장에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켈젠과 함께 스톤 역시 헌장 39조 규정에 “국제평화 및 안전의 유지 또는 회복을 위하여 권고한다”는 것은 평화적 수단을 권고하는 것을 의미하며 강제조치에 대한 권고는 포함하지 않으므로, 6월 27일의 결의에서 안보리가 가맹국에 한국에 대한 군사원조 등을 권고한 것은 헌장에 입각한 결의가 아니라는 것이다.(주51)

이 역시 유엔헌장과 안보리결의, 법과 권력사이에서 불일치가 발생한다. 이러한 불일치를 시정하려는 노력의 결과가 75년 유엔총회에서의 유엔사해체결의이다. 그러나 75년 이래 미국이 회원국으로서의 실행의무를 다하지 않고 왜곡·기만했다는 점과 유엔총회가 미국의 약속실행을 강제할 조치와 수단을 동원하지 못했다는 점이 이 사건의 새로운 전제를 구성한다. 문제의 전가는 해결이 아니라 모순의 심화를 가져올 뿐이다.(주52)

여기서는 미국의 기만이 초래한 결과만을 살펴보자. 75년 미국이 유엔사해체를 위해 내건 전제조건은 정전협정의 유지였다. 즉 평화협정체결 반대가 아니라 평화협정체결시까지의 정전협정유지였다고 봄이 타당하다.

75년 당시 미국이 제출한 결의안의 숨은 의도는 북의 평화협정주장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드러낼 수도 없었고 드러내지도 못했다. 왜냐하면 정전협정유지라는 고착적 주장만 했지 정전협정유지가 어떻게 평화협정반대가 되는지 그 맥락을 설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전협정의 목적인 평화와 안정의 유지는 평화협정의 정립을 통해 더 잘 충족되므로 이내 자기논리의 함정에 빠지고 만다.

정전협정 유지는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 현재의 상태이므로 새로운 전제를 제시한 것도 아니다. 따라서 전쟁이 나거나 평화협정이 체결되기 전까지는 언제 어느 시점에서나 정전협정은 유지되고 있을 것이므로 바로 그 상태가 유엔사해체의 최적상태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북의 다음과 같은 입장에 대해 미국은 속수무책이 되고 마는 것이다.

‘조·미쌍방이 수십년간 정전상태를 효과적으로 관리해오고 있는 현실은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하지 못할 리유가 더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주53)

미국이 내세운 전제조건은 사실은 아무런 전제도 아닌 셈이다. 따라서 미국의 의도야 어떻든 75년 이후 45년 동안 유엔사해체 약속을 지연시키고만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이러한 지연전략 이 가능한 것은 법의 원리가 아니라 힘의 원리를 적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의 대상화· 상징화로서의 법은 이제 권력의 현실을 반영할 수 있는 매개로서의 지위를 잃고 단순한 형식으로 전락해 간다. 미국패권의 매개수단이었던 법이란 형식이 벗겨지며 날것으로의 권력만 남게 된 것이다. ‘법 : 권력’의 대립관계가 ‘권력 : 권력’의 대립관계로 심화된 것이다.

4) 순서

전제하기와 정립하기의 시간적 전개가 순서이다. 정립된 순서는 고착되거나 고정불변의 순서가 아니다. 결국 규정된 순서일 뿐이다. 순서를 규정해야 그로부터 다양한 측면의 부정과 반발을 고려할 수 있고 본질로 나아갈 수 있다.(주54)

순서가 규정되어 있지 않으면 현상의 대응에 매몰되어 길을 잃을 수 있다. 유엔사해체의 전제에서 유엔문제가 아닌 해당국의 주권문제는 외적요인으로 유엔사와 주권의 불일치·갈등을 노정하기에 주권국민들에게 1차적 자극을 제공한다. 그리고 운동의 측면에서 그것은 적극 활용할 요소이기도 하다. 즉 1차적 순서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외적요인으로 내적요인을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따른다. 이들 외적요인은 계기이지 본질은 아니다.

그러나 유엔기사용승인취소나 유엔명칭도용금지는 직관적이고 감성적이며 1차적 순서의 대상이 될 뿐 아니라 유엔문제의 내적요인과 본질의 한 측면을 구성한다. 즉 낮은 수위라도 유엔법과 권력의 대립관계를 내포하고 있는 깃발문제나 명칭문제는 본질적 계기를 구성한다. 당연히 이러한 계기가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유엔이란 무대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부득이 주권적 계기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주권적 계기는 살라미전술에 의해 본질로 발전되는 길이 차단·왜곡될 가능성이 더 많다.

