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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자꾸만 얘기해야한다<기고> 김광수 정치학 박사
김광수  |  no-ultari@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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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17  16:4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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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 / 정치학 박사(북한정치 전공)·<수령국가>저자·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

 

언젠가부터 ‘통일’ 얘기를 자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박근혜·이명박 정부 때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촛불정부를 자임하는 지금의 문재인 정부 때도 이 현상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어 좀 의외이다.

의외인 것은 더 있다. 통일운동진영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북이 지난 1월 “전 민족적 합의에 기초한 평화적인 통일방안을 마련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나가자!”라는 호소문을 발표했는데도, 이에 대한 호응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이와 관련해서는 필자의 연재, “연방연합 통일방안에 대한 소고(1~8)”, <통일뉴스>, 2019.02.26.~2019.06.24. 참조)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우선은 현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인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영향이 제일 큰 듯하다. 또 모르긴 몰라도 대통령에서부터 여당 대표,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이르기까지 온통 ‘평화’ 얘기만 하니 언론과 매체, 지식인 등 사회전반적인 분위기가 ‘평화’담론만 지배하게 된듯하다. 기조가 이런데다 문재인 정부 등장과 함께 맞닥뜨린 한반도 긴장고조(험악한 전쟁분위기) 정세가 자연스럽게 ‘평화’담론이 지배하게 만든 상황적 요인이 아닐까한다. 

상황을 그렇게 이해하더라도 남는 문제는 분명 있다. 통일운동진영에서의 대응방식이다. 의외로 조용하다는 말인데, 그리고 그 이유를 다는 몰라도 박근혜·이명박 정부 때의 종북 트라우마,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 정세 주도능력의 부재, 그리고 ‘문재인 정부 등장과 함께 맞닥뜨린 한반도 긴장고조(험악한 전쟁분위기)’에 따른 ‘전쟁반대와 평화(미국반대)’ 담론에로의 집중 등이 그 요인일 것이다.

또 그렇게 상황인식을 한다하더라도 통일운동진영에서 계속 이렇게 ‘평화(미국반대)’ 얘기만 하고 있으면 될까?이다. 그러면 정말 저절로 통일이 올까?이다. 100퍼센트의 정답은 아니겠지만, 다음의 필자본인 경험담이 어느 정도 힌트는 줄 수는 있다.   

<평화교육> 과목에 (시간)출강하고 있는 모 대학 강의평가서에 어떤 학생이 이런 구절을 남겼다. “북한을 왜 조선이라고 불러야 하느냐?”고 반문하면서 “교수님은 너무 편향적인 강의를 한다.”

처음에는 좀 당황스럽고 황당했지만, 이내 진정하였다.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국가명을 그대로 ·불려줬을 뿐인데도 ‘빨갱이’ 교수로 내몰려야 한다는 그 사실, 그것도 청년학생들의 인식이 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사실에 당황했고 황당 그 자체였다면, 이내 진정했음은 지금 우리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듯하여 씁쓸해서 그러하였다.

특히, 후자는 어찌 이들 대학생의 잘못이겠는가? 그들을 그렇게 교육한, 또 지금도 그렇게; 주구장창 북한이라고 불러오고 있는 우리 어른들의 잘못이 크고, 종국에는 대한민국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당리당략차원 때문에 조선을 악마화한 그 후과가 고스란히 청년학생들에게 반영되어 있는 결과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청년학생들에게 미안하고 죄스러울 뿐이었다.  

통일문제가 이렇게 심각하다. 하루빨리 제 위치를 잡지 못한다면 심각한 후과를 계속 재생산해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와있게 되어있다. 어느 통일인식 조사에서도 “'경제·통일 중 하나 선택한다면'…국민 77% "경제 택하겠다"였다.(<연합뉴스>, 2019.06.07.)

이 심각한 상황을 전제로 이 글은 부부에 관한 얘기로 첫 시작을 할까 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사랑얘기이기도 할 수 있고, 정확하게는 부부와 관련된 사랑얘기 정도 되겠다. 과거엔 금실 좋은 부부라 하더라도 ‘여보, 사랑해’라는 말을 잘 하지 않았다. 그것이 미덕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랑하면 됐지, 뭐 하러 남살스럽게 ‘사랑’이란 단어를 꼭 사용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불문율이 작용하였다. 그러던 것이 지금에 와서는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데, 어떻게 ‘사랑’을 알 수 있느냐며 적극적인 ‘사랑’ 표현방식을 해야만 진짜 사랑하는 것으로 인정받는 그런 시절이 되었다.

