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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깃발투쟁 시 북·미 전술분석<기고> 유엔사와 유엔깃발 논쟁 (3)
이시우  |  siwoo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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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10  10:3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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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우 / 사진가

목차

1. 유엔사와 유엔기

2. 유엔기에 대한 법적논쟁

3. 유엔기에 대한 정치투쟁

4. 유엔깃발투쟁 시 북·미 전술분석
  1) 미국의 실패와 성공
     (1) 미국 발등 찍은 유엔총회
     (2) 안보리이관의 실패
     (3) 유엔에서 미국권위의 균열
     (4) 살라미전술의 성공
  2) 북의 성공과 실패
     (1) 유엔에서의 성공
     (2) 유엔사해체의 실패

5. 유엔깃발 논쟁의 전망
  1) 의제설정 무대
  2) 전제
  3) 전가
  4) 순서
  5) 배치

6. 결론

 

4. 유엔깃발투쟁 시 북·미 전술분석

1) 미국의 실패와 성공

(1) 미국 발등 찍은 유엔총회

1950년 8월 1일부로 안보리에 불참했던 소련이 안보리의장 자격으로 돌아왔다. 예상했던 대로 소련은 한국전쟁관련 안보리결의에 모두 거부권을 행사했다.

안보리결의로 시작된 한국전쟁의 개입이 소련에 의해 좌초될 위기에 처하자 미국은 안보리가 아닌 총회를 이용할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0월 7일 북한점령지역에서 행정을 실시하는 문제를 다룬 총회결의가 통과되었다. 그러나 이런 주제에 대해 유엔총회에서 다룰 수 있는지가 의심되었다. 왜냐하면 안보리에서 다루는 주제에 대해서는 총회가 다룰 수 없도록 헌장이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결의가 통과된 후 미국은 11월 3일 ‘평화를 위한 단결’이란 제목의 결의안을 제출하고 이를 통과시킨다. 이 결의안의 내용은 안보리가 거부권행사 등으로 1차 책임을 수행하지 못할 때 총회가 2차 책임을 질 수 있다는 내용이다. 거부권으로 인한 안보리의 공전은 안보리가 해당의제를 안 다루는 것이 아니라, 다루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런데 거부권행사로 인한 안보리의 공전을 1차 책임을 방기하는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8월부터 안보리에 참석하여 거부권을 행사하기 시작한 소련에 의해 안보리에서 한국전쟁과 관련된 어떤 결의안도 통과되지 않는 상황에서 미국이 친미국가가 다수를 이루고 있던 총회를 이용하기 위해 편법을 쓰는 것으로 보였다. 총회가 안보리의 1차 권한에 속하는 범위의 기관을 만드는 것은 안보리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반대하는 견해도 있으나, 당시 대부분의 각국 대표들은 이 분야의 2차적 책임에서 스스로의 의무를 행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10월 7일 총회결의 번호가 376인데 다음 번호인 377이 바로 이 ‘평화를 위한 단결’결의이다. 유엔사에 북한점령권을 부여하기 위해 유엔헌장을 내용상으로 수정하는 수완을 발휘한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1956년 안보리가 중동위기를 해결하는 수단을 결정하지 못하게 된 후 총회가 유엔긴급군(UNEF)을 설치했을 때, 총회는 2차적 책임을 이행하기 위해 10조, 11조, 14조의 권한을 사용함으로써 재차 확인되었다.(주41)

그러나 70년대 들어서자 총회는 비동맹운동회원국들의 대거 가입으로 반미국가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이 되었다. 미국은 총회에서 포위·고립되었다. 유엔총회에서 비동맹운동의 힘은 예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중국도 예상 못한 유엔조기가입이 실현된 것에서도 그 세가 과시되었다.

비회원국인 북한 역시 유엔에서 가장 큰 영향력의 행사와 지지를 받은 시기가 이 시기였다. 미국은 유엔에 권력을 제공하고 유엔은 미국에 권위를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해왔다면 미국이 누려왔던 권위는 크게 위축되었다. 미국은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 사실을 통감해야 했다.

(2) 안보리 이관의 실패

미국은 74년 유엔사해체문제를 총회에서 안보리로 이관시키고자 했다.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가진 미국은 1/5의 표결권을 갖지만 총회에서는 회원국 중 하나에 불과한 약 1/70의 표결권 밖에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북한측 결의안의 공동발의자는 미국측 보다 항상 다수였다.