유엔무대에서 다룰 때도 깃발과 명칭은 계기적 의미만 있다. 지난 경험에서 보듯이 미국은 깃발문제와 유엔사 해체문제를 분리시켜 역공을 취했다. 외적인 요인들도 유엔법과 권력의 대립관계내로 끌어들여 통합시킬 수 있다면 본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어쨌든 유엔사해체를 집중된 의제로 설정하고, 유지하고, 강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의제의 집중을 방해하고 분산시키려는 시도에 대해 때론 단호하고 때론 유연하게 차단·저지하는 것이 순서를 주도하는 길일 것이다. 순서가 있어서 그 길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그 길을 감으로써 순서가 생기는 것이다.

평화협정과 주한미군철수는 유엔사해체와는 다른 전제를 갖는다. 평화협정과 주한미군철수는 북·미간 적대관계를, 유엔사해체는 유엔법·권력간 불일치를 전제로 하고 있다. 평화협정과 주한미군철수문제를 유엔에서 다루는 것은 별효과가 없음이 확인되었다.

논리적으로는 평화협정체결과 북미수교가 된다면, 그리하여 적대관계가 정치적으로 해소된다면 북은 핵을 가지고 있어도 되고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시키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간의 북·미가 이룩한 관계의 질로 볼 때 그것은 이론적 가능성일 뿐이다.

북·미간 핵·평화협상에서는 주권문제가 본질을 이루며 유엔문제는 오히려 외적요인이 된다. 북의 입장에서 추론해 보면 유엔사해체를 통해 주한미군철수나 평화협정으로 나아가는 순서는 잘못된 순서이다. 유엔도 결국은 주권에 기반함으로 현재 국제체계에서 가장 본질적인 관계는 주권체계이다. 미국의 주권이 패권이 될 수 있는 것은 세력균형체계와 유엔체계를 융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이 아닌 나라가 주권-동맹-유엔을 융합시키는데서 미국을 압도하진 못한다.

따라서 대미관계는 ‘주권 : 패권’이 본질이며, 미국의 패권을 구성하는 동맹과 유엔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도록 대못을 박아놓고 미국과 ‘주권 : 주권’으로 상대하는 구도를 만들 때 북으로서는 승산이 있을 것이다.

75년 당시 미국의 입장이었던 정전협정 유지하에서의 유엔사해체가 재확인된다면 유엔사해체가 우선순위가 될 것이나 평화협정을 지연시키기 위한 전술로 이를 활용한다면 북은 굳이 유엔사해체를 앞 순위에 놓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북은 평화협정체결과 주한미군철수에 집중할 것이므로 유엔사해체는 유엔사참전국과 관련국의 국가·단체·개인이 주체로 나설 공간이 존재한다. 이처럼 의제설정의 무대가 다르고 분리된 채 병렬적으로 추진되는 순서는 순서간의 배합과 배치가 문제된다.

5) 배치

두세 개의 순서가 동시 진행되거나, 순서가 병립할 때는 배합과 배치가 문제된다. 순서가 시간적 조합이라면 배치는 공간적 조합이다. 주한미군철수와 평화협정체결은 북한자신을 대체할 다른 대안이 없고 의제의 집중화란 차원에서 주한미군철수든 평화협정체결이든 하나의 의제만 관리해나가기도 만만치 않은 상황일 것이다.

그러나 유엔사해체는 북한만이 아니라 유엔문제의 주체로 나설 수 있는 세력들이 존재한다. 이들 세력이 북한만큼 절실하게 이 문제를 다룰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대미관계에서 의제의 집중화를 유지하기 위해 유엔문제를 분담할 세력이 있다는 점이 북에게도 불리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유엔깃발승인취소, 유엔명칭사용금지, 유엔사해체등을 유엔문제로, 주한미군철수와 평화협정체결을 북한의 주권문제로 분리할 수도 있고, 병행추진할 수도 있다. 즉 두 개의 경로가 성립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세의 발전에 따른 의제의 배치와 배합의 문제가 중요해진다.

물론 이러한 분리병행전략은 북한이 싸워왔던 의제가 세계적 호응을 받는다는 점에서는 북을 이롭게 하는 것이지만 배가 산으로 가는 상황이 발생해 북의 통제를 벗어난다면 북에게 매우 불리할 수도 있다. 북을 이롭게 할 목적으로만 유엔문제가 다루어지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비이락은 우연적 관계이지 필연적 관계가 아니다. 당연히 각국이 처한 이해관계로부터 출발하기에 주권문제와 유엔문제의 배합이 필요하다. 의제의 순서정하기와 의제 간 배치에는 우선 해당의제의 한계가 정확히 계산되어야 한다.