‘어 하면 아’로 알아들을 수 있는 관계, 그런 부부관계에서조차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다면 진짜 사랑하고 있는지, 않는지가 헷갈릴 정도라면 하물며 통일은 더 그러해야만; 자주 불러줘야만 통일이 개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멀어지지가 않을 수 있다는 반증이다.

그런데도, 현실은 전혀 그러하질 못함을 위에서 확인받았다. ‘통일’을 직접얘기하지는 못하고, ‘평화’를 통해서만 드러나는 간접 통일얘기가 마치 정상적인 양 합리화된다. 마치 이는 홍길동이 ‘자기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의인화된 닮은꼴과 똑같은데, 그 누구도 문제제기 하지 않는다.

백번 양보하더라도 정상적이 않다. 정상적이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논란이 있을 수는 있으나 일반적 의미에서 (소극적 의미에서는) ‘전쟁’의 반대어가 ‘평화’이다(넓은 의미에서는 ‘폭력’ 그 자체이다). 그렇다면 ‘평화’를 드러내어 ‘통일’을 연상시켜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이다. 왜냐하면 같은 논리대로라면 ‘분단’을 드러내어야만 ‘통일’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일’을 직접 드러내기가 부담스러워 간접화법을 사용해야만 한다는 것이 맞으려고 한다면 ‘평화’가 아니라 ‘분단’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유는 앞에서도 지적하고 있듯이 ‘평화’의 대쌍관계동학(interface dynamics)적 연관어는 ‘전쟁’이지 ‘통일’이지 않아서 그렇다. 그런데도 그들; ‘통일’이라는 직접화법 대신 ‘평화’를 통해 ‘통일’을 들어내겠다는 집단이나 세력이 있어 계속 평화를 고집한다면 이는 명백한 다른 이유가 있어 그렇다고 보는 것이 그 합리적 유추이다. 

그 중 하나가 대쌍동학적 연관관계를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알면서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왜곡 사용하는 것이 그것일 것이다.

그리고 결론은 후자에 더 가까울 수밖에 없다. 현 정부 관여자들(참여자들)이나 개혁세력들이 ‘평화’의 대쌍동학적 연관관계가 ‘전쟁’임을 모를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렇다. 현 집권세력과 개혁세력들이 자신들의 비(非)통일성을 감추기 위한 전략이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만 한다는 것이다. 즉, 위에서 잠시 언급하고 있듯이 정말 그런 의도; ‘평화’를 드러내서 ‘통일’에 다다른다와 통일에 대한 진정성이 있다면 ‘평화’보다는 ‘분단’얘기를 더 많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내용적 카테고리(category)는 청산되지 못한 친일세력, 분단의 진짜 원인, 분단으로 인한 고통, 분단과 경제문제, 분단과 군사비문제, 분단과 이념문제, 분단과 민주주의(정치)문제, 분단과 평화문제(미국문제) 등 수없이 많은 의제들에 대해 더 많이 공론화하고, 국민의제화하여 국민들 스스로가 이 문제에 대해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시켜 내어야 하는 것이다.

또 시기적으로도 어느 정도 전쟁위협과 긴장고조가 사라진 지금, 분단과 통일얘기를 충분히 할 수 있는데도 그들은 그렇게 하질 않는 데서도 그 증명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도 그들은 지금도 정치 환경과 국민정서로는 통일의 ‘통’자만 꺼내도 그들이; 보수 세력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이념논쟁과 정쟁의 수단으로 삼을 터이니, 쓸데없이 그런 빌미를 주지 않으면서도 조용하게 실질적인 의미에서의 통일을 진전시켜 나가는 평화담론 중심의 얘기를 주장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논리를 포장한다.

정직하지 못하다. 이유는 그런 그들의 논리가 평화담론 전략으로는 맞을지 모르겠으나, 통일담론 전략으로는 맞지 않는다. 명백한 이유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위에서 잠시 언급하였듯이 그들 자신의 비(非)통일성을 숨기려는 정치적 꼼수가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두 번째는 통일중심의 정세국면이 자신들의 20년 집권전략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인식하고 있어서 그렇다. 