그러나 미국은 안보리의장에게 일방적인 서한을 보내 통보하는 것 말고는 어떤 변화도 이루어내지 못했다. 한국문제에 대한 안보리로의 이관은 실패한 것이다. 안보리에서 유엔사해체결의를 부결시킬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자 부득이 유엔총회에서의 좀 더 질서있는 패배를 준비하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3) 유엔에서 미국권위의 균열

유엔사의 조속한 해체와 한반도 평화체제의 조속한 수립을 권고한 1975년 11월 18일의 유엔총회의 결의도 결국 관계당사국의 결단을 촉구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주42) 즉 강제이행수단이 없었다. 오직 유엔회원국인 미국의 성실한 약속실행과 거듭된 총회의 이행촉구 결의가 최선일 수밖에 없었다. 유엔의 이러한 한계 때문에 결국 미국은 유엔사해체를 약속하고도 지키지 않음으로써 마지막 실리를 챙길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소탐대실이었다. 유엔권위의 독점구도에 균열이 갔기 때문이다. 유엔창설주도국으로서 미국이 권위를 누릴 수 있던 원천중의 하나는 미국이 유엔에 제공하는 공공재, 그 중에서도 유엔헌장의 수호자라는 신뢰였다. 그러나 스스로 약속하고도 이행하지 않는 사례를 남김으로써 유엔헌장에 대한 무시내지는 위반자로서의 이미지가 생겼다.

(4) 살라미전술의 성공

미국측의 유일한 성공은 살라미전술이었다. 북측은 유엔깃발에서 평화협정까지 의제를 필연적 관계로 통합하는데 집중했고 미국측은 의제를 잘게 썰어 우연적 관계로 분산시키는데 집중했다. 물론 미국은 그를 위해 유엔기사용의 포기를 부분적으로 받아들여야 했고 유엔사해체의 당위성을 인정하는 굴욕을 감수해야 했다.

미국이 목숨을 보존하려면 팔 하나는 내주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미국은 이 시점에서 결심함으로써 최악이 아닌 차악의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즉 팔을 내주고 목을 보존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이후 전개된 한반도 정세를 유엔사해체로부터 관심을 돌리게 하고 희석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유엔사해체를 회피한 점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미국이 취한 유일한 조치는 미군기지에 게양된 일부 유엔깃발을 내린 것이 전부이다. 그 외에 어떤 약속도 이행되지 않았다.

2) 북의 성공과 실패

(1) 유엔에서의 성공

유엔의 회원국도 아닌 북한이 유엔에서 괄목상대한 것 자체가 놀라운 외교적 성공이었다. 사회주의동맹국인 중국을 통해서도 얻어내지 못한 유엔사해체를 비동맹운동세력을 통해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은 북이 유엔의 객체에서 주체로 전환할 가능성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북한이 중·미회담에 앞서 중국에 한국문제해결을 요청할 때는 언커크와 유엔사해체 등 유엔문제였으나 직접 유엔무대로 나와서는 평화협정체결과 주한미군철수라는 대미문제까지 유엔의제로 관철시키는데 성공했다.

(2) 유엔사해체의 실패

그러나 북은 최종적으로는 유엔사해체에 실패했다. 전부가 아니면 전무인 듯한 전략을 취한 셈이 되었다. 그 후로 수 십 년 동안 전개된 북한의 정책을 보면 유연함도 있었고, 후퇴도 있었고, 양보도 있었다. 결과만을 놓고 돌이켜보면 당시 북한의 정책엔 우선순위와 장단기 목표의 구분이 없었다. 북측의 실패요인은 다음과 같이 판단된다.

첫째, 의제집중화의 실패이다.

여기에는 의제내적요인과 의제외적요인이 있다. 내적요인과 관련해서는 애초의 의제였던 유엔사해체에서 평화협정으로 중심을 옮기면서 스스로 의제의 집중화원칙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1975년 유엔총회결의에 이르렀을 때 핵심의제가 유엔사해체인지 평화협정체결인지 모호해지고 말았다. 미국이 정전협정유지라는 의제를 들고 나오자 이에 과도하게 대응하면서 평화협정의제가 강조되고 결국 의제의 분산이란 함정에 빠지고 만 측면이 있다.

의제외적 요인으로 74년, 75년의 1,2차 땅굴발견과 76년 판문점미루나무절단 등 외교적 사건과 경기하강이라는 국내적 사건 역시 유엔에서 유엔사해체추진의 동력을 상실하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결과적으로 이들 사건은 국제여론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미국 헤게모니하에서 북한은 이 사건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작동시킬 조건을 갖추진 못했던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볼 때 미국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의제의 예봉을 무디게 하는 방법으로 의제분산전략을 사용함을 알 수 있다. 북미제네바합의 이행종료기간이 다가오자 터트린 농축우라늄 의혹제기, 9.19핵합의 후 방코델타아시아은행 사건, 하노이 회담시 영변이외 의심시설 추가제기, 회담결렬 후 북한 석탄운반선 어니스트 와이즈호 나포 등 어렵게 성사된 회담의 의제를 일거에 뒤집는 의제내적, 외적요인의 투입은 미국의 의제분산전략이 일관된 것임을 보여준다.

‘북핵’의제를 ‘북한’의제로 바꾸는 순간 미국은 주도권을 잡는다. 이들 수단을 유연하게 동원할 수 있다는 것은 패권국의 특권이기도 하다. 의제자체의 동력 약화시키기, 의제의 목표 옮기기, 외적요인을 동원하여 의제 덮기 등 여러 수단을 동원하여 의제의 집중력을 분산시킨다.