우선 유엔문제의 한계를 살펴보자.
강대국간 세력균형체의 성격을 갖는 유엔안보리는 거의 약소국을 대상으로 하기에 결의의 실행을 강제할 수단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집단안보체의 성격을 갖는 총회는 ‘권고’만 할 수 있기에 물리적으로 강제할 수단이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물리적 제재대신 법적정당성과 세계적 여론을 궐기시키는 경우에는 강대국이라도 압박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같은 여론은 해당국가의 권위와 위신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강대국일수록 권력 못지않게 권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엔 특히 유엔총회는 권력체이기보다 권위체로서의 성격을 갖기에 권위와 위신의 상실에 목표를 맞춘다면 강대국의 유엔결의위반이나 불이행에 대해 일정한 외교적 압박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권위와 위신의 유지를 포기한 국가들에 대해서는 압력이 될 수 없다.

다음으로는 유엔문제의 외적요인으로서 주권에 의한 강제력행사의 한계를 살펴보자.
유엔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국가권력이 물리적 조치를 취하는 방법이 있다. 최근 대북제재의 경우 미국이 캐나다를 움직여 해양에서의 불법선적을 감시하도록 예산을 지출하도록 한 바 있다. 캐나다의 이러한 조치는 캐나다의 조치일 뿐 유엔의 조치가 아니다. 그러나 유엔의 밖에서 유엔결의의 집행을 보조한다.

북의 경우 정전협정 무효화, 군사정전위 해체 후 판문점대표부 설치 등 주권을 이용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유엔사에 압박을 가하는 조치이다.

그러나 유엔사관련국 특히 한국과 일본에게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주체가 바뀌면 관계가 바뀌고 관계가 바뀌면 지위와 역할이 바뀐다. 유엔사문제는 북이 처리하기엔 복잡하고 영향력도 미미하지만 한국이나 일본이 결단할 땐 직접적이고 치명적이다.

주권차원에서 보면 본질적으로는 북한문제가 아닌 한국문제인 것이다. 유엔사/연합사 동시해체를 통해 전작권을 환수 받으면 유엔사는 해체에 가까울 정도로 위축된다. 몇 가지 법적 문서만 정비하면 된다. 1954년 유엔사령관에게 한국군의 작통권을 이양한 한미합의의사록 2항을 폐기하여 법적문서로 남기고, 연합사해체를 통한 전작권 환수와 함께 유엔사의 전작권도 완전히 소멸된다는 것을 확인하는 문서 한 장만 있으면 된다.

그럼 국방부가 밝혔듯이 한국은 유엔사회원국이 아니다. 그리고 유엔사회원국이 아니기에 유엔사에 참여할 필요가 없고 유엔사가 만들려는 다국적군들과 행정협정(SOFA)이나 방문국지위협정(VFA)를 체결하지 않아도 되고, SOFA나 VFA가 없으면 다국적군의 방문과 주둔은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한국정부가 밝힌 입장대로 법적 조치만 취하면 유엔사 강화를 물리적으로 봉쇄할 수 있다.

유엔군사령부에 작통권이 없다는 것은 군조직이 아니란 의미이기도 하다. 정전관리업무는 경찰도 할 수 있는 행정업무이고, 유엔사회원국들과의 연락유지업무는 외교업무이다. 9.19 남북군사보장합의서를 통해 남측은 정전업무를 실질적으로 이양받은 셈이다. 이를 유엔사와 법적으로 정리하면 유엔사에겐 자기역할 축소라는 압박이 될 수 있다.

또 1954년 11월 17일 38선 이북-군사분계선이남지역의 행정권만을 이양한 유엔사 한국정부간 합의서를 폐기하고 완전한 주권의 이양을 법적으로 완결짓는 것도 유엔사에 가하는 주권의 압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이 가할 수 있는 최대의 타격은 유엔사로부터 전작권을 법적으로 완전히 환수하는 것이다. 유엔문제가 아닌 한국문제로 작동하는 영역은 바로 이 지점이다.

또한 일본의 ‘요시다-애치슨 교환공문’과 그에 기반한 ‘유엔사-일본정부간 행정협정(SOFA)’의 폐기가 추진된다면 이 역시 유엔문제의 밖에서 주권이 가하는 외적압박요인이 될 것이다. 또 16개 참전국과 5개 의료지원국이 유엔의 조치가 아닌 각국의 조치로 유엔사에 참여할 경우 북한과 개별적인 교전국이 된다. 이들 국가와 국민들이 북한과 교전국이 되는 것을 거부하며 유엔사참여와 자국의 작전통제권을 유엔사에 이양하지 않는다는 운동이 조직될 수 있다.

이들 주권차원의 조치는 유엔문제의 관점에서는 외적요인이 되겠으나 외적요인의 양적 축적이 내적요인, 즉 질의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한국과 일본의 주권적 권력이 유엔법을 압도하는 상황이 되면 유엔문제가 외적요인이 되는 전도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엔문제에서 주권문제는 외적요인이다.

유엔차원과 주권차원의 한계가 계산되었으면 이를 어떻게 배합배치 할 것인가하는 마지막 문제가 남는다. 이는 유엔깃발논쟁의 주체들이 배합과 배치의 황금비율을 찾는 문제가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숙제는 주체들의 몫으로 남긴다.