불편한 진실이 그렇게 숨어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통일운동진영에서 적폐세력들의 부활이 염려되어 지금의 현 정부를 도와야 된다는 논리에 매혹되어 현 정부와 개혁세력들에 대해 비판과 투쟁을 멈춘다면 그들은 결단코 ‘통일담론’ 정책을 도입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적극 개입하고 나서야 하는 이유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가만히 있는 다하여 그들 세력이 절대 평화담론과 통일담론 병행으로의 정책전환을 해내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것을 안다면 통일운동진영은 현 정부와 개혁세력들에 대해 비판과 견인, 그렇게 전략전술을 짜고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다.[여기서는 지면 관계상 다 실지는 못하지만, 평화담론과 통일담론의 병행이행의 중요성은 필자가 동 매체에 “북미 DMZ회동 이후: 문재인 정부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통일뉴스>, 2019.07.09.)를 참조하길 바란다.]

그렇게 해야만: 비판과 견인을 짜고 들어가야만 하는 이유는 철학적으도 충분히 합당하다. 자연운동에는 ‘주체’가 없지만, 모든 사회적 운동에는 ‘주체’가 있는데(강조, 필자), 그 주체가 목적의식적으로 통일담론을 평화담론과 병행하겠다는 그런 생각과 의지를 갖지 않는 한 저절로 통일담론 정책이 만들어지고 활성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이들 세력들이 그러한 목적의식성을 가질 수 있도록 개입하고 강제해내어야 하는 것이다. 선의로 참고 기다릴 게 아니라 이들 집권세력을 비판하고 견인해내어야만 하는 것이다.

통일운동진영에게도 이 논리는 똑같이 적용되어져한다. 이들 진영에서 지금 주한미군 철수 및 평화협정 체결 투쟁을 정말 열심히 벌이고 있는데, 이 투쟁이 이 아픈 땅에서 가장 근본적으로 해결되어야할 근본문제이기는 하나, 미국반대 그 자체가 통일을 저절로 보장해주는 것이 아님도 분명하다. 이름하여 반미의 최종종착지를 어떻게 설정하고, 투쟁의 결과를 어떻게 결속시킬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지향점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목적지향성이 없으면, 미국반대는 반미 그자체로 끝날 수밖에 없으며 그렇게 종결된 반미는 절대 통일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것이다.

자유한국당 해체투쟁도 마찬가지이다. 이들 세력들을 적폐세력들로 규정하고, 그 적폐세력들에 의해 구축되어진 종북이데올로기, 북을 악마화한 것, 평화통일을 반대하고 긴자고조와 전쟁을 부추긴 것, 국정원이 총 연출한 기획입국 등의 죄상을 낱낱이 밝혀 그 반통일성을 함께 부각해야만 이 투쟁이 민주주의 진전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 어떤 운동이라 하더라도 의식화 없는 조직화도, 조직화 없는 대중투쟁도 그 한계가 명백하다고 한다면 통일운동진영은 ‘통일’로 연결되는 정치해설사업 없이 반미투쟁, 반적폐투쟁 등을 열심히 한다 하여 그 자체가 통일에 대한 필요성과 이해를 증폭시켜 주지 않는 만큼, 이를 ‘정-반-합’의 운동 원리로 이해할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목적성을 그렇게 하면 얻는 교훈도 명확해진다.

주체의 준비정도가 낮은 객관정세는 제아무리 좋다하더라도 흘러가는 물일 수밖에 없고, 또한 촛불항쟁의 결과가 왜 제대로 된 민중중심의 진보세력이 집권하지 못하고, 진보와 보수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하는 지금의 집권세력이 왜 집권했는지도 반면교사 된다. 나아가서는 이 땅의 민중들이 역사의 주체로서 위대하고 훌륭한 것도 분명하지만, 각성된 주체들에 의해 안내되지 못한 민중항쟁이 왜 반쪽 승리밖에 하지 못하는지도 비교적 명확해진다. 뒤꽁무니만 따라다녀서는 절대 제대로 된 민중항쟁이 될 수 없다는 그 사실에로의 각성 말이다.
      
해서 2017년 전후를 거쳐 오면서 워낙 한반도 정세가 험악하게 형성되어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평화를 많이 얘기할 수밖에 없는 그런 환경과 정세국면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 연장선상에서 4.27판문점 선언(정식명칭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이다) 그 첫 자리에 ‘통일’이 놓여 지지 못하고 ‘평화’가 놓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평화만 얘기해야 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이를 이런 비유로 한번 접근해보자. (비유가) 맞을지는 모르겠으나, 일반적인 의미에서 너무 ‘귀여운’ 애기가 태어났을 때 할아버지(부모)는 자신의 손주(자식)에게 이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유일한 이름을 지어주기 위해 밤잠을 설친다.