북은 이들 분산전략에 민감하게 대응하면서 스스로 의제집중화원칙을 훼손시켰다. 이런 학습효과 탓인지 최근의 북한석탄운반선 나포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대응하지 않고 핵의제로의 집중화 원칙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유엔사해체문제나 주한미군철수문제도 공식적으로는 발언을 자제하고 있다. 대북제재해제문제도 포기했다.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교환만을 유일한 의제로 만들려는 집중전략이 유지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75년 유엔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둘 째, 의제현상화 실패이다.

‘유엔깃발’은 유엔조직도 아닌 유엔사가 유엔깃발을 사용하는 부당성과 부조리에 대한 훌륭한 현상화장치가 되었다. 안보리결의 84호에서 문제삼을 수 있는 소재는 ‘보고서’도 있었고 또 이 결의와 완전히 배치되는 ‘유엔사명칭’문제도 있었다. 그러나 북은 깃발에 집중했고, 깃발이란 상징은 탁월한 효과를 나타냈다. 각국의 유엔대표들은 물론 심지어 미국조차 유엔기 사용의 명분 없음을 인정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미국은 유엔기-유엔사해체라는 연결고리를 끊고자 했다. 유엔기를 주한미군까지 남용한 것에 대한 반성과 유엔사에만 엄격히 사용할 것을 약속함으로써 유엔기-유엔사해체문제를 유엔기남용자제문제로 바꾸고자했다. 상징의 왜곡이다.

그리고 미국은 유엔기로 현상화된 유엔사해체문제를 분리시키기 위해 미군기지에서의 유엔기게양을 포기하는 조치를 실행함으로써 이를 기정사실화 하고자했다. 유엔기를 사라지게 함으로써 유엔사해체문제에 대한 관심도 약화시키려는 차선의 선택이었다. 유엔기-유엔사해체론자들은 이것을 유엔사해체의 첫 단계로 오판할 수 있었고 미국은 이러한 효과를 의제전환을 위한 시간벌이에 적절히 이용했다.

‘유엔깃발하’란 실제로는 ‘유엔사령관지휘하’의 상징적 표현이다. 지휘관계의 객관적·물신적 표현으로서 깃발인 것이다. 상품가치의 객관화·물신화로서의 화폐와 같은 속성을 유엔깃발이 획득한 것인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상품가치와 화폐는 가치형태로서는 구분되지만 가치실체로서는 일치하는 관계를 이루고 있다. 지휘권과 깃발사용권은 그것이 미군사령관의 지휘권과 성조기사용권일 때는 분리할 수 없는 관계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미군사령부가 유엔사령부를 위장하기 위한 용도로서 사용한 유엔기는 미군사령관의 지휘권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진 않는다. 위장이 드러났을 때 언제든 집어던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엔기사용의 포기는 유엔을 이용한 미국패권을 포기시키는 것임엔 분명하다. 유엔기가 미국의 지휘권자체가 아닌 유엔과 미국의 고리를 끊는 상징이라면 북한은 거기에 집중했어야 한다. 유엔기를 통해 미군철수까지 확장시키는 전술은 선전효과는 있으나 실제 목적을 이루기엔 적절치 않은 전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 현상변경의 실패이다.

유엔깃발 사용취소문제는 결국 평화협정까지 이르는 현상변경의제였다. 현상변경이란 북·미간 적대관계의 청산이다. 적대관계가 온존하는 변화, 즉 현상유지상태에서의 변화는 언제든 역진할 수 있다. 유엔사해체까지 갔던 1975년 결의가 이제 다시 유엔사유신, 유엔사강화로 부활하는 것은 바로 현상의 질이 변경되지 않고 양적변화만 이룬 한계의 표현이다.

북한은 1991년 9월 17일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을 계기로 유엔과 북한간의 ‘비정상적 관계’가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면서 이러한 비정상적 관계청산의 일환으로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및 유엔군사령부해체, 대미평화협정체결, 주한미군철수 등을 다시 포괄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했다.(주43)

이들 각각의 의제가 필연적으로 연관·통합된 의제임은 분명하나, 통합되어 있다는 것은 구분되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구분되며 통합된 것은 순서와 배치에 의해 구조와 체계를 이루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이들 의제간의 순서를 확정하고 의제가 정립될 수 있는 전제조건을 질서 있게 배치하는 것이 요구된다. 그러나 북은 상대에게 이 순서와 배치를 정확히 인식시키거나 관철시키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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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41) 김정균·성재호, 『국제법』, (서울: 박영사, 2008), pp.286-287 

42) 정태욱, 「평화협정과 주한유엔사령부」, 『한반도 평화체제 토론회 자료집』, (평화통일연구소), 2007.05.9

43) 1991년 9월 18일 강석주부부장의 기자회견과 10월 2일 연형묵총리의 유엔총회연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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