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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우스리스크서 ‘최재형 기념비’ 제막식 열려한청단도 참석...내년 순국 100주년 앞두고 다양한 행사
우스리스크=오정윤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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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12  22: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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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리스크=오정윤 통신원 / 한국청소년역사문화홍보단 대표

 

   
▲ ‘최재형 기념비 제막식’이 12일 오후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 있는 최재형 기념관(고택)에서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오정윤 통신원]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 있는 최재형 기념관(고택)에서 12일 오후 4시(현지시간) ‘최재형 기념비 제막식’이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다.

제막식에는 안민석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 소강석 한민족평화나눔재단 이사장, 문영숙 최재영기념사업회장, 오성환 블라디보스토크 한국총영사, 이 플라디미르 우수리스크시의원, 최재형 선생의 손자인 최발렌틴 러시아독립유공자후손협회장 등이 참석했다.

개회사는 안민석 국회의원, 기념사는 소강석 이사장, 건립문 낭독은 문영숙 이사장이 맡았고 답사는 유족을 대표하여 최발렌틴 회장이 하였다.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기념비 건립문>
   
▲ 제막식을 가진 기념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 - 통일뉴스 오정윤 통신원]

1920년 4월 일본군에 의해 순국한 최재형 선생의 2020년 순국 100주년을 앞두고 2019년 8월 15일 광복절에 그의 고귀한 희생과 위대한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한민족평화나눔재단 소강석 이사장의 제안으로 대한민국 국회 안민석 문화체육관광위원장, 최재형기념사업회 문영숙 이사장, 고려인민족문화자치회 김니꼴라이 회장, 최재형 선생의 후손 및 각계 인사들의 뜻과 정성을 모으고, 국가보훈처와 주블라디보스톡 한국영사관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선생을 추모하는 역사적인 기념비를 세운다.

민간공익단체인 한국청소년역사문화홍보단(한청단)은 최재형 기념비 제막식 참석을 위해 연해주 항일독립-발해 역사대탐방의 우수리스크 일정을 12일로 맞추고 한국의 답사단체로는 유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행사에 참석하여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최재형 선생은 연해주에서 막대한 부를 쌓고 대한의군, 13도 의병, 안중근 의거를 지원하고, 항일민족지인 <대동공보>를 맡아 운영하였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을 맡는 등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로 불리웠지만 안타깝게도 블라디보스톡을 침략한 일제가 연해주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기 위해 일으킨 ‘4월참변’으로 1920년 4월 5일(6~7일설도 있음)경에 일본군의 만행으로 순국하였다.

   
▲ 기념비가 흰 천으로 가려진 채 개막식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오정윤 통신원]
   
▲ 민간공익단체인 한국청소년역사문화홍보단(한청단)이 일정을 맞춰 개막식에 참석해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사진 - 통일뉴스 오정윤 통신원]

내년 2020년은 최재형 선생 순국 100주년으로 그의 업적과 항일독립의 의지를 계승하는 대대적인 추모사업이 진행중이고 12일에 거행된 기념비 제막식은 여러 행사의 일환으로 열렸다.

한청단은 이곳 연해주 항일독립과 발해역사를 널리 알리고 그 뜻을 계승하는 연해주답사를 매년 여름방학에 실시할 계획이고, 많은 한국의 청소년, 일반인들도 연해주 블라디보스톡 여행을 계획한다면 우수리스크에 있는 최재형 고택, 기념관, 그리고 이번에 제막한 최재형 기념비를 꼭 찾아주기를 희망한다.

   
▲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최재형 고택'. [사진 - 통일뉴스 오정윤 통신원]
   
▲ 기념과 내부 모습. [사진 - 통일뉴스 오정윤 통신원]

 

최재형의 생애 연표(1860-1920)

1860 8월 15일, 조선(이북지역) 경원군에서 출생.

1869 러시아 연해주 남부 티진헤 마을로 이주.

1871 집에서 가출하여 포시에트(Посьет)항 무역상선의 견습선원이 됨.

1871-77 2회에 걸쳐 블라디보스토크(г.Владивосток, 해삼위)-페트로그라드(레닌그라드, 상트-페테르부르그) 구간을 항해.

1878 선장의 추천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무역회사에 취직.

