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소미아를 먼저 걷어찬 것은 일본

지난 7월 1일 아베 일본 총리는 한국에 대한 경제공격을 시작했다. 첫째는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핵심 재료와 부품 등 세 가지에 대한 사실상의 수출 금지다. 금수 조치된 셋 중에서 두 개는 그동안 90% 이상 일본에서 수입했던 것으로, 그만큼 치명적 타격을 노렸다. 둘째는 같은 날 일본 경제산업성이 자국의 수출무역관리령을 개정하겠다고 예고한 것이다. 한국을 일본의 안보상 우호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 수출 규제 품목을 대폭 확대함으로써 우리 산업 전반을 무차별 타격하겠다는 선전포고였다.

7월 3일 아베 총리는 한국에 대한 경제공격과 관련, “약속을 지키지 않는 국가에는 우대 조치를 취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례로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위안부 합의 관련 사항을 나열했다. 이로써 그는 한국에 대한 경제공격이 일제의 만행에 대한 우리의 정당한 요구에 보복하는 것임을 자인했다.

평소 한미일 관계를 강조하던 미국은 어떤 입장일까? 7월 11일부터 14일까지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일본을 방문해서 외무성과 방위성, 국가안보회의(NSC) 고위당국자들과 만났다.1) 일본의 경제보복에 따른 한일 갈등과 관련, 그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재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2) 일본이 먼저 때리고 한국이 부당하게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에서 ‘중립’은 가해자의 손을 들어준 것과 같다.

일본의 자신감은 한층 커졌다. 다음 날인 12일 도쿄에서 열린 한일 국장급 1차 실무회의에서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겠다고 통보했다.3) 일본에 이어 15-16일 필리핀을 방문했던 스틸웰 차관보는 17일 서울에서 청와대, 외교부 관계자들과 만난 후 약식 회견을 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한국과 일본은 민감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조속히 해법을 찾길 희망한다”고 말했다.4) 일본에서의 발언을 되풀이 한 것이다.

그로부터 이틀 후인 19일 트럼프 미 대통령은 한일 갈등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관여 요청이 있었다면서 한일 양쪽에서 요청이 있으면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5) 가해자인 일본이 미국의 ‘중재’에 동의할 마음이 없으므로, 하나마나한 소리를 한 것이다.

8월 2일 아베 내각이 각의를 통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할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전날인 1일 태국 방콕에서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고노 다로 일본 외상이 참여한 <미-일-호주 전략대화>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갖고 한일 갈등에 대한 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이날 고노 외상과 만나 몇 분간 따로 대화를 나눴다고 밝히며 미일 사이에 한일 갈등에 대한 의견 교환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한국과 일본 사이를 중재하거나 서로에 대한 보복 조치를 동결하라고 요청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미국은 한일 양국이 함께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스스로 찾을 것이라고 매우 희망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6) ‘중립’을 다시 확인해준 것이다.

8월 2일 오전 10시 20분 아베 내각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각의 결정을 강행했다. 그리고 당일 오후 태국 방콕에서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이 열렸다. 여기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일본 정부의 보복조치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중단할 수 있다는 방침을 밝혔다.7) 일본의 경제공격을 철회시키거나 약화시키기 위해 한국이 거의 유일하게 활용할 수 있는 카드를 마침내 꺼내든 것이다. 이번에도 미국은 ‘중재 의향 없음’ 입장을 유지하며 여전히 ‘중립’을 지킬까?

아니다. 8월 9일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한국을 방문했다. 같은 날 그는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8) 이어 그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의 유지 필요성을 강조했다.9) 아베 총리가 우리 경제를 향해 발길질에 주먹질을 날리는데 우리가 들어 올리려는 방패를 빼앗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지소미아 폐기 의사를 통보하는 만기일은 8월 24일이다. 그 이전에 지소미아 카드로 일본을 압박, 협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려도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 불투명한 판국에 미국이 아예 재를 뿌리고 있다.

우리가 일본에 비해 중국이나 북에 지리적으로 가깝다. 그곳에서 시험 발사하는 탄도미사일 관련 정보를 우리가 일본보다 훨씬 먼저 파악하는 것이다. 단 몇 초 만에 일본 상공에 도달하는 그 미사일 정보를 우리가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것은 그들 안보에 필수적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한국을 안보 우호국에서 제외했다. 동아시아 안보역학에서 일본이 가장 목말라하는 것 중 하나인 지소미아를 먼저 걷어찬 것이다. 그렇다면 목이 말라봐야 한다. 그래야 우물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이 땅을 식민지로 타고 앉아 온갖 고난과 모욕을 강요하고도 오히려 경제보복에 나서는 아베의 일본이 진정으로 반성하는 날, 일본이 자국 안보를 위해 우리에게 요청하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주>

1) 통일뉴스 2019.07.10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한.일 등 4개국 순방>

2) - 3) 머니투데이 2019.7.14. <추가보복 예고한 日…이번주 ‘한일전쟁’ 최대 분기점(종합)>

4) 한겨레 2019.7.17. <미 차관보 “한일 민감한 문제 해법 찾길 희망…미국은 지원할 것”>

5) 연합뉴스 2019.8.10. <트럼프, 한일갈등에 "매우 곤란한 입장…한국과 일본 잘 지내야">

6) 동아일보 2019.8.2. <관여 방식 말 아낀 폼페이오 “한일 스스로 길 찾기를 바란다”>

7) 연합뉴스 2019.8.3. <강경화, 한미일회담서 “지소미아 재고” 천명…폼페이오 즉답안해>

8) 조선일보 2019.8.10. <트럼프 "김정은 친서 받았다, 韓日 잘 지낼 필요있다">

9) 동아일보 2019.8.10. <에스퍼, 文대통령 만나 방위비 인상 거론>

 

 

전 한국진보연대 집행위원장

전 6.15남측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전 반전평화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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