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 강제징용노동자상이 13일 대전 평화의 소녀상이 위치한 대전시청 북문 건너 보라매공원에 건립됐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우리는 일제에 의해 강제 징용되어 혹독한 노역과 지옥같은 삶을 겪어야 했던 민족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겠습니다. 참혹했던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역사정의를 바로 세워 평화와 번영, 통일을 앞당기기 위하여 대전시민의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웁니다.”

대전 강제징용노동자상에 새겨진 비문이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대전에서도 강제징용노동자상이 건립됐다.

13일 오전 10시 대전시청 북문 건너 보라매공원에 자리잡은 ‘대전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진행된 강제징용노동자상 제막식에는 민주노총대전본부와 한국노총대전본부를 비롯해 평화나비대전행동 소속 단체와 건립 기금 모금에 동참한 시민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특히 이날 제막식에는 대전에 거주하다 최근 서울로 이사한 강제징용 피해자 김한수(102세) 할아버지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김한수 할아버지는 1944년 일제에 의해 강제징용되어 미쓰비시 나가사키 조선소에서 일하다가 원폭 피해를 입었다.

고령의 몸을 이끌고 참석한 김한수 할아버지는 노동자상을 건립한 데 대해 연신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최근 한국이 반일행동을 하는 것을 나쁘다고 하지 말고,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과거를 반성해야 한다”고 일본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를 냈다.

▲ 대전 강제징용노동자상 제막식에는 강제징용 피해자 김한수(102세) 할아버지가 참석해 화환을 받았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강제징용 피해자 김한수(102세) 할아버지가 대전노동자상을 쓰다듬으며 감격해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제막식이 시작되자 대회사를 위해 대전 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운동을 제안했던 평화나비대전행동, 한국노총대전본부, 민주노총대전본부 대표자들이 차례로 무대에 올랐다.

먼저 대회사에 나선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대전본부 김용우 상임대표는 “우리는 거룩한 분노로 미일 동맹의 광란에 쐐기를 박고 위대한 새 시대로 자주·자존·자강·자립의 평화통일 시대의 밝고 시원한 대로를 열어야 한다”며, “시민과 동지들이 의연히 온 국민과 함께 헤쳐 나가는 결단의 시간이 되고자 평화의 소녀상과 함께 이 자리에 강제징용노동자상을 건립하여 우렁찬 단결투쟁의 굳건한 약속을 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용복 한국노총대전본부 의장은 노동자상을 건립한 이유에 대해 “갈수록 희미해져 가는 역사를 우리 손으로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이자, 전범국 일제의 실체를 널리 알려 이제라도 일본 정부의 공식 인정과 사과를 받아내고, 다시는 이러한 비극적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이대식 민주노총대전본부 본부장도 대회사를 통해 “강제징용노동자상을 건립한 시민들의 마음은 일제만행에 의해 고통 받았던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역사정의를 세우려는 민족적 의지이자 애국의 양심”이라며, “대전 시민들이 함께 세운 대전 강제징용노동자상이 역사적인 공공의 조형물로 잘 지켜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 강제징용노동자상 제막식에는 민주노총대전본부와 한국노총대전본부를 비롯해 평화나비대전행동 소속 단체와 건립 기금 모금에 동참한 시민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제막식 참석자들이 일본 규탄과 한일군사정보 보호협정 폐기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대전작가회의 김채운 시인이 제막식 무대에 올라 헌시를 낭송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지자체 단체장들과 의원들의 축사도 이어졌다.

허태정 대전광역시장은 “이 자리가 의미있는 것은 노동자상을 제작하는 비용이나 절차를 노동자들과 시민들의 정성과 참여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라며 “앞으로 시민의 힘으로 대전을 시민이 주인되는 세상으로 만드는 데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김종천 대전시의회 의장도 “80여년 전에 큰아버지께서 강제 징용에 끌려가셔서 아직까지도 생사가 확인되고 있지 않다”며, “강제징용 피해자 가족으로서 오늘 노동자상 제막식이 누구보다도 특별하고 가슴이 뭉클하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아베 정부는 사람이라면 정말 진심어린 사과와 피해복구에 노력해야 한다”고 일본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를 덧붙였다.

▲ 제막식 참석자들이 ‘NO 아베’ 피켓을 들고 최근 일어나고 있는 반일운동 동참도 호소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박규용 (사)대전충남겨레하나 상임대표(왼쪽)와 최영민 대전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오른쪽)가 특별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이들은 제막식 특별결의문을 통해 “오늘은 다시금 독립운동을 시작하는 날”이라고 선언했다.

또한 “해방 이후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던 일제 잔재 투쟁을 다시 시작하는 날”이라며, “노동자상 제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파렴치한 일본의 만행에 맞서, 적반하장으로 일관하는 일본에게 제대로 된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는 더욱더 거센 항일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평화의 소녀상’과 ‘강제징용노동자상’이 있는 이곳을 일제의 만행을 잊지 않고, 아직도 잔존하고 있는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한 역사교육의 장인 ‘평화공원’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며, “제대로 된 역사청산과 평화세상을 염원하는 모든 대전시민들과 함께 일본정부의 파렴치한 만행에 맞서 당당하게 투쟁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제막식에서는 대전작가회의 김채운 시인이 헌시를 낭송했고, 대전청년회 노래모임 ‘놀’은 노래 공연을 펼치며 노동자상 제막을 축하했다. 제막식에 앞서 송인도 대전민예총 서예위원장은 ‘친일청산 역사정의’라고 쓰며 서예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 대전청년회 노래모임 ‘놀’이 노동자상 제막을 축하하며 노래 공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송인도 대전민예총 서예위원장이 ‘친일청산 역사정의’라고 쓰며 서예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대전 강제징용노동자상은 평화의 소녀상과 대각선 방향에 세워졌다. 노동자상과 소녀상이 마주 보도록 그동안 남향으로 대전시청을 정면으로 바라보던 대전 평화의 소녀상을 왼쪽으로 45도 정도 틀어 동남쪽을 바라보게 했다.

노동자상 뒷면 동판에는 노동자상 건립 기금 모금에 참여한 개인 2,400여명과 400여개 단체의 이름들이 새겨졌다. 대전지역에 거주하면서 강제징용 문제 해결을 위해 싸워온 김한수 할아버지와 고 최장섭 할아버지의 이름도 함께 새겨졌다.

지난해 1월, 92세의 나이로 별세한 고 최장섭 할아버지는 1943년 강제징용되어 '군함도'라고 알려진 나가사키 앞바다 하시마섬 해저 탄광에서 강제노동을 하다가 귀국했다.

▲ 노동자상 건립 운동에 동참한 시민들이 동판에 새겨진 자신의 이름을 찾아 보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한 시민이 13일 건립된 강제징용노동자상을 쓰다듬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대전 강제징용노동자상은 2016년 일본 교토 '단바 망간 광산'에 노동자상을 건립한 이후 서울, 인천, 제주, 울산, 부산 등에 이어 국내에서 7번째로 건립됐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