6. 결론

유엔깃발논쟁이 재점화된다는 것은 유엔차원과 국가차원의 의제설정, 의제순서정하기, 의제배치하기의 과학을 통해, 의제집중화와 의제현상화, 그리고 마침내 현상변경에 이르는 일련의 정치일정이 시작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북·미는 핵·평화협상에 집중하는 모양이다. 여기서 유엔은 외부요인이다. 그러나 유엔사해체는 유엔문제가 본질이다. 의제를 다룰 틀이 다르기 때문에 의제의 발전과 전개과정도 다르다. 유엔사해체 문제는 결과적으로 북에 이익이 되겠으나 이 문제의 본질적 전제는 유엔의 법-권력간 대립관계에 있고 이를 해소하는 것이 목표이다. 이는 유엔헌장에 의해 미국패권의 남용을 단죄함으로써 유엔의 권위를 다시 세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유엔사참전국들이 유엔의 조치가 아닌 미국의 조치에 기만되어 북과 개별적으로 교전국가가 되는 것을 막는 것도 국제평화의 유지와 평화의 파괴를 예방하는 데에 중요하므로 이 역시 유엔내부의 본질적 문제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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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44) <노동신문> 2013. 1. 14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132

45) 북은 유엔가입 직후 유엔외교를 다시 강화했다. 1993년 10월 5일 송원호 북한 외교부부부장은 제48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유엔은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새로운 평화보장체계를 수립하는 문제에서 자기의 응당한 역할을 하여야 한다”고 말하였다. 1994년 6월 김영남 외교부장이 갈리 사무총장에게 보낸 편지 등을 통해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대체 및 유엔군사령부 해체 등을 위해 유엔이 주도적으로 나설 것을 요구하였다. (서보혁, 「북한의 평화제안 추이와 그 특징」,『북한연구학회보』13권1호, (북한연구학회, 2009), pp.68-69) 그러나 위 성명은 유엔이 다루어야 할 한국문제가 아니라 바로 유엔문제라는 인식을 보여줌으로써 유엔의제화 시켰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46) 북은 1996년 4월 11일 유엔사무총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유엔은...최소한 미국에 의해 도용되고 있는 이름과 깃발이라도 구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A/51/98. S/1996/270. 11 April 1996, p.6

47) A/Res/376(V) THE PROBLEM OF THE INDEPENDENCE OF KOREA, 7 October 1950

48) The Administration of the Territories Occupied by the United Nations Forces (October 12, 1950. Y.H.Chung, ed. The United Nations and the Korean Question (Seoul: The U.N. Association of Korea, 1961), pp. 186-189; 박명림,『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Ⅰ(서울: 나남, 1997, 2쇄), pp.569-570

49) 이시우, 「유엔사 군사관할권의 실상」, (민중당전문가토론회자료집, 2018,5,14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실); http://www.leesiwoo.net/?p=7764 (2019.7.28.검색)

50) 유엔헌장 2조7항: 이 헌장의 어떠한 규정도 본질상 어떤 국가의 국내 관할권 안에 있는 사항에 간섭할 권한을 유엔에 부여하지 아니하며, 또는 그러한 사항을 이 헌장에 의한 해결에 맡기도록 회원국에 요구하지 아니한다. 다만, 이 원칙은 제7장에 의한 강제조치의 적용을 해하지 아니한다.

51) 이시우,『유엔군사령부』, (파주: 들녘, 2013), pp.496-498

52) Julius Stone, Legal Controls of International Conflict (New York: Rinehart & Company Inc., 1954), pp.234-235

53) 김종기, 「마르크스의 변증법에서 모순의 객관성」,『시대와 철학』6권2호, (한국철학사상연구회, 1995), p.237 참조

54) <노동신문>, 2013.1.14. ;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132

55) 하나의 규정은 오직 피정립성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이것은 이중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 되는바, 즉 여기서 그 하나의 규정은 현존재와 본질이라는 두 측면에 다같이 대립되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앞의 경우를 따른다면 현존재는 피정립적 존재로서보다는 좀 더 고차적인 것으로 간주될뿐더러 또한 이 피정립적 존재는 외적반성에 해당하는 주관적인 것에 속한다고 하겠다...그런데 피정립성이란 것은 아직도 반성규정에 다다르지 않는 한낱 부정성 일반으로서의 규정성에 지나지 않는 것이긴 하지만 그러나 이제 정립하는 것은 외적인 반성과 통일을 이루고 있는가 하면 바로 이러한 통일 속에서 외적반성은 절대적 전제를 마련한 셈이 된다. (헤겔, 임석진 역,『대논리학Ⅱ󰡕, (서울: 지학사, 1989 3판), p.4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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