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것이 인생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결합이 있는 곳에 기쁨이 있다 (괴테)

 
 삶
 - 황인숙

 왜 사는가?
 왜 사는가.......

 외상값.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의 주인공 로캉탱은 다른 사람들을 사물처럼 대하며 외로이 살아간다. 당연히 이러한 삶은 ‘인간의 조건’에 맞지 않기에 그에게는 항상 우울과 권태가 뒤따른다.

 그렇게 ‘시간 죽이기’를 하며 살아가던 그는 어느 날 해변에 갔다가 우연히 조약돌을 손에 쥐게 되고, 그 순간 그는 구토를 느낀다. 자신의 무의미한 삶을 무의식중에 자각한 것이다. 

 자신의 삶을 선택하지 못하고 세상에 맞춰 하나의 도구처럼 살아가는 사람은 반드시 한번쯤은 구토를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내게 구토는 30대 중반에 왔다. 빈농의 장남이라는 확고한 정체성으로 오랫동안 살아오던 한 가정의 가장이던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이 다르게 느껴졌다. 어떤 사상, 철학을 떠올려도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모든 게 시들했다.

 어떻게 할 수 없는 깊은 절망감. 지금까지 나를 살아가게 하던 모든 가치관, 기준이 다 흔들렸다. 나의 하늘이 흔들린 것이다.  

 그 절망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다 나는 무작정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나와 ‘삶의 바다’에 몸을 내던졌다. 아내는 그때의 내 표정을 말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하지 않으면 뭔가 잘못될 것 같았어.’
 로캉탱은 카페에서 흑인 가수의 노래 ‘언제나 가까운 날에’를 들으며 구원의 실낱  같은 희망을 찾게 된다. 그 노래는 이미 죽은 작곡가를 넘어 가수와 듣는 사람들에 의해 되살아나고 있다.

 그는 파리로 떠날 결심을 한다. ‘소설을 쓰자!’ 자신의 소설도 누군가에 의해 부활하리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나의 ‘삶의 의미’는 내가 다른 사람을 만나 만들어진다. 나의 어떤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그것은 다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망 속에서 중중무진(重重無盡) 인연의 꽃으로 피어난다. 내가 남편인 건 아내가 있어서 이고, 아빠인 건 아들이 있어서 이다...... .  
 
 나는 글쓰기와 강의를 통해 이런 신비로움을 느낀다. 내 글이 어떤 사람의 영혼과 만났다고 느꼈을 때 무한한 삶의 경외감에 휩싸인다. 강의 시간에 수강생의 어떤 질문이 한순간에 내 온 몸을 전율케 할 때가 있다.

 사람과 사람의 맞부딪침! 이것이야말로 모든 삶의 비의(秘儀)다. 인간은 인간에 의해 지옥이 되기도 하고 천국이 되기도 한다. 인간을 떠나서는 인간에게 아무것도 없다. 아마 삼라만상의 본질이 그러할 것이다.     
 
 어느 날 황인숙 시인은 묻는다.

 ‘왜 사는가?/왜 사는가.......’

 그러다 화들짝 깨닫는다.

 ‘외상값.’ 

 오! 외상값이야말로 얼마나 절박한 인간의 맞부딪침인가!

 동네 슈퍼였을까? 어제의 과음으로 겨우 몸을 추스려 라면을 사러 슈퍼까지 왔는데, 눈에 번득 뜨이는 라면을 골랐는데, 아뿔싸! 지갑이 없다! 

 그때의 절박한 얼굴과 슈퍼 주인의 무표정한 얼굴의 만남! 그 불꽃 튀는 순간, 라면을 들고 오던 그 황홀한 순간을 어찌 잊으랴! 이것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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