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진보할 작정이다 (나쓰메 소세키)

 

 

눈 온 아침
- 임길택

밤사이 내린 눈이
몽실몽실
강가의 돌멩이를
덮고 있었다.
어두운 밤이었을 텐데
어느 돌멩이도 똑같이
나누어 덮고 있었다.

해가 뜨는 쪽의 것도
해가 지는 쪽의 것도
넓은 돌멩이 넓은 만큼
좁은 돌멩이 좁은 만큼
어울려 머리에 인 채
파도를 이루고 있었다.

돌멩이들이 나직이
숨을 쉬고 있었다.

 

나는 10여 년 전에 크게 아프고 나서 추위에 엄청 약한 몸이 되었다. 요즘 같은 한 여름에도 내 방에는 밤에 보일러를 켜야 한다. 거실에는 에어컨을 켜놓고 아내와 아이가 잠을 자고.

그리고 오래 서 있지 못한다. 오래 서 있으면 어지러워지면서 쓰러진다. 그래서 강의 할 때도 항상 앉아서 한다. 문제는 외부에서 강의요청이 들어올 때다. 일단 승낙하고 나서 강의 날짜가 임박했을 때 등산하다가 발을 삐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의자를 준비해달라고 한다. 이럴 때 얼마나 비참한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할 때는 미리 술을 마시고, 강연을 할 때도 술을 마시며 한다. 술의 힘이 없으면 두 시간을 버티지 못한다. 술 냄새가 나지 않게 온갖 방법을 쓴다. 몇 년 전에 모 단체에 강연을 갔을 때 앞자리에 않은 분이 ‘어디서 술 냄새가 나지?’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말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그때마다 죽어버리고 싶은 심정이 된다.

작년 여름에 강원도 정선에 살고 있는 선배 집에 다녀왔다. 가기 전에 선배에게 전화로 신신당부했다. 밤에 잘 때 추우면 안 된다고. 방을 따뜻하게 해야 한다고. 선배는 염려하지 말라고 했다. 장작을 많이 쌓아놓았다고.

선배는 저녁에 내 방에 불을 때주었다. 방바닥에 손을 대 보니 펄펄 끓었다. ‘이제 됐지?’ 선배는 씩 웃었다. 그런데 새벽에 잠을 깨니 방바닥이 식어 있었다. 옷을 다 껴입었는데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떡하나? 내가 불을 땔까? 어릴 때 불을 때 본 경험을 믿고 부엌 아궁이로 갔다. 오! 불이 붙지 않았다. 연기만 피워 올리다 꺼져 버렸다. 메케한 연기 속에서 내 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할 수 없이 선배를 깨웠다. 추워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고. 어이없어하는 선배의 표정. 이 한여름에 춥다니!

인간의 ‘차이’는 이런 것일 것이다. 남이 볼 때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정작 본인에게는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

MBC TV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에서 보았다. 원시인들은 역시 ‘인간의 차이’를 완벽하게 인정해준다. 사냥하기 싫은 성인 남자는 집에 머문다. 그는 집안일을 한다. 그런 남자에게 그들은 우리처럼 ‘남자가?’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사냥한 것들을 함께 나눈다.

우리 사회에서는 ‘인간의 차이’에 대해 얼마나 무자비하게 폭력적인가? 양심적 병역거부자, 성 소수자, 장애인...... 이들에게 우리는 쉽게 저주를 퍼붓는다. 그들에게는 그런 차이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일 텐데

임길택 시인은 어느 겨울 아침, 눈이 하얗게 내린 세상을 본다. 사랑이 우리의 모든 차이들을 따스하게 덮어주는 아름다운 세상을 본다.

‘밤사이 내린 눈이/몽실몽실/강가의 돌멩이를/덮고 있었다./어두운 밤이었을 텐데/어느 돌멩이도 똑같이/나누어 덮고 있었다.//해가 뜨는 쪽의 것도/해가 지는 쪽의 것도/넓은 돌멩이 넓은 만큼/좁은 돌멩이 좁은 만큼/어울려 머리에 인 채/파도를 이루고 있었다.//돌멩이들이 나직이/숨을 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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