1881 얀치헤(с.Янчихе, 연추)에서 큰 아들 부부와 거주하고 있는 아버지 최흥백(Цой Хын Бек-원문에서는 세 가지 형태(Цой Хын Бяк, Цой Хын Бек, Цой Хен Бяк)로 표기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역자는 이 중에서 한국식 표기에 가장 가까운 Цой Хын Бек으로 통일해서 표기)에게 돌아옴.

한인들 사이에서 문화-교육계몽 및 농업정착 사업 활동을 시작.

1882 라즈돌노예(Раздольное, 하마탕)-크라스노예 셀로(Красное Село) 구간 고속도로 건설국과 지구경찰서장의 통역으로 일을 시작.

1886 한인 젊은이 첫 번째 그룹을 상대로 러시아 유학 파견 사업을 조직.

1888 고속도로 건설관련 공로로 첫 은메달을 받음.

1890 최 표트르 세묘노비치(최재형-П.С.Цой)의 발의로 노보키예프스크에 공원이 조성되었고, 1916년에는 슬라뱐카(Славянка)의 학교 내에 공원이 조성됨.

한인들의 생활정착 및 복지에 필요한 지원 자금 마련을 위해 산업체 인사들과의 사업적인 네트워크를 조직함.

1893 스타니슬라프 금장으로 된 두 번째 은메달을 수여받음.

얀치헤 볼로스치(Янчихинская волость, 얀치헤 읍,邑)의 책임자(старшина)으로 선출됨.

1894 제1차 전러시아 읍장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수도 페트로그라드에 다녀옴.

1895 얀치헤에 최초의 정교 교회와 교사 및 사제를 위한 학교와 주택들이 건립됨.

1896.5.13 수도와 모스크바에서 있었던 황제 니콜라이 2세(Н.А.Романов Ⅱ)의 즉위식에 참석함.

1898 친선-형제관계에 의거해 상업회사를 설립하고, 회사를 통해 한인들의 생활정착 및 복지에 필요한 교육계몽, 건설, 농업관련 비용들을 조달함.

1904 항일운동 조성을 위해 연해주 한인들 사이에서 조직적인 활동을 시작함.

최고영예의 금메달을 수여받음.

1905 한국과 관련한 국가정책을 알기위해서 일본의 수도 도쿄에 다녀옴.

가족과 함께 노보키예프스크(현재 크라스키노)로 이사해옴.

1906 최초의 한인 빨치산 부대 ‘의병’부대를 조직하고 무장시킴. 의병부대를 지휘하며 일본군 수비대에 대해 기습을 감행함.

1910 가족과 함께 슬라뱐카로 이사해옴.

1911 봄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된 비밀회의에서 전 극동지역 57명의 대표위원 입회하에 새로운 단체 ‘권업회’가 조직되고, 최재형(최 표트르 세묘노비치)이 권업회 회장으로 선출됨.

11월에 권업회의 합법적인 활동권을 보장받았으며, 12월에 창립총회가 개최되어 권업회의 지도부가 선출됨.

1913 로마노프(Романов) 왕조 제위 300주년 기념식에 한인단체(7명)의 일원으로 페트로그라드에 다녀옴.

권업회의 지도자들(최 표트르 세묘노비치(최재형), 박 에스. 베.(С.В.Пак), 채 아.(А.Цхай)이 곤닫티 프리아무르 군사령관지사(Н.Л.Гондатти, Приамурский генерал-губернатор)에게 한인의 러시아이주 50주년 기념행사 조직위원회의 조직을 허락해 줄 것을 청원했으며, 동년 10월에 프리아무르 군사령관지사로부터 허가를 받음.

1915 슬라뱐카에서 헌병대에 의해 체포되었으며, 3일 후 니콜스크-우수리스크로 이송되었다가 11일째 되는 날 석방됨.

1917 얀치헤 읍집행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됨.

1918 니콜스크-우수리스크로 이동해 옴.

니콜스크-우수리스크 군자치단체(군참사회, Уездная Земская Управа)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군자치단체 감사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됨.

일본군에 대항해 한인 빨치산 부대를 조직하고 무장시킴.

1919 상해임시정부 위원으로 선출됨.

1920 4월 5일 일본군에 의해 체포되어 총살당함.

1953 7월 13일 부인 엘레나 페트로브나(Елена Петровна)가 사망했으며, 7월 16일 (키르기즈스탄) 비쉬케크시 (프룬제) 공동묘지에 안장됨.
 

<출처 - 독립기념관 독립운동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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