왜 그럴까? 이유는 손주(자식)가 그 이름에 걸맞게 이름값을 하면서 살아갔으면, 또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로부터 손주(자식)의 이름이 자주 불러줬으면 하는 그런 마음과 염원을 담아 그 이름을 작명해내기 때문이다.

이름이 정명(正名)되는 이유이다. 가장 좋은 이름을 짓고, 그 이름이 자꾸만 불러지고, 사용되다보면 손주(자식)가 실제 이름처럼 그런 인물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그렇게 작용한다.
 
‘통일’도 마찬가지이다. 정세가 지금은 통일을 얘기할 타이밍이 아니라서, 지금은 우리가 통일을 얘기하기에는 너무나 수세적 국면이니까... 등등 수많은 그 이유가 있다손 치더라도 애절한 속앓이 대신, 자꾸만 ‘통일’을 얘기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름을 정명해야 되는 이유가, 자꾸만 불러지는 이유가 그렇게 있듯이 ‘통일’도 자꾸만 그렇게 목적의식적으로 불러져야만 통일이 국민들의 인식 속에서 떠나가지 않고, 일상 속에서 통일을 위해 무엇을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또 다른 측면에서 통일을 자꾸만 얘기해야 하는 이유는 “말과 언어라는 것이 소통과 관계에서 그 시작이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과 함께 더 중요하게 들어다봐야 하는 것은 그 말과 언어를 통해 그 사람의 사상과 생각, 신념체계도 드러난다는 사실을 주목한다면 말과 언어라는 것이 한 사람의 인식을 지배하고, 언행일치가 왜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기도 해서 그렇다.”(북한과 조선: 북한이란 나라는 없다(<통일뉴스>, 2018.11.29.)

이 모든 이유로 제아무리 현 정세국면이 ‘평화’와 ‘미국반대’, ‘적폐청산’, ‘노동하는 사람들의 권리보장’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그런 나침반적 좌표가 있다하더라도 통일운동진영은 시민사회세력과 연대해 ‘통일’얘기를 해야만 한다. 그것도 매우 자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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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여기서 비(非)통일세력이라 함은 반(反)통일세력으로서의 보수수구세력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통일은 바라지 않으나 그렇다하여 통일을 반대하지도 않는다는 그 의미 하나와, 두 번째는 당장의 통일보다는 남과 북이 2국가체제를 띄면서 전쟁이 없는 상태, 즉 평화공존체제를 지향하는 그런 세력을 통칭하는 개념설정이다. 그리고 이들은 지금의 민주당 중심의 집권세력을 포함한 개혁세력 일부를 지칭한다,

 

이 글은 <민족의 진로(154호)>에 실릴 목적으로 2019년 7월 16일에 탈고된 글을 수정하여 재구성하였음을 밝혀둡니다. / 필자 주

 

김광수 약력
 

 

   
 

저서로는 『수령국가』(2015)외에도 『사상강국: 북한의 선군사상』(2012), 『세습은 없다: 주체의 후계자론과의 대화』(2008)가 있다.

강의경력으로는 인제대 통일학부 겸임교수와 부산가톨릭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했다. 그리고 현재는 부경대 기초교양교육원 외래교수로 출강한다.

주요활동으로는 전 한총련(2기) 정책위원장/전 부산연합 정책국장/전 부산시민연대 운영위원장/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무처장·상임이사/전 민주공원 관장/전 하얄리아부대 되찾기 범시민운동본부 공동운영위원장/전 해외동포 민족문화·교육네트워크 운영위원/전 부산겨레하나 운영위원/전 6.15부산본부 정책위원장·공동집행위원장·공동대표/전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포럼’위원/현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부산지역본부 운영위원(재가)/현 사)청춘멘토 자문위원/6.15부산본부 자문위원/현 통일부 통일교육위원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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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보기(2)
곽태환 (thkwak) 2019-07-19 17:01:21
김박사의 글을 읽으면서 생각이 나서 여기에 제안한다. 김박사가 통일부에 문의해 주기 바란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목표에 "통일"이 왜 빠져 있는가? 통일은 장기적인 우리민족의 목표이고 비젼인데 "통일"이 목표에서 빠져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통일부가 첫 소책자가 출판되었을때 통일이 목표에서 빠져있어 건의한적이 있었다. 물론 평화를 강조하는 이유의 하나는 "항구적ㅇㅣㄴ 평화정착없이 어떻게 통일을 이룰것인가?" 대한 해답부터 재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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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은소나무 (qnseksrmrqhr) 2019-07-18 09:44:41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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